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틀린 주장을 하는 사람은 없다. 어리별이님과 충돌을 빚었지만, 그 분의 주장속에도 일말의 진실은 담겨있다. 그 분은 "나는 민주당을 지지한다"라고 말할 때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들(중도층?)을 대변한다. 그 불편함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바로 "혹시 내가 민주당을 지지한다고 말하면, 나를 전라도출신이거나 혹은 전라도와 관계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을까?" 라는 자기검열이다. 그런 자기검열이 존재한다는 것은 진실이다.

(오독을 막기 위해 미리 밝힌다. "나는 새누리당이 싫다"와 "나는 민주당을 지지한다"는 결코 같은 말이 아니다.)

그런 자기검열의 원인은 의외로 간단하다. "전라도출신들은 2등 국민 취급을 당하고 있다"라는 우리 사회의 공공연한 비밀이자 불편한 진실이 그 안에 담겨 있다.  민주당을 지지한다고 말하는데 불편함을 느낄 수 있는 이유는 아주 많다. 정책이 부실해서, 북한에 너무 끌려다니는 것 같아서, 386들이 까불어서, 누군가가 노인폄하발언을 해서 기타 등등... 수백가지도 넘을 것이다. 그런데 하고 많은 것들 중에 왜 하필 '호남 몰표'가 가장 중요한 것처럼 호출되고 있는 것일까?

가슴에 손을 얹고 솔직하게 이야기해보자. 주변의 누군가에게 '민주당을 지지한다' 혹은 '민주당을 지지해달라'고 말한다는 것은 자신이 전라도출신이 아닐까 의심받는 상황을 기꺼이 각오해야 한다는 의미이고, 그것은 곧 "전라도출신이라고 의심받는 자가 겪어야하는 사회적 불이익"을 감수하는 위험한 상황에 스스로를 노출시킨다는  의미가 된다. 호남출신 본인들도 불편해하는 인종차별적인 딱지가, 호남출신도 아닌 자신의  이마에 붙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결코 없다.

때문에 호남출신도 아니고 뭣도 아니고 그저 새누리당 집권이 싫을 뿐인 사람들에게 그런 상황은 매우 억울한 것이고, 그런 억울함의 원인제공자인것처럼 보이는 '영남을 능가하는 호남의 무지막지한 몰표' 는 극복되어야할 불편한 현실이 된다. 어리별이님이 제시한 '중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서 호남의 몰표는 자제되어야 한다'라는 선거전략(?)은 정확히 그 지점에서 주장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깨시들처럼 이 핑계 저 핑계대지 않고 돌직구를 날리는 어리별이님은 매우 솔직하고 순수한 분이시다.

민주당을 지지한다라고 말할 때 들러붙는 "혹시 호남분이신가요?" 라는 불쾌한 시선을 감수해야 할 이유가 하나도 없는 사람들은, 당연히 자신은 호남출신이 아니라는 알리바이를 만들어내야만 한다. 깨시들이 이구동성으로 외치는 "나는 문재인이 좋아서 찍은거지, 민주당이 좋아서 찍은건 아니다"라는 진술은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정치적 알리바이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한걸음 더 나아가 그런 알리바이조차 만들어 낼 필요가 없는 상황이 되기를 바란다. 그런 그들에게 이 문제는 매우 단순하다. 호남 몰표만 사라지면 되는 것이다.

(과연 그 분들은 충청에서 90%가 넘는 민주당 몰표가 나와도 똑같은 주장을 할까? 영남이나 중도층을 설득하기 위하여 충청도의 몰표는 자제되어야 한다는 발상을 하게 될까? 를 생각하면 사실 이 논쟁의 성격은 매우 자명한 것이다.)

물론, 이번 대선처럼 새누리당에 반대한다는 이유만으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아무한테나 던져지는 몰표는 시급히 극복되어야만 한다. 그러나 호남표는 필요하지만 2등 국민으로 취급당하는 것은 두려운 사람들의 정치적 알리바이를 위하여 자제되어야한다는 주장은 원인과 결과가 뒤집힌 개소리에 불과하다. 노무현과 친노들의 '호남이 먼저 단결을 풀어야 영남도 단결을 푼다'는 주장이 개소리인 것과 마찬가지이다.

극복되고 해소되어야하는 것은  '호남출신들이 2등 국민으로 취급당하고 있는 현실' 그 자체이지, 결코 '남에게 2등 국민으로 보일 것 같은 찜찜함'이 아니다. 그런 개같은 현실을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 수긍해버리고, 단지 그 오물이 자신에게 튀지만 않으면 된다는 사람들을 위해 호남이 해줄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