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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지리지의 해석은 한일간 가장 대립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일본에서는 육지시점이라고 주장하고
한국에서는 그럴 경우 죽도가 보이지 않으므로 아니다고 주장하죠
이글에서는 그 해답을 제시합니다
길지만 이해하기 쉬으므로 한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나라에서 세종실록지리지의 권위는 절대적입니다
거기에 나와있는 우산도가 독도라는것이 예전부터 우리땅이었다는 가장 대표적인 근거로
지난 수십년간 활용되어 왔을정도니까요
여기에 지금까지 연구된것중 가장 설득력있는 해석을 소개하겠습니다
이글은 당시 지도에 대한 의문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이유는 세종실록지리지를 해석하는데 있어서 그 바탕이 되는 사실을 알아야하기 때문입니다

먼저 조선전기 지도에대한 근본적인 물음부터 시작해봅시다
지도에 우산도가 표시된 이유가 뭘까요?
독도는 크기도 너무 작고 사람도 살기 힘들고 농사도 짓기 힘든 섬인데
독도보다 훨씬 크고 사람도 살고 농사도 짓는 섬도 그리지 않은 지도에서
도대체 뭐가 중요해서 우산도란 이름을 붙이고 지도에 그렸을까요?

우리나라에 섬이 3천개가 넘게 있습니다
우산도가 독도라면 저런 면에서 중요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지도에 그릴만한 이유가 있다면 분명히 기록에 남아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당시 우산도의 기록을 보면 중요한 이유는 커녕
독도의 특징은 하나도 없고 울릉도에 대한 설명밖에 없습니다

또한 우산도가 그려져있다는 조선전기의 지도를 보면 이상한 사실을 발견하게됩니다
첫번째줄 왼쪽 지도와같이
예전 고지도는 우산도를 울릉도의 서쪽에 그린 지도가 한두개도 아니고 아주 많습니다
우산도가 독도이든 죽도이든 둘다 동쪽에 있기때문에 이상한 일입니다

당시 기술이 낮아서 그랬다는등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는 사람들도 있는데
우리가 항상 말하는 것이 있죠 '독도가 울릉도에서 보인다'
독도가 보이는데 어느쪽인지 알수가 없을정도로 조선사람들이 멍청했을까요?
해뜨는쪽만 어딘지 알면 되는 일인데요 

독도는 울릉도 외에는 기준으로 삼을만한 곳이 없기 때문에
둘 사이의 방위가 꺼꾸로된 지도가 더 많다는 것은 아무리봐도 이상하죠

왜 그렸는지 알수없는 섬이 그것도 엉뚱한 위치에 그려져있다.......
실수도 한두번이지 많은 지도가 저렇게 그려져 있다면
당시 사람들이 저렇게 그린 이유를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상식적으로 봐도 이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울릉도를 직접가서 제대로 돌아봤다면 저렇게 그리기가 힘든데.....'
네 울릉도를 제대로 돌아보지 않고 그렸다고 생각하는것이 합리적이죠

제대로 조사를 안했기 때문에 어떤일이 일어났느냐 하면
지금으로서는 믿기 힘들지만 조선시대 사람들은 울릉도가 한개인지 두개인지 확실히 몰랐습니다
그게 말이되는 소리냐고 생각하시죠? 무리가 아닙니다
울릉도의 지형을 집에서도 자세히 볼수있는 지금으로서는 이해가 안되는게 당연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헷갈렸다는 증거가 많고 그럴만한 이유도 있습니다

울릉도를 제대로 조사하지 못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먼저 그 유명한 울릉도에 대한 공도정책 때문입니다
울릉도는 조선초기부터 공도정책을 펴서 울릉도에 사람이 사는것을 금지했습니다
이주를 완전히 허락한것은 19세기말일 정도구요
관심이 떨어질 수밖에 없죠

거기에 당시 기술로는 가는것 자체가 쉬운일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크게 오해하는 것이 울릉도를 지금처럼 쉽게 가는 섬으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다음은 조선전기 김종직이 쓴 시입니다
동해에 우산도 하나만 있다는 생각과 그곳에 가기가 엄청나게 어렵다는 것을 묘사했습니다

한 점의 우산도가 큰 바다 한가운데 있으니 / 于山一點滄溟中
날개 달린 사람 아니면 어찌 이를 수 있으랴 / 若非羽人那可到
백 길의 큰 파도가 천둥과 비를 일으키니 / 洪波百丈激雷雨
망상과 천오도 절로 거꾸러지고 만다오 / 蝄象天吳自顚倒
지금까지도 괴이한 것은 이사부란 사람이 / 至今怪殺異斯夫
나무 사자 싣고 들어가 위엄을 떨침일세 / 木獅載入羅威稜

혹시 아직도 우산도=독도여야 한다는 생각에서 못벗어나 엉뚱한 소리 할 사람도 있을텐데
저 시에서 우산도가 독도라면 이사부가 아무도 없는 무인도에 가서
혼자 나무사자를 풀어놓고 위엄을 떨쳤다는 얘기가 되버리죠 명백히 울릉도가 맞습니다
울릉도와 우산도를 같다고 생각한거죠

울릉도에대한 조선사람들의 인식이 어느정도였는지 감이 오시나요?
당시 기술로는 한번 가기도 힘들었던 섬입니다
정부차원에서 큰배와 많은 인력을 동원했다면 달랐겠지만 그럴 이유가 없었죠
가끔 간 사람이 있었겠지만 가본 사람과 만나기도 쉽지 않았을거고
가본 사람조차도 섬전체를 제대로 돌아봤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그래서 멀리서본 모습과 들은 내용으로 묘사할 수밖에 없었구요

이렇게 사람들의 왕래가 거의 없던 섬이기에
가본 사람들 또는 몰래 살다가 붙잡혀온 사람들의 증언에 의존할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증언이 또한 울릉도가 하나의 섬이 아니라는 생각을 더 부추기고 있었습니다

다음은 태종실록의 기록입니다
流山國島人白加勿等十二名 求泊高城於羅津言曰 予等生長武陵 其島內人戶十一 男女共六十餘 今移居本島
유산국도(流山國島) 사람 백가물등 12명이 고성 어라진에 와서 정박하여 말하기를,‘우리들은 무릉도(武陵島)에서 생장하였는데, 그 섬 안의 인호가 11호이고, 남녀가 모두 60여 명인데, 지금은 본도(本島)로 옮겨 와 살고 있습니다.'

잡혀온 섬 주민이 무릉도에서 살다가 우산도와 비슷한 이름의 유산국도로 옮겼다고 얘기합니다
우산도와 연관짓지 않더라도 이 이야기를 들은 사람은 이렇게 생각할수밖에 없습니다
'울릉도에 사람이 여러명 살만한 섬이 최소한 2개는 있구나'

이번에도 역시 태종실록의 기록으로 앞의 기록보다 5년뒤의 것입니다
按撫使金麟雨還自于山島 獻土産大竹水牛皮生苧綿子檢樸木等物 且率居人三名以來 其島戶凡十五口男女幷八十六
안무사 김인우가 우산도(于山島)에서 돌아와 토산물인 대죽·수우피·생저·면자·검박목등을 바쳤다. 또 그곳의 거주민 3명을 거느리고 왔는데, 그 섬의 호수는 15구요, 남녀를 합치면 86명이었다.

드디어 우산도가 나왔는데 사람이 86명이나 산다고 합니다
이 기록을 어떤사람은 다른 기록과 비교하면서 우산도가 아닌 무릉도 주민이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이 기록이 잘못되었다거나 이상하다고 나온 곳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우산도에 사람이 86명이나 산다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독도를 우산도라 생각했다면 불가능한 일이죠
또 울릉도에서의 일을 설명하면서 그곳이 우산도라고 합니다
역시 우산도가 울릉도인지 아니면 다른 섬인지 혼돈이 일어날수밖에 없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우산을 울릉도의 부분으로 여기다가 나중에는 하나의 독립된 섬이라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우산,무릉에서 왜적이 도둑질을 했다는 기록도 있는데
도둑질을 했다고 했으니 당연히 무인도인 독도는 아니죠
독립적으로 우산도라고 생각했거나 최소한 울릉도의 일부를 우산이라고 불렀을 것입니다
울릉도 또는 그 일부를 우산이라 불렀다면 이 역시 착각을 일으키는 요소가 될 수 있습니다
우산도라면 독도가 아님이 확정됨은 말하것도 없구요

이처럼 당시에는 우산도와 울릉도에 대한 이야기들이 혼재하였고
이를 들은 사람들은 다른 두개의 섬이 있다고 생각하기 쉬웠겠죠

혼란스러운 인식을 가진 상태였으므로 실제로 울릉도를 멀리서 볼때도 헷갈릴수 있었습니다
불확실한 사물은 하나라고 생각하며 볼때와 두개라고 생각하며 볼때의 인지결과가 완전히 다르니까요
두번째줄 사진들은 육지쪽에서 갈때 보이는 울릉도를 찍은 사진들입니다
가까운쪽과 먼쪽 봉우리가 겹쳐서 먼쪽에 섬 하나가 더 있는듯 착각할 수가 있죠
요즘엔 오염때문인지 자세히 안보인다는 얘기도 있지만
당시 기록을 보면 육지에서 울릉도가 보였다는 기록도 많습니다

예를들어 삼척부사 허목은
'소공대에서 바다가 맑게 개이면 울릉도의 산봉우리와 흰 모래를 볼 수 있다'
고 하여 육지에서 울릉도를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죠
이렇게 울릉도를 본 여러 기록들이 다른 것을 본것을 착각했을 수도 있지만
그때 사람들이 그것을 울릉도라고 믿고 기록한것은 엄연한 사실입니다
또 저런 기록과 목격담을 들은 사람들에게 그 믿음은 더욱 강화되었구요

물론 지금처럼 하나라고 확실히 안 상태에서라면 두개로 보기는 어렵겠지만
당시사람들은 위의 기록들처럼 한개인지 두개인지 애매했던 상황이었기에
더욱 이런 착각을 하기가 쉬운 조건이었습니다
우산도와 울릉도가 두개의 섬이라고 들었던 사람이라면
특히 해상에서 저런 모습을 볼 경우 두개의 섬이라는 생각을 할수있던거죠

중요한건 육지에서든 바다에서든 실제 울릉도를 봤든 착각을 했든 상관없이
당시 사람들은 명칭이 혼란스런 상황에서 대부분 울릉도를 자세히 몰랐다는 사실입니다
하나의 섬에 두가지 호칭을 쓰다가 정보가 부족한 탓에 두개의 독립된 섬으로 오해하게된 것이죠

여기까지 보신분들은 그럴수있겠다 생각하실 수도 있고 아직도 말도 안된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네 중요한건 이유가 아니라 실제로 헷갈렸다는 기록이 있느냐 입니다
아무리 우리가 보기에 헷갈리지 않았을까 생각되도 그런 증거가 없으면 아닌것이고
우리가 보기에는 당연해도 당시 사람들이 헷갈렸다는 기록이 있으면 헷갈린것이니까요

위의 시와 기록들도 울릉도와 우산도를 혼동했다는 증거입니다만
계속해서 울릉도에 대한 기록을 우산도가 독도라는 주장이 사실인지 검증하면서 보겠습니다

먼저 세조실록에는 우산도에 읍을 설치할만하다고 나옵니다
독도에는 사람 한명 살기가 힘든데 읍을 설치할만하다구요?
심지어 토지가 비옥하여 생산량이 많다고 나옵니다
비옥은커녕 독도는 농사짓기가 힘든 섬입니다

여기에 한개인지 두개인지 헷갈렸다는 사실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기록까지 있습니다
뒤에서 원문에 대한 해석과 함께 더 자세히 살펴볼것이니 여기서는 주요내용만 보겠습니다

고려사에서는 본문에 울릉도라는 하나의 섬을 설명하다가
'혹은 말하기를 우산과 무릉 두 섬' 이라고해서
한개로 알고 있긴한데 두개일지도 모른다고 서술하였고

반대로 동국여지승람에서는 우산도와 울릉도 두섬이 있다고 설명을 하다가
'일설에 의하면 우산도와 울릉도가 한개의 섬'이라고해서
두개로 알고있긴한데 사실은 한개일지도 모른다고 서술하였습니다
정부에서 직접 편찬한 책에서 설명이 갈팡질팡하면서 뭐가뭔지 모르겠다는 식이죠

세종실록지리지에서도
우산도,무릉도 두섬을 설명한뒤에
'우산국 또는 울릉도라고 하였다'고 나옵니다
두섬 전체를 울릉도라고 하였다고 해석하는 것이 자연스럽죠

조선에서는 울릉도가 한개인지 두개인지 확실히 몰랐다는 결정적 증거들입니다
지도를 보세요 독도와 울릉도가 헷갈릴만한 섬이라고 생각되십니까?
혹시 이때부터 우산도를 죽도라고 생각했다면 몰라도 독도는 절대 말이 안됩니다

자 여기서 독도의 특징을 한번 떠올려봅시다
울릉도에서 동남쪽으로 멀리 떨어진섬, 두개로 나뉘어진 섬, 돌로 뒤덮여 농작물 및 사람이 살기 힘든 섬
이런 섬을 우산도라 부른 기록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잘모르던 옛날 사람들은 자신들이 들은것을 토대로 울릉도에 우산도,무릉도란 이름을 붙였겠죠
오래전 우산국 사람들이나 직접 가본 소수의 사람들의 이런 얘기를 들었을 수도 있습니다

"우산국은 우산도와 무릉도로 이루어져있다더라"
"아니다 저건 하나의 섬이다 그러니 무릉도가 우산도고 같은섬을 다르게 부르는것 뿐이다"

거기에 헷갈릴만한 이유가 하나 더 있는데
울릉도에는 사람이 살만한 섬이 실제로 두개가 있다는 것입니다
보이는 큰섬은 실제로 하나이므로 하나라는 주장도 말이되고
가보면 섬(현재의 죽도) 하나가 더 있으므로 두개라는 주장도 말이됩니다
서로 답을 모르는데다 중요한 일도 아니었으므로 소문만 무성했겠죠

게다가 보는 사람도 헷갈렸는데 보지도 않고 소문만 듣고 그린 지도까지 있었으니
조선 정부는 울릉도와 우산도가 한개인지 두개인지
두개라면 우산도는 어느쪽에 있는지 확신을 하지 못한것으로 보입니다

이렇게 보면 다른쪽에 그린것이 간단히 설명됩니다
동남쪽의 독도가 아니라 하나의 울릉도를 다르게 그린것 뿐이니까요
그런데 나중에 실제 가보니까 큰 섬이 하나있고 작은 섬이 동쪽에 붙어있었죠
당시 사람들은 혼란기를 거쳐 서서히 우산도란 이름을 작은 섬에 붙였습니다
그래서 조선 후기의 지도는 울릉도 동쪽에 우산도를 그렸고 크기도 작은 경우가 많아진 것입니다

가장 먼저 제기한 근본적인 물음도 해결해 볼까요?
우산도를 지도에 그렸던 이유는
크기도 너무 작고 사람도 살기 힘들고 농사도 짓기 힘든 섬인 독도를 그린게 아니라
크기도 충분히 크고 사람도 살수 있고 농사도 지을수있는
울릉도의 또 다른 이름인 우산도를 그린것입니다

그렇다면 조선에서는 언제 처음으로 울릉도를 제대로 조사했을까요?
놀랍게도 18세기가 다 되서의 일입니다
왕이 삼척첨사 장한상을 통해 제대로된 조사로는 거의 최초로 울릉도를 살펴보게 한 숙종실록의 기록을 봅시다

時漢相所圖上山川道里與輿地勝覽所載多舛故或疑漢相所至非眞鬱陵島也
이때 장한상이 그려서 올린 산천과 도리가 여지승람의 기록과 틀리는 것이 많으므로,
혹자는 장한상이 가 본 데가 진짜 울릉도가 아닐 것이라고 의심하기도 하였다

얼마나 울릉도에 대한 당시의 지식이 허술했는지 다시한번 알 수 있는 기록입니다
그전의 기록과 얼마나 달랐으면 방금 갔다온 사람이 그린 지도를 의심할 정도겠습니까?
당시 사람들은 울릉도가 어떻게 생겼는지조차 제대로 몰랐다는 강력한 증거죠

저 뒤로는 완벽하진 않지만 점차 울릉도를 현실적으로 그리기 시작합니다
우산도를 동쪽 죽도위치에 작게 그린 경우가 급속히 증가하는 것을 볼수있죠
엉뚱하게 그리던 울릉도를 사람을 보내서 자세히 조사한뒤 갑자기 제대로 그리기 시작한겁니다
이것 역시 그 전에는 울릉도를 제대로 알지못했다는 증거입니다

이런 내용들로 볼때 세종실록지리지를 비롯한 예전 기록들은 독도를 말하는게 아닐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즉 세종실록지리지는 우리주장인 울릉도에서 독도를 본것이 아니라
멀리서 본 하나의 울릉도를 두개의 섬 우산도와 무릉도로 묘사한 것입니다
그렇게 해석하면 대부분이 맞아들어갑니다

우산도를 동쪽에 그린 이후의 지도는 독도를 말할수도 있지 않느냐는 주장도 있겠으나
18세기가 되서야 울릉도도 처음으로 비슷하게 그리기 시작했는데
울릉도에서 한참더가야되는 조그맣고 사람도 살기 힘든섬을 곧바로 울릉도 옆에 그리기 시작했다?
그것도 죽도와 상당히 비슷한 위치에 하나의 섬만 그리면서 모양까지 닮게 그렸다고요? 말이안되죠
위의 김정호 선생님이 그리신 지도를 보세요 저게 독도를 그린거라구요?
저 사진을 만든 사람 말처럼 정말 양심이 있으면 그렇게 볼수가 없겠죠

현재의 죽도가 우산도라는 거창한 이름을 갖게된 이유도 이것으로 간단하게 설명됩니다
실제로 울릉도를 자세히 조사해보자 하나의 섬이었으니
더이상 울릉도를 우산도와 무릉도의 두섬으로 표현하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옛기록에는 우산도가 사람이 살만하고 농사도 지을 수 있는 독립된 섬으로 묘사되있으므로
이 조건에 들어맞는 섬을 찾는다면 뭘로보나 죽도가 최적이었겠죠

실제로 1694년 울릉도를 조사한 기록을보면 장한상은 죽도와 독도를 둘다 목격했습니다만
둘다 아무 이름으로도 부르지 않았습니다
만약 당시 사람들이 세종실록지리지를 현재 우리나라의 주장처럼 해석했다면
단번에 독도가 우산도라는 것을 알아챘을 것이고
최소한 몇년안에 독도에 우산도라는 이름을 붙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장한상은 아무 이름도 붙이지 않았고
이후의 저런 수많은 지도들에서 볼수있듯이 우산도라는 이름은 현재의 죽도에 붙게되었습니다
독도를 우산도로 불렀다면 이 과정을 설명하기가 힘듭니다

우산도를 그린 지도가 아무리 죽도처럼 생겼어도 인정을 못하시는 분이 계시므로
이번에는 우산도라고 말하면서 명백히 현재의 죽도를 묘사한 문자기록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첫번째줄 오른쪽 지도는 1711년 울릉도에 갔다와서 그린 울릉도 도형입니다
우산도에 '해장죽전'이란 말이 써있는데 '해장죽'은 대나무의 한종류죠
어디 있냐구요? 지금도 죽도에 많이 자라서 숲을 이루고 있습니다
독도는 예나 지금이나 식물이 자라기 힘들고 대나무가 많다는걸 섬의 설명에 쓰기는 무리입니다

저걸 죽도의 위치가 실제로는 북동쪽이어야 하는데 동쪽에 그렸으므로 인정할 수 없다는 한심한 사람들도 있는데
그 주장대로라면 위치가 그렇게 정확해야되는 지도가
사람이 살수있고 특산물도 많은 죽도를 돌기둥으로 표시하고
무인도에 멀리떨어진 독도를 울릉도 바로 옆에다 대나무가 많다는 설명에 섬도 하나로 표시했다구요?
독도를 실제로 가봤다면 두개로 나눠졌다는 것을 모를 수가 없는데요?
그렇게 위치를 철저히 따지시는 분들이 우산도가 죽도위치에 있어서
90여킬로미터의 오차를 보이는 수십개의 지도들은 갖가지 핑계를대며 무시하십니까?
저 지도는 누가봐도 우산도를 독도가 아닌 죽도라고 생각했다는 결정적 증거입니다

이번에는 국보 제153호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조선정부의 공식기록 일성록의 1807년 기록을 봅시다
北有于山島周回為二三里許
북쪽에 우산도가 있고 이것의 둘레는 2~3리정도 이다

2~3리를 미터로 환산할 경우 800~1,200m. 죽도의 둘레는 약2km, 독도의 둘레는 약5.4km(동도2.8㎞,서도2.6㎞)
방위로 보나, 둘레라는 비교적 상세한 지리정보가 있으면서 두개의 섬이라는 언급이 없는 점이나, 파악한 둘레의 길이로 보나
우산도를 지금의 독도가 아닌 죽도로 보고 있었음이 확실합니다

이런 명백한 증거들을 보여주면 한국에서 반박을 포기하며 항상 하는 소리가 있죠
'왜 아닌 증거만 따지느냐 우산도가 독도라는 증거도 있다' 면서 내세우는 증거를 보면
'누가 우산도를 뭐라고 불렀다더라' 같은 전혀 확실하지 않은 증거들 뿐입니다

울릉도에서 동남쪽으로 멀리떨어진섬, 두개로 나뉘어진 섬, 돌로 뒤덮여 농작물 및 사람이 살기 힘든 섬
독도를 우산도라고 생각했다면 모를수가 없는 이 간단한 특징을 보여주는 기록이 도대체 왜 없는걸까요?
우산도를 죽도처럼 그린 저런 지도는 수십장이 있는데 독도처럼 그린 지도는 찾기조차 힘든 이유는요?
상식적으로 우산도가 독도가 아니기 때문이란 결론을 내릴 수 밖에 없습니다

정리해보면 우리조상들이 직접 가보지않고 멀리서본것과 들은내용으로 울릉도의 모습을 그렸다면
작고 농사도 어렵고 사람도 살기힘든 독도라면 안그렸을 우산도를 지도에 그린것 자체도,
동쪽이 아닌 다른쪽에 그린것도,
기껏 우산도라고 적어놓고 설명은 울릉도에 대한 것만 계속해서 했던것도,
그리고 울릉도와 우산도가 한섬인지 두섬인지 헷갈려한 기록이 많은것도 모두 명쾌히 설명이 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학자들은 저 설명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이유는 저렇게 해석할 경우 세종실록지리지의 우산도가 독도를 말하지 않게 되버리기 때문입니다

세종실록지리지는 외교통상부 독도 홈페이지를 봐도 알수있듯이
우리가 가장 핵심적인 근거로 생각해오던 자료입니다
이게 무너진다는건 독도의 역사적 근거가 뿌리채 뽑힌다고해도 과언이 아닌거죠

학자적 양심에 기대하기에는 우리 사회의 분위기가 너무 파시즘적입니다
독도에대해 조금이라도 비판하려하면 몽둥이 들고 패기 시작하는 분위기란걸 부인할수 있으십니까?
과연 학자들이 맞아죽을 위험을 무릅쓰고 양심적으로 연구할 수 있을까요?

글의 주 내용과는 관계없는 얘기지만 한마디 하자면
최근 한국언론에서는 독도가 일본땅으로 나와있지 않은 지도와 문서들을 가지고
독도논쟁이 끝났다며 대서특필하고 있는데 현실을 전혀 모르고 하는 소리입니다
이건 독도문제에 관심이 있다면 다 알고 있고 이미 여러 사람이 지적했던 사실인데
언론이 계속하니 국민 전체가 선동이된 답답한 상황이죠

당시 아르고넛 오류에 의해 잘못 표기된 의미없는 지도가 무수히 많았고 설령 일본땅이 아니라고 했다해도
일본은 시마네현 고시라는 명백한 기록과 그뒤의 후속조치들이 있기 때문에
이전에 독도를 어떻게 보았는지는 큰 관계가 없습니다
일본측에서는 이렇게 주장하면 되죠
"그래요? 잘못알았었나보네요. 그런데 한국에서 점유했다는 증거는 뭐가 있습니까? 점유 안했으면 저희가 뭐라고했든 별로 의미가 없습니다만?"

한국은 "이런 명백한 증거를 가지고도 일본은 우기고 있다"고 주장하고
일본은 "저런 전혀 증거가 안되는 자료를 가지고 한국은 아직도 세뇌를 시키고있다"고 말하는
웃지못할 일들이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독도를 자기 영토로 주장하기 위해서는 '실질적 점유'가 가장 중요합니다
일본은 논리전개에 별 영향이 없는 반면
한국은 우산도가 독도라는것을 증명못하면 결정적 타격을 받습니다
실질적으로 점유했다는 확실한 증거가 없거든요



요약
1. 고지도에 우산도가 서쪽에 그려진 경우가 많은 이유는 옛날 사람들이 울릉도를 잘 몰랐기 때문이다
2. 즉 멀리서 본것과 들은 내용으로 그린것이며 당시 사람들이 울릉도가 한개인지 두개인지 헷갈렸다는 증거가 많다
3. 따라서 세종실록지리지를 비롯한 역사서의 우산도는 독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아래는 드디어 세종실록지리지등의 우산도가 언급된 자료들을 원문과 함께 해석해보겠습니다



<고려사>

有鬱陵島 在縣正東海中 新羅時稱于山國 一云武陵 一云羽陵 地方百里
울릉도가 (울진)현의 정동쪽 바다 가운데에 있다. 신라 때 우산국이라 칭하고 무릉 또는 우릉이라고도 하였다. 지방이 1백리이다.

一云 于山武陵本二島相距不遠 風日淸明 則可望見
혹은 말하기를 우산도와 무릉도 본래 두 섬으로 서로 거리가 멀지 않고 바람이 불고 날씨가 맑으면 바라볼 수 있다고 한다

앞에서는 울릉도가 지방이 1백리라고하면서 하나의 섬만 있다는 일도설을 설명하다가
뒤에서는 울릉도가 우산도와 무릉도 두 섬일 수도 있다면서 이도설을 언급합니다

하나의 섬이 울릉도고, 나머지 하나가 독도라면 이렇게 오락가락하는것이 가능한 일입니까?
울릉도에서 독도까지 거리만도 200리가 넘는데요?
반대로 동국여지승람에서는 이도설이 주로 나오고 끝에 일도설을 언급하는데
그것은 세종실록지리지를 해석한뒤에 보겠습니다



<세종실록지리지>

于山武陵二島 在縣正東海中 二島相距不遠 風日淸明 則可望見

우산.무릉은 두 섬으로 이 현(울진현) 정 동쪽 바다 가운데 있다.
두 섬의 거리는 서로 멀지 않고 바람이 불고 청명하면 볼수 있다.

한국측의 해석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산도(독도)와 무릉도(울릉도)는 두 섬으로 이 현 정 동쪽 바다에 있고
두섬의 거리는 서로 멀지 않아서, 바람이불고 청명하면 (서로) 바라볼수 있다.

그리고 일본측의 해석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산도, 무릉도(모두 울릉도)는 두 섬으로 이 현 정 동쪽 바다에 있고
두 섬의 거리는 서로 멀지 않으며, 바람이불고 청명하면 (본토에서 울릉도를) 바라볼수 있다.

제 소견으로는 후자의 해석이 더 진실에 부합한다고 보입니다

첫째로, 저 구절은 울진현의 풍경을 묘사하는 단락에서 나온 한 문장이고
'在縣正東海中'에서 엿볼수 있듯이 저 문장의 시점 또한 [울진현(본토)]에서 시작합니다
그런데 한국측의 해석대로라면,
則可望見이라는 구절에 가서는 갑자기 시점이 [울릉도에서 독도, 독도에서 울릉도]로 바뀝니다 뭔가 이상하다고 밖에 할수없습니다

둘째로, 則可望見라는 구절. 한국측의 해석대로라면 이곳엔 則可相望見이라는 구절이 들어가는게 더 적절합니다
그런데 왜 당대 조선인들은 則可相望見이 아닌 則可望見이라는 문장을 썼을까요? 

셋째로, 당대의 기록에선 본토에서 본 울릉도의 모습이 수없이 묘사되고 있는데
세종실록지리지에서는 하필이면 본토에서 본 울릉도의 모습이 묘사되지 않았을까요.

넷째로, 한국측의 해석은 지리지의 보편적인 특성을 볼때 이상합니다
지리지는 기본적으로 중심을 잡고 거기에서 방위와 거리를 나타냅니다
그래야 어디에 있는지 알수있고 실제로 갈때도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거리가 가까우면 생략할 수도 있지만 울릉도나 독도는 아니니까요
여기서는 울진현이 중심이란점에서는 반론의 여지가 없죠
그렇다면 정말 이상합니다

한국측의 해석에 따르면
울진현에서 울릉도까지는 방위(동쪽)만 나오고 거리가 사라졌습니다
반면 울릉도에서 독도까지는 거리(멀지않다)만 나오고 방위가 없습니다
울진현에서 울릉도까지의 거리는 울진현을 중심으로 간다는 점에서 중요하고
울릉도에서 독도까지의 방위 역시 안보일때가 많으므로 중요합니다
한국에서의 해석은 이 중요한 문제들을 빠트리게됩니다

세종실록지리지를 한국의 주장대로 해석해서 울릉도와 독도에 대해 알아본다고 해보죠
울릉도는 울진현에서 어느정도 거리일까요?
전혀 모릅니다! 안나와있거든요

더 심각한것은 세종실록지리지를 보고 울릉도에서 독도로 갈때입니다
못갑니다! 출발도 못하죠 어느쪽에 있는지 모르니까요
안보이는날이 더 많은데 어느쪽인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상식적으로 독도를 언급하면서 독도의 특징은 하나도 없고
어디에 존재하는지도 모르게 설명해놓은것은 이상하다고 볼수밖에없죠

반면 일본측의 해석은 울진현에서 울릉도가 동쪽에 있고(방위)
바람이 불고 청명하면 바라볼수있는정도(거리)라는 두 요소가 충족됩니다
우산도와 무릉도는 바로옆에 있으므로(실제로는 같은섬) 방위가 필요없구요

다섯째로, 여기선 직접적으로 나오지는 않지만 조선 전기 지리지들에 나오는 우산도와 무릉도의 일도설.
도대체 우산도와 무릉도의 일도설이 나온 이유는 무엇입니까?

정답은 하나입니다. 당대 조선인들은 울릉도가 하나의 섬인지, 두개의 섬인지 헷갈렸다는 것입니다

* 어떤 사람은 二島相距不遠을 [육지에서의 거리]로 해석했으므로 
距의 어법에 맞지 않아 틀렸다- 이런 말을 하는데 

距 이전에 애초에 중간에 相자가 있어서 전혀 불가능한 해석입니다.
일본측의 해석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하는 비판이죠
일본에서도 저 부분은 육지가 아니라 두 섬사이의 거리로 해석합니다

서로 멀지않은 두섬(二島相距不遠)을 볼 수 있다(則可望見)는 것이죠
즉 二島는 [울진현]에서 바라보는 섬의 모습이고 이것이 곧 울릉도라는 것입니다

다시 설명하면 울진현에서 [우산도와 무릉도 = 二島]를 바라보는 전체적인 내용에서
[서로 멀지않다]는 부분은 二島를 수식하는 것뿐이란거죠

바로 다음 문장도 한번 보겠습니다

新羅時 稱于山國 一云鬱陵島 地方百里
신라때 우산국 또는 울릉도라 하였는데 지방이 1백리이다

앞에 우산,무릉 2도에 대한 설명을 해놓고
곧바로 울릉도라고도 하였답니다
무릉도만 한정한 부분이 없고 '우산국 또는 울릉도'라고 했으므로
2도의 다른 이름이 울릉도였다는 해석이 자연스럽죠
독도까지 합쳐서 전체를 울릉도라고 불렀다고 주장하려는 사람도 있겠지만
울릉도 전체의 범위를 지방이 1백리라고 한정하고있어 이것도 이상합니다

또한 당대 조선인들이 울릉도를 2개로 착각했다는 결정적인 근거는 다음에서 찾아볼수가 있습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于山島鬱陵島 一云武陵 一云羽陵 二島在県正東海中 三峯及業掌空 南峯梢卑 風日清明則峯頭樹木 及山根沙渚 歴歴可見 風便則二日可到 一説干山鬱陵本一島 地方百里

우산도 울릉도. 일운무릉, 일운우릉. 두 섬이 이 현(울진현) 정동쪽 바다 가운데 있다.
세 봉우리가 곧게 솟아 허공에 있는데, 남쪽의 봉우리는 약간 낮다. 
바람이 불고 청명하면 봉우리 머리의 수목과 산 밑의 모래톱을 역력히 볼 수 있고, 순풍이면 이틀에 갈 수 있다.
일설에 우산도와 울릉도는 본디 하나의 섬이라고 하며, 지방은 백리(百里)이다.

문장을 분석해봅시다

于山島欝陵島 = 二島

이라는 것은 뭐 한눈에 보면 알테고 다음 문장을 살펴봅시다

二島 [在縣正東海中 三峰岌業撑空 南峯稍卑 風日清明 則峯頭樹木及山根沙渚 歴歴可見 風便則二日可到 一説于山欝陵本一島 地方百里]

주어는 이도二島(두 섬)이고, 괄호[]내의 문장이 二島를 수식합니다.

혹여나 저 문장은 두 섬중 하나를 표현한거다! 라고 주장할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안타깝게도 문장 중간에 一説于山欝陵本一島 (일설에 우산도와 울릉도는 본디 하나의 섬이라고 하며) 라는 구절이 삽입되어 있습니다.
괄호[]내의 문장은 명백하게 두 섬(二島) 전체를 수식하는게 맞습니다.
뒤에 `지방은 백리(百里)` 라는 구절까지쓰여 문장이 완전히 닫혀있어 이건 빼도박도 못합니다

그렇다면 [세 봉우리가 곧게 솟아 허공에 있는데, 남쪽의 봉우리는 약간 낮다. 
바람이 불고 청명하면 봉우리 머리의 수목과 산 밑의 모래톱을 역력히 볼 수 있고, 순풍이면 이틀에 갈 수 있다.
일설에 우산도와 울릉도는 본디 하나의 섬이라고 하며, 지방은 백리(百里)이다.] 라는 구절이 지칭하는 섬은 무엇일까요?

답은 뻔합니다. 당연히 울릉도입니다

그렇다면 당대 조선인들이 이 문장을 무엇이라 이해했는지 살펴봅시다
아래는 조선왕조실록의 기사입니다

(…) 우리 나라 강원도의 울진현에 속한 울릉도란 섬이 있는데, 본현의 동해 가운데 있고 파도가 험악하여 뱃길이 편리하지 못하기 때문에, 몇 해 전에 백성을 옮겨 땅을 비워 놓고, 수시로 공차를 보내어 왔다갔다하여 수검하도록 했습니다. 본도(本島)는 봉만(峰巒)과 수목을 내륙(內陸)에서도 역력히 바라볼 수 있고, 무릇 산천의 굴곡과 지형이 넓고 좁음 및 주민의 유지와 나는 토산물이 모두 우리 나라의 《여지승람(輿地勝覽)》이란 서적에 실려 있어, 역대에 전해 오는 사적이 분명합니다. (…)
 
실록을 보더라도
당대 조선인들은 【三峰岌業撑空 南峯稍卑 風日清明 則峯頭樹木及山根沙渚 歴歴可見】을 명백하게 [울릉도]라고 있식하고 있었음이 확실합니다.

여기서 곧 二島 = (본토에서 바라본 울릉도의 모습) = 울릉도 라는 등식이 성립하게 됩니다.

이처럼 당시 사람들은 울릉도가 하나의 섬인지 두개의 섬인지 정확히 몰랐기 때문에
두개의 섬으로 설명하다가 마지막에 '일설에 우산도와 울릉도는 본디 하나의 섬' 이라 하여
확실한 결론을 내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우산도와 울릉도가 한섬이라한 부분을
일설이라고 했으므로 단순히 소수설일뿐이라 하면서 의미가 없는것처럼 얘기하는데
위의 고려사에는 오히려 일도설을 주로해서 설명하고 마지막에 이도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사실 소수설이라고해도 저렇게 적어놓았다는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바로 정부에서 실제 울릉도의 모습을 제대로 몰랐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정부가 울릉도가 하나의 섬이란것을 확실히 알았다면 저런 말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죠

그리고 우산도,울릉도라고 해서 기껏 우산도를 언급했는데
잘보세요 우산도에 대한 설명이 있습니까?
아무리 찾아봐도 울릉도에 대한 설명밖에 없습니다
우산도가 독도라면 사람이 살기 힘들고 90KM나 떨어져있으며 크기가 100배이상 작은등
완전히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저런 서술은 무리가 있죠

반면에 우산도와 울릉도가 같은섬이라면 아주 자연스러운 서술이 됩니다
즉, 글쓴이는 우산도와 울릉도를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는
거의 같은 위치에 아주 가깝게 붙어있는 섬으로 묘사하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조선전기 지도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우산도가 울릉도에 붙어있는 바로 그 모습 처럼요


3줄요약

여지승람의 二島 = 세종실록지리지의 二島 = 울릉도
당대 우리 조상들은 울릉도가 하나의 섬인지 두개의 섬인지 헷갈려했기에 이런 서술들이 나온 것입니다
고로 세종실록지리지의 기록은 독도와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결론

우산도의 실체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어떻습니까?
당시 사람들이 울릉도가 한개인지 두개인지 헷갈려한것은 단순한 가설이 아닙니다
조선시대 정부가 편찬한 기록에 엄연히 나와있는 사실이며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도 많습니다

지금까지 우산도의 힘은 대단했습니다
우리국민 거의 전부를 믿게해서 독도얘기만 나오면 격분하게 만들었고
외국인 심지어 일본인도 상당수를 우산도가 독도라고 믿게했습니다

하지만 최근 위의 김정호 선생님의 지도처럼
도저히 독도라고 볼수없는 자료들이 늘어나면서
해외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우산도가 독도라는것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더이상 넘어가기가 힘들어졌다는 얘기죠

저는 독도가 일본땅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것인지는 20세기 이후의 상황이 확실히 밝혀져야만 판단이 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우산도가 독도가 아니라는 것은
지금까지의 자료로 볼때 거의 확실한 사실인것 같습니다

따라서 우산도가 독도라는 논리로
독도가 수백년전부터 우리 고유의 영토라고 주장하는 것은
명백한 역사왜곡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주장을 전국민의 머리속에 주입하고
그에 반하는 사실은 무조건적으로 말살하는 현재의 상황이 우려스럽습니다
주변국가를 역사왜곡으로 비난하지만
거의 모든 사람들이 믿게하고 그렇지 않으면 린치를 가하는
가장 심한 왜곡은 우리나라가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