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모두가 당연하다 여기는 사실' 조차도, 회의적인 시각으로 검토해야할 필요가 있다. 사실이나 진실이란 가끔 우리 눈에 보이는대로가 아닌 다른 형태로 존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태양이 지구를 중심으로 돈다던 천동설이 엎어진 것이 가장 극적인 사례이겠다. 따라서 어떤 주장이  진실인지 아닌지 여부를 가려내는 기준은 '얼마나 우리 눈에 보이는대로 잘 묘사했는가'가 아니라, '눈에 보이는 현상들을 얼마나 모순없이 잘 설명하고 있는가'이어야 한다.

'영남과 호남에는 지역주의가 있다' 라는 주장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 주장들은 과연 현상들을 잘 설명하고 있는가? 혹시 우리는 별 의심없이 눈에 보이는대로 믿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물론 인간이 태양계 전체를 볼 수 있었다면,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돌고 있다는 정확한 사실대로 믿었을 것이다. 대기권 바깥에서 지구를 볼 수 있었다면, 지구는 둥글다는 정확한 사실대로 믿었을 것도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눈에 보이는대로 믿는' 그 자체를 문제삼고 무조건 의심하는 것 역시 현명하지는 않다. 결국 우리가 중요하게 살펴봐야 하는 것은 그 '눈'이 어디에 있는 것이냐가 될 것이다)

영남과 호남에는 (한때의 충청까지)  지역주의가 존재한다라는 주장은 아마도 다음과 같은 현상들을 설명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1. 각 지역에서 균형이 무너진 몰표가 있었고, 그 몰표는 대선 후보의 출신고향이라는 변수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 것처럼 보인다.
2. 각 지역마다 유난히 선호되거나 배제당하는 정당들이 존재하며, 항상 상반된 선거결과가 나타난다.

그러면, 각 항목들을 검토해보자. 1의 경우, 1987년의 대선 결과만 놓고 보면 지역주의가 존재한다는 주장의 명백한 증거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영남에서 충청 출신인 이회창을, 호남에서 부산출신인 노무현과 문재인을 몰표로써 지지했던 반례에 의해 기각되었다. 몰표의 원인에는 후보의 출신 고향이 아니라 다른 변수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반례가 등장하자, 이번에는 2에 기초한 '지역당' 개념이 등장한다. 각 지역에는 지역단위의 이익을 기초로 생성된 지역당들이 존재하고,  그것이 후보의 출신지보다 더 중요하게 고려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 다른 반례가 존재한다. 강남과 강북으로 분리시켜보면, 서울에서도 상반된 선거결과는 늘 나타났었던 현상이다. 지난 총선 때도 여지없이 강북은 초록색 일색이고, 강남은 빨간색 일색이었다. 그렇다면 민주당은 강북지역당이고, 새누리당은 강남지역당인가?

또한 우리는 이전 선거들에서도 그렇고 이번 대선 역시 연령에 따라 극심하게 상반된 선거 결과가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이 순서대로 색깔을 칠해보면 위로 갈수록 빨간색 일색일테고, 아래로 갈 수록 초록색 일색일거다. 그렇다면 이제 '지역주의'에 더해서 '연령감정'이나 '연령주의'도 존재하고 있다고 주장해야만 하지 않을까? 만약 어떤 정치평론가가 방송에 나와서 말씀하시길, 이번 세대별 투표에 대하여 "국민들이 '연령감정이나 연령주의때문에 고령층은 닥치고 새누리당, 젊은 층은 닥치고 민주당을 찍은 결과"라고 설명한다면 그 정치평론가는 과연 무사할 수 있었을까? '연령감정' '연령주의' 는 말이 안되지만, '지역감정'이나 '지역주의' 는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럼 영호남간의 매우 상반된 선거결과가 '지역주의' 혹은 '지역간 대결 의식' 때문이 아니라면, 무엇이 그렇게 만들고 있다는 것일까? 

우리는 투표와 경제적 동기사이에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세대별로 차이가 나는 투표 성향에도 경제적 동기가 작용하고 있을 것이다. 연령으로 표상되는 경제적 동기에는 면접자와 취업자, 집주인과 임차인, 상사와 부하, 자영업자와 알바생같은 대립적인 단어들이 등장할 것이다. 그럼 지역으로 표상되는 경제적 동기는 무엇일까? 단순하다. 지역이란 곧 땅이고, 땅의 경제적 속성이란 결국 '부동산 가격'이다. 

자본주의 경제에서 국민들의 주된 소득원은 크게 4종류로 구별되는데, 임금소득 사업소득 부동산소득 이자소득등이다. 그 중 박정희 이후 경제성장기에 국민들에게 배분된 가장 큰 소득은 뭐니 뭐니해도 부동산가격의 상승에 따른 차액 소득이었다. 더우기 다른 소득들과는 달리 가만히 들고만 있어도 저절로 돈이 벌리는 부동산소득은 매우 특별했다. 또한 부동산소득은 지역개발과 비례하고, 지역개발은 권력의 입김에 좌지우지되는 경향이 강하다. 권력을 누가 잡느냐에 큰 상관없이 어차피 개발의 중심지였던 수도권과는 달리, 영남과 호남 충청은 상관이 있었다는 것이 '지역간 극심한 정치적 균열'이 발생한 근본 배경일 것이다. 

호남은 물론, 한국사회에 '지역주의'는 존재하지 않았다. "영남부터 수도권처럼 개발해달라"는 요구와 "호남도 영남과 충청처럼 공평하게 개발해달라"는 요구가 투표로 환산되어 등장했을 뿐이다. 지역문제를 거론하는 온갖 정치적 담론들은 그런 요구위에 덧씌워진 말의 성찬이었을 따름이었고, 호남에 대한 사회문화적 비하와 차별들 역시 '불공평한 지역개발' 을 합리화하기 위해 동원된 이데올로기였다.

최근 한국사회에 급격한 변화가 한가지 있었다. 요 몇년새 부동산 차액소득이 갑자기 사라진 것이다. 이 현상은 일시적이 아니라 향후에도 지속될 것이라는게 대다수 전문가들의 견해이다. 갑작스레 급변해버린 이런 물적토대는, 한국 정치에도 굉장한 파급효과를 몰고올 것이다. 그동안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임금소득과 사업소득이 중요하게 대두될 것이고, 안철수열풍과 세대별 투표, 복지 경제민주화가 이슈가 되는 현상은 이미 그런 파급효과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변화는 시작되었고, 민주당은 '지역균형발전(호남의 격차해소)'와 '경제민주화'라는 양손의 과제를 어떻게 통합하느냐에 따라서 향후 정당의 운명이 결정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