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동물임을 여실히 보여주는 풍경:
사람들이 만났을 때 서열이 정해지지 않으면 서열이 정해지지 않은 당사자 두 사람은 물론이고 그 모임 전체에
불편한 혹은 불안한 기운이 흐른다.

서열을 가르는 요소는 많고 할 말들도 많겠지만 그냥 앨빈 토플러의 '권력(축) 이동'으로 대신하자.
서열이 가려지지 않은 무질서에서 서열이 확정되는 질서로 나아가야 평화가 찾아든다. 기독교 경전 창세기 1장.
서열 매기기에 동참하지 않거나 거부하는 개체는 그 서열 확정 의식에 적극적/소극적으로 동참한 다수에 비해 항상 불안하다.
그 불안의 다른 이름은 '자유' 혹은 '광기' 혹은 '외로움'.

나는 잠자리 빼곤 사람 위에도 아래에도 있고 싶지가 않다. 사람은 대對하는 것이지 다루어야 할 존재는 아니다.
아직도 서투르다. 하지만 그 은밀한 불편함을 즐긴다. 나이 많다고 나이 대접해 달라는 이들의 눈빛을 보면서.
그들은 간절히도 원한다. '님' 자를 붙여주고 고개를 숙이고 공손히 대해주기를.
얻어터지는 한이 있어도 고개 숙이는 건 잘 안 된다. 경추 3번 협착이 있긴 하지만 그건 물리적 요인이고.
내게 은근슬쩍 말을 놓던 연장자들 내가 쳐다보면 갑자기 존대말로 바뀐다. 클클. 재미있는 풍경이다.
불안한 것이다. 어서 빨리 저놈이 반말을 써도 아무렇지 않게 받아줘야 하는 것인데.

수준 높고 우아하고 어쩌고 저쩌고를 떠나 서열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편한 모습 보이는 사람 별로 못봤다.
아이고 어서 빨리 위아래가 가려져야 하는데 :)

노무현과 나꼼수는 왜 실패했을까?
http://bignews.co.kr/news/article.html?no=238092
(저 글의 맥락은 크게 보아 동의하지만 적잖은 부분에서 와닿지 않는 부분이 있다. 거야 뭐 처한 현실의 차이니까.
내음이 특이하다 싶었더니 신문 대표가 변희재씨네.)

저 글에서 김대중 특히 노무현 대통령 시절을 거치면서 우리나라에서 권위주의는 거의 사라졌다고 한다.
그런데 정말 사라지긴 사라진건가? 김대중 대통령의 권위주의라면 그런 것이다. 권위주의자 맞는데 보복을 하지 않는
권위주의자. 노무현 대통령? 권위주의를 보일만한 힘이 없었고 또 권위주의를 실제로 좋아하지도 않았던 사람. 권위주의를
타파하려 했으나 권위주의자들에게 당한 사람.

권력자를 뒤에서 뭐라뭐라 흉보고 방송에서 별명을 쓰고 풍자한다고 해서 권위주의가 사라진 것일까?
그건 눈 가리고 아웅이다. 민주화되고 세상이 크게 변했다고 하는데 큰 틀에서 그다지 변한 거 없다. 절차적/형식적 민주주의와
법제도만 구색처럼 갖추고 있는 것이다. 권위주의는 그 생김새를 달리하여 우리들 생활 곳곳에서, 저수준에서 우리를 짓누른다.
까놓고 말해서 서민들/부모들 자체가 권위주의 덩어리 아닌가? 혼자서 굽신거리지 왜 옆 사람더러 굽신거리라는 것인지.
...

여기서 그만... 해봐야 다들 아는 이야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