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 역시 뒷북이군요.

눈 질끔 감고 1번을 찍어버리리라 굳게 다짐하고 투표장에 갔었는데, 날은 너무 춥고 기다리는 줄도 길었습니다. 문득 1번을 찍기 위해 내가 이 추위를 무릅쓰고, 줄까지서서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미치겠더라구요. 날아가버린 저의 기회비용과 시간투자가 너무 아까웠습니다. 그래서 한 때 고민했던 7번을 찍어주었죠. 마음은 홀가분했고, "기호0번 노무현"타령에 상처받았던 기억이 살짝 정화되는 듯한 느낌이 들더라구요. 

저는 만약 박근혜가 당선되면 "친노들 쫄딱 망했네 꼴 좋다~" 문재인이 당선되면 "닭그네 망했네 만세~" 를 외치는 극강의 정신승리를 시전하리라 일찌감치 마음먹고 있었기 때문에, 출구조사를 기다리는 심정이 그닥 스릴있지는 않았습니다. 이례적인 투표율 상승 소식에 여기저기서 문재인 당선을 예측하던데, 저는 오히려 반대였어요. 보수층에서 엄청나게 쏟아져 나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제 감이 맞더라구요.

선거후 야권의 패배를 분석하는 이런 저런 글들을 읽으면서, 뭔가 허전한 느낌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나름대로 궁리를 해보았는데, 한국 사회를 덮친 "불안"에 대하여 새누리당이 좀 더 세련되게 대처했기 때문이라는 결론이 나더라구요. 젊은 세대들도 자신의 삶에 드러워진 불안때문에 과거보다 좀 더 많이 투표장에 나왔고, 노령층들 역시 마찬가지의 이유로 좀 더 많이 투표장에 나왔을겁니다. 물론 투표의 방향은 정반대였지만요. 즉 원인은 똑같은데 연령에 따라 다른 행동을 했을거라는 이야기이죠. 저는 그것이 세대별로 지지성향이 극명하게 갈라지는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태풍이 몰려올 때, 대처하는 사람들의 반응은 각자가 처한 입장에 따라 다를겁니다. 태풍이라는 원인은 똑같지만 행동은 판이하게 달라질 수 있다는거죠. 침수피해가 우려되는 저지대에 사는 사람들은 서둘러 가재도구부터 이동을 시킬테고, 바람의 피해가 우려되는 아파트촌 사람들은 유리창에 신문지를 붙이거나 여기저기 보수를 하겠죠. 이 때 저지대에 사는 사람들이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왜 우리랑 달라? 개객끼들이네" 하고 원망해봐야 소용이 없는거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어쩌면 선거도 이와 같은거죠. 민통당은 저지대에서 나오는 표만 쳐다봤고, 새누리당은 아파트촌은 물론 저지대의 표도 일부 뺏어오는데 주력한 것이 승부를 갈랐습니다. 

그렇다면 불안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인간은 모험의 불안도 즐기지만, 근본적인 속성은 자신의 삶이 안정되고 예측가능한 것을 훨씬 더 선호합니다. 심지어 죽고 난 다음의 시간에도 안정과 예측가능성을 구하려 종교에 심취하는게 인간이죠. 하물며 죽고난 이후도 아니고 2년 3년 앞도 예측하기 어렵다는 것은 견디기 힘든 불안이 맞는거고, 한국 사회는 그런 극도의 사회경제적 불안감이 모든 연령대를 덮치고 있는 상황입니다. 아마도 2012년 대한민국에서 마음편하게 지내고 있는 사람들은 얼마되지 않을겁니다.

젊은 세대들은 취업난은 당연하고 어렵게 취업에 성공하더라도 언제 짤릴지 모르는 불안에 떨고 있고, 노령층은 점점 거덜나고 있는 노후대책 통장잔고에 떨고 있습니다. 남아 있는 것은 평생을 노동하여 축적해놓은 약간의 재산뿐이죠. 그러나 그것은 자신들이 함부로 축내도 되는 본인 소유가 아니죠. 고이 모셔두었다가 고스란히 자식 손주들 대학가고 시집장가갈 때 물려줘야할 것들입니다. 또한 40대 전후 중간층이 짊어지고 있는 불안 역시 만만치 않습니다. 아이들 교육비에 생활비에 주택마련비에 노후대책마련까지... 그러나 그들 역시 대부분은 당장에 먹고살기도 급급하고 큰병이라도 얻어 걸리면 인생 쫑입니다.

그러나 이런 문제들을 해결해보겠노라 야심차게 진보를 표방하던 민통당이 노령층들에게 철저하게 외면당한 이유는 별게 아닙니다. 그들이 진보를 표방했기 때문이 아니라, 진보를 그저 급진적인 변화인 것으로 착각했기 때문이죠. 흔히들 보수는 안정을 희구하고 진보는 변화를 추구한다고 하는데, 아닙니다. 진보는 그저 변화를 통해 한단계 더 업그레이드된 삶의 안정을 제공하는 것에 불과한거죠. 즉 진보 역시 변화 그 자체가 아니라, 보수와는 다른 방식으로 안정을 희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민통당은 친노들이 어설프게 무늬뿐인 변화만을 떠들었지, 그런 변화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안정이 무엇인지를 국민들과 노령층들에게 확실하게 설명하고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젊은 세대들을 정치적으로 선동해내는 것에만 집중하면서, 안 그래도 불안한 노령층들을 강하게 자극한 것이 전부입니다. 이번에 박근혜를 전폭적으로 지지한 50~60대 노령층이 나이들면서 자연스레 보수화되고, 먹고살만하고 지킬게 많아서 그런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그들이 느끼고 있는 불안에 대해 박근혜가 좀 더 많이 어필했기 때문인거죠. 그 결과가 고령층의 90%에 가까운 투표율과 압도적인 지지율인거구요.

민통당은 "그놈이 그놈이다"라는 비아냥에 주눅들지 말고 '변화를 통한 안정"의 성공사례들을 하나씩 차근차근 보여주면서 노령층들을 설득했어야 합니다. 물론 젊은 세대들에게도 그들에게 맞는 방식으로 똑같이 해야하는 것은 당연한거구요. 그러나 각 연령층이 느끼는 불안에 대한 맞춤 전략같은 것은 눈을 씻고 봐도 없었죠. 오로지 세대별로는 나꼼수등을 통한 정치 선동, 지역별로는 낙동강벨트 올인이라는 신종 지역주의가 전부였습니다. 물론 호남 표셔틀 취급과 홀대 전략은 기본으로 깔려있는 걸테구요. 만약 이런 상황에서도 문재인이 승리했다면, 대한민국은 야당해먹기 정말 정말 좋은 나라인겁니다. 

물론 이 모든것도 사실은 뻘소리입니다. 친노정치인들과 깨시들은 답이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