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중요한 논쟁인거 같고 저도 몇 마디 거들고 싶었는데 여의치 않아서 뒷북을 치게 되었습니다. 

논쟁의 구도는 호남분들이 문재인에게 몰빵 투표한 것을 두고, 비난하는 쪽과 비난까지 당할 일은 아니다라는 쪽으로 나뉘는 것 같습니다. 편의상 전자를 비난파, 후자를 옹호파로 부르겠습니다.

우선 비난파들의 주장들은 제가 보기에 크게 두가지로 요약되는 것 같습니다. 

1. 그동안 호남의 몰표는 민주진보적 지향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러나 문재인 이하 친노들이 그동안 보여준 행동들로 보건데 반민주 반진보 집단임이 명백했다. 그럼에도 호남은 그들에게 몰표를 던졌다. 따라서 이번 대선의 호남 몰표는 민주진보적 지향이라 평가할 수 없으며 마땅히 비난의 대상이 되어야한다.

2. 그동안 친노들은 호남표를 셔틀의 대상 혹은 어떤 상황에서도 변치않을 상수로 취급했다. 친노들이 그런 인식을 바탕으로 노골적인 반호남주의를 표방했음에도 호남이 그들에게 몰표를 준 것은, 호남 스스로 표셔틀의 대상이자 상수임을 증명해버린 꼴이다. 이번에는 스스로 호구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줘야할 시점이었음에도 그러지 못한 것은 비난을 당해도 싸다.


이에 맞서는 옹호파들의 주장은 다음과 같을겁니다.

1. 그와 같은 논리라면 이번 박근혜의 승리를 박정희의 복권이라 여기면서 유신시대에 대한 정당화를 시도하는 것에 반론하기 어렵다. 그러나 박근혜를 지지하는 국민들이 유신시대를 용납하고 긍정하기 때문에 그랬던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문재인을 지지한 호남분들이 친노들의 반민주 반진보적인 행동들을 용납하고 추인해서가 아니다. 분리해서 접근해야 할 사안을 하나로 묶는 오류이다.

2. 친노들의 행태가 호남표를 셔틀의 대상이나 상수로 여기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것들이 호남의 "반새누리당 결집"까지 흔들만한 변수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번 호남의 몰표가 증명한 것은 "호남의 반새누리당 결집 성향은 친노들의 장난질에 대한 분노보다 훨씬 강하다" 였던거지 "호남 스스로 표셔틀의 대상이자 상수라고 여기고 있다" 가 아니다.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의 어쩔 수 없는 선택까지 비난하는 것은 맞지 않다.


우선 저는 비난파들의 주장에도 상당한 일리가 있다고 인정하고, 심정적으로는 그들과 같은 목소리를 내고 싶은 생각은 굴뚝같습니다. 이번 대선에 임하는 민통당의 전략과 자세는 용납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문제가 많았고 찌질함의 극치를 보여준 것이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호남분들이 여전한 지지를 보내준 현상은 당혹스러운 것이 맞겠죠. 또한 대놓고 장난질치는 친노들에게 응징의 철퇴를 들지 못한 것은 너무나 아쉬운 대목이라 하겠습니다. 이러 저러한 전략적 시각으로는 이해가 불감당인 현상이라는데 동의합니다.   

그러나 되짚어보면 이 논쟁은 그동안 잠복해서 드러나지 않았다가 이번 대선을 계기로 수면위로 부상한 것일 뿐, 새롭게 생성된 이슈는 아닐겁니다. 우리는 지난 2010년 경기지사선거에서 호남출신 유권자들이 똘똘 뭉쳐 유시민을 지지했던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거죠. 그럼 당시의 호남분들이 유시민의 장난질을 추인하고 표셔틀을 자임한 것이라 말해도 될까요? 비단 유시민에 대한 몰표 뿐만 아니라 멀게는 2004년 총선 당시 호남의 열린우리당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와 이번 4.11 총선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즉 당시에도 친노들은 반민주 반진보적인 집단이었고, 호남을 표셔틀 상수화해서 바라보는 것은 마찬가지였던거죠. 즉 결코 새삼스러운 현상이 아님에도 왜 그 동안에는 반노진영에서 지금과 같은 "호남몰표 논쟁"이 벌어지지 않았을까요? 현재의 논쟁에서 오가는 말들은 당시에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는 것이 분명한데, 왜 하필 지금 시점에서 불거졌을까가 어쩌면 중요한 논쟁의 포인트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 논쟁은 어쩌면 "호남몰표 성격 논쟁"이 아니라, 오히려 "친노라는 정치집단에 대한 성격 논쟁"에 더 가까운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즉 그 동안 아무리 어쩌니 저쩌니 목소리를 높였다지만 친노들에 대한 반노진영의 기본 입장이란 그들 역시 야권의 일부로써 인정하는 것이었고, 단지 두들겨패서라도 정신 좀 차리게 만들자는 쪽에 더 가까웠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 대선을 전후해서 반노진영의 일부가 "새누리당보다 친노들이 더 최악" 이라는 인식에 도달했고, 그런 최악의 정치세력에 몰표를 던진 호남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것은 당연한 논리적 귀결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것은 친노들을 두들겨패기위한 극약의 처방으로써 차라리 새누리당 후보를 전략적으로 찍어주자는 주장보다 한걸음 더 나아간 것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주장은 정치적 대립구도를 물질적인 사회경제적 대립구도가 아니라 상층부의 정치공학적 시각으로만 바라본다는 점에서 객관성을 상실한 주장이 아닐 수 없고, 친노들과 동일하게 주관적인 오류에 빠질 가능성이 다분한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즉 호남 입장에서 친노들은 객관적으로 어디까지나 야권 내부의 최악이지 한국 사회 전체의 최악은 아니라는 것이죠. 이것은 아무리 제가 통진당 사태때 유시민일파보다는 억울하게 당한 당권파들을 변호하는 입장이었지만, 객관적인 이념적 근친도는 어디까지나 주사파보다는 자유주의의 손을 들어줄 수 밖에 없는 것과 매우 유사한 것입니다.

저는 때에 따라서 "내부의 최악"을 제거할 수 있다면 새누리당이라는 최악의 힘을 빌리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그런 입장은 어디까지나 전략적인 선택에서 그쳐야지, 호남의 투표보다 우위에 있다는 주장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습니다. 호남분들이 그런 전략적인 투표까지 해주시면 감사할 따름이고, 안하신다면 어쩔 수 없는거죠. 저는 그저 호소와 설득이 부족해서라고 반성할 뿐입니다. 투표는 지지의 표시일 수도 있고, 그때 그때 편리한대로 고를 수 있는 선택의 문제에 불과할 수도 있습니다. 투표라는 행위의 성격을 어느 한쪽에 고정시켜서 호남의 몰표를 친노들에 대한 지지의 표시라고 해석해서는 안된다는 말씀.

이번에 새누리당과 박근혜쪽에서 호남 공략에 나서겠다는 의사를 공공연하게 표시하고 있죠. 저는 매우 긍정적인 현상이라고 봅니다. 물론 친노들처럼 "호남의 1표는 영남 10표의 가치가 있다"는 식으로 대놓고 퍼줄 가능성은 거의 없겠지만, 최소한 등가로 쳐주기만 해도 호남입장에서는 친노들보다는 훨씬 나은 것이 분명하니까요. 단지 이 상황에서 호남분들에게 필요한 것은 적절한 밀땅의 스킬에 더해서 장난질치는 놈들의 정수리를 내리치는 추상같은 투표일텐데, 저는 잘하시리라고 믿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