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긴 트랙백 기능이 있나요.... ^^ 코지토님 글 보고 예전  글 하나 퍼와 둡니다.  제가 특명 아빠의 도전이란  프로그램을 할 때의 일이지요

 

 

피아노를 배운 적도 없고, 도레미파솔라시도도 제대로 모르는 딸 아이가 난데없이 피아노를 사 달라고 노래를 부른 것은 꽤 오래 되었습니다만 저는 안 그래도 돈 없는데 무슨 피아노냐며 일축했고 아내 역시 그다지 크게 신경을 쓰지는 않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다른 일에는 한 번 안 된다고 하면 별 저항 없이 제 뜻을 거두어 들이는 편인 딸이 어인 일인지 피아노만큼은 목숨을(?) 걸었습니다. 

 

 어느 날 고향에서 올라오신 부모님을 맞아 온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딸 아이가 불쑥 던진 말은 우리 부부를 기절초풍하게 했습니다.   “할아버지 인하 (딸 아이 이름입니다) 피아노 사 주세요, 할아버지는 부자(?)니까, 사 줄 수 있잖아요.”  처갓집이건 본가건 그 어르신들이 있는 앞에서 아이가 이런 류의 말을 꺼내는 상황에 처해 본 분이라면 당시 저와 제 아내의 낯빛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짐작하실 수 있을 겁니다.  2001년생이니 아직 만 다섯 살도 안 된 아이의 다음 말은 또 한 번 제 엄마와 아빠를 모로 쓰러지게 만들었습니다.   “우리 집은 가난해서요..... 피아노 못 사요.”

 

 그로부터 며칠 뒤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딸 아이 목소리가 귀에 쟁쟁거린다면서 빚을 내더라도 사 주라고 말입니다.  그리고는 돈을 얼마간 보낼 테니 거기에 돈을 더 보태어 딸 아이에게 중고 피아노를 선물하라고 명령하시더군요.  그리고 당장 중고매장 가서 가격부터 알아보라고 성화십니다.  에이 피아노 배우지도 않은 아이한테 무슨 피아노입니까라고 사양을 했고 그냥저냥 넘어가려니 생각하고 있었는데 다음날 또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물건을 알아보았느냐 물으시길래 천연덕스럽게 아니라고 했더니 불벼락이 떨어지더군요.  “할아버지가 인하랑 이미 약속을 했단 말이다.  아이가 얼마나 기대하고 있는데 할아버지를 실없는 사람으로 만들 거냐?”

 

 호통은 이른바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그로부터 1주일이 채 지나지 않아 15년쯤 묵은 피아노 한 대가 우리 집 마루에 좌정을 하게 됐으니까요.   피아노가 들어온 날 딸 아이는 뭐가 그리 신나는지 피아노 앞에서 전위예술에 가까운 솜씨로 건반을 두들겨 댔습니다.  불협화음을 넘어 소음공해에 가까운 소리를 뚱땅거리며 내는 주제에 아이의 얼굴은 월광 소나타를 연주하는 피아니스트처럼 무아의 경지에 도달해 있더군요. 

 

 그렇게 즐거워하는 아이와 피아노를 번갈아 바라보노라니 퍼뜩 언젠가 만났던 한 아버지의 사연이 구름처럼 제 시야를 가려 왔습니다.  작년 이맘때 저는 ‘특명 아빠의 도전’이라는 프로그램을 맡고 있었습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이 프로그램은 아빠에게 가혹할이만큼의 어려운 도전 과제를 주고, 며칠간의 연습 과정을 거쳐 성공할 경우 희망 상품이 주어지는 포맷의 프로그램이었습니다.

 

  특명 아빠로 나선 분은 경기도 부천에서 용달업을 하시는 분이었습니다.   20평 서민 아파트에서 돈 들어갈 일 태산같은 대학생, 고등학생 딸을 거느리고 사시는 이 특명 아빠로 나선 적이 있습니다. 그분에게 주어진 특명 과제는 어이없게도 골프 칩샷이었습니다 

골프채라고는 간혹 이삿짐 나를 때 만져만 봤을 용달차 기사님께 '칩샷'(골프 세트에서 25센티미터의 장애물을 넘어, 건너편 홀에 홀인시킴) 과제를 드렸으니 저도 나중에 천당 가기엔 초저녁에 글렀지 싶습니다.

 

 헌데 이 아버지는 날이 갈수록 저희를 놀래켰습니다.   다음 날 오히려 전날의 시범맨을 능가하는 칩샷 실력을 과시하면서 완연히 익숙한 폼으로 골프공을 두들겨 몇 번씩이나 홀인원에 성공하는 겁니다.  혹여 기회를 얻지 못해 초야에 묻혀 버린, 비운의 늦깎이 골프 신동이 아닐까 의심스러운 찰나 그 아내가 한 마디 던졌습니다.  “어제 저 사람 공  저 양반 어제 오늘 골프공을 3천 번쯤 쳤을 거예요.  잠 거의 안 잤으니까.”

 

 그날도 늦게 배운 골프질(?)에 날 새는 줄 모르는 채 골프채를 한시도 놓지 않으려는 연습벌레 아빠와 그 옆에 쪼그리고 앉아 이제 그만 자자고 푸념하는 엄마의 실랑이를 촬영하고 있는데 나지막한 아빠의 중얼거림이 제 귀에 들어왔습니다.  "지은이 피아노만 생각하면 잠이 안오네."  이건 또 무슨 말씀이십니까?  궁금증을 풀지 않으면 밥 먹어도 먹은 것 같지 않은 PD는 바싹 달라붙어 캐물었습니다. 

 

 원래 이 집에는 음악을 좋아하는 딸을 위해 무리해서 샀던 피아노가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것도 아버지의 혼자 힘으로는 좀 벅차서 외할아버지의 도움을 받아서 장만을 했다고 하지요.   그러나 “자기 생각은 지지리도 안 하면서 남 생각은 끔찍이도 하는” 아버지의 사업 수완 덕에 집안 경제가 위기를 맞으면서 딸의 피아노는 중고 딱지가 붙은 채 집에서 들려 나가야 했다고 합니다.  이사 갈 집에는 피아노를 놓을 자리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너무 미안했어요. 딸애한테...... 오래 있던 살림살이 들어내면 그 아래 먼지가 깔려 있잖아요.  그 먼지를 닦아 내면서 아이가 소리 없이 울고 있더라고요.  혹시 우리 들을까봐 입을 꽉 다물고 눈물만 철철 흘립디다.”

 

 그날 밤 늦도록, 아저씨는 딸이 보관하고 있던 악보들을 들여다보고 있었습니다. 바이엘부터 재즈 피아노까지, 한 상자 그득한 악보들을, 까맣게 그려진 콩나물의 궤적을 아버지는 손과 눈으로 훑었습니다.  그러면서 피아노가 사라진 날의 그 서글픈 풍경을 떠올렸는지도 모르지요.  피아노를 지켜 주지는 못했지만, 아버지는 딸이 어렵게 신청해서 맞게 된 이 도전이라도 성공하고 싶었던 겁니다.  하루에 골프공 3천 구를 날리면서 말입니다.  

 

 녹화를 준비하는 동안 영상 테스트를 위해 스튜디오에 내려보낸 화면에 마침 이 아버지의 사연이 실렸습니다.  그런데 그를 묵묵히 지켜보던 세트 감독이 망치와 못을 들고 골프 칩샷 세트로 가서 뭔가 두드려 댑니다.   “뭐 이상 있습니까?”  의아해하면서 묻는 제게 세트 감독은 엉뚱한 답을 해 왔습니다.  “PD님 눈 좀 감아 줘.  어떻게 좀 해 주려고 그래.” 

 세트 감독의 말인즉슨 화면을 보니 홀인원 구멍의 안쪽에 인조 잔디가 덧대어 있지 않기 때문에 충분히 들어갈 수 있는 공이 나무에 맞고 튀어나오더라는 것이었습니다.  인조 잔디를 얇게 잘라서 구멍 테두리에 둘러 주면 그만큼 성공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얘기였지요.  엄연히 게임인데 그러면 안되죠 하면서 팔을 들려다가 저는 팔을 내려 놨습니다.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해 봐야 조족지혈에 불과할 것 같고, 정말로 그를 성공시키려는 의도였다기보다는 그 아버지의 아픔을 이해하고 그 소망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나이 엇비슷한 동년배 아버지로서의 연대감의 표시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세트 감독은 간단한 작업을 끝낸 뒤 주문처럼 한 마디를 했습니다.  “들어가라. 꼭 들어가라.”


 세트 감독의 반칙성 기원도 헛되이, 그리고 두 손 모아쥐고 성공을 기도했던 저와 가족들의 눈망울도 헛되이 실로 아슬아슬하게 아버지는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아버지가 허허로이 딸들을 바라보자 딸 둘은 일제히 웃으며 뛰어나와 아버지를 끌어안아 주었습니다.  그때 저는 가슴이 찡해졌습니다. 녹화 전 딸 둘이 자기들끼리 하는 얘기가 쟁쟁히 울려 왔기 때문입니다.

  “언니 울지 마 그때처럼.”  “너나 울지 마 임마.” 

 

  딸들은 행여 아빠가 서운할세라 너무 밝다 못해 눈이 아린 웃음을 터뜨리고 있었습니다.  아빠 괜찮다고 수고했다고 말이지요.  참가상으로 큰 아이의 소원 상품이었던 디지털 카메라 (상품 담당으로부터 막무가내로 빼앗아 온 겁니다)를 내밀었을 때 그 딸은 대학생답지 않게 팔딱팔딱 뛰며 좋아했습니다.  그건 디지털 카메라를 얻은 기쁨이 아니었습니다.  아빠 앞에서 자신의 기분을 오버해서 보여 주려는 가식이었고 어색하기 짝이 없는 연기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까지 그렇게 아름다운 가식을 본 적이 없습니다.

 

 딸 아이가 오늘 아침에는 장족의 발전을 하여 젓가락 행진곡을 익숙하게 쳐 댑니다.  흐뭇하게 그를 바라보면서 이렇게 아이가 좋아하고, 아이와 함께 커 온 피아노를 이 악물고 처분해야 했던 한 아버지, 그 원수를(?) 갚기 위해 골프채를 수만 번 휘둘렀던 아버지, 그리고 그 아버지가 다시 한 번 마음 아플세라 머리에 꽃 꽂은 여인네처럼 웃고 떠들었던 딸 아이들의 목소리를 떠올리게 됐습니다.   언젠가 그 집에도 다시 피아노가 놓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큰딸이 녹슬지 않은 연주 실력으로 손을 건반 위에 얹을 때 그 아버지도 저처럼 헤벌쭉 웃으며 그 음악을 감상하게 되기를 다시 한 번 빌어 보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