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노들은 영남 유권자의 잘못된 편견에 부응해 비호남을 자랑스럽게 내세운다. 아무리 봐도 개혁과 정의를 외치는 집단이 할만한 일은 아닌듯 싶다. 물론 1200만에 달하는 유권자 집단이 공유하는 정치사회적 편견을 바꾼다는게 어려운 일인건 맞다. 하지만 모순이 크면 클수록 거기에 더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거대한 집단적 악이나 편견이 존재한다면 그만큼 더 강하고 절실하게 투쟁하는 것이 당연한 보편윤리적 요청이지 않을까. 1200만의 집단적 편견(호남 증오)은 우리 사회를 질곡으로 빠트리는 거대한 사회적 병질이다. 그런데 악이 거대하므로 열심히 비판하고 투쟁하자는게 아니라 도리어 거악의 눈치를 보며 적극적으로 침묵할것을 강요하는 사람들이 있다. 완벽한 윤리의 도착이다.

이런 사람들이 60년대 미국에 살았다면 흑인 차별은 대다수의 백인 대중이 공유하는 편견이므로 괜히 맞서 싸우거나 지적하지 말자고 했을까? 나치 독일에서 반유태주의는 대부분의 독일인이 공유하는 생각이므로 괜히 들쑤시지 말고 조용히 수용하자고 했을까? 우스운것은 "대중은 큰 거짓말을 좋아한다" "100만명을 죽이면 영웅이다"는 히틀러식의 거악(巨惡) 용인론을 내세우는 이런 사람들이 사회의 불의와 싸우는데 열심인 진보나 개혁성향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자신의 이해관계와 관련된 "계급"의 영역에서는 정의를 내세우지만 자신과 관련 없는 "지역"의 부분에서는 보수 세력 못지 않은 강자 영합주의를 보이는 셈이다. 20세기 초 유럽의 노동 계급이 사회주의를 표방하면서도 인종 영역에서는 당시의 백인 우월주의를 답습해 반유태주의에 기울어진 것과 비슷한 양상이다.  

아무튼 영남 유권자가 집단적으로 잘못된 편견에 빠져 있다면 거기에 대한 올바른 대응은 비판과 교정뿐이다. 독재나 침략, 불의한 기득권에 대한 올바른 대응이 하나뿐인것 처럼 말이다. 론 영호남에 대한 이해관계가 없거나 비판할 용기가 없어 침묵하는 것도 괜찮다. 모든 사람에게 윤리의 문제에 관여해야 할 의무는 없으니까. 그러나 일단 윤리의 영역과 관계를 맺을때는 확실하게 방향을 설정해야 한다. 

지금처럼 영남 유권자의 비위를 맞추는 방식으로 지역문제 해결은 요원하다. 유권자 집단의 편견에 맞추다 보면 그 편견이 정당화될 위험이 생긴다. 악에 대한 타협은 악에 대한 용인이다. 나는 국참당의 비호남론이 영남 유권자의 반호남 편견을 정당화 해주고 공고히 하는 또다른 지역주의적, 지역차별적 기제로 작동할것이 염려된다. 또한 애초 지역주의의 출발점이 영남 권력 집단에 의한 호남 소외, 탄압, 차별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지역주의 타파를 외치는 친노 진영에서 영남 유권자의 반호남 편견에 부응하는 것은 심각한 모순이 아닐수 없다. 일종의 동일률의 오류를 범하는 셈이다. 
 
그러므로 국참당에 조언한다. 영남 유권자 집단의 잘못된 편견이 두렵다면 굳이 투쟁하고 지적하라고 강요하지 않겠다. 하지만 그 편견을 용인해주는 "비호남론" 같은걸 적극적으로 내세우지 마라. 그냥 조용하게 호남색 없이 정치하면 되지 않는가? 투쟁과 비판이 싫다면 그냥 침묵이나 하란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