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을 지지했다는 이유로 방송섭외가 취소됐다" 이것은 김여진이 직접 한 말이다.  이것에 대해서 나는 본문(http://theacro.com/zbxe/free/721087)에서는 부연하지 못했지만 댓글에서 부연했었다.  "크로스체킹이 되지 않은 것 유감이다. 좀 더 명확하게 밝혔으면 좋겠다"고.  "그러나 약자인 작가의 입장도 있기 때문에 김여진의 행동도 이해할만도 하다"고...
 
내가 문제 삼는 것은 '특정정치인 지지자는 방송출연 금지'라는 말이 김여진의 입에서 나온 그 사회적구조를 문제삼는 것이다.  그 말은 굉장히 심각한 말이다.  그리고 그 문제에 관심가지고 이슈파이팅을 하다보면 김여진이 진짜로 말했는지 거짓으로 조작했는지 다 나온다. 그래서 확정되지 않은 조건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확정되지 않은 조건을 현실화하고 이슈파이팅을 하는 데는 물론 무리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김여진이 진짜로 말했는지 거짓으로 조작했는지 불분명한 상황임에 불구하고 내가 이슈를 제기하는 이유는 그 전에 이런류의 사례들이 많았고 작년에 MBC내부 방송심의규정에서 이런류의 표현의 자유를 제한한 것이 있기 때문이다. 이번 기회에 확실히 짚고 가야 한다.
 
나는 이번 사건을 특정진영에 대한 정치적 불이익으로 보는 것을 저어한다. 그렇게 보면 이슈가 물타기로 희석될 수도 있다. 특정진영에 대한 정치적 불이익으로 본다면 반대진영의 소셜테이너도 활동을 금지하면 문제가 해결되는데, 그 역시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약으로서 그런 것들이 올바른, 정당한 제약인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원칙으로 돌아가 기본권 제한의 적합성 필요성 상당성을 고민해야 한다. 
 
폴리테이너의 명시적이고 일괄적인 활동제약을 규정한 사례가 세계적으로 어떤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없다. 학문적으로, 이 이슈는 최근의 이슈다. 폴리테이너라는 용어 자체가 세상에 나온 게 얼마 되지 않았다. 미국의 정치학자 데이비드 슐츠가 1999년에 사용하면서 나온 게 세계최초다.  슐츠가 말한 폴리테이너는 좁은의미의 폴리테이너 였다.  즉 엔터테이너 출신의 직업적 정치인을 폴리테이너라고 했다.  정치학적 관점에서 이야기되다보니 규범적인 측면의 고찰은 아무래도 부족하다.
 
우리 나라 국민들은 투표는 대놓고 독려하지만 정치토론을 꺼려하는 분위기가 있다. 그러나 투표만이 아니라 시민들이 일상의 공간에서 정치적 의견을 표하는 것은 시민의 의무에 가깝다. 투표인증샷을 날려가며 투표 행위를 권장하듯이 일상의 공간에서의 정치적 토론도 권장되어야 하고 정치 토론을 해야 한다. 평소 정치 토론을 제대로 하지 않는데 어떻게 정치를 제대로 알것이며 정치인에게 정치적 시그널을 줄 것인가?

사실 민주공화국 시민의 교육은 이러한 정치 토론을 위한 비판적 사고능력을 기르고 정치 토론을 장려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간 우리 나라 교육은 이러한 공화국 시민의 소양을 기르는 정치 토론 교육을 하지 못했다. 공중파방송의 TV토론은 지켜보는 것이 시간낭비일 정도로 엉터리 토론이 대부분이다.  토론의 원칙이나 룰, 톨레란쯔의 원리도 모르는 경우도 허다해서 서로의 감정을 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논거에 대한 공격이 아니라 인신에 대한 공격을 하는 경우도 많고 논거에 대한 공격을 인신에 대한 공격으로 오해하는 경우도 많다. 아예 논거가 없는 주장을 하는 경우도 많다.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 어떤 글을 써야되는지 개념이 없는 것이다. 깝깝한 상황인데, 그 중에 가장 깝깝한 것은  우리 나라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인식이 너무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번 김여진씨 사건을 보면서 또 한 번 확인했다.   
 
민주주의체제는 사상 또는 의견의 자유로운 형성 및 그 전달을 바탕으로하는 표현의 자유가 없이는 정상적인 기능이 발휘될 수 없기 때문에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기초를 이루는 가장 핵심적인 정신적 자유권이다.  공공의 관심사에 관한 의사표현은 자기표현 이상의 가치를 가진다.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는 일차적 목적은 정부의 일이나 선거에 관한 자유로운 토론과 주장을 보호하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특히 선거운동으로서 행해지는 정치적 표현의 자유는 허위주장이 아닌 한, 미국 수정 헌법 제 1조가 정한 표현의 자유 중에서 가장 강력하게 보호되는 내용이다.  따라서 이번에 김여진씨 사건의 경우 매우 심각한 일이다. 선거에 관해서 정치적 표현의 자유가 사실상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 것이다. 이러려면 헌법을 개정하든가 해야 한다 "대한민국에서 표현의 자유는 특정한 경우에만 허용된다"라고. 
 
폴리테이너 문제의 본질은 '권한과 의무의 불균형', 그리고 '책임이행의 곤란함'이다.  폴리테이너의 인기는 영향력으로 직결된다. 그런데 영향력이란 것이 정치적 활동으로 구축돼 온 것이 아니다. 그의 정치적 이력, 성과, 검증된 영향력에 걸맞지 않는 과도한 신임과 영향력이 유권자에 어필함으로써 정치 커뮤니케이션이 교란되는 결과가 나오기 쉽상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모범적인 폴리테이너가 없는 것은 아니다.
 
연예인이 공인인가 아닌가에 대해 많은 의견이 있는데, 형식논리상으로는 연예인은 공인이 아니다. 그러나 밀스의 '파워엘리트'에서 언급된 슈퍼파워 연예인은 사실상 '법원장'과 다를 바 없는 공인이다. 슈퍼파워 연예인이 되는 기준이 애매하기는 하지만 그런 슈퍼파워 연예인은 폴리테이너로 활동하면 안되고 정치적 발언을 하려면 정당가입하고 정치인으로 정식 입문해서 정치적 표현행위를 해야한다. 
 
슈퍼파워 연예인의 기준이나 수퍼파워 연예인이 직업적정치인이 아닌 폴리테이너로서 정치에 개입할 경우, 기타 일반 연예인이 직업정치인이 아닌 폴리테이너로서 정치에 개입할 경우 등등에 대한 명시적 규범이나 기준은 없다. 현재로서는 구체적 상황에 맞춰서 융통성 있게, 충돌되는 가치를 조정하는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가지 분명한 원칙은 표현의 자유라는 기본권 제한에 있어서의 '과잉금지의 원칙', 즉 적합성 필요성 상당성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정치 현실을 되돌아보면 폴리테이너(폴리페서포함)들은 권한은 많은데 의무를 제대로 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또 조국이나 공지영처럼 불법행위를 하거나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등 초법적 행위를 하는 경우도 있다. 공지영과 같은 자유업인 작가는 어쩔 수 없다하더라도,  조국이나 진중권 처럼 대중에 큰 영향력을 미치는 폴리페서들은 사실 교수직 사퇴를 해야 정상이다. 현재로서는 그들의 양심에 맡길 뿐이다.  
 
그 외에 폴리테이너의 가장 큰 문제는 그들이 책임을 지도록 하는 시스템을 사회적으로 마련하기가 곤란하다는 것이다. 영향력은 있돼 책임은 없는 연예인들이 좀 더 신중했으면 좋겠지만 그것은 개인의 자유의 영역이다. 또, 거시적으로 보면 폴리테이너들이 책임을 지지 않는 것도 아니다. 영향력이 큰 만큼 정치적인 발언을 하면 그에 동의하지 않는 지지자들을 안티팬으로 만들게 되며 자신의 연예인이나 인기인으로서의 가치가 줄어든다. 그러므로 이는 자유롭게 푸는 것이 바람직하고 규제는 바람직하지 않다. 
 
폴리테이너에 대한 규범은 아직 확립된 게 없다. 대부분  방송사와 폴리테이너 양자가 모두 적절한  수준에서 자제하고 중용을 찾아야한다는 쪽이 다수의 견해다. (http://bit.ly/Uv4Dgr) 그런데 이번 김여진씨 사건의 경우처럼 대놓고 "문재인 지지자는 방송출연 안된다" 이런 식으로 명시적으로, 일괄적으로 제한하는 것은 권위주의 국가를 제외하고선 세계에 유례를 찾을 수가 없다. 적필상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것이다. 김여진씨 사건은 더욱 더 이슈화 돼야 하고 시민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의 수준을 높이는 계기가 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