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영화사이트의 게시판에서 "깨시민" 논쟁이 한창이다.
http://djuna.cine21.com/xe/board

극구 방어하는 깨시들의 논지가 "난 닝구는 되도 깨시민은 안된다" 수준이기 때문에, 논쟁의 승패는 뻔하다. 결국 자신들의 허접한 방어논리가 무너지자 들고 나온게 "깨시민은 깨어있는 시민이라는 좋은 말을 조롱의 의미로 퇴색시키는 나쁜 말이라서 안된다" 이다. 물론 그 역시 공격자들이 합당한 논지를 동원하여 무너뜨리는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공격자들에게 한가지가 빠져 있어서 아쉬웠다. 바로  "깨어있는 시민" 은 과연 올바른 말인가?" 라는 돌직구를 날리지 못한 것이다. 

(참고로 깨시민의 원래 조어인 "깨어 있는 시민"은 노무현이 지어낸 말이다.)

우선 시민이라는 말부터 짚어보자. 그 사회가 민주공화국이라면, 그 구성원인 시민들은 이미 깨어있는 존재이다. 시민이라는 단어 자체에 '전근대의 봉건적 질서와 가치로부터 벗어나 깨어있는 사람'이라는 역사적 의미가 담겨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깨어 있는 시민"은 애초에 조어 자체가 어불성설일 수 밖에 없었던 것이고, 종국에는 "깨시민"이 되어 조롱의 의미가 되는 것은 이미 예정되어 있었던 일이었다.

"깨어있는 시민"의 정치적 의미는 사실 단순하다. 친노들이 정책과 능력보다는 자신들의 주특기인 '반독재민주화' 전술을 내세우기 위하여 한국 사회를 민주공화국이 아니라 전근대적인 사회인 것으로 설정했고, 그래서 정치과정을 운동이나 투쟁으로 전도시키고, 종국에는 지지자들을 시민에서 황위병으로 끌어내리기 위해 만들어낸 이념적 도구였을 뿐이다. 

또한 "깨어있는 시민" 은 시민들을 깨어있는 시민과 깨지못한 시민으로 자의적으로 분리하여 차등적으로 대상화시킨다. 이것은  민주공화국의 기본 전제인 "모든 시민은 동등하다" 를 정면으로 부정하고, 깨지못한 시민들을 독재적 계몽의 대상으로 바라본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반민주적이고 독재적인 발상의 산물이다. 이것은 '반독재민주화'를 위하여 시민들을 '반민주독재화' 시켜버리는 아이러니를 빚어내는 것이며, 깨시들이 진영논리에서 좀처럼 못 벗어나고 심지어 국정원녀 사건처럼 민주주의와 법치에 대한 합리적인 판단력마저 상실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깨어있는 시민"의 반대어로 '애국 시민'이라는 말이 있다. 새누리당이나 보수진영에서 전가의 보도처럼 들먹이는 조어이다. 물론 그 역시 한국 사회를 자신들의 주특기인 '냉전구도화' 시키기 위해 만들어 낸 말이고, 지지하지 않는 시민들을 "애국적이지 못한 시민"으로 라벨링하여 분리시킨다는 점에서 그 정치적 용도는 "깨어있는 시민" 과 정확히 똑같다.

어쩌면 한국 정치는 국민들이 "애국 시민"은 물론이고, "깨어있는 시민"의 유혹에서도 벗어날 때 비로소 새로워질 수 있지 않을까? "깨시민"은 그저 표리부동하는 정치세력에 대한 조롱의 의미일 뿐이지만, "깨어있는 시민" 은 매우 위험하기 그지 없는 반민주적인 조어인 것이다.

일반인들이 누군가를 "진짜 한국인" "깨어있는 시민" "애국 시민"이라 부르며  칭찬하는 것은 미덕일 수 있겠다. 그러나 자신을 그런식으로 자화자찬한다면 왕자병이라며 비웃음을 당하는건 불가지상사이다. 하물며 대통령이 자신의 지지자들을 향해 "깨어있는 시민" 운운해서는 결코 안되는 거였다. 그리고 그런 황당한 조어를 만들어내며 시민들을 능멸했던 대통령의 죽음에 눈물을 흘리면서 스스로를 "깨어있는 시민"으로 자처하는, 집단적인 정치코미디는 빨리 멈추어야한다. 

그럼에도 늦게나마 "깨시민 논쟁"이 시작된 것을 환영하며, 이렇듯 시민들의 자정작용이 일어나는 것을 보니 한국사회는 아직 민주공화국이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