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정신 2009년 겨울호 서평입니다. Daily NK 논설위원이신 이광백님이 쓰셨네요.
시대정신은 자타가 공인하는 뉴라이트의 원류라고 봐야죠. 시대정신(격월간 혹은 계간)은 1998년 겨울호가 첫권이었죠.
(김진홍 목사 등은 2004년 말께 그 브랜드를 사용하기 시작해서, 지금은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버렸죠)

서평들을 읽어 보면, '아! 이분은 이런 측면을 주목하는구나!'  "이렇게 읽는구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독자에 의해 책이 다시 태어난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읽기가 녹녹치 않는 제 책 읽고 평하느라 고생 많이 하셨겠습니다.
저자로서 감사드립니다.  사실 신문 서평은 원래 매우 짧을 수 밖에 없어서, 비교적 긴 잡지 서평을 만나는 것은 저자로서 반갑지요.
원문은 아래
 http://www.sdjs.co.kr/read.php?quarterId=SD200904&num=337

[서평] 사회민주주의를 버리고 공평한 보상이 가능한 사회를 설계하자



[이광백 | DailyNk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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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지음,『노무현 이후 : 새 시대 플랫폼은 무엇인가』(한걸음더,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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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6 세대라면 기억할지도 모른다. 5년 전이었다. ‘386진보’의 시대착오時代錯誤를 반성하고 새로운 길을 모색해온 자신의 이념적 진화進化 기록을 담은 책 『한 386의 사상혁명』(시대정신, 2004)을 조심스럽게 내놓던 40대 초반의 젊은이가 있었다. “수백만 진보성향의 청·장년들의 혈관에 흐르는 민족사적民族史的으로 너무나 소중한 에너지가 사회 발전에 별로 도움이 안 되는 방향으로 소진消盡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며, 사회발전단계와 시대정신에 맞지 않는 시대착오적인 사상과 이념에서 빨리 벗어나라고 호소했던 그는 지금은 40대 후반으로 접어든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 소장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역사 속으로 사라진 후 무겁고 답답한 공기가 온 나라를 뒤덮고 있던 지난 여름, 그가 또 한권의 책을 냈다. 『노무현 이후 : 새 시대 플랫폼은 무엇인가』(한걸음더, 2009). 『한 386의 사상혁명』 이후 한결 성숙해진 자신의 정견政見과 자신이 소장으로 있는 사회디자인연구소의 연구 성과를 모은 책이다.

사회디자인연구소는 지난 1년 동안 참여정부에 대한 평가 작업을 진행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한국사회와 정치를 위한 철학, 가치, 비전, 정책을 연구해왔다. 김대호 소장은 연구를 주도하면서 연구소 웹사이트에 관련 글을 발표해왔다. 『노무현 이후』는 김대호 소장이 발표한 글을 둘러싸고 연구소 회원들과 온․오프라인 논객들의 열띤 토론을 거친 내용을 다듬고 정리한 것이다.

김대호 소장은 '서언序言-노무현의 죽음과 유산有産'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살을 선택한 것은 '치졸한 정치보복의 비극을 증거證據하기 위한 것'이라고 봐도 과언過言이 아니라고 썼다. "노무현은 부엉이바위에서 몸을 날리면서 부활했다. 마치 예수의 십자가처럼 이 시대의 속죄양이 되어 민족의 등불로 활활 타오르고 있다"는 말로 서언을 끝맺고 있다. 또 노무현이 남긴 정치적, 정신적, 지적 유산을 나열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서언에 드러나는 김대호 소장의 다소 감정적이고 격앙된 표현 때문에 이 책을 '노무현 찬양서讚揚書' 쯤으로 성급하게 미루어 짐작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오해다. 본문을 읽어 나가기 시작하는 순간, 『노무현 이후』는 이념 정책서적이라는 것을 또렷하게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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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이후』는 노무현과 참여정부가 남긴 숙제를 크게 다섯 가지로 요약하고 남겨진 숙제를 해결하는 데 초점을 맞추어 내용을 전개했다. 눈에 띠는 것은 세 가지다. 첫째, 대통령 탄핵, 행정수도 건설, 호주제, 직업선택의 자유(맹인 안마사), 새만금 개발과 천성산 터널 문제 등 정치와 사회에 파급력이 큰 사건들이 법원이나 헌법재판소에서 최종 판결됨으로써 사법부의 막대한 권한이 확인되었고, 사정査定기관, 대기업, 언론 등 이른바 '선출되지 않은 권력'에 대한 민주적 통제장치가 없어 문제가 드러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노무현은 검찰, 국세청 등을 정치적으로 중립화시키고, 정경유착을 단절하며, 언론에 대한 통제를 줄이는 각종 민주화와 자율화 조치를 실행했으나 선출되지 않는 권력에 대한 자율적이며 민주적인 통제장치가 정착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러한 조치는 시기상조였다고 말한다. 이와 같은 현상들은 한국사회의 민주주의와 공화주의에 대한 새로운 설계를 요구한다고 주장한다.

둘째, 열린우리당의 탄생誕生, 분란紛亂, 소멸消滅을 통해서 정당과 정치 생태계生態界 문제에 대한 숙제를 남겼다는 것이다. 정경유착을 근절하고 정당 운영에서 이권 개입을 차단하고 나니, 선출직 및 정무직 공무원의 급료가 낮아지고, 정당 운영에 필요한 정치자금 조달조차 어려워졌는데, 이것이 정치인과 정당의 생존에 커다란 장애가 되고 있다고 말한다. 또 퇴임하거나 낙선한 정치인은 폐인이 되고 마는 정치적 토양에도 문제가 크다고 지적하고, 퇴임이나 낙선 후 정치적 경륜을 축적하고 공유하고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정치인과 정당을 발굴하고 육성하고 활용할 수 있는 정치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진보의 분열分裂을 다양한 이념과 정책적 자산으로 만드는 과제가 중요한 숙제로 남았다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 재임 중 범진보凡進步로 뭉뚱그려져 있던 세력의 갈등과 분열이 일어났는데, 이는 1987년 양김 분열처럼 정치공학적인 분열이 아니라 정치 노선과 정책의 차이에 따른 건강한 분열이었으며, 새로운 진보를 고민하고 모색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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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이후』는 새로운 진보 이념과 정책에 대한 모색摸索의 일환으로 이른바 진보를 표방하는 세력이 내세우고 있는 사회민주주의가 현 단계 한국사회의 진보 이념과 정책으로 적절한가를 진단하고 있다. 김대호 소장은 '제3부 노무현의 숙제에 답하다' 편에서 '사회민주주의'는 박정희의 선先성장 후後복지 패러다임과 김대중(노무현)의 생산적 복지 패러다임을 대체할 수 있는 패러다임이 아니라고 잘라 말한다.

사회민주주의를 주창하는 사람들은 엄청난 적자재정을 편성해서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라고 말하고, 생사를 다투는 기업에게 고용이 불안한 비정규직 말고, 정규직 일자리를 많이 만들라고 말하며, 이를 위해 대폭적인 증세를 하자고 말하지만, 한국의 전반적인 기업 능력과 학부모들의 교육비 부담 능력과 국가의 재정 능력은 이런 좋은 일자리 수백만 개를 추가로 만들지 못한다는 것이다.

또 사회민주주의는 보육, 교육, 의료, 주택, 노후 관련 재화 등을 정부가 재화를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배급하는 방식인데, 그와 같은 시스템을 가능하게 해주는 조건이 한국사회에는 형성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국민이 세금을 많이 내고, 정부와 사회지도층에 대한 신뢰가 높고, 국회, 노사정위원회 등 갈등 사안을 처리하는 기구가 잘 작동하며, 개인이나 이익집단의 기회주의 행태를 사회 말단에서 감시하는 문화적 풍토가 크게 부족하다는 것이다. 정치, 경제, 사회 주체들 간의 상호 불신이 높아 대화와 타협으로 갈등을 조정하기 어려운 사회에서는 전쟁이나 독재권력, 또는 소비자의 자유로운 선택을 보장하는 시장, 유권자의 의지를 확인하는 투표가 사회적 자원과 가치를 배분하는 주요 장치가 될 수밖에 없으며, 전쟁과 독재 권력이 활용 가능한 수단이 아니라면 시장과 투표기능을 주요하게 활용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한다.

또 사회민주주의 패러다임을 떠받치는 주요 지주支柱 가운데 하나인 획기적인 증세增稅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꼼꼼한 통계자료를 근거로 들며 주장하고 있다. 2004년 현재 한국의 GDP 대비 조세부담률은 25.3%인데, 이는 미국의 25.6%와 비슷하며, 한국처럼 면세점 이하 인구 비중이 매우 높은 나라에서 추가로 대폭적인 세원稅源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또 복지수요 측면에서 북유럽처럼 실업수당이 커지면 한국에서 실업자 대열에 설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 아무리 적게 잡아도 500만 명은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너무 많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한국은 조세와 사회보험료를 조달하고 부담하는 능력은 작고, 잠재적 복지 수요는 너무 커서 보편적 복지주의를 실현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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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이후』는 박정희 플랫폼과 김대중 플랫폼을 대체하여 대한민국을 생존 번영시킬 수 있는 새로운 정책 플랫폼의 기본틀에 대한 나름의 구상을 담고 있다. 첫 번째로 강조하는 것은 시대인식이다. 우선 세계화, 지식정보화, 과학기술혁명으로 집약되는 문명사적 변화에 대한 이념적, 제도적, 정책적 응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21세기 인류가 맞이하고 있는 기후환경 변화와 화석에너지 위기 역시 중요한 응전 대상이라고 말한다. 한국사회가 정책 플랫폼 설계에서 특별히 고려해야할 문제도 제시하고 있다. 첫째, 중국의 정치, 경제적 비상으로 인한 여파餘波에 대응해야 한다. 둘째, 북한에서 시작될 위기와 기회에 대처해야 한다. 셋째, 정치, 경제, 사회적 게임 규칙 내지 사회적 평가보상체계의 위기에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제시한 것은 새로운 정책 플랫폼 설계가 반영해야할 시대적 요구를 꿰뚫는 핵심 가치다. 첫째는 경쟁 기회, 조건, 출발선의 평등을 의미하는 공정公正이다. 둘째는 경쟁 결과의 합리적 불평등을 의미하는 공평公平이다. 공정이 경쟁의 입구를 관리하는 기준이라면 공평은 경쟁의 출구를 관리하는 기준이다. 『노무현 이후』는 특히 공평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공평은 사회적 상벌체계의 핵심으로, 승자의 이익 수준과 패자에 대한 배려 수준을 결정하는 가치다. 공평해야, 다시 말해 사회적 격차나 차별이 합리적이어야 승자는 나태하지 않고, 패자는 재도전 의지를 잃지 않는다. 김대호 소장은 공평이란 사회적 기여와 사회적 이익의 균형이며, 이것이 정의의 핵심 지주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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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이후』는 나름대로 제시한 새로운 정책 플렛폼의 기본틀을 바탕으로 한국 정치의 5대 과제를 내세우고 있다. 정책 패러다임 측면에서, 제도개혁 측면에서, 정치 생태계 측면에서, 지식과 여론의 측면에서, 정치적 매력의 측면에서 각각의 과제를 나열하고 있다. 이미 나왔던 주장들과 커다란 차이를 발견할 수는 없었다. 다만, 정치 생태계 측면에서 제시하고 있는 과제는 개념과 내용이 신선하여 눈에 띠었다.

“한국 사회에서 정치는 '고위험 저수익' 직업이다. 천신만고 끝에 의원이나 단체장이 된다 할지라도 부정을 저지르지 않는다면 그 처우는 대기업의 부장급 내지 이사급에 불과하다. 수도권 대학의 웬만한 전임교수보다 훨씬 못하다. 게다가 의원이나 단체장이 되지 못하면 집안의 천덕꾸러기 백수가 되기 십상이다.……한국에는 낙선했거나 집권하지 못한 정당 주변의 고급 정치 엘리트들이 국가 경영 경륜을 발전시키면서 먹고 살 수 있는 구조가 거의 없다. 결국 이런 구조에서는 상당한 특권과 특혜가 보장된 자격증(특히 변호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거나 아니면 부모에게 물려받은 재산이 많거나 든든한 배우자가 있는 사람이 아니면 감히 정치에 도전할 수 없다. 따라서 정신이 건강한 청년이 정치를 할 이유는 정말 없다. 결국 권력욕과 명예욕이 이상 비대한 사람, 투기주의와 한탕주의를 체화한 건강하지 못한 청년, 부모나 배우자 잘 만난 사람, TV에 얼굴을 비칠 행운을 잡은 방송인들의 비중이 점점 높아질 수밖에 없다. 공공적 마인드가 강하고, 국제 감각이 있고, 가치생산 사슬 전반의 균형의 중요성을 절감하는 기업 엘리트들에게는 너무나 진입 장벽이 높다.” 『노무현 이후』, 276~7쪽

위 인용문처럼 한국사회의 정치 생태계를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강력하고 유능한 정치라는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그 뿌리가 되는 생산적인 선거제도, 정치 인재 영입, 교육, 훈련, 배치 시스템, 정치자금 공급 시스템 등 다양한 사회적 평가보상체계를 살피는 것이 중요한 과제라고 주장한다. 관건은 국가 경영 노하우를 지속적이고 체계적으로 축적하고, 정치 엘리트를 훈련시키고, 순환시키는 정치 생태계를 건강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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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전체 4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 '노무현도 잘 몰랐던 나라, 대한민국 바로 보기'는 작가의 이념적 직관과 다양한 통계자료를 통해 한국사회의 현실을 진단하고 있다. 제2부 '노무현과 참여정부'는 사회디자인연구소가 지난해부터 진행한 노무현과 참여정부에 대한 평가 작업을 종합해 놓았다. 제3부 '노무현의 숙제에 답하다'는 노무현이 남긴 숙제를 제시하고 그에 대한 김대호 소장 나름의 답을 정리해 놓았다. 제4부 '새로운 진보의 길'에서는 지난 100년에 걸친 진보의 발자취를 성찰하고 새로운 진보에 대한 몇 가지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

이 책이 그리는 국가 비전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부문에서 도전이 장려되는 나라, 공정한 경쟁과 공평한 보상이 합리적으로 이루어지는 역동적인 나라다. 김대호 소장은 영남과 호남을 뛰어넘고, 진보와 보수를 뛰어넘고, 성장과 통합을 상생 결합하고, 임박한 기후, 환경, 에너지, 자원 위기와 북한 위기를 효과적으로 타개해 나가는 중도의 길이 진정한 진보라고 말한다. ‘길’을 찾는 사람들, 특히 한국사회의 방향과 정치적 진로를 연구·모색하는 정치인이나 학자, 우리 사회가 추구해야할 사상과 이념에 관심이 있는 사회운동가나 청년학생에게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