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사랑에 대한 소고

주제: 사랑의 의미, 의식의 확장, 참사랑은 무엇인가.

소재: 여성의 사랑, 임신과 출산, 자식에 대한 사랑

 

 

사랑, 그 영원한 미지의 것에 대하여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나서 어떻게 사랑을 하게 되는가. 사랑은 천부적으로 주어지는 능력인가. 아니면 배워야만 사랑할 수 있는 것인가. 즉 자라나면서 사랑을 충분하게 배워야만 사랑을 할 능력을 갖게 되는 것일까. 어찌 보면 여성의 사랑은 천부적인 것 같고, 남성의 사랑은 학습되어야만 하는 것 같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모의 사랑을 충분하게 받고 자랐느냐 그렇지 못했느냐가 인생의 행복을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려서 사랑을 받지 못한 사람은 내적으로는 물론 외적으로도 문제 있는 인생을 살게 된다고 한다. 탈선을 하거나 비뚤어진 성품을 갖고 줄곧 많은 문제를 일으키면 산다고 한다. 결국, 이기적인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평생 정신적인 문제를 안고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충분하게 사랑받지 못하고 자란 사람은 제대로 사랑할 줄 모르고 살아간다고 볼 수 있다.

 

반면 충분하게 사랑을 받고 자란 사람은 사랑을 잘 나누고 베풀면서 살아갈 수 있다. 인간성을 최대한 발현하면서 사람들과 잘 어울리면서 행복한 인생을 영위하게 된다. 이 모든 것이 사랑을 하는 능력을 배우게 된 결과가 아닐까 싶다. 우리가 육아를 어떻게 해야 되는가에 대해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 사랑을 배우는가

 

남녀가 사랑에 빠질 때 우리는 아름다운 감정을 경험한다. 자신을 잊고 타인을 온전히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 갓 태어난 아기가 자기 정체성 즉 자아 관념을 갖게 되면서 우리는 세상을 나와 너로 구분하게 된다. 이 구분을 통해 나 이외의 모든 것은 배타적인 것이 된다. 우리는 비로소 독립된 개체로 존재하게 된다. 우리는 자신을 사랑하는 본능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이기심(利己心)은 생존의 발로이자, 너무나 당연한 본능인 것이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으면 자신의 생명을 지킬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나를 넘어서 타인을 사랑하는 것은 불가능한 듯 보인다.

하지만 남녀간의 사랑을 통하여 우리는 자신을 넘어 배타적인 타인에게 자신의 사랑을 주는 것을 배운다. 이 때 너와 나의 구분이 없어지고 하나가 된다. 주객이 하나가 되는 것이다. 상대성이 무너지고 절대의 세계에 들어가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죽을 수도 있다. 이기심은 사라지고 아름다운 이타심(利他心)을 갖게 된다. 한마디로 의식이 성장한 것이다.

 

깊이 생각해보면, 이 홍수처럼 몰아치는 남녀간의 감정적인 사랑은 자기애(自己愛)에 지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리워하던 반쪽을 만난 것이다. 자기에게 부족한 것을 채워줄 수 있는 상대를 만나는 것이다. 혹은 자기와 똑 같은 것을 갖고 있는 것에 끌리는 것이다. 자신의 결핍을 채워 줄 혹은 자신의 것을 더욱 충만하게 해 줄, 자신이 그려놓은 자신의 이미지를 사랑하는 것이다. 이것은 어쩌면 자신 안에 있는 사랑(능력)을 확인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조금 더 깊은 의미를 찾아보면, 자신의 존재가 사랑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사랑의 전문가들은 먼저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면 타인을 사랑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러면서 사랑의 첫걸음으로 자기를 사랑하라고 한다. 그렇지만 세상에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것은 본능이며,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라면서 충분히 사랑을 받아보지 못했기 때문에 자신이 가치없는 존재라고 잘못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어떻게 자신의 존재를 인정할 수 있을까.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럴 때조차 남녀간의 사랑을 통해 아름다운 사랑을 받아봄으로써 사랑의 문을 열 수가 있는 것이다. 남녀간의 아름다운 사랑은 이렇게 자신의 가치를 확인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인 것이다. 조금 억울하겠지만 성장 과정에서 제대로 사랑받지 못했더라도, 이렇게 해서 사랑(의 능력)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열렬하게 사랑에 빠져 보아야 한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사랑은 영원하지 않다. 사랑은 곧 식어버리고 만다. 연구에 의하면 열정적인 사랑도 2~3년 밖에 지속되지 않는다고 한다. 이제 어쩔 것인가. 사랑이 식고 나면 우리는 다시 이기적인 존재가 되고 만다. 하지만 한번 사랑의 맛을 경험해보았겠다, 벌이 꿀을 찾듯 우리는 이제 사랑의 대상을 찾아 떠나지 않을 수 없다. 사랑의 사냥꾼이 되는 것이다. 만일 결혼이라는 고정된 관계 속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우리는 영원히 사랑을 찾아 헤매야만 할 것이다. 어떻게 이 사랑의 놀음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사랑이 없는 이기적인 존재는 불행하다. 언제나 자신만을 생각하면서 불만을 갖게 되고, 세상과 분리된 의식을 갖고 있기 때문에 늘 불안하다. 여자라면 음식, 놀이, 수다, 자수 등 다른 외부적인 활동에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불행하다. 남자들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내 밖에서 활동하지 않으면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다. 술과 도박, 혹은 마약에 빠지는 이유이다. 이것은 불안한 존재가 이 세상을 살아내기 위한 탈출구인 것이다. 하지만 여성에게는 좋은 방법이 있다.   

 

 

임신과 출산, 그것은 또다른 자기의 창조이다

 

영원한 사랑으로 나아가는 길은 감정적인 사랑에 종지부를 찍는 방법 밖에 달리 없다. 남자와의 사랑을 통하여 임신을 하면서 이제 여성은 창조의 신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는 것이다. 사랑은 속성은 아름답다. 무조건적인 베품이다. 또 완전한 수용이다. 어떤 것이든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이다. 임신은 생명의 씨앗을 온전히 받아들여 새로운 생명을 창조하는 신의 행위이다. 사실 10개월 간의 불편한 임신 기간을 견디는 것은, 신으로 거듭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감사, 수용, 인내, 관용, 베품의 신과 마음을 배우는 기회이다. 남자는 신이 되는 이런 어려운 과정을 거칠 수 없기 때문에 불완전한 존재로 남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영원히 변모하지 못한 채 어린애도 남을 수도 있다. 그것을 해결하는 방법이 수행이고 수련이다.  

 

여성은 임신과 출산을 통해서 나와는 다른 존재를 창조한다. 하지만 자식은 탯줄은 끊어졌지만 영원한 제2의 나 혹은 또다른 나와 같은 존재이다. 비록 분리된 배타적인 존재이지만 자기와 다름 없는 존재이다. 그 엄연히 다른 존재에 대한 사랑은 이타적인 사랑인 것 같지만 실은 이기적인 사랑과 다르지 않다. 여전히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다. 또다른 자기이기 때문에 영원히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 아무런 조건없이 줄 수 있는 것이다. 심지어 실제 목숨까지 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자식에 대해서 끝없이 헌신한다. 우리는 이렇게 영원하고, 무조건적이고, 헌신적인 사랑을 진정한 사랑이라고 한다. 사랑의 이상향이리고 할 수 있다. 이런 사랑을 경험한 사람은 알 것이다.

 

어머니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나와는 다른, 분명히 남을 사랑하는 것이다. 자식은 육체적으로 탯줄이 끊어졌기 때문에 완전한 타인이다. 이렇게 완전히 분리된 타인을 사랑하는 이타적인 사랑이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한번 깊이 생각해 볼 점이 있다. 왜 이런 이타적인 사랑이 필요할까. 이기적인 사랑을 하면서 살아도 그만 아닌가. 그렇지 않다. 우리 인간이 이 세상에서 어울려 살려면 이타적인 사랑을 해야만 한다. 그래야 함께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인간이 이기적일 때 언제나 다툼과 투쟁과 분열만이 자리했다. 결코 한 울타리에서 공존할 수가 없다. 그래서 한 사회에, 같은 국가에, 하나의 지구라는 울타리에서 공존해야 하기 때문에 이타적인 사랑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인간의 사랑이 이타적인 사랑으로 승화가 되어야만 하고, 인류는 이런 사랑을 배워야만 하는 것이다. 이것은 어쩌면 신이 내준 시험문제이다. 우리 인류는 이 하나의 세상에서 서로 사랑하면 공존하는가, 미워하면서 공멸하는가 하는 시험대에 올라있는 것이다.

 

 

여성은 사랑의 신이 되어야 한다  

 

어머니의 자식 사랑은 한계가 있다. 비록 육체적으로는 분리가 되어 있지만 아직 정신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정신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어머니는 아들을 자기와 동일시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식이라는 타인을 조건없이 사랑하는, 이타적인 사랑처럼 보이지만 아직 완전히 이타적인 사랑은 아니다. 여전히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다. 즉 자기애에 머물러 있다. 어머니가 자식과의 연결된 <정신적 탯줄>을 끊어내야만 완전히 이타적인 사랑으로 승화되는 것이다. 소유나 자기 동일시가 아닌, 완전히 분리된 타인을 온전히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완전히 분리된 타인을 사랑할 때 비로소 여성은 사랑의 신으로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즉 참으로 완전한, 진정한 사랑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정신적인 탯줄을 끊어내는 어머니들이 있을까? 아마도 거의 없을 것이다. 자식이 아닌 완전히 독립된 별개의 인간으로 사랑하지 못하고 품에 안고 산다. 그래서 자식을 평생 품 안에 자식이라고 하는 것이다. 80이 넘은 어머니가 60이 된 자식 걱정을 하면서 산다고 한다. 그것은 아직도 육체적인, 이기적인 사랑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어떤 세상이 될까. 세상의 모든 ()모들이 제 자식 걱정만 하고, 제 자식만 잘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런 세상이 어떻게 평화로울 수 있으며, 이런 세상에서 어떻게 서로 사랑하면서 조화롭게 살 수 있겠는가. 비극이다. 아름다운 사랑을 할 기회를 가졌으되, 완전한 사랑을 배울 수 있는 여건임에도 중도에서 멈춘 것이다. 사랑을 배우다 만 것이다.  

 

제 자식이 사랑스러우면 남의 자식도 사랑스러운 법이다. 자기 자식을 사랑하듯 남의 자식을 온 마음으로 사랑해야만 한다. 그것이 진정한 사랑, 이타적인 사랑인 것이다. 조금만 깊이 생각해보라. 내 자식이 행복하게 잘 살려면, 잘 자란 사랑할 줄 아는 남의 자식을 만나야만 가능하다. 그들이 서로 진정 사랑해야만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다. 그런데 제 자식 잘되기만을 바라는 부모 밑에서 이기적으로 자란 아이들이 남을 만나 어떻게 이타적인 사랑을 하면서 살 수가 있겠는가. 우리는 아직도 이타적인 사랑으로 넘어가지 못한 것이다. 내 자식뿐만 아니라 남의 자식도 온전하게 사랑할 수 있는 어머니가 되어야만 이 땅에 평화와 사랑이 충만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해야 여성은 사랑의 화신이 아니라, 사랑의 신이 될 수 있다.

 

남자들은 사랑이 충만한 가정에서 사랑을 받으면서 잘 자라야만 한다. 그래야 겨우 이타적인 사랑을 조금이나마 맛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참 사랑에 충만한 여성을 만났을 때, 진정한 사랑을 배워나갈 수 있을 것이다. 부모가 욕심으로 키운 자식은 사랑할 줄 모른다. 그래서 평생 제대로 사랑하지 못하고 사랑에 목말라 하면서 고통스럽게 사는 것이다. 사랑을 할 줄 모르게 키운 공도 짐승처럼 부모를 버리게 되는 것이다. 부모에게서 사랑을 배우지 못했는데 어떻게 사랑으로 부모를 모시고 공경할 수 있을까. 당연한 귀결이 아닌가.

 

여성이 사랑을 하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은 본능을 저버리는 행위이다. 스스로 마른 나무 가지가 되겠다는 결심이다. 인간이 본래 사랑의 존재이기 때문에 사랑하면서 살아야 되는 것인데, 목석으로 살아가겠다니 참으로 어리석은 결정이다. 그것은 수천억이나 되는 돈을 자기 금고에 넣어두고, 그것을 잊고 돈을 벌어야 먹고 산다며 하루하루 폐지를 주우면서 몇푼씩 버는 비참한 삶을 영위하는 것과 같다. 비록 한 두번 사랑에 실패하여 아프더라도 사랑의 문을 활짝 열어 놓고 살아야 한다. 그래야 혹 재수 좋게 더 나은 사랑을 이런 사랑은 아무리 찾아도 만나지 못할 수도 있으나 - 만날 수도 있고, 자기 사랑을 발견할 기회를 가질 수도 있다. 실은 실패한 사랑을 진정한 사랑으로 나아가는 디딤돌로 삼아야 한다.

 

위대한 여성들이여, 남자들을 만나 연애를 하라. 그리하여 사랑을 마음껏 드러내라. 그것은 자기 자신이 사랑의 존재라는 것을 확인하는 길이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사랑스러운 남자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창조의 신이 되고, 자식을 키우면서 사랑의 화신이 되어라. 그리고 자식과의 정신적 탯줄을 끊어내고 온전한 인간으로서, 완전한 타인으로서 자식을 사랑함으로써 사랑의 신으로 거듭 태어나라. 그리하여 세상 모든 것을 사랑하라. 자신을, 상대를, 이웃을, 세상을, 우주를 사랑하라. 자신이 사랑의 존재가 되고 그 사랑이 넘칠 때, 사랑은 자연스럽게 모든 것으로 넘쳐흐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랑의 신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여성이 변화할 때, 이 세상은 비로서 사랑이 충만한 새로운 세계로 변할 것이다. 이런 자연스러운 본성적인 - 의식의 변화를 추구하라. 이렇게 좀 차원이 다른 생각을 할 때, 의식이 성장하는 것이다.  

 

의식의 성장이라 함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우리의 마음이 이기심에서 이타심으로 바뀌는 것뿐이다. 아주 사소한 생각의, 시각의 차이일 뿐이다. 사랑의 원리를 생각해 보는 단순한 일이다. 사랑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세상이 참으로 아름답게 보인다. 지적으로 아무리 성장하여 많은 것을 알게 되더라도 우리는 행복하지 않다. 오히려 번민하게 될 뿐이다. 이기심만 커지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무리 지적으로 성장하더라도, 의식이 성장이 이뤄지지 않는 한 우리는 참으로 인간답게 살 수 없다. 지적 성장은 이기심이 충족인 반면, 의식의 성장은 이타심의 충만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 <>가 분리된 채 머무르지 않고, 하나로 되어가는 과정이다. 그리하여 <우리>가 되는 것이다. 사실 남녀간의 사랑이라는 것도 <> <>가 만나 <하나>의 가정을 이루어 우리로 살아가는 단순한 지혜일 뿐이다. 한 사람을 온전히 사랑하는 온전한 사랑, 이기심에 머무르지 않고 완전한 타인을 온전히 사랑하는 완전한 사랑, 자기애에 머무르는 이기적인 사랑이 아닌 이타적인 사랑, 우리는 그것을 참 사랑이라고 한다. 자기 자신, 자기 가족에만 머무르지 않고, 타인에게, 이웃으로 확대될 때, 참 사랑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런 <> 사랑을 배워야 하지 않을까?


의식의 성장 없이 민주주의는 활짝 꽃피어나지 않는다!- 古書



2009. 7. 5.
     12:16

 

 

진정한 사랑을 전하는 사랑의 전도사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