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대선을 두고 설왕설래가 오갑니다. 많은 진보적인 사람들은 높은 투표율에 먼저 놀랍니다. 그 다음 박근혜의 과반 득표에 놀랍니다. 그리곤 50대 이상의 투표율에 놀란 후, 곧바로 그들의 박근혜 쏠림에 경악합니다. 멘붕에 빠진 다음 어느 정도 진정한 다음엔 경기, 인천에서의 패배에 또 한번 놀랍니다. 충청과 강원, 제주의 패배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고, 서울에서의 적은 표차도 그냥 지나칠 정도입니다. 호남에서의 박근혜에 대한 10% 이상의 득표마저 대수롭지 않게 여겨지도록 만드는 충격적인 결과(실은 이미 예견됐지만 애써 무시해왔던)들의 연속입니다.

진보적인 사람들은 멘붕 이후, 정신을 차리고 다시 시작하기 위해서 당장 "누가 박근혜를 찍었는지"를 분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곤 설마설마 했던 결과를 접하며 또..또또 멘붕합니다.

'사회적 약자'들로 분류된 집단에서 '모조리' 박근혜가 문재인을 이긴 결과를 접했기 때문입니다.

사회적 약자는 학문적인 개념입니다. 주로 쓰이는 분야는 사회복지학과 인권 관련 법학입니다. 여기서는 제 맘대로 "사회적 자원에의 실질적으로 평등한 접근의 기회를 누리는 데 어려움을 겪는 집단"으로 정의하겠습니다. 분류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사회적 약자를 '질적', '양적'으로 구분합니다. 무슨 개념정의를 하든 사회적 약자는 '여성', '노인', '장애인', '외노자',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소득 낮은)', '비정규직', '농민(소득 낮은)' 등,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바로 그 집단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이 중에 대선투표권이 없는 외노자를 제외한 집단에서 박근혜가 문재인을 모두 이겼다고 합니다. 다만 지역 문제에 있어서 명백한 사회적 약자에 포함되는 '호남'에서의 승리는 별로 특별한 것이 아니라 여기는지 언급되진 않습니다. 수도권-지방의 구도 속에서 수도권에 비해 사회적 약자인 지방의 표심을 언급하지도 않으니(멘붕탓에)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결과를 접하고 흥분 잘하는 사람들은 감정섞인 반응을 보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너희를 생각해서 진보적인 정책을 내놨는데 우리를 멀리하고 박근혜를 선택하느냐는 겁니다. "국민이 개개끼"라고는 아직은 하지 않지만 멘붕을 핑계로 보편적 복지 하지 말고 모든 복지를 다 축소해 버리자거나, "민영화는 TK부터"라는 조롱섞인 구호를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사회적 약자를 위하겠다는 우리를 제쳐두고 왜 기득권 세력에 유리한 정책을 내세울 것이 분명한 박근혜와 새누리당을 지지하느냐는 겁니다. 물론 이런 감정적인 반응에 대해서 (5년 전과 완전한 판박이처럼) 민주당이 모호했다거나 좀 더 큰 민주당이 되지 못했다는 원론적인 비판을 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이러한 비판을 좀 더 제 맘대로 들여다 보면 이런 주장으로 생각됩니다. 

먼저 우리 국민들 중에 스스로를 진보-중도-보수 라고 생각하는 비율이 각각 30-40-30 인데, 민주당의 '선명성' 부족 때문에 "사실은 진보-중도-보수"가 아닌데 자신이 "진보-중도-보수"인줄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주장이 그 하나입니다. 예를 들어 원래는 진보적이라고 해야 하는 영수인데 민주당의 모호함 때문에 영수는 자신이 중도나 보수인 줄 착각한다는 겁니다. 

그 다음으로는(이 주장이 다수겠죠) 민주당의 모호함으로 인해서 자신을 진보라고 생각하는 30과 중도라고 생각하는 40이 민주당에게 표를 주지 않고 기권하거나 오히려 보수당인 새누리당을 찍는다는 주장입니다. 


지겨울 정도로 몇년 동안 민주당이 선거에서 패배할 때마다 반복되는 레파토리입니다. 한겨레신문이나 경향신문에서는 이명박 정권 출범 직후 심층 인터뷰를 통해 왜 민주당이 망했는가에 대해 분석을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위와 같은 분석은 단편적인 민주당의 실정으로 거론됐던 것들, 예를 들어 fta강행, 비정규직 확대, 양극화, 좋은 일자리 부족, 청년실업, 부동산값 폭등, 조변석개하는 교육정책 등에 대한 "한겨레나 경향이 하고 싶은 말을 인터뷰이를 통해 대신" 말하는 수준이었다고 평가합니다. 

분명히 '사회적 약자'나 '진보'라는 사람들을 담아내야 할 민주당이라는 그릇에 문제가 있다는 진단은 맞습니다. 하지만 "그렇다면 민주당의 문제가 무엇이냐"에 대한 질문에 대한 진보의 대답과 대안은 허접하기 그지 없습니다. 

생각을 아주 조금 더 깊이 하는 사람들은, 민주당 정권 치하에서 민주당의 실정으로 평가받는 위와 같은 정책이 '세계 경제'차원에서 벌어진 불가피한 것이었다고 합니다. 악의는 없었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대안은 '내수확대'라고 합니다. 대답과 대안 중에 가장 무책임하고 허접한데, 내수확대라는 '절대반지'를 찾은 것마냥 내수확대를 위해선 다수 국민의 가처분소득을 늘리기 위해 복지를 확대해야 하고 그러기 위한 로드맵을 쫘악 제시합니다. 그럴 듯 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민주당은 진보의 위와 같은 문제제기와 대안을 상당 부분 수용했습니다. 주식시장과 부동산에 꼬라박혀 있는 단위를 상상하기 어려운 돈을 끌어내기 위해 금융과 부동산에의 규제를 강화하겠다 했습니다. 여기서 재벌 규제도 연동됩니다. 부동산 버블로 돈이 효율적으로 돌지 않는다는 이유로 부동산값을 '안정화'시키지 않겠다는 시그널을 노골적으로 시장에 보냈습니다. 한마디로 부동산값의 하락을 '정책적'으로 추진하겠다고 읽힐 수 있습니다. 

4대강 22조를 아끼면 증세 없이 복지를 확대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부가세 10% 이상 올리지 않으면 민주당이든 새누리당이든 상관없이 핵심공약을 이행하지 못한다는 분석은 너무나도 많습니다. 22조는 한번 쓰고 말 돈이지만, 복지에 드는 비용은 대개 그렇지 않다는 걸 상기하면 당연한 소리입니다.

이제 좀 더 구체적인 생활 이야기도 해보죠. 진보의 '일자리 담론'을 충실히 수용한 민주당은 청년실업해소를 위한 각종 공약을 내놨습니다. 그러나 요즘 20대들은 똑똑합니다. 어차피 부모가 대부분 내는 등록금보다는 일자리 공약에 당연히 더 관심을 기울입니다. 그러나 20대들의 실제 욕구와 민주당과 진보가 생각하는 일자리 담론은 차이가 많습니다. 민주당이 추진하는 각종의 재벌규제, 특히 지배구조에 칼날을 겨눈 재벌개혁에 재벌이 대응하기 위해서는 당장 현찰이 필요하고, 그 현찰을 마련하기 가장 쉬운 방법은 사람을 줄여서 돈 아끼는 것이라는 걸 20대는 잘 압니다. 게다가 내년부터 세계 경제가 더욱 어려워져서 기업들이 신규투자를 꺼리는 상황도 잘 캐치하고 있습니다. 이 상황에서 민주당과 진보가 주장하는 '일자리 확대' 정책은 기껏해야 사회적 일자리나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입니다. 민주당과 진보가 주장하는 재벌개혁으로 당장 내년 대기업이 신규채용을 줄이고, 그 파급효과로 전체 신규채용 규모가 축소되어 좋은 직장 얻지 못할까 걱정하는게 오늘의 20대입니다. 대기업이나 좋은 일자리 가려는 것이 문제라고, 이명박처럼 일갈할 분들은 없으시리라 믿습니다.

또 다른 이야기도 해보겠습니다. 진보와 민주당이 좋아하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문제입니다. 요즘 중고교 현장에는 '임용고시'를 붙고 교사가 된 영어교사들을 화나게 하는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테솔이라는 간단한 과정만 밟으면 취득할 수 있는 영어'회화'강의 자격증을 가진 계약직 교사들을 모두 무기계약직 혹은 정규직으로 채용하려는 시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실제 됐는지 안됐는지는 모릅니다). 저 테솔이라는 과정을 밟아서 일선 중고교에서 영어회화를 가르치는 선생들은 대개 임용고시를 볼 실력도 안되지만 어학연수 1년 정도 갔다와서 테솔 이수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저들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물결에 승차에서 아주 편하게 정식 영어교사 자격증을 달라고 하는 겁니다. 임용고시를 붙은 사람들 그리고 임용고시를 보지 않았더라도 4년동안 대학을 다니며 영어교사가 되기 위해 교육받고, 교생실습도 나간 사람들이 겨우 획득한 영어교사 자격증을 '영어회화교사'라는 특이한 과목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손쉽게 획득하려 하는 겁니다. 이 밖에도, 영양교사라는 이상한 선생님들이 생겨나는 바람에(급식 배식 총책임자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이 사람들이 그래도 학생들에게 수업을 1번이라도 해야 교사로 인정받는다는 이유로 쓸데 없는 영양교육을 형식적으로 수업하는 등 별 일이 다 일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다른 이상한 사례도 많습니다만, 진보가 민주당의 문제라 지적했던 점을 민주당이 수용해서 추진하는 여러 정책들은 현실에서는 좀 이상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실제 사람들의 삶을 더 어렵게 만들 가능성이 농후한 정책들도 상당수 입니다. 



민주당이 모호했고 그로 인하여 잠재적 지지층이 배반투표를 한 것도 일정부분 맞습니다. 그런데 추상적인 이와 같은 문제제기와 그 대안을 구체화 시킨 몇 몇 사례를 들여다 보면, 뚱딴지 같은 일들이 참 많습니다. 

제가 안철수로 상징되는 새로운 정치세력이 지금의 민주당을 대체해야 한다고 주장한 까닭, 그리고 민주당에 진보담론을 공급하는 진보 지식인 집단(이 물갈이 될 수는 없으니)을 견제할 수 있는 새로운 진보 지식인 집단이 나왔으면 소망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문재인은 "사람이 먼저다"라고 했습니다. 정당과 정치세력이 하나의 독자적 유기체처럼 생각되지만, 이들도 사람이 모인 집단입니다. 핵심은 사람입니다. 사람이 바뀌면 정당도 바뀌고 세력도 바뀝니다. 70~80년대부터 지금까지 진보와 민주당의 담론을 주도하는 사람들은 사실상 같은 사람들입니다. 같은 경험, 같은 문제의식, 같은 생각, 같은 정서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단적으로 말해, '특정(정치)인 영웅 만들어 신격화하기'와 같은 (지금의 정서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가며 자위하는 사람들입니다. 이정희를 진보의 아이유로 칭송하다 갑자기 진보의 폐기물로 격하시킬만큼 정파적인 사고에 익숙한 사람들입니다.

결국 사람이 먼저다, 맞습니다. 그러나 "문재인이 문제"였습니다. 그리고 그 문재인을 내세운 민주당이 문제였고, 민주당의 구성원이 문제였으며, 민주당을 견인한 시민사회에 진보 지식인들도 문제였습니다. 

기업에선 정년제가 있기 때문에 50대 즈음 되면 희망퇴직하거나 임금 피크제로 적은 돈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정계, 시민사회계, 학계에는 정년이 없습니다. 새로운 진보 담론의 창출은 당연히 새로운 사람들에 의해 가능합니다. 그러나 진보세력, 민주당은 새누리당의 이준석 같은 사람이 절대 나올 수 없는 구조입니다. 오히려 이준석을 비아냥대지 않으면 다행일 지경입니다.


왜 사회적 약자가 박근혜를 선택했을까요. 사람이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세상과 새로운 사람은 같은 말입니다. 새 시대는 새 사람들에 의해 가능합니다. 문재인이 아이패드로 트위터한다고 새로운 시대를 견인할 새 인물이 되지 않습니다. 조국이 트위터에 묵언하겠다고 선언한다고 조국이 뉴밀레니엄에 조응하는 사람이 될 순 없습니다. 김어준의 나꼼수가 수백만 애청자를 거느렸다고 그 플랫폼을 가능케 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김어준이 창출한 것이 아닙니다.

새로운 세상과 새 시대는 새로운 사람들의 새로운 생각과 방식으로 가능합니다. 여기에 정치는 현실이니만큼 새로움을 구현할 능력이 필요합니다. 이 모든 것을 민주당 '세력'은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새누리당에게 모두 빼앗기지 않으면 다행입니다. 

미국 민주당이 중도층을 잡기 위해 복지를 '투자' 차원에서 접근하는 건 많이들 들으셨을 겁니다. 미래에 대한 투자 차원에서 학교와 도서관을 더 짓고, 교육에 투자해서 사람을 길러내는 데에 아낌 없이 투자합니다. 비판도 많지만 클린턴은 커뮤니티 칼리지에 뚜렷한 업적도 남겼습니다.

이처럼 교육복지는 진보의 영역입니다. 그런데 단적으로 이준석같이 '교육벤처'한다는 사람이 민주당 대신 박근혜와 새누리를 선택했습니다. 더 심각한 것은 진보와 민주당은 교육에 있어서 3류도 아니라 4류, 5류도 아닌, 도대체 무슨 짓을 자신들이 하고자 하는지도 자각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무상급식 하나 해놓고 마치 세상을 다 바꾼냥 행동합니다. 초중고-대학-포스트 대학-평생교육으로 이어지는 복잡한 플랜은 "평등 교육"으로 퉁치며 **이념적**으로 접근합니다. 이게 뭣 때문일까요. 다 사람이 문제입니다. 낡은 사람들이 낡은 생각으로 진보판 전체를 후지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렇게 반문할 사람이 분명히 있을 겁니다. 박근혜는 박정희의 딸이다, 이 사람이 더 큰 문제 아니냐, 얘가 무슨 새로운 인물이냐. 

하지만 세상에는 새로운 세상, 새 시대를 꿈꾸는 사람만 있지 않죠. 새로운 뭔가를 하겠다고 세상을 휘저으며 혼란스럽게 하면 그와중에 가장 큰 피해를 입는 사회적 약자들이 문재인과 민주당이라는 최악 대신 박근혜와 새누리라는 차악을 선택했다고 자성해야 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