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 3대 못간다'라는 속담이 있다.


또한 '부자 망해도 3년은 간다'라는 속담이 있다.



이 속담의 유래를 경제학적으로 고찰해보자. 아, 이 '고찰'은 한그루 고유의 고찰이니 백과사전 찾을 필요'읎'다.




1) 우선 두 속담에 공통적으로 들어가는 숫자인 '3'. 배달민족의 문화에서 가장 중요한 숫자로 자리매김한 숫자 '3'이 들어가 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가 영국식 복지라면 3이란 숫자로 태어나서 인생을 마감한 후에도 3이란 숫자로 연결되는, '태생전부터 죽은 후에도 3이라는 숫자로 연결되는 한민족 문화'. 바로 삼신할매가 점지해서 한반도에 태어났고 죽어서도 후손들이 3년 탈상을 하기 전까지는 온전히 망자가 되지 않는 문화가 바로 그렇다'




2) 이 3이라는 숫자는 조선 시대의 정치에서도 중요한 숫자로 자리매김한다. '삼족을 멸한다'라는 삼족의 '삼'이 3이며 친친(親親)이라는 세종 때의 제도 역시 '3'이라는 숫자와 연관이 있다. 대하드라마 '용의 눈물'을 시청하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태종이 가장 심형을 기울였던 것은 바로 친인척의 정치적 참여를 배제하는 일이었다. 이런 태종의 노력은 조선 건국시기부터 시작되었고 그 노력은 세종 때의 친친이라는 제도로 결실을 보게되었다.



친친은 친족들 간의 의리를 이야기하는 것으로 그 친족 간의 의리는 4대를 넘으면 없어진다고 해석되어 예를 들어 세종은 왕의 4대 현손(증손자)까지 모든 정치활동을 금하게 하고 대신 종친부의 최고 관작을 수여하였다. 바로 친친제도의 실행이다.




4대가 넘어가면 의리가 없어진다..........는 가부장적 제도에서 대가족 제도를 당연시하던 당시의 문화적 풍습에서 유래된다. 아버지는 자식들과 같은 집에서 산다. 그리고 그 자식들의 자식들, 즉, 손자들 역시 성장 과정에서 같은 집에서 자라난다. 그러나 그 손자들이 장성하여 후손을 보게되면 장성하면서 할아버지 집에서는 기거가 마땅하지 않기 때문에 그 손자들은 자신의 후손과 함께 분가하여 나간다. 따라서 손자인 3대까지는 최소한 성장과정에서 형제들과 얽히고 섥히면서 정을 돈독히 할 기회가 제공되었지만 4대에 이르러서는 분가하여 나가기 때문에 아버지의 다른 자손들과는 기껏해야 집안 행사나 경조사 때나 조우하게 된다. 이런 문화적 특징을 고려, 4대까지는 그래도 성장하면서 있을지도 모를 친척간의 돈독한 정이 그 이후에는 엷어진다...고 해석하여 친친제도에 반영이 되었다는 것이 내 판단이다.(일부 백과사전에서는 이런 친친제도가 유교적 문화 때문이라고 기록이 되어 있는데 과연 한국식 가부장 제도가 유교적 문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3) 그런데 분가하여 나간 손주(3대)가 가세가 기울어 망한 처지가 되었다. 그 3년은 바로 3년 탈상이다. 할아버지(1대)가 죽으면 3년동안 상을 치루는 과정, 그리고 아직은 돈독한 친척의 정이 남아있어 최소한 먹거리는 해결이 된다. 즉, 3년은 간다......라는 의미는 3년이 최소치이고 그 3년은 바로 3년 탈상을 의미하는 것으로 나는 해석한다. 먹거리만 해결되어도 남부럽지 않았던 빈한한 조선시대에서 할아버지의 죽음으로 다른 부자 형제의 제사 때문에 최소한 3년은 먹거리 걱정이 없으니 빈자가 보기에는 그만한 상팔자가 또 따로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문화적 풍습의 특성 때문에 '부자 망해도 3년은 간다'라는 속담이 생긴 것이다.......라고 나는 그렇게 해석한다.




4) 그러면 역으로 '부자 3대 못간다'라는 속담은 어떻게 생겼을까?



우리는 매스컴에서 '창업보다 수성이 어렵다'는 재벌 총수들의 푸념 아닌 푸념을 기사화한 것을 종종 접한다. 맞는 이야기다. 주변에 정말 재산이 많은 부모를 둔 친구들이 있다면 그 말이 사실임을 알 것이다. 물론, 한 때 졸부들의 흥청망청이 유행처럼 번지고 사회의 병폐처럼 퍼지기도 했지만 전통적인 부자들은 자식들에게 '혹독할 정도'로 이재를 가르친다.



부자인 아들인 친구들이 의외로 인색한 것은 그런 교육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왠만한 중산층 자식들보다 용돈이 더 적은 경우가 다반사이다. 바로 돈을 모으는 것보다 그 모은 돈을 지키는 '이재'가 훨씬 더 어렵기 때문이다. 돈가치는 떨어지기 마련이어서 단지 지키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떨어진 돈가치만큼 보충을 해야 한다.



그런데 현대 한국에서 부자의 기준은 '집은 기본, 기사가 딸린 승용차가 있어야 하며 현금 보유액이 20억은 되야 부자'라는, 한 경제 신문의 한국인의 '부자의 기준'을 조사한 결과이다.



그 현금보유액이 몇 년 전에는 10억이었는데 20억으로 오른 것은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결국 돈가치의 하락이 중요한 인식 판단의 이유 중에 하나일 것이다. 부자의 기준인 이 현금 20억이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판단기준이라고 가정하자.



어떤 부자가 있고 그 부자의 현금보유액이 50억쯤 된다고 치자. 그리고 자녀 둘이 있다. 그 자녀 둘에게 재산을 공평하게 나누어준다. 그렇다면 그 자녀들의 현금보유액은 각각 25억. 자, 그 자녀들이 성장하여 또 각각 두명의 자녀를 두었다. 그렇다면 손자대에 이르러서 유산으로 받을 현금은 12억 5천만. 가볍게(?) 부자 3대 째 이르러서는 '부자 대열'에서 탈락된다.



그런데 자손 번성이 최고의 가치였던 조선 시대에 자녀를 보통 다섯 이상은 두었던 그 시절에는? 남존여비 사상이 판치던 시절이라 여자녀에게 돌아가는 몫은 상대적으로 적었겠지만 부의 나눔에서 온전히 제외되지는 않았다. 그런데 자식이 다섯명... 그 자식 다섯명이 또 각각 자식 다섯명씩 둔다면 할아버지 재산이 손자 때에 가서는 무려 스물 다섯으로 나뉘어진다. 이 정도라면 장남을 따지는 것은 사실상 무의미하다.




부자 3대 못간다.......... 그리고 부자 망해도 3년은 간다................의 속담이 어떻게 유래되었는지 감이 잡히시는가?



아, 이런 분석은 한그루표이므로 나중에 시간이 나면 고증을 하겠지만 아직은 '증명된 설'이 아닌 아직은 '썰'일 뿐이다. 그러니 다른 곳에 가서 '썰'을 '설'처럼 풀다가 괜히 물바가지 한대박 얻어맞고는 애먼 한그루에게 욕하지 마시길. 뭐, 나야, 욕먹으면 오래 산다니까 욕을 하신다면 뭐 그러려니 하겠지만 이미 욕을 벽에 칠한 X칠이 마를 때까지 살고도 몇십년은 더 살 정도로 먹었으니 그만 먹고 싶지만 말이다.

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