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게시판에 갈등관리에 관한 글도 올라왔지만(그런 법안과 고민이 있었다는 건 몰랐습니다),  화해, 조정, 중재, 공청회 이런 절차를 마련하고 정책의 일방적인 강행을 지양하는 모습. 빨리 보고 싶죠. 

그런데 그런 걸로 갈등이 얼마나 잘 해결될지 회의감이 들기도 합니다. 쌍용차에서도 잇달아 노동자들이 사망했는데, 희망퇴직자로서 연탄가스로 자살한 것으로 추정되는 고 김고원씨는 아직 정확한 사인(자살여부, 자살이유)이 밝혀지지는 않았고, 사측은 희망퇴직을 만류했지만 스스로 그만둔 것이라고 하는데, 대출금 때문에 괴로워했다는 유족들의 말을 들어보면 판단이 정확히 서질 않네요.

아무튼 이렇게 아까운 목숨들까지 희생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갈등 해소란 대체 어떻게 될 수 있을까요. 서로를 공감하는 능력이 부족한데, 절차 갖춰놓는다고 크게 달라질 것 같지는 않아요. 그런 점에서 차라리 상대방에게 자기를 제대로 이해해달라는 호소로서 노골적이고 직설적인 말들이 더 좋습니다. 물론 시도 때도 없이 욕설하고 험담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그냥 욕설하면 재미없으니 노래나 시, 그림으로 표현하여 예술로 승화시키면 예술문화 진흥에도 도움이 되고 보고 듣는 이도 즐거울 겁니다. 김삿갓처럼.(http://blog.daum.net/beauty-cloudy4029202/11196673) -- 100분토론 나가서 맨날 토론만 하지 말고, 한달에 한번씩이라도 좌우파 예술인들이 노래와 그림, 시로 대결하여 각자의 끼를 겨뤄보는 것은 어떨까요. 좌파쪽이 이미 갖춰놓은 무기들이 많아서 좀 불공평하기는 한 것 같네요.

누군가는 작금의 이런 사태를 보면서 영국의 대처를 그리워할 겁니다. 저도 만약 우파였다면 시원하고 깔끔하게 정리해버리는 불같은 성격이 마음에 들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파가 아니고, 그래서 블랙렉 마이너란 노래가 쌓인 울분을 해소해줘서 꽤나 좋아합니다. 




저녁이 되어 어두워지자
파업방해꾼이 조업하려고 기어들어가네.
몰스킨제 바지와 더러운 셔츠를 입고
저기 파업방해꾼이 가네.

오~ 그놈은 그 누더기를 걸치고 아래로 내려가네.
바닥에 깔려 있는 석탄을 캐기 위해
이 마을의 여자들은
파업방해꾼을 쳐다보지도 않는다네.

오~ Delaval은 끔찍한 곳이지.
그들은 파업방해꾼의 얼굴에 젖은 흙을 문질렀어.
흙더미 주변에서 그들은 도보경주를 했어.
그 파업방해꾼을 잡으려고.

그러니 Seghill 근처에는 얼씬도 말게.
그들이 길을 따라 일렬로 길게 늘어섰네.
그 더러운 파업방해꾼의
숨통을 잡아 허리를 끊어놓기 위해

그들은 누더기와 곡괭이까지 집어들었네.
그들은 파업방해꾼들을 지옥까지 쫓아버렸네.
잘가게. 영원히.
더러운 파업방해꾼!

저녁이 되어 어두워지자
파업방해꾼이 조업하려고 기어들어가네.
몰스킨제 바지와 더러운 셔츠를 입고
저기 파업방해꾼이 가네.

어서 노동조합에 가입하게나.
죽는 날을 앉아서 기다리지 말게나.
그것은 멀리 있지 않다네.
더러운 파업방해꾼!



설명(출처 - 위키)
Blackleg Miner는 19세기 영국 Northumberland에서 유래한 포크송이다. (노래에 Seghill과 Delaval이란 마을이 나오기에 그렇게 추측할 수 있다.).

이 노래가 얼마나 오래되었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아마도 19세기 후반이나 20세기 초반에 만들어졌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Richard Thompson은 2006년에 새로운 버젼을 발표했는데, 그는 그 시기를 19세기 전반이라고 표기했다. 그러나,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 가사는 19세기 당시 Northumberland에서 사용하던 언어를 가지고 있지 않아야 하며, 더 현대적인 영어로 표기되었어야 한다.

전통적인 노랫말은 집단적인 파업노동자들이 지목한 파업파괴자들(Scab 보다 더 오래된 용어인 blackleg)에 대해 공격적인 태도를 드러낸다.(영국의 광산 현장에서는 항상 노동조합의 조직률이 높았고, 파업들은 공동체 양측에 더욱 쓰라린 상처를 남겼다.)

1960년대와 1970년대 기간동안, 이 노래의 공격적인 가사는 기피되어졌고, 그것은 많은 포코 음악 사회에서 공통적인 모습이었다. 그러나, 영국 광산파업(1984-1985년)에서는 파업 광산노동자들이 조업을 계속하는 자들을 겁주기 위하여 이 노래를 불렀다.

그 후, 이 노래를 부르는 것은 파업을 지지하는 정치적인 표현으로 간주되었고, 많은 포크 클럽들은 그것의 폭력에 대한 묘사 때문에 이 노래를 기피하였다. 이런 경향은 이 노래를 연주하는 밴드들의 증가에 의해 상쇄되었다. 그 중 가장 악명 높은 것은 1986년 (파업 기간 동안 많은 폭력사태가 유발되었던 지역인) Nottingham에서 활동한 Steeleye Span의 노래였다.

이 노래를 부른 다른 아티스트들로는 Ryan's Fancy, Lloyd, Smoky Finish and Clatterbone, Len Wallace, Seven Nations, Steeleye Span, Richard Thompson이 있다. 


(※  Nottingham은 파업 반대표가 많이 나왔던 지역이라죠. 이런 곳에서 이렇게 상큼한 노래를 불렀다니. 매력 만점입니다.)


다른 버전





참고
(영어 노랫말) http://en.wikipedia.org/wiki/Blackleg_Mi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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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 vote. What does that mean? It means that we choose between two bodies of real, though not avowed, autocrats; We choose between Tweedledum and Tweedled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