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탄튼 메시지 / 말로 모건 지음, 류시화 옮김 / 정신세계사)

 

: 2009. 6. 8. (월) 07:26 ()

: 2009. 6. 9. (화) 20:18 (사무실)

 

왜 사냐고 물으면, 그냥 빙그레 웃지요!

 

생각해 본 바가 없기 때문에 딱히 뭐라고 대답할 말이 없다. 그러니 빙그레 웃을 수 밖에. 조금 다그치듯이 묻는다면, 그냥 사는 거지요, 뭐 별거 있어요! 이렇게 대답할 수도 있다. 아니, 그래도 뭔가 궁극적인 이유가 있을 거 아니냐?고 묻는다면, 이제 우리는 답답해진다. 정말 왜 사는지 잘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도 조심스럽게, 결국 어떤 의미인가는 있을 것 아니냐고 묻는다면, 사람들은 진지하게 대답할 것이다. 하루하루 기분 좋게,,, 결국 기분 좋게 살고 싶다. 즉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의미이다.

 

The bottom line of our long lives is happiness or being happy. Do you agree with me?

 

누군가 내게 글은 왜 쓰냐, 토론방에 뭣 하러 글을 올리고 토론을 하냐고 묻는다면 결국엔 좋은 기분을 느끼려고 그런다고 대답할 것이다. 인간 행위의 모든 근본적인 이유는 아마도 긍정적인 기분의 끊임없는 추구일 것이다.

 

사랑을 하는 것도,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도, 그리고 명예를 추구하고 성공을 향해 달려가는 것도 모두 다 기쁘고, 즐겁고, 유쾌한 긍정적인 기분 즉 행복을 위하는 것이리라. 나는 일체의 긍정적인 기분을 느끼는 것을 행복이라고 정의 내린다. 너 행복하냐고 묻는 것은 늘 행복한 기분에 빠져 사느냐고 묻는 것이다. 늘 행복감에 젖어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만 하는가.

 

답은 하나다. 잘 느끼면 되는 것이다. 행복은 결국 잘 느끼는 능력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는 동안 행복하게 느끼는 시간이 많으면 만족스럽고 행복한 삶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루를 행복하게 살면 우리는 행복하다고 할 수 있다. 만일 어떤 사람의 삶이 하루하루가 행복하다면 그는 분명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이다.

 

하지만 인생은 문제의 연속이다. 우리가 행복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문제들이 많이 생긴다. 그것들을 어떻게 잘 핸들링 하느냐가 행복의 기술이 되는 것이다. 어렵고 힘든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사전에 예방하는 지혜가 필요하기도 하고, 문제에 봉착했을 때 지혜롭게 잘 푸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또 풀 수 없는 문제는 피해가는 유연함을 갖고 있다면 행복하지 않은 시간이 짧아질 것이다. 이렇게 우리가 행복하지 않은 상황을 가능한 적게 만든다면 우리는 대체로 행복하게 살 수 있으면 만족스러운 삶을 영위할 것이다. 이것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비결이다.

 

가장 행복할 때가 언제인가. 두 말 할 필요가 없다. 사랑할 때가 가장 행복한 것이다. 눈을감고 사랑에 빠졌을 때를 회상해 보라. 얼마나 황홀했던가. 당장 내일 죽어도 좋다고 생각할 만큼 행복하지 않았던가. 우린 평생 이런 사랑을 하면서 살아야 한다. 그래야 진정 행복할 수 있을 것이니까. 그런데 사랑에도 함정이 있다. 감정적인 사랑만 하려면 사랑에 중독되고 만다. 사랑에 빠져 허우적대면 결코 행복할 수가 없다. 참되고 영원한 사랑을 원하는가. 그렇다면 참 사랑을 배워보자.사랑에 대한 소고(小考)( http://acro.pe.kr/zbxe/?document_srl=7194 )

 

또 사람은 풍요로울 때 행복할 수가 있다. 우리가 돈에 구애받지 않고 많은 활동을 할 때 좋은 기분을 자주 많이 느낄 수 있다. 그러니 돈을 많이 벌 수 없다면, 적어도 돈 걱정하지 않을 정도로 비축을 해 놓거나 언제라도 돈을 벌 수 있는 능력을 갖춰놓아야 할 것이다. 나아가 돈을 적게 들이면서도 행복해 질 수 있는 능력을 길러 놓으면 참 좋다. 예를 들어, 독서의 즐거움, 이웃과 어울림, 봉사 활동, 각종 취미 활동은 적은 비용을 들이고도 즐길 수 있는 활동이다. 옛날에 정신 수련과 마음 공부를 하는 사람들은 돈을 돌보듯 했다. 그래서 경제적으로는 쪼들리는 상황 속에서 살아야 했다. 오늘날에는 그런 상황 속에서 풍요로운 마음을 느껴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오늘날에는 풍요로움을 구가해도 좋다. 하지만 제대로 된 방법을 모르면 돈을 잘 벌 수는 없다. 평범한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쉬우며 좋은 방법은 일찍부터 가능한 많은 돈을 저축해서 잘 굴려서 돈이 돈을 벌게 하면 좋다. 돈을 잘 벌지 못하는 95%의 사람들이 이렇게 하면 되는데, 모두 이렇게 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절제하고 인내하는 힘이 없고, 미래를 내다보는 지혜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지혜로운 행동을 하는데 필요한 마음이 개발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은 인류의 95%는 돈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제 마지막 관문이 하나 남았다. 바로 건강이다. 건강을 잃으면 그것으로 행복은 물 건너가고 만다. 건강을 잃은 상황에서도 어찌어찌 행복한 척은 할 수 있지만 완전히 행복한 마음 상태에 있지 못 한다. 그렇다고 건강이 행복에 아주 절대적인 요소라고 할 수는 없다. 마음의 문을 통과하여 정신의 세계에 들어간 사람은 설령 불구의 몸, 장애의 몸이라고 해도 행복하게 살 수 있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목격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은 소림사 12관문을 모두 통과한 초고수들이다. 일반인들로서는 이루기 어려운 지경이다. 그러므로 일반 사람들은 건강하게 사는 비결을 터득하여 늘 건강하게 살아야만 한다. 어쩌면 건강은 행복의 필요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건강하지 않으면 마음껏 일할 수도 없고, 자신의 사랑을 충분히 발견하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건강하게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정말 진지하게 생각해 두어야만 한다. 병원에 가보면 온 세상 사람들이 다 환자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사람들이 많다. 적어도 하루의 많은 시간들을 고통스럽게 보내는 사람들이다.

 

나는 건강, , 사랑의 행복의 삼위일체라고 한다. 어느 것 하나라도 결여되면 행복한 인생이라는 삶의 수레바퀴는 굴러가지가 않는다. 하나가 충족되지 못하면 그 자리에서 멈춰서는 것이다. 사랑, , 건강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것이라고 했다. 건강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보자.

 

사실, 건강을 잃는 것은 하루 아침에 그리 되는 것은 아니다. 오랜 동안의 원인 쌓여서 어느 날 결과로 드러난 것이다. 그런 만큼 하루 아침에 낫지도 않는다. 한번 나빠지면 회복하기가 어렵다. 더욱이 일반인들은 건강에 대한 확실한 지식도 갖추고 있지 못하다. 그러니 낫기가 정말 어려운 것이다. 정말 두려운 점은, 전 세계가 지금 불완전한 치료법에 매달리고 있는 것이다. 문제를 어렵게 하는 것은 서양의학계에서조차 그렇다는 사실 조차도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지구촌이 무지에 세뇌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간에 관한 한 의학은 과학이 될 수 없다. 인체를 물질로 보고 다를 때, 과학적 방법을 적용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인간은 결코 육체인 인체가 아닌 것이다. 인간은 정신과 육체의 결합체이다. 그리고 정신이 그 육체의 주인이다. 고로 인간을 다룰 때는 정신을 위주로 해야만 한다. 그런데 서양의학은 인간을 정신은 없는 육체적인 동물로 간주하고, 과학이라는 칼을 들여댄다. 그러면서 모든 병을 치료할 수 있는 것처럼 속인다.

 

서양의학은 하나의 기술이다. 수술을 예로 들면, 숙련도가 높아지면 결과가 좋아지는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수술에 사용되는 기구나 장비들은 응용과학을 적용한 것이다. 수술 도구나 장비가 과학적이라고 해서 의학 자체를 과학이라고 규정해서는 안 된다. 인간을 다루는 학문은 인간학이어야 한다. 즉 존엄한 생명을 다루는 인간학이어야 한다. 마음 혹은 정신을 함께 아울러 살펴주어야만 하는 존재인 것이다.

 

스트레스가 질병의 주요 원인이라고 한다. 서양의학에서조차 인정하는 말이다. 스트레스란 외부환경에 대응하는 마음 상태에 따라 작용할 수도 있고, 작용하지 않을 수도 있고, 사람마다 다르게 작용을 한다. 스트레스라고 해서 어떤 자극이나 인체에 동일하고 작용하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는데 그건 절대 그렇지가 않다. 그러한 관계를 명확하게 밝혀놓았다. 다음 글을 참조하시길 바란다. 신념이 우리의 건강과 행복을 좌우한다 ( http://acro.pe.kr/zbxe/?document_srl=4569 ).

 

윗글에서 스트레스의 작용에 대해서 조사를 하면서 마음(또는 신념)이 작용하는 것을 밝혀 낸 ABC법칙을 한 권의 책에서 발견하고 발췌, 인용하였다. 그런데 그 책은 영업에 관한 책이었다. 그 책의 저자가 도대체 얼마나 훌륭한 사람이길래 그런 원리를 밝혀놓았을까 싶어서 인터넷 검색을 하여 보았으나 그 사람에 관한 자료를 찾을 수가 없었다. 참으로 아쉬웠다. 그런데 얼마 전에 헌책방에 들렸다가 스트레스에 관한 책 (스트레스는 이렇게 푼다 / 장현갑 편저 / 고려원)을 한권 발견했다. 그 책에 ABC 법칙이 언급이 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참으로 반갑기도 하고, 우습기도 했다. 세일즈에 관한 책을 썼던 그 사람은 공부를 해서 그런 내용을 알았던 것이다. 책을 쓸 때 인용한 책이나 저자를 밝혀놓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을 했다.

 

 

행복을 연구하면서 어떤 생각이든 감정을 유도하고, 느끼고 감정이 어떤 것이냐에 행.불행이 갈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도표까지 그려놓고 했었다.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외부 자극이 모든 사람들에게 동일한 스트레스가 되는 것이 아니다. 스트레스가 될 수 있는 자극에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스트레스를 느끼기도 하고 안 느낄 수도 있는 가변적인 것이 스트레스인 것이다. 결국 마음을 어떻게 다스리냐에 따라 스트레스가 결정되는 것이었다. 따라서 스트레스가 병의 원인이라는 말은, 마음 가짐에 따라 병이 될 수도 있고 안될 수도 있다는 정의로 치환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이는 마음이 병의 원인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마음의 작용에 의해서 병이 유발되는 모든 질병에 대해서, 마음이 만병의 원인이다 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의 사고, 감정 그리고 행동간의 관련성을 검토하기 위해 알버트 앨리스 (Allbert Ellis) 박사가 ABC 모델이라는 방법을 고안해 낸 것이다. 이러한 모델에 의해서, 사람을 긴장하게 하는 것은 스트레스가 아니라 그 사건에 대해서 그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달려 있고, 따라서 스트레스에 대한 감정은 부정확하거나 비합리적인 사고에 의해 야기되는 수가 많다는 것을 고찰한 것이다. 책의 내용을 조금 더 인용해 보자.

 

사고가 어느 정도 감정을 일으킨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다양한 정서적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바람직하지 못한 사고비합리적인 사고자발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스스로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러한 변화는 인지적 재구성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가능하다. , 인지적 재구성이란 특수한 대응술을 연습함으로써 우리의 사고를 재구성하고, 스트레스를 감소시켜 비교적 긍정적이거나 중립적인 감정을 키워나갈 수 있다. (54p / 스트레스는 이렇게 푼다 /장현갑 편저 / 고려원)

 

결국 생각을 잘 함으로써 혹은 사고방식을 변화시킴으로써 우리는 좋은 기분을 자주 느낄 수 있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짧게, 마음을 다스리면 행복하게 살 수 있다라고 표현할 수 있다.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명상이다. 혹은 마음 공부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서양에서조차 불교의 명상이나 선 수행을 장려하는 것이다. 즉 그들은 동양을 배울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사실을 깊이 명심하고 살아야 행복하게 살 수 있다. 그리고 건강할 수 있다. 부정적인 감정을 유발하는 똑 같은 상황의 스트레스에 매일 노출된다면, 우리의 감정계는 파괴되고 말 것이다. 사소한 일에 쉽게 짜증을 내도록 습관이 든 사람은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늘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어찌 몸인들 배겨나겠는가. 병이 들 수 밖에 없다.

 

우리 인류는 자기파괴적인 삶을 살고 있다. 자본주의, 자유시장경제 사회에서 돈이 행복을 보장한다는 미신에 빠져 일상적인 삶에서 감정을 잘 다스리지 못할 뿐만 아니라 물질만능주의에 빠져 욕망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고 있다. 삶이 황폐화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두가 돈을 더 많이 벌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다시 한번 위의 궁극적인 질문을 던져보아야 한다. 도대체, 왜 죽어라 하고 일하는 건데?라고 묻는다면, 결국 우리는 기분 좋으려고 그런다고 대답할 수 밖에 없다. 즉 행복하기 위해서 그러는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돈이 결코 행복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지독하게 가난하여 돈 걱정 때문에 살 수 없다면 모를까, 오늘날 누구나 최소한의 물질적 풍요를 누릴 만큼은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도 더 돈을 벌려고 한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날까. 생각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돈을 더 벌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결국 자신도 모른 채 습관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제 행복하기 위해선 지금 이 자리에서 멈춰 서야만 한다. 위에서 선보인 인지적 재구성을 시도해보아야만 한다. 인지적 재구성이 뭐냐? 올바른 지식을 쌓는 것이다. 정확한 정보를 입력시키는 것이다. 나는 행복을 느낄 만큼 돈을 벌었다, 이제 행복하기만 하면 된다, 행복한 감정을 느끼자, 라고 선언하고 뇌에 각인시켜야 한다. 그것은 사실이니깐 말이다.

 

돈을 많이 벌려고, 성공을 하려고 열심히 노력하면 할수록 몸은 망치는 것이다. 이것은 인과 관계가 명확하다. 사랑으로 일하지 않는 한 열심히 일하면 우리는 몸을 과도하게 사용하게 된다. 그래서 몸이 병드는 것이다. 성공한 사람이 큰 질병이 걸리는 것도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좋은 글을 인용해 본다. 한 페이지만 사진을 찍어와서 책의 제목이나 저자를 모른다. 양해해주시길 바란다.

 

인간에게 부의 축적을 가능하게 하는 바로 그 야심과 기술이 오히려 그 이후에 오는 성공의 과실을 즐기는 것을 가로막는다.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고, 일에 대한 고민을 안은 채 잠자리에 들고, 경쟁자를 이길 방법을 끊임없이 궁리하고, 줄담배를 피우고, 과음을 하는 등의 이런 모든 습관들이 끔찍한 동맥경화를 유발하는 요인이다. 혈관 벽이 두꺼워질수록 피의 흐름은 악화된다. 그럴 경우 제일 먼저 영양공급에 차질이 생기는 기관은 바로 뇌다.     

 

중앙정보처리장치인 뇌가 병들면 자연히 몸의 여러가지 기관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고 여기저기 부위가 병들기 시작한다. 사실 이러한 원리는 좀 수준 있는 책들을 읽어보면 모두 언급되는 내용이다.

 

, 어떻게 하면 우리의 못된 삶의 습관을 버리고 진정 사람답게 살면서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 수 있을까? 사실 그러한 이상향은 오래된 과거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이제 세계는 동양의 정신 세계로 그것도 과거의 삶의 방식으로 회귀해야만 한다. 그래야 진정 행복하게 살 수 있다.

 

무탄트 메시지는 자연에 순응하면서 본능적인 삶을 살라고 메시지를 전해 주고 있다. 더 이상은 지금 이대로는 안 된다고 간곡하게 만류하면 참 인간답게 살라고 외치고 있다. , 인류의 돌연변이 우리 무탄트들에게 참 삶을 가르쳐주는 호주 원주민의 세계로 여행을 떠나보자. 아무 것도 필요 없다. 무전여행을 떠나보자.

 

(무탄튼 메시지 / 말로 모건 지음, 류시화 옮김 / 정신세계사)

 

<책 읽은 시간>

: 2009. 6. 8. (월) 07:26 ()

: 2009. 6. 9. (화) 20:18 (사무실)

 

<책 읽은 계기>

어울 선생님 추천 도서였다. 틈을 보다가 이번에 읽게 되었다.

역시 참 좋은 책이다. 인류가 하루 빨리 이런 삶을 살아야지 싶다.

 

벌써 2년이 흘렀다. 2007년 봄부터 여름까지, 인류의 참 스승이라 할 수 있는 어울 선생님이 서울 학동에서 의사, 한의사, 대체의학자, 명상인 들을 모아 놓고 20차례 강의를 했다. 인간의 마음과 몸에 관해서 완벽한 지식을 전수해 주셨다. 많은 의료인들이 심하게 혼났다. 한마디 대꾸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완벽한 지식과 지혜를 이 세상에 내 놓았다.

 

대한민국에 그렇게 뛰어난 지성인이 있다는 것이 자랑스러웠다. 위대한 한민족의 정신을 온전히 담고 계셨다. 왜 우리 민족의 위대한 정신이 세계 정신사의 원류인지를 확실히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제 그 참 식이 알려지기만 하면 모든 불완전한 지식은 전폐해질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 인류는 완전한 건강 속에서 참으로 행복하게 살 수 있게 될 것이다. 어서 빨리 그 책을 세상에 내어놓고 싶다. 과연 얼마만한 인류가 그 정보를 제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어울 선생님은 강의 시간에 좋은 책들을 많이 소개해 주셨다. 역시 공부를 참 많이 하시는분이었다. 이 책은 인간의 참 삶이 무엇인가에 대해 알아 보라고 추천해 주신 것 같다. 실은 더러움도 우리가 잘못 만들어 놓은 하나의 관념이라는 것, 있는 그대로 자연스러운 것은 좋다는 것을 말씀하실 때 소개해 주셨다. 그런데 책을 읽어보니 정말 좋은 내용이 많이 있었다. 참다운 인간의 삶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건강의 원리에 대해서도 잘 설명이 되어 있다.

 

이 책, 무탄트 메시지는 호주 참사람 부족을 여행하고 돌아온 말로 모건이라는 자연 예방 의학을 전공한 의사가 썼다. 책을 읽고 난 후 검색을 해보니 여행이 사실인지 여부는 확실하지 않았다. 책이 픽션에 분류되어 있다고 하니 소설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작가 자신이 그런 위대한 정신세계로의 여행했을 것은 틀림이 없을 것이다. ^^

 

무탄트 메시지. 호주 참사랑 부족이 우리 <무탄트>들에게 전해주는 참 삶의 <메시지>란 뜻이다. 무탄트란 그들이 보는 돌이변이의 인간을 말하는 것이다. 호주에서 일하던 저자가 납치당하듯이 호주 참사랑 부족 속으로 끌려 들어가 그들의 삶을 살아보고 깨달은 메시지를 전해 주고 있다. 한마디로 호주 원주민, 참사랑 부족들의 삶은 참으로 인간다운 삶이었다. 그들은 모건을 통해 우리 인류에 하루 빨리 참 삶을 살라고 충고하고 있다.

 

참사람 부족은 자연에 순응해 자연과 함께 행복하게 느끼면 사는 삶을 영위한다. 그들 삶 속에 인위적이거나 가식적인 것은 없다. 그곳에 소유란 없으며 욕망이란 그저 행복하게 사는 최소한 것이며, 함께 더불어 사는 삶을 산다. 그들은 영적 성장을 인생의 목적으로 한다. 의식이 성장했을 때는 부족들에게 알려주고 축하를 받는다. 비록 그들의 삶의 양태는 미개하고 야만적으로 보이나, 정신세계는 드높아서 우리 무탄트들은 상상도 할 수 없다. 우리가 갖고 있는 통념은 산산히 부서진다. 나이, 지식 모든 것이 소용이 없다. 원주민들과 함께 하면서 주인공의 오감은 최대한 깨어난다. 온갖 자연의 소리를 듣고 냄새 맡고 느낄 수 있게 된다. 나이, 성장, 질병에 대한 그들의 관념을 알아보자.

 

 

-          아이가 태어나면 이름을 지어 주지만, 사람이 성장함에 따라 어려서 받은 이름은 어울리지 않게 된다는 것이 이들 원주민의 관점이었다. 나이를 먹으면 각자 자기에게 어울리는 이름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이를 먹어 감에 따라 그 사람이 가진 지혜와 창조성과 삶의 목표도 더 뚜렷해진다면 당연히 그는 일생 동안 여러 번에 걸쳐 이름을 바꾸게 될 것이다. (70p)

 

-          또 같은 세대에 태어난 같은 성별의 사람은 모두 한 가족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모두가 여러 명의 부모와 형제 자매를 갖게 된다고 말했다. (71p)

 

-          내가 생일 파티에 대해 이야기하자, 그들은 열심히 귀를 기울였다. 나는 케이크와 축하 노래, 생일 선물 등을 설명하고, 나이를 한 살 더 먹으면 케이크 꽂는 양초의 수도 하나 더 늘어난다고 이야기 했다. 그들이 물었다. 왜 그렇게 하죠? 축하란 무엇인가 특별한 일이 있을 때 하는 건데, 나이를 먹는 것이 무슨 특별한 일이라도 된다는 말인가요? 나이를 먹는 데는 아무 노력도 들지 않아요. 나이는 그냥 저절로 먹는 겁니다. 내가 물었다. 나이 먹는 걸 축하하지 않는다면, 당신들은 무엇을 축하하죠? 그러자 그들이 대답했다. 나아지는 걸 축하합니다. 작년보다 올해 더 훌륭하고 지혜로운 사람이 되었으면, 그걸 축하하는 겁니다. 하지만 그건 자기 자신만이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파티를 열어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자기 자신일뿐이지요.나는 그 말을 깊이 명심해 두어야겠다고 생각했다. (117p)

 

-          나는 의사가 환자를 치료한다는 주장에는 언제나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내 자신이 오래 전 척수성 소아마비에 걸려 병마와 싸울 때, 환자를 치료하는 근본적인 힘은 오직 한 가지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의사들은 몸에 침입한 병균을 죽이고, 주사를 놓고, 어긋난 뼈를 맞춰 줌으로써 환자를 도와줄 수는 있다. 하지만 그 때문에 환자의 몸이 치료되는 것은 아니다. 사실 나는 어느 나라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진정으로 환자를 치료한 의사는 단 한 명도 없다고 확신한다. 사람들 각자의 병을 고치는 치료사는 바로 자기 자신이다. 사람은 저마다 자신 속에 치료사를 갖고 있다. 의사들은 기껏해야 자신의 재능을 발견해 개발하고, 그래서 자신이 가장 잘하고 좋아하는 일을 함으로써 공동체에 봉사하는 사람들일 뿐이다. (135p)

 

-          …… 새로운 주제, 다시 말해 인간의 느낌과 감정이 그 사람의 건강과 행복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눴다. 진정으로 우리 존재에 새겨지는 것은 사물에 대한 우리의 감정이라고 그들은 믿고 있었다. 사물에 대해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우리 몸의 세포, 인격의 중심, 마음 속, 그리고 우리의 영원한 자아 속에 기록된다고 그들은 말했다. 어떤 종교는 굶주린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고 목마른 사람에게 물을 주어야 하는 필요성에 대해 말하지만, 참사람 부족은 중요한 것은 음식과 물 그 자체가 아니라고 여겼다. 또 그것이 누구에게 가는가도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우리에게 새겨지는 것은 우리가 열린 마음을 갖고 아낌없이 베풀 때 경험하는 감정이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삶의 순간 순간에 어떤 감정으로 살았는가를 기록한 성적표를 갖고 이승을 떠난다. 훌륭한 사람과 하찮은 사람을 구별해 주는 것은 우리의 영원한 부분을 채우고 있는, 눈으로는 볼 수 없는 무형의 감정이다. 사랑의 행동은 단지 감정과 의도를 실제로 표현하고 경험하는 수단일 뿐이다.  (141p)

 

-          그날 부러진 뼈를 제자리에 맞출 때, 두 명의 원주민 치료사는 환자의 육체에 스스로 완전하다는 생각을 보냈다. 그들은 손뿐만 아니라 머리와 마음을 부지런히 움직여 치료를 했다. 환자는 마음을 열고 건강해진다는 말을 받아들였으며, 당장에 완전하게 회복되리라는 믿음을 잃지 않았다. 나에게는 기적 같은 일을 원주민들이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감정적 원인에서 비롯된 질병으로 고통받고 희생을 당하고 있는가. 물론 그것은 무의식 차원에서 일어나는 현상이기 때문에 쉽게 알아차릴 수도 없다. (142p)

 

-          미국 의사들이 약의 효과를 믿는 것만큼 인간의 몸이 가진 치유 능력을 믿는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차츰 나는 의사와 환자의 유대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닫게 되었다. 의사 자신이 어떤 환자가 나을 수 없다고 믿는다면, 그 믿음만으로도 치료가 어려워질 수 있다. 내가 오래 전에 깨달은 사실이 있다. 의사가 환자에게 치료할 방법이 없다고 말할 때, 그것은 환자가 불치병에 걸렸다는 말이 아니라, 의사가 받은 교육과 경험 속에서는 치료에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없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치료법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다른 환자가 똑 같은 병을 이겨냈다면, 인간의 육체는 분명 치유 능력을 갖고 있는 것이다. (142p)

 

-          주술사와 여자 치료사와 긴 시간 토론하면서, 나는 건강과 질병에 대한 믿기 어려운 개념을 발견했다. 그들은 말했다. 치료는 시간과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질병과 치료는 둘 다 한 순간에 일어납니다. (142p)

 

-          142p: 참사람 부족은 아무나 병에 걸리는 것이 아니라고 믿고 있었다. 또한 인간의 육체는 보다 높은 차원의 영원한 의식이 개인의 의식과 소통할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수단이라고 믿고 있었다. 병에 걸려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되면, 우리는 주변을 둘러보고 우리가 치료해야 할 정말로 중요한 상처가 무엇인가를 깨닫게 된다. 상처 입은 관계, 우리의 신앙에 뚫린 구멍, 깊이 감춰진 두려움이라는 종양, 서서히 무너져 가는 창조주에 대한 믿음, 남을 용서하지 못하는 냉정한 마음 등이 우리가 진정으로 치료해야 할 상처들이다 (142p)

 

우리 인류는 그들의 기준에서 보면 모두 병든 환자이다. 몸이 건강하다고 해도 정신은 하나 같이 다 인간의 아름다운 본성을 잃어버린 돌연변이인 셈이다. 결국엔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돈을 버는 것을 삶의 유일한 목적으로 삼고 있는 우리가 얼마나 어리석게 보이겠는가.

 

얼마나 더 타락을 해야지 우리 인류가 반성을 하고 삶을 돌아보게 될까. 왜 말도 안 되는 사악한 사고에 속아 인류는 경제적 동물로 살아가고 있을까.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게 있기는 한가. 우리는 인간은 정신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보다 숭고한 사상을 마음에 두고 살아야만 한다. 우리는 결국 행복을 목적으로 두고 살아간다. 그런데 경제학이 주장하는 논리는 더 이상 진실이 아니다. 재화를 더 많이 소유하거나 제품을 더 많이 소비해도 행복이 증진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즉 물건을 더 많이 소비하는 것으로서 기분이 좋아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런데 왜 이 터무니 없는 논리에 매어 있어야만 하는가. 한번 치밀하게 생각해 보자. 그리고 더 늦기 전에 방향을 돌려보자. 참으로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자. 진실로 사랑하며, 더불어 함께 행복하게 사는 삶을 배우자.

 

그리고 그들은 생일을 축하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아지는 걸 축하했다. 작년보다 올해 더 훌륭하고 지혜로운 사람이 되었으면 그걸, 축하하는 것이다. (282p)

 

우리도 적어도 지적으로 성장하는 삶, 나아가 의식이 성장하는 그런 지혜로운 삶을 추구해야 하지 않을까. 그럴 때 진심으로 축하고, 격려를 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 이것이 학교 공부, 나아가 인생 공부의 목적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참 지성인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왜 사냐고 물으면, 참으로 행복하기 위해서 산다, 서슴없이 대답해야 하지 않을까?

 

참으로 행복한 삶을 위해, 의식의 성장이라는 진정한 배움의 길을 걷자!

 

 

2009. 7. 5.     19:09

 

 

인류여, 미몽에서 깨어나라고 간절하게 외치는

<>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