얼굴에서 음성·문자로우리 관계의진화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01172049575&code=990100



휴대폰 덕분에 당신은 마침내 ‘글자’가 되었다. 물론 문자 메시지는 편리하다. 그런데 그 편리함 중에서는 심리적 편리함의 비중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통화보다 오히려 문자를 더 많이 이용하는 시대/세대가 그렇게 하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얼굴은커녕 음성조차 갖고 있지 않은 글자로서의 타자, 즉 ‘글자-타자’만큼 우리를 편안하게 하는 것이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문자메시지는, 이후의 통화와 그 이후의 대면을 위한 준비 작업일 때도 있지만, 더 은밀하게는, 모든 일이 이 문자의 층위에서 다 해결되면 좋겠다는 소망의 매체이기도 하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지만 누군가의 목소리를 들으려 십원 백원짜리 동전을 쥐고서 가로등 아래 외로이 놓인 공중전화 앞에 줄을 서 차례를 기다리던 풍경이 사라져 아쉽다. 뭔가 무척 많아졌지만 제대로 된 것은 여전히 많지 않다.


아파트 공동주택으로 바뀌면서 싱크대와 찬장이 들어섰다. 돈이 좀 되는 축들은 뭘 아는 터라 목수들을 불러다 나무를 써서 싱크대와 찬장을 만들어 단다. 없는 이들은 기성품을 쓴다. 기성품에 어느 정도 취향이 반영되어 설계나 재료 배치에 소비자가 개입하기도 한다. 그런데 쓰다 보면 알게 되지만 서민(서민은 가난한 사람을 달리 순화하여 부르는 말) 대부분의 집에 있는 싱크대와 찬장은 MDF로 만든다.


MDF는 Medium Density Fiberboard 중밀도 섬유판 -목재에서 섬유질을 추출하고 접착제를 넣어 층을 쌓아 눌러 만든 판이랜다. 쉽게 말해서 톱밥 비스무리하게 저질 목재를 바수어 알갱이로 만든 것(영어가 대세이니 사출성형 소재인 펠릿 정도로 봄 되겠다)을 다시 접착제를 섞어 가압하여 눌러 판을 만들어 층층이 쌓은 것인데 수제비 쓰기 전에 밀가루 반죽해서 밀대로 미는 것이나 모래에 시멘트 같은 거 조금 섞어서 만든, 벽돌 중에서도 하품인 구멍 숭숭 뚫린 브로크(block) 정도 되겠다. 대리석이나 화강암 그도 아니면 질좋은 벽돌과는 미감이나 내구성, 그리고 관리의 편리함 면에서 차이가 많이 난다. 물론 가격 역시.


아쉬운대로 몇 년 쓰고 버리기엔 괜찮지만 쓰다 보면 습기가 차서 뭉게지고 겉판이 터지면 그 알갱이가 흘러나오고 곰팡이 끼고  여러모로 처치곤란이다. 서민들이 먹는 음식도 마찬가지이다. 오뎅이네 어묵이네 통조림이네 죄다 저런  MDF 급에 가깝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꾸역꾸역 입에 집어들 넣지만. 저건 정량 개념. 여튼 구색은 갖추었으니, 형식 논리에 위배되지 않으니 복지국가 아니냐 하는 주장들.


그 눈 가리고 아웅이, 제대로 된 것은 별로 없고 일부의 전유물일 뿐이라는 게 (내가 보는) 칼도 님이 공들여 번역해 준 Against Diversity의 골자이다 - 번역하는 거 홍어 좆으로 보지 마라. 뭐든 직접 해보면.댁네들 얼굴에서 어린 년놈들 전유물인 비웃음이란 게 사라지게 된다.


제 대로 음식을 만들려면 일단 원재료가 좋아야 하는 법이고 거기에 사람의 손길이 따른다. 공장에서 만들어낸 기성품에 사람의 손길이란 거의 없다. 그저 MDF 같은 것들. 거기에 걸맞게 MDF 같은 사람 사이의 관계들. 대다수 생활 필수재에는 대량 생산이 필요하지만 생산량은 조금 낮추고 사람의 손길이 많이 가는, 개성이 담긴 다품종 중형규모 생산 정도로 생산 체재가 변화한다면 우리나라 경제 규모에 걸맞는 복지국가 체제가 아닐까도 싶다. 대기업 위주에서 대만의 중소기업 경제 체제로. 극상품은 아니더래도 비싸지 않고 중저가래도 이름에 걸맞는 성능은 발휘하는 물건들. 몇 번 쓰다보면 나오지도 않는 필기구들, 먹통이 되는 가전제품들. 싼 게 비지떡이라더니.


자기가 쓸 무언가를 서툴면 서툰대로 직접 만들어 먹고, 입고, 쓰고 하는 그런 문화가 우리에게 없던 것도 아닌데. 왜 갑자기 많이들 사라져 버렸을까? 자기 옷을, 빤스를 직접 만들어 입는 사람들, 요새 유행인  직접 가구 만들기, 요리하기 이런 소소한 것들이 많이들 사라진 덕에 교환 가치의 정점인 금전이 만능이 되었다. 하긴 뭐 돈 주고 맡기면맞기면 되지.


이 글을 읽는 당신은 혹시 돈이 명령하면 내키지 않는 일도 하는 사람인가? 돈 없어도 사람 새끼가 하지 말아야 할 일은 하지 않는 것 그게 짐승과 사람을 가른다. 나라면 버티는 데까지 버텨보고 정 힘들다면 사람 새끼로 남고 싶으니 주변에 내 사정을 알리고 도움을 청하겠다. 그건 사람이라야 할 수 있는 행동이다. 그렇잖으면 남자라면 동류를 배신하고 호가호위하며 위기를 넘기고 평생을 내가 사람새낀가 하면서 살고 여자라면 뒤로 가랭이 벌리고 앞으로 우아한 웃음을 지으게 살게 된다. 사람 새끼가 하지 말아야 할 일이란 대단한 게 아니다. 물욕, 성욕, 명예욕 전혀 나쁘지 않다. 비열한 행동하지 말라는 거 뿐이다.


그거 볼라치면 뜬금없이 에스파냐 만화가 Paolo Eleuteri Serpieri의 Druuna 생각이 난다. Android or 99% human? 그런데 내가 사람이 아니라고 했지만 그들은 분명히 사람이다. 그렇게 끙끙 앓으면 물질적 결핍을 해소하고 나서 평생을 내가 사람 새끼일까 하고 번민하는 것 그게 99% human이니까 가능한 거다.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현피이다. 말하자면 게시판에서 다투다 쌍판 맞대고 주먹질 하는 거. 사람 냄새가 좀 나지 않는가? 현피는 익명을 벗어나 얼굴 맞대고 무언가를 해소하는 의식이다. 익명은 우리시대의 페르소나. 우주가 팽창하듯 사람들 사이도 팽창한다. 모두들 잊혀지고 싶어한다. 속내는 그렇지 않으면서.


이제는 계집들 살 냄새를 맡아보기 힘든 세상이다.
정밀한 formulation을 거쳐 나온, 몇 가지 중 하나인 화장품 냄새, 몇 가지 섬유 유연제 냄새가 있을 뿐.
모다 똑같은 냄새를 풍긴다.


모다 쓸데없는 나열하고 줄이자면 인간은 두 부류로 나뉜다.
어떤 상황에서 돈이면 되는 사람 對 돈만 있으면 되는 사람들.
우리말 조사 은/는/이/가. 이거 정말 외국인이 체득하기 어려운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