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곳에만 머물러 있게 해주시압


--------------


Is Growth Over? (Paul Krugman)

성장은 끝났나? (폴 크루그만)

 

* 출처: <뉴욕 타임즈> / 20121227

http://www.nytimes.com/2012/12/28/opinion/krugman-is-growth-over.html?_r=0

 


 

The great bulk of the economic commentary you read in the papers is focused on the short run: the effects of the “fiscal cliff” on U.S. recovery, the stresses on the euro, Japan’s latest attempt to break out of deflation. This focus is understandable, since one global depression can ruin your whole day. But our current travails will eventually end. What do we know about the prospects for long-run prosperity?

 

여러분이 신문들에서 읽는 경제 논평 대다수는 단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미국 경제회복에 재정절벽이 미치는 효과, 유로화 강세,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나려는 일본의 최근 시도. 이 초점은 이해될만 한데, 한 번의 전반적 경기침체만으로도 여러분의 생활이 엉망진창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현재의 진통은 결국 끝날 것이다. 우리는 장기적 번영 전망에 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The answer is: less than we think.

 

답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덜 알고 있다이다.

 

The long-term projections produced by official agencies, like the Congressional Budget Office, generally make two big assumptions. One is that economic growth over the next few decades will resemble growth over the past few decades. In particular, productivity the key driver of growth is projected to rise at a rate not too different from its average growth since the 1970s. On the other side, however, these projections generally assume that income inequality, which soared over the past three decades, will increase only modestly looking forward.

 

의회 예산안 사무국 같은 공식기관들이 작성한 장기 예측은 일반적으로 두 개의 커다란 가정들을 행한다. 하나는 다음 몇 십 년에 걸친 경제성장이 과거 몇 십 년에 걸친 경제성장과 유사하리라는 것이다. 특히, 생산성 - 성장의 주요 추동력 - 1970년대 이래의 그것의 평균적 성장과 별로 다르지 않을 비율로 상승할 것으로 예측된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에서, 이 예측은 일반적으로 지난 삼십년에 걸쳐 치솟았던 소득 불평등이 앞으로는 적절한 정도로만 증대할 것이라고 가정한다.


It’s not hard to understand why agencies make these assumptions. Given how little we know about long-run growth, simply assuming that the future will resemble the past is a natural guess. On the other hand, if income inequality continues to soar, we’re looking at a dystopian, class-warfare future not the kind of thing government agencies want to contemplate.

 

왜 기관들이 이 가정들을 행하는지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우리가 장기성장에 관해 아는 것이 매우 적다는 점을 고려하면, 미래가 과거와 유사하리라는 단순한 가정은 자연스러운 예측이다. 다른 한편, 소득 불평등이 계속 치솟는다면, 우리는 디스토피아라는, 계급전쟁이라는 미래 - 정부기관들이 숙고하고 싶어 하지 않을 것 - 에 직면하게 된다.

 

Yet this conventional wisdom is very likely to be wrong on one or both dimensions.

 

그렇더라도 이 관습적 지혜는 하나나 양 차원들 모두에서 그릇된 것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Recently, Robert Gordon of Northwestern University created a stir by arguing that economic growth is likely to slow sharply indeed, that the age of growth that began in the 18th century may well be drawing to an end.

 

최근, 노스웨스턴 대학교의 로버트 고든은 경제성장은 뚜렷하게 느려질 것이라는 - 실로, 18세기에 시작한 성장의 시대의 종말이 다가오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는 - 주장으로 물의를 일으켰다.

 

Mr. Gordon points out that long-term economic growth hasn’t been a steady process; it has been driven by several discrete “industrial revolutions,” each based on a particular set of technologies. The first industrial revolution, based largely on the steam engine, drove growth in the late-18th and early-19th centuries. The second, made possible, in large part, by the application of science to technologies such as electrification, internal combustion and chemical engineering, began circa 1870 and drove growth into the 1960s. The third, centered around information technology, defines our current era.

 

미스터 고든은 장기 경제성장이 꾸준한 과정인 적이 없었음을 지적한다; 그것은 각각 일단의 특정한 기술들을 토대로 한 몇 차례의 불연속적인 산업혁명들에 의해 추동되었다. 대체로 증기기관을 토대로 한 첫 번째 산업혁명은 18세기 말과 19세기 초의 성장을 추동했다. 대부분 전기화, 내연기관 그리고 화학공학 같은, 과학의 기술적 응용에 의해 가능해진 두 번째 산업혁명은 1870년경에 시작해 1960년대까지 성장을 추동했다. 정보기술을 중심으로 한 세 번째 산업혁명은 우리의 현재 시대를 정의한다.

 

And, as Mr. Gordon correctly notes, the payoffs so far to the third industrial revolution, while real, have been far smaller than those to the second. Electrification, for example, was a much bigger deal than the Internet.


그리고, 미스터 고든이 올바로 주의를 환기시키는 대로, 현재까지 세 번째 산업혁명의 이득은 비록 상당하기는 하지만 두 번째 산업혁명의 이득보다 훨씬 적다. 예를 들어, 전기화는 인터넷보다 훨씬 더 큰 건이었다.

 

It’s an interesting thesis, and a useful counterweight to all the gee-whiz glorification of the latest tech. And while I don’t think he’s right, the way in which he’s probably wrong has implications equally destructive of conventional wisdom. For the case against Mr. Gordon’s techno-pessimism rests largely on the assertion that the big payoff to information technology, which is just getting started, will come from the rise of smart machines.

 

그것은 흥미로운 테제이며 모든 선정적인 최신 기술 찬양에 대해 유용한 평형추 역할을 한다. 게다가 나는 그가 옳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그가 잘못 생각한 방식은 관습적 지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파괴적인 함축들을 갖고 있다. 미스터 고든의 기술-비관주의에 대한 반대 논거는 대체로 이제 막 출현한 정보기술의 큰 이득은 스마트 기계들의 등장으로부터 올 것이라는 주장에 의존한다.

 

If you follow these things, you know that the field of artificial intelligence has for decades been a frustrating underachiever, as it proved incredibly hard for computers to do things every human being finds easy, like understanding ordinary speech or recognizing different objects in a picture. Lately, however, the barriers seem to have fallen not because we’ve learned to replicate human understanding, but because computers can now yield seemingly intelligent results by searching for patterns in huge databases.

 

여러분들이 이 주제를 살펴본다면, 여러분들은 인공지능 분야가 수십 년 동안 절망적인 답보상태에 있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컴퓨터들이 일상 언어를 이해하거나 그림 속의 서로 다른 대상들을 인식하는 것 같은, 모든 인간들이 손쉽게 하는 것들을 하는 것은 매우 힘든 것으로 증명되었다. 그렇지만 최근 장벽이 허물어진 것처럼 보인다 - 우리가 인간 지성을 복제하는 법을 알아냈기 때문이 아니라 컴퓨터들이 이제 막대한 데이터베이스들에서 패턴들을 검색하는 것에 의해 외양상 지능적인 결과물들을 산출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True, speech recognition is still imperfect; according to the software, one irate caller informed me that I was “fall issue yet.” But it’s vastly better than it was just a few years ago, and has already become a seriously useful tool. Object recognition is a bit further behind: it’s still a source of excitement that a computer network fed images from YouTube spontaneously learned to identify cats. But it’s not a large step from there to a host of economically important applications.

 

사실, 언어 인식은 아직 불완전하다; 그 소프트웨어에 따르면, 한 성난 전화 발신자가 내가 아직 가을호라고 내게 알려주었다. 그러나 그것은 불과 몇 년 전보다 대단히 나아졌으며, 이미 꽤 유용한 도구가 되었다. 대상 인식은 상당히 뒤쳐져 있다: 유튜브로부터 이미지들을 공급받은 컴퓨터 네트워크가 고양이를 식별하는 법을 스스로 배운 것이 아직 흥분의 한 원천일 정도이다. 그러나 그 단계와 일련의 경제적으로 중요한 어플리케이션들 사이의 거리는 멀지 않다.

 

So machines may soon be ready to perform many tasks that currently require large amounts of human labor. This will mean rapid productivity growth and, therefore, high overall economic growth.

 

그러니 기계들은 곧 현재는 많은 양의 인간 노동을 요구하는 수많은 과제들을 수행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것은 급속한 생산성 성장을 의미할 것이며, 따라서 전반적인 고도 경제성장 또한 의미할 것이다.

 

But and this is the crucial question who will benefit from that growth? Unfortunately, it’s all too easy to make the case that most Americans will be left behind, because smart machines will end up devaluing the contribution of workers, including highly skilled workers whose skills suddenly become redundant. The point is that there’s good reason to believe that the conventional wisdom embodied in long-run budget projections projections that shape almost every aspect of current policy discussion is all wrong.

 

그러나 - 결정적인 의문인데 - 누가 그 성장으로부터 이익을 볼 것인가? 유감스럽게도, 스마트한 기계들이 숙련이 갑자기 쓸모없는 잉여가 되어버린 고숙련 노동자들을 포함해 노동자들의 기여분의 가치를 떨어뜨릴 것이기 때문에 대다수의 미국인들이 뒤에 남겨질 것이라는 주장이 매우 설득력 있다. 요는 장기 예산 예측 - 현재의 정책 논의 거의 모든 측면들을 규정하는 예측 - 에 구현되어 있는 관습적 지혜가 전적으로 틀리다고 믿을 좋은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What, then, are the implications of this alternative vision for policy? Well, I’ll have to address that topic in a future column.

 

그렇다면 이 대안적 비전은 어떤 정책상의 함축들을 갖고 있는가? 앞으로 쓸 컬럼들 중 하나에서 그 점을 논해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