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박정희 대통령을 열렬히 지지하셨다. 내 어린 시절 기억에 아버지께서 박 대통령의 연설을 카세트 테이프에 녹음해서 테이프가 늘어지도록 반복해서 듣고 계셨던 모습이 떠오른다. 어머니 또한 박 대통령을 열렬히 지지하셨다. 어머니는 내게 박정희·육영수 전기를 사 주시며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하셨다. 

부모님이 그렇게 박정희를 열렬히 지지하신 이유는 단순하다. 박정희 대통령이 가난과 굶주림에서 당신들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 국민들을 구해주었다고 믿으셨기 때문이다. 

가난으로 굶주리셨던 아버지와 어머니의 과거 경험담은 지금 젊은 사람들은 믿기가 어려울 정도다. 부모님의 참담한 그 경험담을 이 자리에서 모두 말하는 것은 너무 민망하고, 허구헌 날을 간장을 푼 맹물로 배를 채우셨다고 하는데 도대체 왜 그리 가난하게 살았을까 이해가 안될 정도다. 

나 역시 어린시절을 가난 속에서 살았다. 부모님께서는 당신이 고생하셨을 때 보다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시는데 나 역시 굶을 때가 많았다. 

내가 태어나고 30여 년 동안 자라온 곳은 대구 최악의 빈민가 중 하나였던 신천동 해방촌과 돼지골목 동네다. 지금은 모두 재개발 돼서 옛모습은 찾아볼 수 없지만 내가 살 때만 해도 그곳은 대구 3대 빈민가 중의 하나였다.

초등학교 때까지는 허구한 날 밥을 굶었다. 특히 겨울만 되면 노가다 막노동을 하시는 아버지께서 일자리가 없으셔서 밥굶기를 밥먹듯이 했다. 사람이 춥고 굶주렸던 기억은 잘 잊혀지지 않는다. 지금도 그 때 그 굶주렸던 기억 때문인지 나는 겨울을 아주 싫어한다. 그 기억을 머리 뿐만 아니라 몸도 기억하는지 늘 겨울만 되면 괜히 몸이 아파온다.

하루 종일 한끼도 못먹을 때가 많았다. 형편이 그나마 나았던 고모께서 가끔씩 우리 집에 오셔서는 보리쌀을 조금 사서 찬장 안에 두고 가셨던 기억이 난다. 나는 학교에서 돌아와서 동네를 돌아다니며 고철을 주워서 팔기도 했지만 밥을 못먹어 힘이 없어 퀭한 눈으로 조용히 지냈었다. 영양실조로 입가에는 버짐이 피고 머리와 옷에는 이가 들끓고 있었다. 

보리밥 조차도 없어서 감자를 구워먹거나 무우 껍질을 먹곤 했고 시장 바닥에서 주워온 씨레기와 마른 김치 조각으로 죽을 해먹곤 했다. 그것 조차도 못 먹고, 하루 종일 아무 것도 먹지 못해서 배가 고파서 잠을 자지 못해 칭얼대는 동생들에게 "아버지가 먹을 것 가지고 오실 거"라고 말씀하시며 자장가를 불러가며 동생들을 잠재우시던 어머니는 많이 우셨다. 

요즘도 보면 언론에서 가끔씩 쪽방촌 사람들의 비참한 현실을 보도하고 있는데, 내 기억엔 내 어린시절 살았던 집이 지금 뉴스로 보도되는 쪽방촌 사람들의 집보다 훨씬 더 비참한 환경이었다. 

부모님과 동생 셋 이렇게 여섯식구가 방 한칸짜리 삯월세에서 살았는데 누워 자면 공간이 없어서 서로의 어깨를 부비며 가로로 눕고 세로로 누워서 잘 정도로 방이 좁았다. 화장실이 없어서 주인집 화장실을 썼는데 밤이 되면 야박한 주인집은 대문을 걸어 잠그고 열어주지 않아서 종이 위에 대변을 봐야 했다.

내가 살아온 것도 이토록 비참했는데, 부모님께서는 그것도 많이 나아진 것이고 부모님 사실 때는 훨씬 더 어려웠다고 하시니 부모님의 삶을 살지 않았던 나로서는 도무지 그 가난의 정도가 이해가 안되지만 부모님이 하시는 말씀이니 믿을 수 밖에... 아무튼 내 기억과 경험에도 박정희 정권에서 부모님께서는 조금씩 굶주림을 면해갔던 것은 사실이었던 것 같다.

사람이 굶주렸던 기억은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고 했는데, 그렇게 굶주렸던 사람들이 그 기억을 쉽게 잊지 못한다. 그렇게 굶주렸을 때 박정희가 등장했다. 저마다 가난의 정도는 달랐겠지만 이전보다 나아진 형편이라고 느꼈던지 많은 사람들은 절대빈곤의 나라를 산업화 국가로 이끈 경제 영웅으로 박정희를 높이 평가했다.

박정희가 한국의 경제를 발전시켰고 산업화를 이룩했다고 하는 평가에 대해서는 이론(異論)들이 있다. 박정희가 한국의 경제를 발전시켰는지 아니면 퇴보(표면적으로 성장했지만 정경유착과 대기업부조리 등 구조적으로는 퇴보)시켰는지, 경제가 퇴보했다면 그 퇴보로 인한 한계적인 비용은 성장의 한계적인 효용을 밑도는지에 대해서 논증을 하기에는 나의 경제학지식이 너무 부족해서 그 논증을 할 수가 없고... 부득이 권위호소의 오류를 저지르는 감이 있지만, 경제를 발전시켰다는 공을 인정하는 경제학자들이 대부분이라는 사실을 들어 그 공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박정희를 일방적으로 비판하는 많은 사람들 가운데는 한국 경제가 발전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박정희의 공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그 논리는 박정희가 경제를 발전시킨 것이 아니고 국민들이 경제를 발전시킨 것이며 박정희가 없었더라도 민주당 정부가 경제를 발전시켰을 것이 틀림없다는 것이다. 박정희 때문에 정경유착과 대기업 부조리 등 많은 해악이 나타나 오히려 경제에 역효과가 났다는 것이다.

그 논리의 주장을 굶주렸던 사람들이 들으면 어떤 느낌을 가질까? 비유를 하자면 굶주렸던 사람들은 물에 빠졌던 사람이다. 그 곁에 있던 박정희가 물에 뛰어들어 익사할 운명이었던 사람들을 구해냈다. 그랬더니 구해 준 박정희를 보고 "당신이 아니었어도 옆에 있던 민주당 정치인이 사람을 구해줬다"며 구해준 사람을 외면하는 꼴이다. 

"당신이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해주는 바람에 옆에 있던 민주당 정치인이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해주지를 못했다. 구조하는 과정에서 다리를 부러뜨려 불구가 됐는데 이제는 죽는 것보다 못한 삶이 됐다. 왜 네가 구해줬니?"하면서 구해준 사람을 원망하는 꼴이다.

박정희의 경제 발전의 공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딱 그 꼴이다. 그러나 물에 빠졌던 사람들의 대부분의 정서는 그런 비판의 논리를 납득하기 어렵다. 죽을 운명이었던 자신을 살려줬으니 일단은 고마운 것이다. 고마워 해야 정상이다. 설령 국가 거시경제의 구조적인 측면에서 한계비용이 한계효용을 초과했다는 것이 진실이라고 밝혀져도 구조를 받았던 선량한 대중들이 그걸 이해할 수도 없다. 

우리 사회에는 고전을 가까이하지 못하고 TV드라마나 통속소설만 줄기차게 보아온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지 인물을 평면적으로 이해하려는 버릇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착한 사람은 무조건 모두 착하고 나쁜 사람은 무조건 나쁜 모두가 나쁘다는 식으로 인물을 바라본다. 통속적인 연속극 드라마의 인물들은 이렇게 평면적인 인간들이 흔히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근대 이후의 고전에서는 주인공들이 대체로 입체적인 인물들이다. 선 악이 공존하고 긍정적인 부분과 부정적인 부분이 공존하는 복잡한 인물이다.

박정희는 이를테면 이와 같은 입체적 인물일텐데, 박정희를 비판하는 특정 진영의 사람들은 굳이 무리를 해가며 박정희를 일방적으로 전체로 부정적으로 평가한다. 물에 빠졌던 사람들 구해준 것에 대해서 "너 때문에 다른 사람이 구해줄 기회가 사라졌다"면서 저주하는 꼴이다. 그래봤자 상대에게 는 오기밖에 생길 것이 없다. '빡시게 우화(http://bit.ly/12vbWLm)'의 주인공 '빡시게' 처럼 뒤통수나 얻어맞지 않고 다니면 다행이다. 

물론 박정희를 일방적으로 옹호하는 사람들 가운데 역시 평면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 박정희가 모두 옳다는 것이다. 박정희가 경제발전을 이루는 동안 희생됐던 사람들을 보지 않는다. 그런데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런 사람들을 설득하는 논리가 "박정희가 아니었어도 다른 사람이 구해줬다"라는 현실 가정적 논리는 입증될 수도 없고 설령 그것이 진실이라 할지라도 죽을 뻔한 운명에 있었던 사람들을 설득하기에는 감정적으로 너무나 먼 거리에 있다는 것이다.

이번 대선에서 나의 부모님은 모두 문재인에게 투표하셨다. 경상도 토박이 이신 부모님은 원래 전형적인 TK 사람들과 같이 민정 민자 자민련 신한국 등 여당쪽을 지지해오셨다. 그런데 나로 인해 감화가 되셨다. 나는 투표권을 가진 이래 지금까지 단 한번도 지금의 새누리쪽에 투표한 적이 없다. 늘 민주당 혹은 무소속 쪽에 투표를 해왔다. 나는 학창시절 부모님에게 늘 반항하며 화가가 되겠다면서 공부와 담쌓고 살면서 부모님을 속썩였지만 부모님께 이 아들은 집안의 희망이었고 고등교육을 받은 아들이 뭐라하면 무조건 믿어주셨다.

어른이 아이에게 밥상 앞에 놓고 밥상머리 교육을 하듯 나는 틈만나면 민주당은 서민을 위하는 정당이고 민정 민자당은 부자를 위하는 정당이라고 툭툭 던졌다. 그 결과 어머니는 김대중 후보 때부터 민주당 지지자로 돌아서셨고 아버지는 노무현 후보 때부터 민주당 지지자로 돌아서셨다.

이번 대선에서 어머니는 "문재인에게 투표하겠다"면서 너도 "문재인 찍어라"고 계속 말씀하셨는데, 나는 번번히 "문재인은 못찍어주겠다. 결정을 못하겠다"라고 답해드렸다. 그리고 어머니께 "민주당이 무조건 옳고 새누리당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라고 말씀드리고 "공약을 잘 살펴보고 투표하시라"고 말씀드렸다. 

부모님께 "부모님은 원래 열렬한 박정희 지지자 아니셨느냐"면서 "왜 박정희의 딸인 박근혜를 안찍고 문재인을 찍으려고 하시냐"고 여쭸더니 부모님은 "박정희 지지자인 것은 맞지만 문재인 찍으면 노령연금이 두배로 늘어나게 되더라. 그러니 너도 문재인 찍어라"라고 하셨다. 그 말씀을 듣고 나는 비로소 안심하고 "그러면 문재인 찍으시면 되겠네요. 저는 문재인은 대통령감이 아니라고 보기 때문에 누구를 찍을지 고민 좀 더 해보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정치인을 팬덤으로 숭배하지 않고 '씹던 껌' 처럼 취급할 때 그 나라의 정치가 발전하게 되는데, 많이 배우지 못하신 부모님은 공약까지 꼼꼼히 따져보시면서 박근혜를 '씹던 껌' 처럼 버리셨다. 적어도 팬덤에 빠지고 이미지에 취해서 막무가내 투표하는, 많이 배운 20~30대보다는 정치적으로 훨씬 성숙하신 것이다. 

50~60대 어르신들을 향해 "독재자의 딸에게 투표해서는 안된다"면서 "뇌가 썩었다"느니 "독재자의 딸에게 어떻게 표를 줄 수 있느냐 민주시민이 될 자격이 없다. 노인들은 대중교통 무임혜택도 없애야 된다" "늙으면 빨리 (돌아)가셔야 한다"느니 하면서 막상 눈앞에서는 입에 담지도 못할 극언을 퍼붓는데 어르신들이 투표를 하지 않을 것도 아니고, 도대체 생각이나 예의가 어디갔는지 궁금하다. 

물에 빠졌었던 어르신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경상도 사람들, 그리고 어르신들은 효제충신예의염치를 숭상하고 있잖느냐"면서 "박정희 정권 때 희생됐던 사람들, 지역차별로 희생됐던 사람들을 생각하는 염치를 찾아야한다"면서 자기 논리 정당성을 가지고 설득을 하고 아들이 어머니를 감화시키듯 설득을해야 하는데, 문재인 지지자들은 "박정희 아니었어도 잘 살 수 있었다"면서 "머리가 썩은게 아니냐"고 하면서 어르신들을 타박하며 설득하려고 하는데 제3자적 시각에서 보기엔 머리가 썩은 쪽은 오히려 타박하는 쪽이다.

박정희라는 인물을 입체적으로 보는 게 그렇게 어렵나? 아무튼... 예의없는 젊은이들과 염치없는 어르신들이 많아서 나라가 참 시끄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