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 녀석이 공사 현장에서 일한 지 오래 되었다.
20평 아파트에서 혼자 살고 있는데 깔끔을 떠는 편이고 음식 솜씨도 나무랄 데 없다.
근데 이 놈이 가스요금 아낀다고 보일러를 잘 틀지 않는다. 겨울철인데 한 달에 3-4만원 정도.
이른 아침에 잠에서 깼을 때 방이 확 따뜻하지는 않더라도 공기가 차갑다는 느낌은 없어야 하루를 편한 마음으로 시작할 수 있다고 그리고 그건 생명체로서 무척 중요한 것이니 아끼고 말고 겨울철엔 한 달 7-10만원 정도 잡고 보일러를 가동하라고 혔다.
그래 그랬다.

몸이 기억하는 것이다. 오늘 아침도 춥겠지. 힘든 하루가 시작되겠지. 그 부정적 인식이 하루의 기분과 신체 활동에 의외로 큰 영향을 미친다.
돈 아껴야 한디 그러길래 니 하루 일당이면 한 달 보일러 충분히 때고 남는다, 사오일 일당이면 한달 공과금과 기본 식주는 해결된다고.
돈을 보는 눈을 좀 바꾸라고. 꼭 들일 돈은 아끼지 말라고.
그랬더니 녀석이 생각해 보니 그러네 그런다.

그래 그럴 생각이다. 겨울철 한 달 난방비가 7만원 이상 나오면 내가 내주고 그보다 작게 나오면 녀석이 내는 걸로.

한달 수입은 정해져 있고 거기서 까내려가는 셈법으로 돈을 보는 셈이다. 마이너스 셈법. 힘들다 보니 미처 그걸 보지 못하는 그게 서민의 딜레마이다. 동생의 모습은 힘들게 살았던 기억을 몸에 갈무리하고 보일러를 꺼놓은 우리네 부모 세대와도 같은 모습이다. 깝깝한.

중고 아파트들 베란다쪽 창의 단열 문제도 그렇다.
이중창을 하면 실제로 단열 효과가 있다. 위에서 말한 차가운 공기를 느끼지 않는 수준<- 이거 인간에게 무척 중요하다.
길게 보아 단열이 잘 되지 않는 상태에서 보일러 마구 틀어 10만원 훌쩍 넘는 비용을 지출하는 것보다 이익이다.
차가운 아주 추운 날 아니면 보일러를 틀지 않아도 내복에 간단한 옷 걸치고 두툼한 이불 정도면 넉넉하다.
전기료 역시 마찬가지 조금 비싸더라도 절전형 가전제품을 쓰고 조금 투자해서 전기 먹는 요소들을 제거해나가면 길게 보아 이득이다.
절전 소켓 역시 마찬가지. 그런데 서민들은 거기에 투자를 잘 못한다. 몰라서 못하는 경우도 있고 알면서도 엄두를 못내는 경우도 있고.
이거 방향을 달리하면 복지 국가 되려면 국민 개개인의 세금을 늘려야 한다는 것과 풍경이 흡사하다.
세금 많이 낼테니 제대로 쓸 수 있겠냐 대 세금 많이만 내봐라 효율 충분히 높인다. 정말?

//민주당의 보편적 복지와 누리당의 선별적 복지.
양쪽 진영 모두 실은 보편적 복지 요소와 선별적 복지 요소가 상충하는 게 아니라 상황에 따라 어느 쪽에 치중해야 하는가에 따라서
정책이나 언설이 갈리는 걸 알고 있다. 정권을 획득한 자들이나 진 자들이나 모두 나름 제 몫은 챙긴다 :) 썩어도 준치라고. 누군가의 수필 '가난한 날의 행복'에 나오는 걸인의 찬, 왕후의 밥처럼 지연/학연/혈연 중에 떵떵거리는 사람이 있으면 떡고물은 챙기는 것이다. 저 멋진 말을 했던 여인에겐 항산에 항심에서 항산에 해당하는 비빌 언덕이 있었다. 그 심리적 비빌 언덕이 가진 자와 그렇잖은 자의 차이인 것이다.
민주당이 말은 보편적 복지라고 했지만 실상 선별적 복지 쪽에 가깝고 누리당은 그 반대의 행보를 걷게 될 것이다. 공식적으로는 :)
선거는 선거고 정권을 획득하면 상대편의 주장했던 내용에 가까운 행보를 보이게 될 것이다. 어차피 이미지 싸움이었으니까.
IMF는 우리에게 있던 많은 걸 앗아가버렸다. 경제사회 면에서 너무나 급격한 지각변동이었다.
성급하게 IMF에 굴복했다는 의견도 그 얼마 후에 적지 않게 나왔다. 특히 삼공/오공 세력에게서. 하지만 이미 강물은 흘렀고 그 흐름에 강물 생태계와 지형은 많은 변화를 거쳤다. 되돌리는 게 아니라 유리한 방향으로 적응해야//

우리나라 수준에서 급한 복지는 비유를 하자면 저런 것이다.
20만원의 기초 노령연금보다는 저 얼개를 알고 저렇게 하고 싶은데 이중창을 달지 못하고 절전형 장치를 쓰지 못하는 이들에게
정부 재정으로 무이자 소액대출을 해주는 것이라고나 할까. 복지를 보는 시각에서 큰 문제는 복지를 시혜로 보는데 있다. 복지는 시혜가 아니며 납세자로서 누리는 권리(권리라는 말 참 거시기한데 여튼 이게 보편화 되었으니)이다. 배급을 타고 높은 사람이 금일봉을 하사하는 게 아니라 곗돈 부었다가 때가 되어(한시적으로 생존에 위험이 닥쳤을 때. 복지는 보험이다. 다수가 소액을 내놓아 안전장치를 마련해 놓고 수급자격이 되는 상황에서 안전을 보장받는 것. 그러니까 수급자가 되지 않는 게 실은 좋은 상황이다. 그렇게 복지국가 개념으로 보자면 정부는 보험사인 것이다.) 찾는 것이다. 동등한 조건에 있는 남들은 복지 급여를 받는데 자신은 혹 받지 못할까 전전긍긍하는 모습. 부당하게 복지 급여를 수령하는 기득권자들. 그게 똑똑한 것이랜다. 그게 서민들의 슬픔이다. 그 불신, 그 봉건의식, 그 정전기란 참 끔찍한 것이다.

복지란 쉽게 말해 돈이 없는 사람이 나중에 갚는 조건으로 돈을 빌리는 것이지 무상으로 시혜를 받는 게 아니다.
그게 인간으로서의 자존, 혹은 자립이다. 뭔가를 깨달은 이들만이, 꼭 필요한 곳에 자원을 써야 한다는 걸 아는 이들만이 낙수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이건 정성 개념이지 정량 개념은 아니다. 양질전화라고 해야 하나.

복지국가로 가려면 나 정말 의식주 해결하는데 필요한데 돈 좀 빌려줘라고 말하는 용기 있는 개인이 늘어나야 하고(이건 용기 맞다. 아마 대개는 거절당할 테니까) 거기에 대응하여 힘들었던 자신의 과거에 비추어 그 개인을 과거의 자신과 동일시하여 소량이라도 선뜻 자원을 내놓는 이들도 같은 비율로 등장한다. 그런데 적잖은 이들이 과거의 자신을 보면서 마구 밟아댄다 :) 그런데 그런 이들도 자식을 키운다. 하긴 그들은 그들대로 얼마나 힘든 일을 겪었을까?

생존 극한 상황에 이르러 타나토스가 발현되면 범죄 저지르기 쉽다. 자신에게 향하면 아마 자살, 밖을 향하면 근친 아니면 불특정 다수에 대한 폭력. 안온한 생활을 하는 이들 역시 위험해진다. 그래서 복지는 사생활의 평온이라는 보험 상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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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
이른 아침에 잠에서 깼을 때 방이 확 따뜻하지는 않더라도 공기가 차갑다는 느낌은 없어야 하루를 편한 마음으로 시작할 수 있다
<-이게 국가가 개인에게 제공할 복지 서비스 수준에서 마지노선. 그 나머지 '잉여(?)' 자원 획득 경쟁은 개인차로 인정. 마지노선을 건드려 자신의 몫으로 돌리려는 이들은 응징 대상 :)

아,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