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대로부터의 리포트> / 이론과 실천/ 김태경 옮김 / 1986년 / 2000원

>> 서평이라기 보다는 약간 감상문스런 글로 보아주시길.<<
이 책은 율리우스 푸치크라는 체코의 사회주의 활동가가
1942년 4월 24일 나찌의 게슈타포에게 체포되어 숱한 고문을 받다가
43년 9월 8일 사형당하기 전까지 판크라츠 감옥에서 비밀리에 쓴
글 모음이다. 그의 글 뿐만 아니라 식구와 동지들에게 보낸 편지도
책 뒤에 묶여 있다.

나는 이 책을 지금까지 모두 6권을 샀었다. 5권은 지인들에게 모두  준 것 같다.
왜냐하면 지금 가지고 있는 책의 첫 표지에 "6번째 구입을 기억한다"라고
써 있기 때문이다. 책을 준 사람으로 확실히 기억나는 사람은
어떤 여기자  R씨(그 양반은 나에게 상당한 호감이 있었든 것 같다.),
다른 또 한 사람은 E양인데, 지독한 개신교인인 그녀를 나는 참 좋아했었다-
- 기억만 아련히 남아있다. 아마 E양이 이 책을 아직가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의 저자인 푸치크는 그 나찌의 게슈타포에게 고문을 당하면서도
자신의 신념을 지킨다. 이 책에는 그 판크라츠 감옥에서의 모든 군상들이 조밀하게
묘사되어 있다. 아무런 신념이 없이 그저 서류작업만으로 포로를 처형하는
군인, 악독한 신념가, 동지를 배반하는 사람, 어린 나이지만 놀라운 신념을
보여주는 레지스땅스 청년.

우리는 보통 신념이라고 하면 매우 거창하고 거대한 철학적인 구조물을
떠 올리지만 이 책에 있는 율리우스적 관점의 신념은 바로 인간애이다.
사람이 사람에 대한 믿음, 그리고 가장 인간적이며 보편적인 삶과 상식에 대한
투쟁이라고 볼 수 있다.  스켑렙에 가보면 놀라울 정도의 현학과 이론으로
뭔가를 주장하는 글이 보인다. 그런데 좀 물러나 생각을 해보면 어떤 것은
지극히 상식적인 내용, 예를 들면 나에게는 거의 증명이나 설명이 필요없는
Axiom과 같은 것인데 이를 어떻게든 부정하기 위해서 설득하거나 빈정거리는
글을 보면 솔직히 좀 역겹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실천, 자신의 신념을 도달하기 위하여
조약돌 하나라도 던지는 그 행동자체이다.  입으로는 무언들 못하랴. 
 
이 책은 공산주의자의 이념에 관한 것이
아니라, 매우 나약한 한 인간의 삶에 대한 기록으로 보면된다. 파시즘에 의연하게
대항하고, ....대항이라기보다는 그 자체를 모두 포함하여 녹여내버리는 푸치크의
인류애와 인간애는 결국 파시즘과의 싸움에서 완벽하게 승리를 하게된다.
그의 죽음은 파시즘과의 싸움에서 더 이상 승부를 돌이킬수 없는 획을 그어버린 것이다.

이 책 이후로 나의 생각이나 생활은 좀 달라졌었다.  나의 지금있는 모습에
가장 영향을 미친 책 한권을 꼽으라면 이 149페이지 <교수대로부터의 리포트>를  말하고 싶다.
운동권 학습에게 강요하는 조악한 교재 100권보다 이 책은 힘이 있었다.
마음이 답답하거나 뭔가 좀 생각이 복잡해지면 이 책을 읽곤한다. 책은 매우 짧다. 이 150 페이지가 채 되지 않는다.

오늘 종일 이 책을 인터넷 찾아보았지만, 불행히도 완전히 절판이 된 것 같다.
기분같으면 불법제본이라도 해서 좀 나눠드리고 싶다.
원본에 대한 자료는 없는데 번역자의 글솜씨가 대단하다.
번역자는 이론과 실천의 사장 <김태경>씨다. 그는 강금실의 전 남편이다.
서울대 미학과를 나왔다. 지금은 어디서 뭘 하시는지 잘 모르겠다.
글에는 번역본 냄새가 전혀없다. 번역자 자신이 이런 지하생활을 많이 해서
그런지 문장 하나하나가 살아있다. 품위가 있고 묵직하다.

혹자는 변희재의 글솜씨에 대하여 대단하다고 하시는데는 사람도, 좀 미안하지만, 내가 보기에
변희재 정도는 불로거 중에서도 중하하급의 글솜씨이다. 그의 글의 가장 큰 단점은
,내가 보기에는,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는 피상성에 있다.  그의 삶은 그 자체가 설득력이
 별로없기(?) 때문에 그로부터 밀려나오는 모든 글은 그가 살아온 삶의 진정성을 넘어서기 힘들 것이다.
지금도 그러하지만 앞으로도 쭉.   글솜씨가 좋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목도하고픈
분이라면 이 1986년도 김태경이 번역한 이 책을 꼭 한번 보시길 권한다.

부록::   한번은 FM으로 어떤 소프라노의 실황공연 노래 한 곡을 듣는데, 정말 반주자의 피아노가 죽여주는 것이 아닌가.
그 찰랑거리며 노래를 끌어당기고 밀고하면서 노래를 받쳐주는  피아노 반주자는 감탄스러운 그 자체였다.
아니나 다를까, 노래가 끝나고도 FM 진행자 두 사람도 뭔가 좀 이상한 것을 느낀 모양이다. 사실은 소프라노의 노래가
중심이 되어야 하는데...몇 초간의 정적이 흐른 뒤, 진행자 A가 초대손님 음악가에게 이야기했다.

"음.... 피아노 반주자도 참 잘하시는 것 같지 않아요 ?" ㅎㅎㅎ

 

요즘 변희재의 노래를 들으면 이 우스운 에피소드가 항상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