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성 가설
 

어떤 현상을 설명할 때 선천성/후천성, 생물학적인 것/문화적인 것, 진화한 것/학습한 것, 본성/양육이 대립하는 경우가 많다. 거칠게 말하자면 본성 가설은 그 현상이 선천적이며, 생물학적인 것이며, 진화의 산물이라고 본다. 어떤 현상에 대한 본성 가설에 따르면 인간은 원래 그렇다.

 

여기서 선천성은 태어날 때부터 존재한다는 뜻이 아니다. 젖니가 빠진 다음에 나는 영구치도 인간 본성이며 선천적인 것이다. 발달은 자궁 안에서나 밖에서나 연속적으로 이루어진다. 탄생이라는 기준을 절대시하는 것은 포유류의 편견일 뿐이다. 또한 본성은 유전자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도 아니다. 표현형이 유전형과 환경이 상호작용한 결과 생긴다는 것은 생물학의 기초 중에서도 뻔한 기초다.

 

본성론은 생물학 결정론이다. 인간은 원래 그렇다는 말은 인간은 그와 다를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100%의 인간들이 해당 표현형을 발현한다는 뜻은 아니다. 영구치처럼 어느 정도 나이가 든 다음에나 나타나는 현상도 있고, 젖가슴처럼 여자에게만 나타나는 현상도 있다. 또한 유전자 이상, 자궁 내 환경 이상, 사고나 질병 등 때문에 해당 표현형이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 예컨대 볼 수 있는 눈이 둘인 것과 손가락이 열 개인 것은 인간 본성에 속하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눈이나 손가락이 처음부터 없었거나 나중에 잃은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인간은 지금도 진화하고 있다. 그리고 언제적 조상부터 인간이라고 부를지도 칼로 무 자르듯이 확실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인간이라는 개념은 애매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인간 본성 개념도 확고하게 정의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정해진 것도 아니다.

 

본성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환경에서 항상 발현되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이런 식으로 본성을 정의하면 거의 쓸모 없는 개념이 된다. 1000도나 되는 고온, 진공 속, 물 속 등에서 인간은 생존할 수 없다. 인간 수정란을 그런 곳에 수십 년 동안 보관한다고 하더라도 눈도 손도 발달하지 안는다. 따라서 인간 본성을 논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생존할 수 있는 환경으로 제한해야 한다.

 

생존할 수 있는 환경으로 제한한다고 해도 범위가 너무 넓다. 모든 신생아의 손가락 한 개를 잘라 버리는 나라를 상상해 보자. 그런 환경을 상상할 수 있다 하더라도 “손가락이 열 개인 것이 인간 본성이다”라는 명제가 위협받도록 해서는 안 된다. 태어나서 줄곧 암흑 속에서 자라면 앞을 볼 수 없다고 한다. 그런 환경을 상상할 수 있다고 해서 가시 광선을 볼 수 있는 것이 인간 본성이라는 명제가 위협받도록 해서는 안 된다. 본성 개념이 의미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정상적 환경을 가정해야 한다. 물론 인간 개념이 애매하듯이 정상적 환경이라는 개념도 애매할 수 밖에 없다.

 

정리해 보자. 어떤 표현형이 정상적 환경 하에서 보편적으로 또는 특정한 상황에서(예컨대 어떤 나이나 성별) 상당히 안정되게 발현된다고 보는 것이 본성 가설이다.

 

인간 해부학 교과서나 생리학 교과서는 인간의 육체적 본성에 대한 온갖 가설들로 가득 차 있다. 예컨대 심장이 하나, 손가락이 열 개, 허파가 두 개, 눈이 두 개인 것은 인간 본성이다. 진화 심리학자들은 인간의 심리적 본성에 대해 비슷한 목록을 만들고 싶어한다.

 

 

 

 

 

적응 가설
 

적응 가설은 인간 본성 중 일부에 대한 가설이다. 이 가설에 따르면 해당 표현형은 자연 선택의 직접적 결과로 진화한 것이다. 적응 가설에 대비되는 것은 부산물 가설이다. 예컨대 피의 붉은 색은 자연 선택의 직접적 산물이 아니다. 즉 피의 색이 붉은 우리 조상이 그렇지 않은 조상에 비해 그 붉은 색 때문에 번식에 더 유리했기 때문에 지금의 우리 피가 붉은 것은 아니다. 산소를 운반할 수 있는 메커니즘을 만들다 보니 붉은 색을 띄게 된 것일 뿐이다.

 

적응 가설에서 고려해야 하는 환경은 무엇인가? 본성 가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환경도 아니며 생존할 수 있는 모든 환경도 아니다. 우리 조상들이 진화하면서 겪었던 환경들 중 꾸준히 반복되었던 측면들을 따져야 한다. 왜냐하면 그 환경에서 자연 선택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적응 가설에 따르면 진화가 일어났던 환경과 상당히 비슷한 환경에서 해당 표현형이 발현되게 마련이며 그런 표현형이 나타나도록 인간은 자연 선택에 의해 설계되었다.

 

본성 가설과 적응 가설에서 고려하는 환경들의 집합이 서로 약간 다를 수 있다. 적응 가설에서 고려하는 환경은 과거 진화가 일어났던 환경이다. 따라서 여기에는 인간의 도덕적 가치가 개입될 여지가 없다. 반면 본성 가설에서 고려하는 정상적 환경이라는 개념에는 인간의 도덕적 가치가 개입될 여지가 있다. 좀 더 엄밀하게 논의하기 위해서는 환경과 관련한 이런 미묘하고 애매한 것들을 먼저 규정하고 넘어가야 한다.

 

 

 

 

 

선택압 가설 – 과거 환경의 재구성
 

자연 선택에 대해 논하기 위해서는 자연 선택이 일어나는 환경을 알 필요가 있다. 문제는 자연 선택은 과거의 일이라는 점이다. 그것도 아주 오래된 과거다. 인간의 진화를 재구성하기 위해서는 지난 수백만 년 동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알아내야 한다. 어떤 경우에는 수천만 년 전이나 수억 년 전의 역사를 파헤쳐야 한다. 과거 환경을 재구성해야 어떤 선택압(selection pressure)이 작동했는지 알 수 있다.

 

 

 

 

 

증거 1 – 인류 보편성
 

영어, 한국어, 중국어 등은 인류 보편적인 표현형이 아니다. 따라서 “영어는 인간 본성이다”라는 본성 가설이나 “영어는 적응이다”라는 적응 가설은 성립할 수 없다. 반면 음소, 단어, 문장의 체계로 이루어진 인간의 독특한 언어는 모든 문화권에 있다. 따라서 “언어는 인간 본성이다”라는 본성 가설이나 “언어는 적응이다”라는 적응 가설은 상당히 가망성 있는 가설이다.

 

진화 심리학자들은 보통 본성 가설이나 적응 가설을 검증할 때 처음에는 자신이 가르치는 수십 명의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연구한다. 그 결과 가설이 가망성이 있다고 생각하면 자기 나라 사람들은 대상으로 더 광범위하게 연구한다. 그 이후에는 되도록 다양하고 많은 문화권 사람들을 대상으로 연구한다. 그 결과 적어도 자신이 연구한 대상에서 인류 보편적이라는 것이 드러나면 자신의 가설이 상당히 가망성 있다고 생각한다.

 

적응 가설의 경우에는 인류 보편성이 충분한 증거가 될 수 없는 중요한 이유가 있다. 피의 색이 붉은 것은 인류 보편적이지만 붉은 색이 적응인 것은 아니다. 그것은 부산물이다. 본성 중 일부만 적응이다. 따라서 어떤 표현형이 인간 본성이라는 것을 확실히 증명해도 적응 가설이 증명된 것은 아니다.

 

인류 보편적이라 하더라도 본성 가설이 옳다고 확신할 수는 없다. 문화적 전파에 의한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명과 접한 적이 전혀 또는 거의 없는 오지 문화권에서도 똑 같은 것이 발견된다면 본성 가설의 설득력은 높아질 것이다.

 

물론 우연히 같을 수도 있다. 동전 던지기를 열 번 했는데 우연히 모두 앞 면이 나올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문화권의 수가 너무나 많기 때문에 우연으로 치부하기에는 문제가 있어 보인다. 각 문화권 사람들의 문화, 생각, 행동은 너무나도 다양하다. 그런데도 특정한 표현형이 인류 보편적이라면 순전히 때문이라는 설명이 별로 설득력이 있을 것 같지 않다. 왜 다른 것들은 그다지도 다양한데 그 표현형은 한결 같이 같단 말인가?

 

 

 

 

 

증거 2 – 여러 종의 동물들이 보이는 보편성
 

인간에게는 근친상간 회피 경향이 있다. 진화 심리학자들은 대체로 이것이 적응이라고 생각한다. 근친상간으로 태어난 자식이 유전병 등에 걸릴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인간이 근친상간을 회피하도록 자연 선택에 의해 설계되었다는 것이다. 인간이 속하는 포유 동물의 경우 절대 다수가 근친 상간 회피 경향을 보인다. 적어도 부모 자식 사이인 것을 확실히 알 수 있는 엄마와 아들 사이에서는 성교가 일어나는 일이 극히 희박하다. 동물학자들이 다른 포유 동물의 근친상간 회피 경향에 대해 적응 가설을 제시할 때에는 반대하는 사람이 별로 없는데 유독 인간에게 진화론적 설명을 제시하면 반발이 심한 것 같다.

 

하지만 인간이 이 문제에서 매우 특별한 예외라고 생각할 이유는 별로 없어 보인다. 천만 년 전의 우리 조상들도 근친상간을 회피했을 것이며 근친상간 회피 메커니즘이라는 적응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그럴 듯해 보인다. 그 이후로 근친상간 회피 메커니즘처럼 번식에 유용한 것이 무슨 이유로 퇴화한 다음에 또 다른 무슨 이유 때문에 그와 비슷한 행동을 유발하는 문화가 모든 문화권에서 한결 같이 생겼다고 보는 것은 너무나 부자연스러워 보인다. 물론 인간에게 매우 특수한 선택압이 작용했을 가능성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지만 특별한 증거가 제시되기 전까지는 포유동물의 보편적 경향이 인간에게도 적용된다고 잠정적으로 판단 내리는 것이 옳아 보인다.

 

 

 

 

 

증거 3 – 설계의 논거
 

설계의 논거(argument from design)는 유서가 깊다. 적어도 페일리(William Paley)의 『자연 신학』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페일리는 시계와 같이 복잡하고 정교한 구조가 우연히 생길 가능성이 지극히 희박하다면 인간의 눈과 같이 복잡하고 정교한 구조가 우연히 생길 가능성은 더더욱 희박하다고 보았다. 페일리가 내린 결론은 시계의 존재가 시계를 만든 인간 시계공의 존재를 증명하듯이 눈의 존재는 눈을 만든 신의 존재를 증명한다고 주장했다.

 

다윈 역시 이 논거에 매혹되었다. 하지만 그는 신을 자연 선택으로 대체했다. 즉 눈과 같은 복잡하고 정교한 구조는 우연에 의해 생길 수 없으며 자연 선택의 산물이라고 주장했다. 이후에 윌리엄스(George Williams)가 『Adaptation and Natural Selection』에서 이 논거에 대해 상세히 썼으며 도킨스(Richard Dawkins)는 좀 더 대중적인 책 제목을 아예 『눈먼 시계공』이라고 붙였다. 진화 심리학자들 중에는 코스미디스(Leda Cosmides)와 투비(John Tooby)가 이 논거를 애용한다.

 

설계의 논거의 핵심은 어떤 구조가 어떤 기능을 위해 너무나도 잘 부합하는 것을 볼 때 그런 구조가 우연히 생겼다고 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설계의 논거를 적용하기 위해서는 구조와 기능이 서로 맞물리는 정도를 평가해야 한다. 맞물리는 정도를 수치화하기는 힘들지만 직관적으로 상당히 커다란 인상을 받을 수는 있다. 눈의 사례에서는 그 구조와 보기(가시광선을 통해 정보 얻기)라는 기능이 맞물리는 정도가 너무나 인상적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진화론자들은 눈이 자연 선택의 직접적 산물이었음을, 즉 더 잘 보았던 우리 조상이 더 잘 번식했기 때문에 눈이 현재와 같은 복잡하고 정교한 구조로 진화했음을 확신한다. 진화 심리학자들은 눈의 사례를 모범 삼아서 구조와 기능 사이에 맞물리는 정도를 보여주려고 한다.

 

구조와 기능이 절묘하게 부합한다는 점을 보여주었다고 해서 적응 가설이 완전히 입증된 것은 아니다. 이것은 피아노 연주의 예만 보아도 명백하다. 피아노를 아주 잘 치는 사람의 뇌에 피아노 치기라는 과업을 잘 수행하도록 정교한 구조로 이루어진 메커니즘이 있을 것이 뻔하다. 전문 피아니스트는 악보를 빠르게, 거의 자동적으로 읽어서 연주한다. 하지만 피아노 연주 메커니즘이 자연 선택에 의해 진화했다고 주장하는 진화 심리학자는 아무도 없다. 왜냐하면 우리 조상들이 진화했던 시기에 피아노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피아노 연주가 적응이나 자연 선택과 무관한 것은 아니다. 아마 자연 선택에 의해 매우 잘 설계된 학습 메커니즘이 발현된 결과 피아노 연주를 오랜 기간 연습하면 피아노 연주 메커니즘이 생성되는 듯하다. 이 설명이 맞다면 자연 선택에 의해 학습 메커니즘이라는 정교한 적응이 진화했고 피아노 연주 메커니즘은 이 학습 메커니즘이 작동한 결과다. 즉 부산물이다. 구조와 기능 사이에 절묘한 맞물림이 존재한다면 결국 자연 선택과 부닥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자연 선택의 직접적 산물인 적응이 아니라면 간접적 산물인 부산물인 것이다.

 

 

 

 

 

증거 4 – 최적화
 

사막에 사는 어떤 개미는 먹이를 찾으러 이 방향 저 방향으로 헤매고 다닌다. 그러다가 일단 먹이를 찾은 다음에는 집으로 직선으로 돌아온다. 개미의 입장에서는 너무 멀기 때문에 눈으로 집을 보고 직선으로 오는 것은 아니다. 일종의 추측 항법(dead reckoning)을 사용할 줄 아는 것이다. 직선 경로는 최적화된 경로다. 에너지와 시간도 절약되고 포식자에게 잡혀 먹힐 위험도 적다. 추측 항법이 만만한 일이 아니기 때문에 개미에게 추측 항법을 위한 메커니즘이 우연히 존재했다고 보기 힘들다. 따라서 자연 선택에 의해 설계되었다고 가정할 수 밖에 없다. 최적화의 논거는 일종의 설계의 논거다.

 

어떤 새가 한 번에 낳는 알의 수가 4 개라고 하자. 과학자의 계산에 따르면 알을 5 개 이상이나 3 개 이하로 낳았을 때보다 4 개 낳았을 때 가장 많은 새끼가 어른이 될 때까지 살아남았다고 하자. 과학자는 실험을 통해 4 개가 최적화된 숫자임을 보여줄 수도 있다. 원래 알이 4 개 있는 둥지에 한두 개를 더 넣거나 한두 개 뺀 다음에 몇 마리의 새끼가 어른이 될 때까지 살아남는지를 관찰할 수 있다. 알을 낳는데도 자원이 필요하고 어른이 된 자식이 얼마나 건강한지도 따져야 하기 때문에 완벽하게 정확한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대략적인 최적 값을 알아낼 수는 있을 것이다. 실제로 낳는 알의 수와 과학자의 계산이 근접한다면 과학자는 이것이 우연이 아니라 자연 선택의 결과라는 결론에 이를 수 있다. 하지만 생물의 번식에 대한 정량 분석은 너무나 복잡하기 때문에 오류가 끼어들 여지가 크다. 이런 면에서 물리학의 환상적인 정량 분석에는 많이 못 미치기 때문에 증거로서의 강력함도 그보다는 덜할 수밖에 없다.

 

 

 

 

 

증거 5 – 자극의 빈곤의 논거
 

자극의 빈곤(poverty of stimulus)의 논거는 촘스키(Noam Chomsky)가 언어의 선천성을 입증하기 위해 사용했던 것이다. 촘스키는 언어에 전문화된 메커니즘은 없고 오직 일반적인 학습 메커니즘만 있다는 가정에서 출발했다. 아이가 태어나서 2~3년 정도 지나면 기본적인 문법은 다 배운다. 이 기간 동안 아이가 듣는 말은 아이의 뇌에 들어가는 입력 값이다. 아이가 하는 말은 출력 값이다. 촘스키는 “입력 값과 일반적인 학습 메커니즘이 합치면 출력 값을 만들어내기에 충분한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촘스키에 따르면 아무리 훌륭한 일반적인 학습 메커니즘이 있다 하더라도 입력 값이 너무 부족해서 출력 값을 만들어내기에는 역부족이다. 따라서 언어 학습에 전문화된 선천적인 메커니즘이 존재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쉬운 말로 하면 가르쳐준 것에 비해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다는 얘기다. 이 논거를 언어에만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증거 6 – 뇌 과학의 증거
 

선천적 심리적 메커니즘이 있다는 이야기는 곧 뇌 속에 어떤 회로가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뇌에 생긴 외상, 뇌졸중 등으로 뇌에 손상이 생긴 사람들 중에는 특정한 기능만 잘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이로부터 특정한 회로가 망가졌기 때문에 그 회로가 담당하는 기능에 문제가 생겼다는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다.

 

더 나아가 그 회로가 자연 선택에 의해 주조된 적응이라는 결론까지 나아가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신중해야 한다. 위에서 피아노 연주자의 사례를 들면서 이야기했듯이 학습으로 후천적으로 회로가 따로 만들어졌을 가능성도 무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본다면 뇌에 특정한 회로가 있다는 것을 아무리 완벽하게 입증했다 하더라도 본성 가설이나 적응 가설이 확실히 입증된 것은 아니다.

 

 

 

 

 

증거 7 – 현재의 적응은 역사적 기록이다
 

현재 존재하는 인간을 보고 과거의 환경에 대해 추론할 수 있다. 인간에게는 잘 작동하는 눈이 있다. 따라서 우리 조상들이 적어도 최근 수백만 년 동안에는 빛을 어느 정도 볼 수 있는 환경에서 살았다고 추론할 수 있다. 만약 깊은 동굴처럼 빛이 거의 없는 환경에서 내내 살았다면 조만간(지질학적 시간 척도로) 눈이 퇴화했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만약 뱀에 대한 선천적 공포 메커니즘이 존재한다는 것을 확실하게 입증했다면 우리 조상들이 독사가 사는 환경에서 진화했다고 추론할 수 있다. 독사도 없는데 뱀에 대한 선천적 공포 메커니즘이 존재한다는 것은 매우 이상하기 때문이다.

 

 

 

 

 

증거 8 – 현존하는 사냥-채집 사회
 

만 년 전쯤에 농경과 목축이 시작되었다. 그 이후에도 인간은 진화했고 지금도 인간은 진화하고 있다. 하지만 만 년은 진화의 기준으로 보면 아주 긴 기간이라고 볼 수 없다. 왜냐하면 진화에서 중요한 것은 절대적 시간이 아니라 세대 수이기 때문이다. 30년을 한 세대로 본다면 만 년은 약 300 세대 정도 밖에 안 된다. 이 기간 동안 일어난 진화를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리 많은 것이 진화했을 것 같지는 않다. 특히 복잡한 구조가 새로 진화하기에는 300 세대는 너무 짧아 보인다. 이것이 진화 심리학자들이 농경과 목축이 시작되기 전의 환경에 주목하는 이유다.

 

지금도 문명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고 사냥-채집 사회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회들에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특성이 있다면 그것이 과거 우리 조상들이 살았던 시대에도 비슷하게 존재했을 가능성이 크다. 적어도 문명 사회보다는 현존하는 사냥-채집 사회가 과거 사냥-채집 사회에 더 비슷할 것이다. 또는 현존하는 사냥-채집 사회를 관찰함으로써 적어도 과거 사냥-채집 사회가 어떠했는지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증거 9 – 고고학적 증거
 

고고학은 문명이 시작되기 전의 인류의 과거를 밝히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인류의 과거 환경에 대한 정보도 얻을 수 있다. 이 정보는 과거의 선택압에 대한 가설을 뒷받침할 수 있다.

 

 

 

 

 

증거 10 – 고생물학적 증거
 

어떤 진화 심리학자가 뱀에 대한 공포는 선천적 인간 본성이며 자연 선택에 의해 주조되었다는 가설을 세웠다고 하자. 이 가설이 성립하려면 과거 우리 조상들이 진화했을 때 독사가 주변에 존재했어야만 한다. 진화 심리학자는 파충류를 연구하는 고생물학자에게 우리 직계 조상이 살았던 지역에 독사가 있었는지 여부에 대해 물어볼 수 있다.

 

 

 

 

 

증거 11 – 전통적 인지 심리학자들의 증거 수집 방법
 

진화 심리학자들이 행동주의 심리학자나 전통적 인지 심리학자들의 검증 방법론을 거부할 근본적인 이유는 없다. 지금까지 심리학자들은 온갖 검증 방법들을 고안해냈다. 심각한 결함이 있다는 것이 밝혀지지 않은 이상 진화 심리학자들도 그것들을 똑 같이 사용할 수 있다.

 

 

 

 

 

그럴 듯한 이야기 만들기는 연구의 시작일 뿐이다
 

진화 심리학자들은 단편적인 관찰에서 시작하여 그럴 듯해 보이는 적응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예컨대 계모가 구박한다는 속설에서 시작하여 계모와 의붓자식은 유전자를 별로 많이 공유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첨가하면 “계모가 구박하는 이유는 친족 선택의 논리에 따른 것이다”라는 착상이 나오는 것이다. 우리 조상들 중 계모가 되었을 때 자신의 의붓자식을 친자식만큼이나 사랑했던 사람보다 친자식을 더 사랑했던 사람이 더 많은 자손을 남겼기 때문에 의붓자식보다 친자식을 더 사랑하도록 자연 선택에 의해 인간이 설계되었다는 적응 가설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만약 여기에서 연구를 끝내고 적응 가설이 옳다고 무턱대고 결론 내린다면 진화 심리학은 그럴 듯한 이야기(just-so story) 만들기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적절할 것이다. 하지만 진화 심리학자들은 결코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착상은 착상일 뿐이다. 우선 최대한 명료한 개념들을 동원하여 그것을 과학적 가설로 다듬어야 한다. 과학적 가설을 제시했다면 이제 시작일 뿐이다. 가장 힘든 과정인 검증이 남아 있다. 진화 심리학자들은 위에서 소개한 온갖 방법들을 동원하여 가설을 검증하려고 한다.

 

 

 

 

 

증거가 너무 약하다는 비판에 대해
 

수학 정리(theorem)에 대한 믿음의 수준은 매우 높다. 왜냐하면 공리에서 정리를 이끌어내는 증명 과정에 빈틈이 없기 때문이다. 물리학의 잘 정립된 법칙에 대한 믿음은 그보다는 못하다. 진화 생물학의 경우에는 그보다 훨씬 믿음의 정도가 약한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물리학에서처럼 환상적인 정량 분석에 성공하는 경우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인간을 대상으로 한 진화 심리학의 경우에는 동물학보다 증거가 약할 때가 많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다. 동물을 대상으로 하는 온갖 실험 중에는 윤리적인 이유 때문에 인간을 대상으로 할 수는 없는 것들이 많다. 또한 인간은 뇌가 크고 생각과 행동이 다른 동물보다 여러 측면에서 복잡하기 때문에 연구하기가 그만큼 더 어렵다.

 

진화 심리학 가설들에 대한 증거를 물리학이나 동물학에서 제시하는 증거와 비교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그런 비교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진화 심리학 가설에 대한 증거가 물리학 가설에 대한 증거보다 빈약하다면 절대적 믿음의 측면에서 볼 때 진화 심리학 가설을 덜 믿는 것은 당연하다. 과학자는 증거가 강력한 정도를 고려해서 그 정도만 믿어야 한다.

 

문제는 가설의 가치를 평가할 때에는 절대적 확실성뿐 아니라 상대적 확실성도 따져야 한다는 것이다. 즉 경쟁 가설보다 증거가 더 강력한지 여부를 따져야 한다. 물리학과 진화 심리학은 서로 다른 현상을 연구한다. 동물학과 인간 진화 심리학의 경우에도 서로 다른 현상을 연구할 때가 많다. 따라서 서로 경쟁하지 않는다. 진화 심리학은 주류 사회학, 문화 인류학, 마르크스주의, 정신분석, 가부장제 이론 등과 경쟁한다. 따라서 진화 심리학 가설에 대한 증거가 동물학에서 제시하는 증거보다 못하다 하더라도 만약 여러 빈 서판론자들의 가설을 뒷받침하는 증거보다 더 강력하다면 적어도 잠정적으로 진화 심리학 가설을 가장 유력한 가설로 받아들여야 한다.

 

많은 빈 서판론자들이 진화 심리학자들이 제시하는 증거들이 불충분하다는 정당한 비판에서 시작하여 “그래서 나는 빈 서판론의 가설을 믿는다”는 결론을 내린다. 이것은 창조론자들의 전략과 비슷하다. 창조론자들의 주장대로 진화 생물학에는 허점이 많이 있다. 하지만 적어도 창조론보다는 훨씬 낫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조론자는 진화 생물학에 허점이 많다는 이유로 창조론을 믿는다.

 

진화 심리학자들이 제시하는 증거가 여러 모로 빈약함에도 불구하고 진화 심리학 가설을 무턱대고 믿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하지만 그보다도 더 빈약한 증거를 제시하는 빈 서판론의 가설을 진화 심리학 가설보다 선호하는 것 역시 심각한 문제다.

 

어떤 경우에는 진화 심리학의 가설과 경쟁하는 가설이 아예 없을 때가 있다. 이럴 경우에는 증거가 빈약하더라도 더 나은 가설이 나올 때까지는 그 가설의 지위를 인정해야 한다. 처음부터 완벽한 이론이 나오는 경우는 별로 없다. 우선 사변이나 착상이 있어야 과학적 가설이 가능하고 가설이 있어야 제대로 검증된 이론이 가능한 것이다. 증거가 부족하다고 착상의 단계부터 원천 봉쇄하려고 한다면 과학이 어떻게 발달할 수 있겠는가?

 

 

 

 

 

순환 논법인가?
 

진화 심리학자들은 과거 환경에 대한 가정에서 시작하여 선택압 가설을 만들고 이것은 적응 가설로 이어진다. 예컨대 “과거에 우리 조상들은 독사에 물릴 위험이 있었다”라는 선택압 가설에서 시작하여 “인간에게는 독사 방어 메커니즘인 뱀 공포라는 적응이 진화했다”라는 적응 가설을 이끌어낸다. 진화 심리학자들은 현재의 적응에서 시작하여 과거 환경에 대한 가설로 나아가기도 한다. 예컨대 “인간에게는 독사 방어 메커니즘인 뱀 공포라는 적응이 있다”에서 시작하여 “과거에 우리 조상들은 독사에 물릴 위험이 있었다”라는 결론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얼핏 보면 이것은 순환 논법 같다.

 

만약 과거 환경의 특성 A로부터 현재 인간의 특성 B를 추론하고, 현재 인간의 특성 B로부터 과거 환경의 특성 A를 추론한다면 순환 논법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식의 추론만 가능한 것이 아니다. 현재 인간의 특성 C로부터 과거 환경의 특성 D를 추론하고, D로부터 현재 인간의 특성 E를 추론한다면 이것은 적어도 순환 논법은 아니다.

 

현재의 인간을 관찰해보면 여자에게만 자궁과 젖이 나오는 젖가슴이 있다. 과거에는 분유나 이유식이 없었으므로 현존하는 사냥-채집 사회에서처럼 3~4년 동안 수유를 했을 것이다. 물론 과거에도 여자만 임신을 했을 것이다. 따라서 아버지보다 어머니가 자식에게 더 많은 자원을 투자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자식에 대한 투자를 덜하는 쪽은 대체로 더 경쟁적이며 공격적이다. 이로부터 남자가 더 경쟁적이고 공격적인 성격을 띠도록 진화했다는 가설을 만들 수 있다. 여기에서 “현재의 인간 중 여자에게만 자궁과 젖이 나오는 젖가슴이 있다”는 C에 해당하며, “과거에 아버지보다 어머니가 자식에게 더 많은 자원을 투자했다”는 D에 해당하며, “남자가 더 경쟁적이고 공격적으로 진화했다”는 E에 해당한다. 여기에서는 이런 추론이 얼마나 정당하냐를 따지려는 것이 아니다. 순환 논법이 아님을 보여주는 것이 목적이다.

 

 

 


2009-1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