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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친노의 종류도 꽤 다양합니다. 핵심 친노, 참모 출신 친노, 친노 의원, 486친노, 범친노등등.. 나름 조금씩 다릅니다. 핵심 친노야 노무현과 오래토록 함께 해온 이광재, 안희정등을 지칭하는 것이고 참모 출신은 참여정부 출범 직후, 청와대에서 한자리씩 맡은 이들을 지칭합니다. 486친노는 탄돌이들이고 계파를 옮겨타는 특성이 조금 있구요. (탄핵 총선 이전) 친노 의원들은 김대중 시절 비주류였던 이들이 노무현과 뜻을 같이 하면서 탄생된 이들이라 봐야되겠죠. 이해찬, 한명숙등이 대표 인사로 보면 될 테구요. 범친노는 친노계와 사이가 좋은 정세균계나 시민단체 출신등을 지칭합니다. 물론, 핵심친노를 제외하고는.. 간혹 친노에서 다른 계파로 갈아타는 경우도 있습니다. 최근 친노들의 활약상(?)을 보자면, 청와대에서 한자리 맡았던 비서관 출신들이 4.11 총선에서 대거 공천되었다는 점이고 혁통 출신들도 친노+범친노 계열이라고 봐야겠죠.

친노중에 청와대 출신들이 적잖게 섞여있는데 이들은 일단 아마추어이자 정치 낭인들이 많습니다.  대표적으로 김해을의 이봉수와 이백만이 있겠네요. 더불어 최근 물러나겠다고 발표한 문재인 캠프의 친노 인사들도 청와대 참모진들이 많습니다. 더불어 이들은 경선이나 총선에서 떨어진 이들로 구성되었죠. 한마디로 노무현 시절의 무능력한 정치 낭인들을 그대로 안고 간 셈입니다. (개인적으로 김경수는 아주 좋게 봄) 참고로 참여정부 청와대 출신 18명이 4.11 총선에서 공천을 받았습니다. 상당한 수치죠. 범친노까지 합치면 총선 공천의 30%를 훌쩍 넘기는 수치가 친노계로 알려져있죠.(언론사마다 분석이 조금씩 다릅니다만 최대 40%라고 보는 언론도 있고 30%로 보는 언론도 있습니다. 이는 범친노의 기준이 조금씩 달라서 그렇다고 보임)  이런 와중에 주로 구민주계 인사들 몇이 공천 학살을 당하고 그 자리를 친노출신이 차지하기도 했습니다. 그랬기에 '보이지 않는 손, 친노 패권주의' 라는 내부 비판이 많았고 지지층에서 여론이 안좋았던 겁니다. 참고로 4.11 총선 이전의 친노계는 범친노를 합쳐도 10명정도 수준이었습니다. 노무현 서거 효과로 화려하게 부활한 셈이죠.

현재 민주당 내에서 친노를 흔드는 것은 계파 싸움, 권력 싸움일 뿐입니다. 즉, 친노를 흔드는 이들의 속내가 마냥 순수하진 않다는 거죠. 권력 다툼이 목적일 뿐, 그들이 뱉는 레토릭들은 실질적인 이유는 아니란 겁니다. 그렇기에 그들 역시 좋게 보이지는 않다는 거죠. 그리고 박지원이 무슨 친노냐? 라며 광분하는 친노 팬들을 보는데 그냥 황당한 수준이에요. 박지원은 당연히 친노 아니죠.. 박지원에게 물러나라는 것은 그 포인트가 다른 겁니다. 당권을 장악한 친노를 최우선 타겟으로 삼고, 구색맞추기로 엮여진 이들까지 다 물러나게끔 만들어야 그나마 '명분'의 모양새를 갖추는 거니까요. 즉, 쇄신과 물갈이라는 명목하에 박지원까지 엮은 것일 뿐, 진짜 목표는 친노라는 얘기예요. 추미애나 기타 비친노 인사들은 실상.. 친노 일색인 지도부에 구색 맞추기 수준으로 들어간 것 뿐입니다. '친노만 물러나라' 라고 하면 당연히 속보이는 짓이니 '모두 물러나라' 라는 명분으로 작업을 하는 거죠. 물론 핵심은 친노지만.

여튼 제발 일부 노무현 팬들의 헛소리들은 이제 그만 봤으면 좋겠습니다. 하다하다 이제 친노가 없다는 헛소리들까지 해대니.. 이거야 원;;;; 그리고 결국 당권력의 핵심은 여당일 경우 대통령 직계, 야당일 경우 당대표와 관련된 계파가 핵심이 되는 겁니다. 박지원과 추미애등이 섞인건 구색 맞추기에 가깝다는 것이죠. 결국 대선 후보 캠프에 친노들로 구성이 되었다는 게 이를 방증하는 겁니다. 대선 후보 캠프의 핵심 인사들은 정권을 잡을 시, 권력의 핵심이 될 소지가 가장 높은 인물들이거든요..

그리고 하나 덧붙이자면 그놈의 남탓도 그만들 좀 하세요.. 조중동 탓, 국민 탓, 새누리당 탓, 호남 탓, 뉴라이트탓, 관료들 탓.. 가만 보면 이명박보다 더 남탓을 많이 하는 게 노무현 팬들입니다. 참여정부 시절에 인터넷 여론과 방송 3사중 MBC, KBS는 노무현에 우호적이었습니다. 인터넷이야 추후 돌아서긴 했지만요. 김대중은 더 열악한 환경이었어요. 노무현은 정말 좋은 환경을 스스로 날려버린 무능함의 산물인데 어찌해서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는지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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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실 노무현 지지자들과 논쟁을 하면 상당히 피곤해집니다.
어떤 팩트에 대해서 제대로 아는 것 없이 막 질러대는 경우가 흔하죠..

1. 촛불 시위와 노무현
-> 가장 우스웠던 것중 하나가 바로 촛불 시위 당시, 이명박을 독재자로 칭하면서 노무현이 그립다며 설쳐대는 노무현 팬들이었죠. 우습게도..... 물대포 구입을 가장 많이 했던 정부가 참여정부 였으며, 사용 빈도도 가장 높았습니다. 김영삼과 김대중은 각각 1회 사용으로 알고 있는데 김대중은 조계종 사태 진압할 시에 사용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여튼, 한겨울에 새벽 1시에도 물대포를 퍼붓던 게 노무현 정부였습니다. 더구나 테이저 건의 최초 도입도 노무현 정부였죠. 심지어... 시위 진압에 '군부대를 투입' 하기도 했습니다. 이는 전두환 이후 처음이자 (아직까지) 마지막입니다. 아마 이명박이 했다면 희대의 독재자라 비판을 했겠죠. 아이러니하게도, 노무현이 인권을 생각했다는 말은 이런 측면들을 볼 때 꽤나 우습게 보이죠.. 딱 하나 이명박과의 차이점은 있습니다. '노무현은 사과를 했다' 라는 것이죠. 노무현 지지자들은 이걸 꽤나 중시합니다. 노무현의 의도는 그러지 않았다. 노무현이 아니라 관료들 잘못이다. 노건평 잘못일 뿐이다. 등등의 흔한 레토릭중 하나로써, 그래도 대통령이 사과를 하지 않았느냐? 라는 것에 방점을 찍어버립니다. 그럼으로써, 노무현의 과격한 시위진압은 묻어버리는 것이죠..

2. 고 남상국씨
-> 노무현은 티비 생중계 도중, 남상국씨를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발언을 합니다. 최고권력자가 권력을 이용해서, 자신의 형을 옹호하고 국민 개인을 비난한 꼴이죠. 남상국씨는 그로 인해 자살을 해버렸죠. 사실상 노무현이 죽인 겁니다. 그렇게 욕을 많이 먹는 임태훈보다 더 심한 잘못이라고 봐야죠.. 한가지 특기할 건, '피의사실공표'라는 범법행위까지 노무현이 저질렀다는 것이죠. 결국, 노건평이 직접 돈을 요구했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죠. 임태훈을 그렇게 욕하는 심리라면 노무현은 더 욕을 해야 맞을 겁니다. 한가지 또 웃기는 점은, 한명숙 관련, 그리고 노무현을 수사하던 검찰의 행보에 대해서는 '피의사실공표'라며 무수한 비판들을 쏟아냈다는 것이죠. 정작 자신의 주군이 몸소 실천했던 그것을.. 막상 주군이 당하게 되니 광분을 하던 노무현 지지자들이 많았다는 것.  헌데 기실, 검찰의 정치인에 대한 '피의사실공표'는 일종의 관행처럼 행해진 측면도 있습니다. 허나, 대통령 개인이 자신의 친인척 비리를 옹호키 위해 그런 건.. 노무현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죠.

3. 구민주당은 즐~ 한나라당은 콜~
-> 그 유명한 대연정, 대북특검시 한나라당에 주는 선물, 박근혜에게 통일부 장관 제의, 박근혜를 대연정의 상대로 인정하며 총리직을 내놓겠다던 노무현. 최근 박근혜가 노무현 묘소를 참배하니 다들 생난리를 쳐댑니다. 헌데 이것도 개그콘서트이죠. 노무현은 박근혜에 여러차례 러브콜을 보냈습니다. 모두 거절을 당했지만요.. 5공인사를 영입하고 선거운동을 하며 '나를 승리지상주의자로 불러도 좋다' 던 유시민의 모습을 보면 참 아이러니했죠. DJP연합을 그렇게 비판했던 인물이 어느 틈에 승리지상주의자로 변모한 겁니다. 독수리5형제부터 시작해서.. 대연정까지, 이런 이율배반적인 모습이 무수히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구민주당은 절대 안된다! 라고 부르짖었죠. 거기에 덧붙여 노무현 팬들은, 노무현을 비판하는 야당성향을 무조건 새누리당,동교동계 지지자로 몰아넣습니다. 그들 특유의 흔한 스킬인 라벨링이죠. 김근태 지지자라고 무수히 밝혔어도 안통합니다. 그렇게 동교동계 지지자로 몰아넣어야 정신승리를 할 수 있다는 마인드에 가깝겠죠.

이율배반과 남탓. 실상 친노와 그 지지자 노빠들의 이런 행태는 새누리당에 못잖은 수준이에요.

 


1. 대북 송금 폭로
-> 대북 송금은 대선 3개월 전 쟁점화 되었습니다. 국내에서 처음 제기한 인물은 한나라당 엄호성입니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6.15 정상회담 직전에 현대상선이 4억달러를 북한에 비밀 송금했다는 것이 그 골자였습니다. 즉, 돈을 주고 '남북정상회담을 샀다는 것이죠.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089280


2. 최초 발설자
-> 2002년 3월 미의회에서 처음 공개되었습니다. (관련 정보 취득은 00년말~01년초로 추정) 이어 월간조선 2002년 5월호가 이 내용을 보도하고, 9월 한나라당의 엄호성등이 문제 제기를 했습니다. 당시 정황상(북핵 문제 발발) 부시 정부의 의도적인 행위(대북 강경책, 남한 압박, 햇볕정책 견제등)로 보는 의견이 유력합니다. 참고로 북핵문제가 발발되었을 시, 국내 언론을 제외.. 해외 유력 언론들 절대 다수는 부시의 강경책을 가장 큰 원인으로 꼽았습니다. (조중동은 햇볕정책 탓) 김용옥은 최초 발설자가 미의회조사국이었다는 점을 주목하라면서 '발설자의 배후조종세력들이 남북간 경제협력의 직접적 대화채널을 달갑게 생각하고 있지않다는 것을 입증한다는 것이다.' 라고 주장했습니다.
http://hccnojo.org/zb41pl2/bbs/zboard.php?id=board002&no=1638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47&aid=0000024198


3. 대북송금의 성격
-> 한나라당측은 '정상회담의 대가' 라고 공격을 했습니다. 김대중과 현대측은 '7대 경제협력사업의 대가' 라고 주장을 했구요. 대규모 개발사업의 독점권을 30년간 현대에 보장한다는 것이죠. 특검은 최종적으로 대북송금의 성격을 '7대 경협사업권에 대한 대가' 라고 규정했습니다. 간단히 부연하자면, 중요한 군사요충지였던 개성에 공단이 건설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두마리 토끼(자본주의 유입 + 군사 요충지 제외)를 동시에 잡아낸 것이죠. 전국경제인 연합회의 한 보고서는, 개성공단 착공 8년차까지 경제적 효과를 총 569억달러로 추정했습니다..
http://moveon21.com/?document_srl=506789


 4. 햇볕정책은 무엇인가?
-> '북한에 자본주의를 유입시켜 통일비용을 줄이는 것' 이 최종 목적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화해 무드로 인한 경제, 안보의 효과는 부수적인 것에 가깝습니다. 햇볕정책은 독일의 실패 사례(막대한 통일비용으로 인한 경제 침체)를 참고하여 만들어진 정책입니다. 그렇기에 급작스러운 통일, 북한의 체제 붕괴는 오히려 남한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판단, 서서히 자본주의를 유입시켜 북한의 체제를 변화시키고 개방을 유도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삼았습니다. 최종적으로는 경제적 격차를 줄여서 통일 비용을 줄이는 것이구요. 참고로 현재 남북의 통일비용은 독일과 비교 불가능할 정도로 천문학적인 액수로 추정됩니다.
 http://media.daum.net/foreign/others/view.html?cateid=1046&newsid=20120131201807974&p=yonhap


5. 노무현의 대처
-> 당선자 신분이었던 노무현은 2003년 1월 18일, 소신 수사를 주문합니다. 즉, 대선때 쟁점이 되었던 사안을 대선 후, 재쟁점화합니다. 1월 30일, 현대상선이 산업은행으로부터 대출받은 4천억원중 2천235억원을 대북송금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이에 대해 김대중은 사법심사가 부적절하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참고로 같은 날, 임동원(김대중 측근)과 이종석(노무현 측근) 대북특사가 김정일을 면담하지 못하고 돌아오기도 했습니다. 2월 14일 김대중의 대국민 담화와 임동원의 해명이 있었습니다. 5억달러 송금은 현대측에 의해 이루어졌고 모두 상업적인 거래이며, 이중 2억달러의 송금은 국정원이 편의를 제공했다고 공개했습니다. 김대중은 대북송금을 알고 있었다는 내용으로 담화문을 발표했습니다. 국정원장이었던 임동원은 2억달러의 송금, 편의제공을 대통령에게 보고하지 않았다고 밝혔구요.(노무현의 자서전에서 문재인은 이 부분에서 특검 수용에 대한 변명을 했습니다.) 감사원은 2억달러라고 발표했고 김대중측은 5억달러라는 차이점이 존재했죠. 참고로 노무현은 당선자 시절 '정치적 고려 없이 사실을 규명해야 하며 털고 갈 수밖에 없다' 는 말을 해왔다고 합니다. 지극히 정치적인 행위에 대해 정치적인 고려를 배제하겠다는 노무현의 아마추어리즘 혹은 순수함, 이상적인 성향이 잘 드러나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0313286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2&aid=0000003407
http://www.hani.co.kr/section-003000000/2003/01/003000000200301302243274.html

 


6. 특검 수용의 과정
-> 2월 4일 노무현의 측근인 이상수는 교통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특검을 수용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이상수는 인터뷰 전, 문재인(민정수석)을 만난 것으로 알려졌는데 덕택에 노무현의 의중이 반영되었다는 관측이 흘러나오기도 했습니다. 또한 특검법 수용을 앞두고, 문재인은 김대중의 대국민사과와 임동원등의 해명에 대해.. '충분하지 않다고 보니까 특검이 나온 것 아닌가요. 저 또한 충분하지 않다고 봅니다. 이번 특검이 국익에 손상을 준다는 하는데 과연 얼마나 손상이 오는지 그 내용을 모르겠어요..' 라는 발언을 함으로써 특검 수용에 무게를 두기도 했고 김대중의 사법처리 가능성까지 시사했습니다.
http://shindonga.donga.com/docs/magazine/shin/2003/03/25/200303250500003/200303250500003_1.html

또한, 3월6일 노무현은 13명의 개혁진영 원로들에게 특검법에 대한 의견을 구했습니다. 참석자 대부분(함세웅신부와 김지길목사, 청화스님등)이 특검 거부를 요구했으나  류강하신부는 '대구·경북 여론은 특검제를 실시하자는 것이다. 노 대통령의 처지가 안타깝지만 특검을 수용해 정면돌파를 하는 게 노무현답다는 여론이 많다' 라며 특검 수용의 입장을 밝혔습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4&oid=036&aid=0000001353

3월14일 임시 국무회의에서 의견을 밝힌 장관은 모두 7명인데 이들 가운데 정세현(통일)·강금실(법무)·한명숙(환경)·지은희(여성)·윤진식(산자)·김영진(농림) 장관 등 6명이 특검법 거부를 주장했으나 PK출신인 허성관(해수부)은 '거부권을 행사하면 정국이 파탄난다. 상생의 정치를 해야 한다' 며 특검법 수용을 주장했습니다. 당시 정국은 대북특검과 고건 총리 내정자에 대한 한나라당의 인준 거부가 주요 쟁점이었습니다. 한나라당은 이 두가지 카드로 청와대를 압박했었죠. 당시 여당인 민주당은 조건부 거부권을 행사할 것을 당론으로 채택했고 노무현에게 건의했습니다. 주로 신주류(친노)측에서 수용의 의견이 있었으나 그 외 절대 다수는 특검 거부를 주장했습니다. 참고로 참모회의에서는 특검 수용이 우위였고 국무회의에서는 특검 거부가 우위(6:1)였습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4&oid=036&aid=0000001353



7. 특검법 수용 & 반응
-> 3월 14일, 임시 국무회의에서 노무현은 국무회의의 반대 여론을 뒤집고 '수용을 하십시다' 라는 한마디로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그는 '야당에 신뢰를 주고 약속한 바대로 야당이 법을 수정한다고 하니까, 그걸 믿읍시다. 도박같은 결단이라고 볼 수 있을지 모르지만 신뢰를 위한 정치를 해보고 싶습니다' 라며 특검 수용의 변을 밝혔습니다. 기실 여당과 국무회의, 각종 진보단체, 사회원로, 호남&지지층의 요구를 독단적으로 뒤집은 행동이었습니다. 수용을 주장했던 부류는 참모회의, 영남, 한나라당 지지층이었죠. 즉, 지지층이 아닌 반대층의 여론을 배려한 결단이었습니다. 이는 참여정부 내내 노무현의 일관된 행동이기도 했습니다. 지지층이 아닌, 반대층.. 한나라당이나 영남, 재벌을 배려하는 정책이나 발언들이 많았죠. 좋게 말하면, 어설프게 상생(이상)을 꿈 꾼 아마추어였고 나쁘게 말하면 자신의 컴플렉스였던, 영남 구애에 집착했다고 보여집니다. 참고로 당시 신주류였던 의원들조차 뜻밖이라는 반응이었고 한나라당에서도 의외라는 반응이 많았습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4&oid=036&aid=0000001353

한나라당은 다음날 오전 긴급 의총과 최고위원회를 소집할 정도로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또한 막후 창구 노릇을 했던 한나라당의 김영일 사무총장은 '민주당의 수정제안을 놓고 의총과 최고위원회의를 긴급 소집해 강경파 의원들을 설득하겠다는 게 지도부의 판단이었는데, 대통령이 전격 수용을 발표할 줄은 몰랐다' 며 당황스런 반응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한나라당 입장에서는 민주당의 수정제안을 받아들이려고 했는데.. 노무현이 수용을 선언하면서 도루묵이 된 셈입니다. 즉, 한나라당이 양보하려던 찰나.. 노무현이 판을 엎어버렸으니 이게 웬 떡인가 싶을 정도로 황당+환호의 두가지 반응이 존재했던 것이죠. 전여옥은 하란다고 정말로 할 줄 몰랐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죠. 아마 이것이 (한나라당에서) 노무현을 호구(?)로 보게 된 첫 스타트 지점이 아닐까 합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8&aid=0000012116


8. 특검의 수사 결과 
-> 5억달러중 1억달러는 정상회담 대가성의 성격이 있고 김대중도 대북 송금을 인지하고 있었다고 수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송두환 대북송금 특별검사팀은 '1억달러는 정책적 차원의 대북 지원금 성격' 이며 '정상회담의 대가' 로 봐서는 안된다' 고 밝혔습니다. 또한 '1억달러가 정상회담과 연관성이 있기 때문에 대가성이 있다고 볼수 있을지 모르지만, 돈으로 정상회담을 사고판다는 의미에서 대가성이라고 한다면그것은 잘못된 생각' 이라고 말했습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0&oid=028&aid=0000018806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8&aid=0000018666

특검은 수사 초기부터 줄곧 밝힌 형사처벌 최소화 원칙에도불구하고 구속기소자 3명, 불구속 기소자 5명등 모두 8명을 법정에 세웠습니다. 박지원은 대북송금과는 무관한, 뇌물수수 혐의(현대비자금 150억원 혐의)로 사법처리됩니다. 2003년 6월, 특검에 구속된 후 3년여만에 박지원은 대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게 됩니다. 참고로 박지원은 1년 5개월동안 수형생활을 했습니다. (중간에 보석으로 출소) 다른 관계자들은 그 전에 사면 복권되었습니다. 또한 박지원은 주암회(6.15회담 당시 수행원들의 모임)의 운영경비로 받은 1억원의 혐의에 대해서는 인정했습니다. 7천만원은 주암회의 간사인 손길승 SK 회장이 주암회 경비로 쓰라고 준 것이고, 3천만원은 고(故) 박정구 금호그룹 회장이 재임시절에 도와주지 못해 미안하다며 비서실장 퇴임 무렵에 수표로 준 것이라고 시인했습니다. 참고로 박지원의 1억원 수수는 개인용도로는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징역 3년과 추징금 1억이 선고되었습니다. 3년형을 선고받은 후, 2006년 5월~11월까지 수형생활(총 수형생활 2년)을 했으며 11월 초 지병인 녹내장과 관련한 치료가 필요해 3개월간 형 집행정지 결정(주거지 제한)이 내려졌습니다. 이후 2007년 2월 특별사면조치로 형집행이 면제되었고 2007년 12월 복권되었습니다. 당시 6월 박지원은, 김대중 특사로 대북 방문을 할 예정이었는데 금고형을 선고받게 되면서 무산됩니다. 결국 노무현은, 김대중 시절의 대북 전문가들, 인맥들을 전혀 활용치 못하는 우를 범하게 된 것이죠. 추후엔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습니다만...;;;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0&oid=028&aid=0000018667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333631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851447


9. 특검의 영향
-> 남북간 화해의 분위기가 급속하게 냉각됐으며 대북관계의 주도권이 다시 미국으로 넘어갔습니다. 대북특검 후 한동안  남북관계는 한걸음도 앞으로 나가지 못했고 북핵이라는 국제적 위기가 지속되는 사태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국내정치만을 고려한 근시안적인 판단이었던 겁니다. 추후 이 문제를 해결한 이는 김대중이었습니다. 대북특검으로 망친 남북관계를 스스로 풀지 못하고, 결국 김대중의 도움을 요청하게 된 것이죠. 국내정치에서는 지지층의 이탈과 대선 패배 후 지리멸렬했던 한나라당이 기사회생했습니다. 또한 대북특검 수용의 실익은 전혀 없었습니다. 남북관계가 악화되었고 한나라당에 호구 잡히는 삽질만 하게 된 셈이었죠. 참고로 특검 수사 전과 특검 후의 여론이 많이 바뀌기도 했습니다. 지지 성향에 따라서 수용여부 여론이 갈렸지만 남북관계 악화를 체감하면서 전체적인 여론이 바뀌게 된 것이죠. 결국, 전술했듯.. 정치적으로도 악수였고 아무런 득도 없었으며 실만 넘쳐나는 판단이었습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330693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36&aid=0000004269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47&aid=0000039689

 
10. 문재인의 변명
-> 노무현의 자서전인 '운명이다' 에서 문재인은, 통치행위론을 근거로 특검 수용의 변을 들었습니다. 간단히 말해, '김대중이 대북송금을 몰랐다고 했으니까 특검을 수용할 수 밖에 없었다'는 입장이었죠. 헌데 특검 당시, 전술했듯.. 문재인의 인터뷰나 정황, 측근들의 반응들을 보면 '통치행위 인정여부' 때문에 수용했다는 핑계는 초라해보입니다. 특검 직후 유인태(정무수석)는 한나라당 당사에 찾아가 '특검 수용같은 큰 선물을 드렸으니 앞으로 잘 부탁한다' 라는 발언까지 했죠.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9&aid=0000292216
http://shindonga.donga.com/docs/magazine/shin/2003/03/25/200303250500003/200303250500003_1.html

문재인은 신동아와의 인터뷰(특검 수용전)에서 김대중의 사법처리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습니다. 문재인의 말대로 '통치행위론을 내세워 특검 거부' 를 했다고 해도 여론이 달라진다거나 한나라당의 공세가 약해질 가능성은 없었습니다. 어설픈 명분일 뿐이었죠. 또한 김대중은 대국민담화(2월 14일)를 통해 '정부는 남북정상회담 추진과정에서 이미 북한 당국과 많은 접촉이 있던 현대측의 협력을 받았습니다. 현대는 대북송금의 대가로 북측으로부터 철도, 전력, 통신, 관광,개성공단 등 7대 사업권을 얻은 것입니다. 정부는 그것이 평화와국가이익에 크게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실정법상 문제가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수용했었습니다.' 라고 말을 함으로써 자신이 인지하고 있었음을 표명했습니다. 김대중은 대국민담화문에서 구체적인 액수를 밝히지는 않았습니다. 추후 보충해명에서 임동원은 국정원이 '외환은행에서 환전에 필요한 절차상의 편의를 제공했고 6월9일 2억달러가 송금되었다'고 말했는데 이 부분에서 상부에 보고치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즉, 2억달러의 송금에 국정원이 편의를 제공했으나 이 부분은 김대중에게 보고하지 않았다고 밝혔던 것이죠. 결국 문재인의 변명은 왜곡된 겁니다. 김대중은 분명 인지를 했다는 내용으로 담화문을 발표했고 임동원의 보충해명에서 누락된 사실 하나(2억달러 편의제공)가 존재했던 겁니다. 대북송금 그 자체에 대해서는 김대중 자신이 인지했음을 스스로 밝혔던 겁니다. 김대중이 모른다고 했다는 문재인의 말은 왜곡됐다는 것이죠.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18&aid=0000006166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15&aid=0000591804

또한 문재인의 변명이후, 노사모등의 게시판에서는, 검찰수사보다는 특검이 낫다며 선동하기도 했는데 이는 왜곡에 가깝습니다. 일단, 노무현은 당선 직후부터 검찰 수사를 주문해왔습니다. 또한 노무현측은 검찰은 특검을 받을 각오로 수사해야 한다며 검찰 수사를 강력히 주문하기도 했었죠. 헌데 고건 총리 내정자에 대한 한나라당의 인준 거부 방침을 계기로 입장이 바뀝니다. 이는 유인태의 선물이라는 말과 노무현의 상생과 허성관등의 발언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참고로 당시 검찰은 초기에 수사를 진행하다가 김대중의 대국민 담화후, 수사유보를 결정합니다. '김대중이 해명했고 남북관계에서 중대한 사안이니 선 정치적 해결, 후 수사착수라는 원칙을 유지하겠다' 고 밝혔던 거죠. 이 말은 한마디로 수사의 부담감이 너무 크니 정치권이 답을 내놓아라. 라는 말과 같다고 봐야됩니다. 당시 수사팀 관계자는 검찰 수사를 진행했더라도 ' 현대상선 관련자들을 배임 혐의로 형사처벌하는 선에서 끝낼 생각이었으며 대북송금 자체는 기소유예 정도가 적당한 것으로 판단했다' 고도 말했습니다. 또한 서울지검 고위간부는 '통치권자가 국가적으로 민감한 사안을 해명까지 했으니 특검수사 등으로 사건을 확대시키는 것은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고도 말했습니다. 검찰은 정치적 해결을 원했다는 것이죠. 아마 특검이 아닌 검찰 수사로 갔다면 정치적인 부담을 느껴 최소한의 선에서 수사를 마무리했을 가능성이 훨씬 높았다고 봐야죠. 더구나 대통령 입장에서는 검찰을 통제하기가 훨씬 쉽습니다. 굳이 통제치 않더라도 알아서 눈치를 보기 마련이죠. 더구나 정권계승이었기 때문에 검찰 내부에 반대 세력이 많았다고 볼 수도 없습니다. 참고로 감사원역시 검찰과 비슷한 취지로 책임추궁에 대해 유보입장을 밝혔습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4&oid=036&aid=0000002016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5&aid=0000137692

노무현이 특검을 수용하면서 했던 발언과 일련의 과정들을 보면 오히려 '한나라당과의 상생, 영남지역의 여론 고려' 가 더 설득력이 있어 보입니다. 또한 전정권과의 차별화를 통한 전국정당화(탈호남색)를 노린 정치적 판단으로도 보여지구요. 기실 노무현은 대통령 이전부터 '지역주의 극복' 에 가장 열성적인 정치인이었고 당선 직후에도 차기(1년후) 총선에서 전국정당화를 최우선에 두고 있었습니다. 방법론에 있어 영남 포위론이 아닌, 영남 구애론을 택했던 것이고 이는 참여정부 내내, 퇴임후에도 일관적인 모습을 보였습니다. 측근 친노들도 마찬가지구요. 작금의 분위기는 '타도 한나라당'이라지만.. 우습게도 현재의 야권 세력중 특히 영남+친노정치인들은 예전부터 '한나라당과의 상생'을 수차례 제기해왔습니다. 대북특검이나 분당, 대연정등 노무현의 여러 정치적 행보들은 이런 맥락이 적잖게 작용을 했던 것이구요..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10831025031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9&aid=0000292216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47&aid=0000032032


11. 특검과 노무현
-> 문재인의 변명이 초라한 또다른 이유는, 노무현은 추후 여러 사안에서 특검을 거부합니다. 측근비리 특검은 거부했다가 재의요구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차떼기 특검은 거부 의사를 밝혔고 유야무야 되어버렸죠. 삼성 X파일은 줄곧 거부 의사를 밝혀오다가 압도적인 여론과 국회의 대응 탓에 수용으로 입장을 바꿨습니다. 이런 노무현의 행보는 대북송금 시절과 비교해보면 추해보일 정도로 명분이 약했습니다. 한마디로 국민의 여론이 정파를 막론하고 특검 수용을 원했음에도 자신의 고집대로, 특검을 거부하거나 거부의사를 밝히는등 촌극을 벌였던 겁니다. 일관성도, 진정성도 없는 이런 행보를 감안하면 문재인의 핑계는 꽤나 초라해보입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15&aid=0000663438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09&aid=0000640515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19&aid=0000045070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15&aid=000067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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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자칭 '친노' 유시민과 그의 광적인 팬들(유빠)

 

"유시민이 편하게 정치하려고 했으면 민주당에 들어갔겠죠"
라는 헛소리를 종종 봅니다. 마치 유시민을 어려운 길, 고난의 길을 가는..
선지자처럼 묘사하면서 유시민과 그 팬들 특유의 '피해자 코스프레' 로 세팅을 해대죠.

일단 유시민이 민주당을 나간 이유는 (지 입으로) "진보 정치를 할 공간을 찾아 떠난다" 였습니다.
희대의 뻘소리였죠. 진보와는 거리도 멀고, 우리당 정치인중 진보를 가장 짓밟았으며..
복지부 장관 시절에도 시장주의에 충실한, 의료민영화의 초석을 다졌던 놈이거든요.

결국, 유시민의 뻘소리(진보정치 공간). 그 결과물은, '선거조작집단의 우두머리' 로 귀결이 됐지요..

여튼.. 유시민은 기실, 민주당을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당 계파중에 유시민과 사이가 좋은 계파는 없습니다. 아니 오히려 유시민이라면 학을 떼는 (야권)정치인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그 이유야 잘 알려져있죠. 줏대도, 신념도 없이.. 오로지 노무현을 쉴드치고 노무현과 대립각을 세우는 정치인들을 모조리 짓밟아댔습니다. 촉새처럼 시도 때도 없이, 사방팔방 참견하고 한마디씩 던져대는 스타일이죠. 파병 투표에서는 김근태에게 반대를 찍으라고 꼬셔놓고 자기는 찬성표를 던지는 어처구니 없는 행위도 있었구요. 뭐 나열하자면 무수히 많습니다만...

강금원에 의해서 밝혀진 바로는, 최측근 친노들도 유시민을 좋게 보지 않는다는 겁니다. 심지어 노무현조차도 못마땅했다. 라고 얘기를 했죠. "남을 위한 정치를 해야지, 나를 위한 정치를 해서는 안된다" 라는 맥락으로 유시민을 비판했었습니다. 이게 바로 노무현과 최측근 친노들의 유시민에 대한 시각이라고 봐야죠. 즉, 유시민은 그 주변에 아무도 없습니다. 정봉주? 정청래? 천정배? 김근태? 정동영? 박지원? 박영선? 모두 유시민과 사이가 안좋습니다. 김근태는 유시민 얘기만 나오면 고개를 저을 정도로 싫어했다고도 알려져있죠.. 본래 이해찬 비서로 정계에 입문을 했기에 그나마 남는 인물이 이해찬입니다. 그리고 한명숙 재판에 꼽사리 몇번 끼면서 한명숙과도 어느정도 관계를 유지했던 듯 보이고.. 문재인은 워낙 사람 자체가 좋다고 보기에, 문재인과도 나쁜 관계는 아닌 걸로 보입니다.

즉, 손학규가 대표를 먹고 이해찬이 탈당하면서 '끈 떨어진' 유시민도 개털 신세였어요. 당시는 '친노는 폐족이다' 라는 말이 퍼져있던 시절이기도 했구요. 즉, 개털 신세가 됐고 희망이 안보이니 나간 겁니다. 진보정치니 뭐니는 헛소리예요. 물론 노무현이 죽음으로써 상황이 반전될 줄 몰랐으니 그랬겠지만요. (이해찬의 화려한 복귀도 이런 맥락이고)

유시민은 노무현이 죽기 전에 대구에서 주소지를 옮겼습니다. 즉, 항간에 알려진.. 노무현이 죽고 나서 중앙정치로 뛰어들었다. 라는 건 거짓말이라고 보면 됩니다. 쉽게 말해, 대구에서 노무현 코스프레 한번 하고.. 바로 주소지를 옮긴 거예요. 당시엔.. 이해찬도, 문재인도 민주당과 거리를 두었고 한명숙은 재판 받느라 여력이 없던 상태죠. 간단히 말해, 당시에 유시민이 민주당으로 들어가면 그냥 잡아먹힙니다. 대선 후보군으로 지지율 1위를 달렸다고 하나, 그 최대치가 13~14%였습니다. 그것도 얼마 되지 않는 기간이었죠. 계파도 없고, 비토층이 너무 강력해서 유시민이 민주당에 들어가면 정말로 고난의 길이 되는 셈입니다. 유시민도 이걸 잘 아니까 들어가지 않았던 거예요. 바깥에서 당을 만들어 삥뜯는 것이 훨씬 더 이득이 된다는 계산이었죠. 물론 계산은 잘해서 삥뜯기에는 성공했으나.. 선거는 말아먹어버렸지만요.

여튼.. 유시민이 민주당 가면 편했을 것이다. 라는 헛소리는 이젠 그만들 하세요. 그리고 유시민의 기회주의적인 행태는 무척 많습니다. 첫 금배지를 달 때 정동영, 김경재, 호남향우회 도움을 받을 때에는 조용하다가.. 당선 된 후에 민주당을 '지역주의 정당' 이라 욕하고.. 김근태의 뒤통수를 치던 행위, 그렇게 김대중을 비판하다가 김대중이 죽고나니 그제서야.. '나의 첫 대통령 어쩌구 저쩌구' 헛소리를 해댔고 선거 앞두고 권노갑에게 빌빌대는 꼬락서니부터 시작해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비토했던 사람이 애국가를 살짝 언급하면서 언론플레이하고. 후원회 100만원이 뭐가 문제냐더니만 민주당 돈봉투를 언급하면서 은근히 민주당을 디스하고.. 정말 무수히 많습니다. 말과 행동이 다르고, 말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고, 그 때마다 핑계들로 넘쳐나고.. 유시민은 그냥 정계에서 사라지는 것이 야권에 도움이 되는 수준이에요. 하등 도움이 안되는 분란종자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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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통합신당에서 개털된 친노계와 정동영계, 손학규의 권력쟁취
-> 손학규가 당대표로 선출되자마자  이해찬이 탈당합니다. 이해찬의 탈당 이유는 간단하고 명확했죠. '한나라당 출신인 손학규가 대표를 하는 것이 싫다'  였습니다. 손학규 체제는 결국 참여정부책임론이 전제되는 것이기에  친노인 이해찬입장에서는 불편했겠죠. 뭐 권력싸움에서도 패배한 셈이었구요. 당시는 한마디로 정동영계, 친노계 모두 손학규에게 털려버린 상황이었습니다.
http://media.daum.net/politics/others/view.html?cateid=1020&newsid=20080110114311674&p=ohmynews

뒤어이 유시민이 탈당합니다. (기사를 보면 알겠지만 어느 누구도 유시민을 쫓아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유시민의 탈당의 변은 꽤나 추상적이고 모호합니다. 특히 황당한 점은 '진보정치를 할 공간이 없다' 는 그의 발언입니다. 정말이지 지나가는 개가 웃을 수준의 변명이었죠. 참여정부 내내, 진보와는 가장 거리가 먼 행보를 보인 인물이 유시민이었으니까요. 이해찬의 변과 비교해보면 참으로 궁색한 변명이었습니다. 참여정부의 유시민을 복기해보면 그의 발언이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자기모순인지는 쉬 판단이 됩니다. 황당한 억지로 탈당의 명분을 만들어 냈다고 봐야죠. 더구나 그는, 탈당 후 4년이 지나는 동안 진보적인 모습을 보인 적이 없습니다.
http://media.daum.net/politics/assembly/view.html?cateid=1018&newsid=20080116123104418&p=hani


2. 노무현 코스프레, 대구 출마 유시민
-> 유시민은 탈당과 동시에 무소속 대구출마를 선언합니다. 유시민의 대구 출마는 뚜렷한 명분이 없었습니다. 더구나 진보정치를 꿈꾼다는 이의 첫번째 행보치고는 조금 핀트가 어긋난 측면이 있었죠. 그래서 '노무현 코스프레' 를 하는 것이 아니냐? 라는 의심을 많이 받았습니다. 또한 대구지역 시민단체들이 일회성으로 끝날 것이냐.. 라는 우려를 표명했는데 유시민은 분명 '아니다' 라고 답변했었죠. 유시민의 대구에서의 행보는 노무현의 그것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지역주의에 도전하는 정치인의 모습치고는 꽤나 구차하고 초라한 모습을 보였죠. '대구의 아들' 이라는 상투적인 선거 문구가 이런 유시민의 모습을 잘 나타내었습니다. 호남의 지역주의를 무수히 언급하고 비판했던 유시민을 감안하면 대구에서그의 행보는 참으로 비루했습니다. 민주당 간판을 버리고 무소속으로 나와서 한다는 소리가 고작 '대구의 아들' 이었으니까요. 여튼 대구에서 낙선한 유시민은 1년여만에 주소지를 옮겨버립니다. 노무현 코스프레 아니냐는 시민단체의 우려가 그대로 적중된 셈이었죠. 한가지 특기할 점은, (영남대 교수의 진술이 팩트라면) 유시민의 주소지 이전은 2009년 3월이고 노무현 서거는 2009년 5월이라는 점이죠. 그러니 노무현의 복수를 위해서 대구에서 중앙으로 방향을 바꾼 것이다. 라는 말들은 헛소리라고 봐야겠습니다. 즉, 노무현을 위해서 (하기싫은) 정치를 하는 것이다. 라는 유시민 지지자들의 말은 틀렸다는 것이죠. 그냥 한번 찔러보고 주소지를 옮긴 겁니다.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10100112122147&Section=01&page=1
- 유 전 장관은 지난 3월에 주민등록 파서 다시 갔다. 대구 사람들은 지금 난감한 처지가 됐다. 모르겠다. 묻고 싶지도 않다. 지난 총선 출마 할 때 '당신 떨어지면 서울로 갈 것 아니냐' 이런 질문들이 많았다. 그러자 본인이 '몇 십 년 만에 새로 맺어진 대구와의 정치적 인연을 바꾸지 않겠다' 이런 취지로 연설을 했다. 그런데 3월에 떠났다. 사람들은 주소를 옮겨갔다는 것도 나중에야 알았다. -


3. 정세의 급변, 노무현 서거
-> 노무현 서거 이전엔 대략 박근혜가 40%후반대의 지지율을 보였고 정동영은 12-13%의 지지율이 나왔습니다. 유시민은 언급이 없거나 1% 미만이었죠. 헌데 노무현 전대통령 서거 후.. 상황은 급변합니다. 친노 정치인들에게 관심이 쏠리면서 각종 여론조사에 등장하기 시작한거죠. 안희정, 이광재, 강금실등도 언급이 되었지만 중심인물은 유시민과 한명숙이었습니다. 문재인(부산시장 후보)도 이 즈음 언급이 되기 시작했구요. 당시 민주당은 유시민과 이해찬의 복당에 대해 긍정적이었고 '친노신당' 의 창당에는 부정적인 입장이었습니다. 박지원의 인터뷰를 보면 잘 나와있지만 그는 진작부터 '대통합' 을 강조해왔습니다. 그렇기에 최근 통합반대론자로 낙인찍힌 사례는 황당하다고 봐야죠.. 절차상, 방법상의 문제점을 지적했을 뿐, 통합 자체는 결코 반대하지 않았는데 라벨링 당한 꼴이었습니다.
http://zine.media.daum.net/sisain/view.html?cateid=3000&newsid=20090611095128456&p=sisain
http://www.redian.org/news/articleView.html?idxno=14416
- 박 의원은 "바람직한 것은 10월 재보궐 선거 때에도 가능할 것이고 안 그러면 내년 초에 지방선거 준비를 위한 어떤 이벤트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그러한 때까지는 대통합이 이뤄졌으면 한다"며, "또 그렇게 되도록 노력을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4. 유시민의 국민참여당 입당
-> 대구에서 낙선 후, 유시민은 1년여동안 주로 강연을 하며 활동했습니다. 노무현 서거 전, 유시민은 주소지를 옮겨 대구를 떠났고 같은 해 11월, 참여당에 입당합니다. 참여당은 2008년 말부터 창당 준비를 해왔고 노무현 서거 후 본격적으로 추진된 정당입니다. 정식 창당은 2010년 1월이었구요. 유시민 외에 유력정치인은 없었던 터라, 정치낭인들(민주당에 가면 쩌리 취급당하는 이들)의 집합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죠. 기실 국참당의 창당 주역들은 노무현의 대통령 시절부터 인연을 맺은 이들이 대부분입니다. 유시민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연이 길지 않다는 것이죠. 문국현 캠프를 들락거린 인물들도 있었구요. 오래토록 노무현의 곁을 지켰던 이들은 대부분 민주당에 남아있었습니다. 강금원의 인터뷰에서도 잘 드러나는 내용입니다. 여튼 입당을 하면서 유시민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깨어있는 시민들이 스스로 참여하는 정당의 당원이고 싶습니다. 다른 길이 없기에 이 길을 함께 걷기로 했습니다. 더 많은 행동하는 양심들의 참여를 호소합니다." 민주당 탈당의 변인 '진보정치' 에 관한 언급은 없었습니다. 또한 입당의 변으로 볼만한 뚜렷한 명분도 없었습니다. 정치인들의 흔한 레토릭, 추상적이고 모호한 내용이었습니다. 설득력이 약했다는 것이죠. 유시민은 또한 민주당에 미래가 안보여서 참여당을 택했다는 발언도 덧붙였습니다.
http://media.daum.net/politics/others/view.html?cateid=1020&newsid=20091120134235712&p=ilyo
http://media.daum.net/society/others/view.html?cateid=1067&newsid=20110224133331923&p=sisain
- 유시민은 친노 아니다. 어떻게 해서 유시민이 친노 핵심으로 분류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안)희정이도, (이)광재도 유시민을 친노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노 대통령도 같은 생각이었다. 유시민이 어떻게 친노가 된 거냐고 물으니까, 노 대통령이 "유시민은 우리 편 아니다"라고 딱 잘라 말하더라. 우리 편은 아니고 우리와 비슷한 사람이어서 인정한다고 했다. 재임 중에도, 돌아가시기 얼마 전까지도 그랬다. 유시민은 우리와 그 무엇도 상의한 적이 없고 자기 마음대로 갔다. 대통령도 그런 면을 싫어했다. 남을 위해 정치를 해야지 나를 위한 정치는 곤란하다. -

참여당에 입당 후 유시민은 민주당을 향해 날선 공격을 시작했습니다. 유시민의 민주당 비판 논점은 주로 '호남 지역주의+기득권' 이었습니다. 민주당의 (탈당의 변이었던)진보나 정책이 아닌,  '호남 지역주의+기득권' 에 매달렸다는 것. 이는 한나라당이 아닌 민주당의 파이를 노린 행동이라고 봐야겠죠. 또한 유시민의 비판은 한나라당보다 민주당에 집중될 때가 많았습니다. 여기서부터 유시민과 민주당의 간극이 커져나가기 시작한 겁니다. 당시 민주당은.. 동교동계는 진작에 떨어져나갔고 잔민당 출신들은 권력의 핵심에서 멀어진 상황이었습니다. 그냥 간판을 바꿔단 열린우리당이었다는 거죠.  달라진 점이라면, 잔민당 인사들 몇몇 들어왔고 유력 정치인인 유시민과 이해찬(관계는 유지)이 탈당했으며 손학규가 들어왔다는 것인데 중요한 것은 절대 다수의 구성원들이 열린우리당 시절과 똑같았다는 겁니다. 더구나 당시 민주당은 정세균을 필두로 한 친노계가 당권을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즉, 유시민의 민주당 공격은 정황상 황당한 비판이었다는 거죠. 우스운 건, 유시민의 이런 선동에 적잖은 사람들이 낚여서 '민주당 = 노무현 배신, 호남 지역주의' 라며 덩달아 비판을 했다는 겁니다. 유시민의 이런 비판들(호남 기득권, 민주당 타파)은 이미 오래전에 제기되었던 겁니다. 분당 시점 전후에 잔민당을 대상으로 이런 비판이 많았죠. 이런 비판들의 성공적인 결과물이 바로 '노무현 당선 + 열린우리당' 이었습니다. 헌데 조순형, 한화갑, 김경재등등 유력 정치인들 대부분 떨어져나가고 나가리 된, 잔민당 인사들 몇몇 들어왔다는 이유로 민주당=잔민당으로 몰아가면서, 시효가 한참 지난 비판을 다시 꺼내든 거죠. 절대 다수는 열린우리당 출신이며, 그 핵심세력또한 친노임에도 불구하고 추악한 라벨링으로 선동을 했던 겁니다. 쉽게 예를 들자면 열린우리당의 모습을 90% 유지하는 민주당에게 '호남 지역주의 + 기득권' 이라며 비판을 한 겁니다. 즉, 10%를 민주당의 정체성으로 규정하고 낙인을 찍은 셈이었다는 거죠. 결국 유시민의 이런 비판은 자기 모순이었고 뒤통수와 다를 바 없던 행위였습니다.
http://media.daum.net/politics/others/view.html?cateid=1020&newsid=20090929225702879&p=yonhap
http://media.daum.net/politics/others/view.html?cateid=1020&newsid=20100118161913630&p=yonhap
http://www.polinews.co.kr/viewnews.html?PageKey=0102&num=88463&p=1


5. 김진표와 단일화 경기도 지사 출마, 유시민.. 낙선
-> 유시민이 본격적으로 정치 활동을 재개한 시점은 노무현 서거 이후입니다. 다른 말로 치환하면, 노무현 서거 후 지지율이 급상승 된 후라고 봐도 되겠죠. 여튼 그는 처음엔 서울시장에 눈독을 들입니다. 허나 한명숙과의 대립구도가 부담스러웠는지 경기도지사로 유턴을 하게 되죠. 대표적인 친노관료였던 김진표와의 단일화를 하면서 적잖은 진통이 있었습니다만 결국 유시민으로 단일화(0.96% 차)가 되었죠. 본래 이들이 각각 김문수와 1:1 구도를 펼쳤을 때에도 1%정도로 유시민이 우위에 있었기에 인지도 차이나 경선방식의 유불리를 논할 필요없이 민의가 그대로 반영된 결과물로 봐도 무방합니다. 단일화 직후, 유시민은 민노당을 찾아가 회담을 벌였고 심상정마저 포섭하기에 이릅니다. 서울시 선거에 비하면 완전한 단일화를 이뤄낸 거죠. 헌데, 정작 유시민은 수도권에서 가장 큰 차이로 패배를 하고 맙니다. 부진할 거라 예상했던 한명숙이 꽤나 선전(0.6%차이)한 반면에, 친노중 가장 지지율이 높다는 유시민은 가장 큰 차이(4.4%차이)로 패배 했던 것이죠.
http://media.daum.net/politics/assembly/view.html?cateid=1018&newsid=20100603113114997&p=akn

유시민의 패배후 유력 친노싸이트등에선 호남유권자를 비판하는 분위기가 형성됩니다.  경기도 선거동안 잠잠했던 호남때리기가 다시 떠오른 것이죠. 한마디로, 호남유권자들의 유시민에 대한 반감탓에 유시민이 떨어졌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기실, 경기도지사 선거를 거치면서 유시민과 호남출신 유권자들의 대립이 수면 위로 드러나게 됩니다. 그 출발점은 바로 유시민이 처음 금배지를 달았던 시절(고양에서 호남향우회와 민주당의 도움으로 당선)이었구요. (따로 글을 써서 링크를 걸 예정) 여튼 유시민은 경기도지사 후보로 나선 후 처음으로, 김대중비판에 대해 사과를 했습니다. 권노갑에게 SOS를 치기도 했죠. 권노갑은 처음엔 거절했으나 박지원과 잔민당 인사들의 노력으로 화해(?)를 하기에 이르렀죠. 선거를 앞둔 사과였기에 그의 진정성에 의문을 제기한 이들이 많았습니다만 비교적 잡음없이 마무리되었고 민주당의 많은 정치인들(특히 박지원, 손학규, 김진표등)은 유시민을 위해 열성적으로 뛰어주었죠.  민주당과 호남을 향해 무수한 비판의 날을 세웠던 유시민역시 경기도지사 선거에서만큼은 민주당을 한없이 칭찬했고 김진표에게는 '평생 은혜를 갚겠다' 라는 발언까지 했었습니다. 선거 후 박지원은 유시민의 민주당 복귀를 공개적으로 제안하기도 했었죠.
http://media.daum.net/politics/assembly/view.html?cateid=1018&newsid=20100524154837750&p=nocut


6. 노무현의 김해, 유시민과 이봉수
-> 경기도 지사에서 패배 후, 얼마 되지 않아 은평을 재보선이 있었습니다. 여권의 후보는 이재오였고 민주당(대표 : 정세균)에서 내세운 후보는 장상이었습니다. 참여당에선 천호선을 내세웠구요. 누구를 내세우건 큰 차이가 존재했기에 관심이 많지 않았던 선거였죠. 유시민도 큰 공을 들이지는 않았습니다. 여튼 단일화에선 장상이 승리했었죠. vs 이재오 상대로 지지율 차이는 장상이 천호선보다 1%정도 우위였구요.
http://media.daum.net/society/media/view.html?cateid=1016&newsid=20100726154920418&p=mediatoday

2011년 4월 27일, 김해 보궐 선거가 있었습니다. 노무현의 고향이었던 만큼 관심은 집중되었고 야권의 당선가능성도 높아보이는 지역이었죠. 민주당 내에서도 친노의 움직임이 적극적이었던 선거였습니다. 유시민역시 김해 선거에 사활을 걸었구요. 민주당은 김경수를 후보로 내세웠고 참여당은 이봉수를 후보로 내세웁니다. 유시민이 관여한 선거중 잡음이 가장 많던 단일화였습니다. 유시민은, 시민단체가 제시한 '국민참여50%, 여론조사50% 의 중재안조차 완강히 반대하고 여론조사 100%를 고집했었죠. 또한 순천에서의 민주당 무공천을 폄하하는 발언까지 서슴지 않았습니다. "야권연대를 하는 건 한나라당을 상대하기 위해서인데, 거기(순천)는 한나라당도 없는데 무엇 때문에 야권연대를 하나" 라는 발언 탓에 이인영과도 각을 세웠죠. 결국 유시민과 참여당의 압박, 대립 탓에 시민단체들도 비판을 하기 시작했고, 이런 분위기를 견디지 못한 김경수는 불출마 선언을 해버립니다. 이로 인해 유시민은 이해찬, 한명숙등의 친노들과도 대립각을 세우게 되었죠. 단일화의 잡음 속에, 친노 정치인들은 외면을 했고 결국 유시민은 패배했습니다. 박지원이 날려버린 김태호가 유시민에 덕에 부활을 한 셈이었죠. 한가지 웃긴 점은, 친유시민 성향의 싸이트에서 '김해의 패배는 민주당과 호남탓' 이라는 글들이 횡행했다는 겁니다. 여튼 김해 선거로 인해 유시민은 정치인생 최대의 위기에 직면하게 됩니다.
http://media.daum.net/politics/others/view.html?cateid=1020&newsid=20110428143550542&p=mediatoday
- 김경수 전 비서관이 야권 후보로 나서면 김태호 전 지사는 출마하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 일부 참여당 지지자들은 유시민 대표 뜻과 배치되는 언행을 하는 이들에게 날 선 공격을 서슴지 않았다. 그 대상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 가까운 이들까지 예외가 아니었다. -
http://media.daum.net/society/others/view.html?cateid=1067&newsid=20110418132532702&p=sisain
- 출마를 검토하던 김경수 국장을 향한 참여당 지지자들의 공세가 집중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 공식 홈페이지인 '사람 사는 세상'에는 김 국장의 출마가 '참여당 죽이기'와 '유시민 죽이기'라는 글이 잇따랐고, 견디다 못한 김 국장은 불출마를 선언했다. - 시민단체의 한 관계자는 "민주당이 양보해서 타협이 될 듯하면 참여당이 내부 회의를 거쳐 또 다른 조건을 들고 나오고, 민주당이 한 번 더 양보하면 참여당이 또 다른 조건을 내걸고…. 그러기를 정말 여러 번 했다. 그 와중에 대표라는 사람(유시민)은 언론에 대고 '손학규 대표가 분당에 나가면 적극 돕겠다'고 했다가, '김해을을 참여당에 주지 않으면 협조하기 어렵다'라는 식으로 좌충우돌하더라. 협상을 유리하게 끌고 가려는 의도였겠지만 이 때문에 이인영 최고위원이 무척 힘들어했다"라고 말했다. -


7. 진보정당과의 합당.
-> 김해에서 패배 후, 유시민의 지지율은 바닥으로 내려갔고 그의 대체인물로 문재인이 부상하기에 이릅니다. 기실 유시민의 대선 후보 지지율은 정점을 찍었을 때에도 15%를 넘지는 못했습니다. 최근의 문재인, 안철수 지지율과 비교해보면 상당한 격차죠. 여튼 유시민의 힘은 바로 이런 10%초반대의 지지율에서 나왔습니다만 김해 패배이후, 말 그대로 쪽박찬 거렁뱅이 신세가 되어버립니다. 이런 사면초가의 상태에서 유시민은 진보정당과의 통합을 추구하기에 이릅니다. 참여정부 시절, 가장 심하게 진보정당을 비판하고 외면했던 유시민의 이런 행위는, 생존을 위한 몸부림으로 보는 시각이 많았습니다. 가장 가까운 시기인, 김해선거에서도 민노당을 디스했었죠. 유시민은 기본적으로 말빚이 많은 정치인입니다. 공격성이 지나치고 신중하지 못한 탓에 스스로를 옭아매는 발언들을 많이 했죠. 사표론, 민노당 비판, FTA, 파병, 대연정, 민주당비판, 진성당원제등등... 입장을 바꾼 발언들이 가장 많은 정치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최근의 발언으로는 위에서 언급한 "야권연대를 하는 건 한나라당을 상대하기 위해서인데, 거기(순천)는 한나라당도 없는데 무엇 때문에 야권연대를 하나" 가 있습니다. 추후 호남지역 선거에서, 유시민이 야권연대(무공천)를 주장하게 되면 또 한번 자기 모순을 하는 셈이 됩니다. 유시민의 말대로면 호남에선 무조건 '경쟁' 을 해야 되니까요.
http://media.daum.net/politics/others/view.html?cateid=1020&newsid=20111205131906501&p=moneytoday

혁통과 민주당이 통합 논의를 할 때에 참여당도 언급이 됐지만 별반 논의없이 결렬되었습니다. 패잔병인 유시민의 입장에서는 계구우후(鷄口牛後)의 심정으로 진보정당을 택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민주당내의 많은 친노들과 롤이 겹칠 수밖에 없는데다 패잔병 입장에서 전면에 나서기도 힘들기 때문이죠. 진보정당입장에서는 유시민의 대중성과 추후 단일화 논의에서의 역할을 기대했다고 보여지구요. 한편으로는 유시민은 통합을 원했으나 참여당 내부의 반발이 만만치 않아 결렬되었단 시각도 있습니다. 기실 민주당과 혁통 모두 참여당과의 통합에 그리 적극적이진 않았습니다. 민노당과 진보신당등에 했던 제안과 비슷한 수준이었죠. 어찌되었건 '진보정치'를 표방하며 민주당을 탈당했던 유시민은, 4년여간의 방황 끝에 자신이 주창했던 진보정치를 펼칠 공간에 입성했습니다. 물론 방황했던 4년여간 유시민은 딱히 진보적인 모습을 보인 적은 없습니다만....
http://media.daum.net/politics/assembly/view.html?cateid=1018&newsid=20111107145107732&p=moneytoday

 

 


http://twitter.com/dogsul/status/37082083767623680
강금원 인터뷰-1 "국민참여당이 친노당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유시민은 친노 아니다. 어떻게 해서 유시민이 친노 핵심으로 분류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안)희정이도 (이)광재도 유시민을 친노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http://twitter.com/dogsul/status/37082840143233024
강금원 인터뷰 -2 "노 대통령도 같은 생각이었다. 유시민이 어떻게 친노가 된 거냐고 물으니까, 노 대통령이 "유시민은 우리 편 아니다"라고 딱 잘라 말하더라. 우리 편은 아니고 우리와 비슷한 사람이어서 인정한다고 했다."

http://twitter.com/dogsul/status/37083687849951232
강금원 인터뷰-3 "재임 중에도, 돌아가시기 얼마 전까지도 그랬다. 유시민은 우리와 그 무엇도 상의한 적이 없고 자기 마음대로 갔다. 대통령도 그런 면을 싫어했다. 남을 위해 정치를 해야지 나를 위한 정치는 곤란하다."

 

※ 김대중 대통령님께
http://news.donga.com/fbin/moeum?a=v&id=199912060136&l=28&n=dstory$i_24

 

※ 김 대통령 차라리 하야해야 한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mov_pg.aspx?CNTN_CD=MB000010153

 

[패러디] 유시민의 ‘노무현 대통령님께’
http://www.cjycjy.org/bbs/zboard.php?id=freetalk&no=17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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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노,노빠,유빠 온라인 깡패패거리들의 안철수죽이기 그리고 큰모순-

 

지난 서울시장 선거에서 친노 진영이 박원순에 힘을 실어줬었죠.
박원순도 혁통과의 관계가 무난했구요. (박원순은 민주당 비판을 하긴 했으나, 친노 비판은 없었습니다.)

비노 vs 친노의 예선전격인 서울시장 선거에서 비노측 박영선이 밀리면서 친노가 주도권을 잡았고 곧이은 본선인, 혁통과의 통합에서도 혁통이 주도권을 잡고 승리를 했습니다. (손학규의 삽질이 컸죠)

기실 혁통이 민주당에 입성하기 전 절대 다수의 친노 팬들은 민주당을 욕하기에 바빴어요. 손학새, 구태 정치인 박지원, 지역주의 정당, 노짱님을 배신한 놈들이라며 많은 비판을 쏟아냈는데 재밌는 건 혁통과의 통합 후, 친노 팬들이 민주당을 물고빨고 하더군요. 혁통과의 통합 후, 민주당의 주도권이 '비노-> 친노' 로 바뀌니 180도 입장이 바뀐 거예요. 정치적 판단을 오로지 '노무현 감성 팬덤'에 기인하고 있으니 그런 것이겠지만..

박원순이 대두되면서 불임정당, 정당정치 훼손등의 지적이 많았으나 '국민의 뜻이다' '민주당이 잘한 게 뭐가 있냐!!' '기득권을 내려놓아라!!' 라고 설쳐대던 분들이 이제는 정당정치를 강조하고 친노 기득권 없는데? 안철수가 정당없이 뭘 할 수 있겠냐며 소리를 지릅니다. 물론 서울시장과 대통령의 무게감은 다르겠지만요. 이런 사태의 원인제공, 그 맥락은 박원순부터 시작된겁니다. (참고로 저는 박원순을 아주 좋아합니다. 경선 시에는 정당정치 밖에 있어 지지하지 않았지만요.) 즉, 친노와 그 팬들이 결코 현 사태에서 자유롭지 못하단 거죠. 한마디로 말해 모순된 행동을 보이고 있죠.

혁통 역시.. 기득권을 내어놓아라, 양보해라라면서 압박을 했고.. 방법론에 있어서 반대를 했던 박지원은 친노팬들에 의해서 난도질을 당했었죠. 구태, 수구, 지역주의, 부패, 비리정치인등등.. 온갖 마타도어를 당했습니다. 통합자체를 반대한 것이 아니라, 방법론에 있어서 의견 차이를 보였던 것 뿐인데도요. 헌데 요즘 박지원은 또 찬양을 합니다. 왜냐? 친노를 서포트 해주는 위치에 있거든요. 우습죠... 손학규와 박지원이 주도권을 잡았던 민주당은, 어려운 환경에서 나름 선방을 많이 했고 복지이슈, 무상급식등도 공론화 시켜가며 많은 정치적 이슈를 선점하고 잘 꾸려나갔습니다만.. 욕만 바가지로 먹은 셈이죠.

현재의 안철수는 과거, 혁통이 했던 행태와 비슷한 맥락입니다. 박원순도 마찬가지구요. 그 대상이 바뀌었을 뿐이죠. 헌데 혁통이 했을 때는 적극 옹호하더니.. 안철수가 하니 생난리를 칩니다. 현재 민주당의 기득권은 친노입니다. 지난 총선을 말아먹었구요. 혁통과 친노가 민주당을 접수한 후에는 어떤 정치적인 이슈나 정책보다는 '노무현 팔아먹기'에 여념이 없기도 했었죠.

지난 총선, 참여정부 청와대 출신만 18명이 공천을 받았으며 최종 당선자 수는 범친노(친노, 정세균계, 시민사회)포함해서 40명 정도 됩니다. 순수 친노계만 대략 22명인가? 되는 걸로 알고 있구요. 이해찬과 한명숙이 싸웠으니 계파 공천이 없었다? 손학규계, 정동영계, 구민주계는 아예 한명숙과 싸우지도 못했어요... 김희철은 아예 한명숙이 만나주지도 않았다죠. 지들끼리 해처먹다가 싸운 겁니다. 나머지 계파는 아예 그 권력다툼에 끼지도 못했어요. 오죽하면 박영선이 울분을 토했겠어요. 손학규, 정동영 모두 비례대표에 자기 사람 하나 제대로 심지 못했죠. 한명숙이 자기만의 라인을 구축하려다 이해찬과 트러블이 생긴 겁니다. 비례대표 면면들 보세요. 황당할 지경이죠. 지들끼리 해처먹다 싸운 걸 마치 계파 공천 없었다. 라고 헛소리 하는 분들 많은데.. 이정희와 담판도 문재인이 했습니다. 이게 뭐겠어요? 공천과 관련된 실질권력이 문재인, 이해찬이라는 걸 통진당측에서 인정하고 있다는 거죠. 결국 구민주계는 꼬장 부리다 산화했고, 비노측은 똘똘 뭉쳐 친노를 공격하고 있는 상황이 된 거예요. 자업자득인 셈입니다. 적당히 해먹었어야죠.

여튼.. 참여정부에서 제대로 한 것 하나 없고.. 민주당 어려울 때 니나노 하다가 노무현 죽으니 민주당 들어와 권력 잡고 총선까지 말아먹은 집단입니다. 패권적 행태와 계파 공천으로 그 유리한 선거를 말아먹었어요.

나름 간략히 썼지만 안철수와 비노가 지적하는 건 바로 이 부분입니다. 괜히 친노를 욕하는 게 아니에요.
현재 친노는 자승자박인 셈입니다. 민주당 권력을 잡으려 정당정치를 훼손한 놈들이 역으로 당하는 거죠.
그러니 현재 친노 팬들이 안철수의 정치행태를 욕하는 건 말 그대로 모순이죠.

 

친노하면 욱하는 인간들 노바일 조직동원 엄청좋아라합니다 친노정치인아니면 이길수없는게 노바일게임이구요

현재 나와있는 팟캐스트방송들은 이털남을 제외하면 전부  반안철수,친노노시모 방송이라 생각하면 편합니다

문재인대통령-안철수 총리를 운운한다든가 안철수 양보론에 근접하는 뒤돌려까기를 하는 작자들이 대부분인게 인증이구요

안철수캠프 금태섭 실장이 유일하게 나온프로는 야권중립방송 이털남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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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과 노무현 열혈지지자들이 한국정치에 끼친 대표적인 해악의 하나는


정치를 '가치'나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인물'중심으로 수십년 후퇴시켜놨다는겁니다.

정치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가치분배에 관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추구하는 가치에 따라 우선순위가 달라지고 그 가치에 따라

얼마든지 합종연횡할 수도 있고 자기의 소신에 따라 어제의 동지와 대립각을 세울수도 있죠.

그러나 유시민과 열혈친노들은 정치를 수십년 후퇴시켜버렸습니다.

그들은 정치를 가치의 개념이 아니라 누군가에 대한 '충성'의 개념으로 바꾸어 버렸죠.

노무현에 누가 더 충성했느냐.....가 정치적 신뢰도의 기준이라는 것. 정말 어처구니 없는 일이죠.

반대로 노무현을 배신했느냐....노무현에 정치적 대립각을 세웠느냐가 정치인 판단의 주요논거라는건

정말 비극적인 일이고......정치를 후퇴시킨 일이죠.

유시민과 열혈친노는 노무현 집권부터 지금까지 10년간.....

누군가가 노무현에게 반대한다 싶으면 일단 그 인물의 과거 행적을 샅샅이 뒤집니다.

모든 행적, 어록을 뒤져서 이 사람은 이런 인물이라는 공개재판을 시도하죠.

홍위병이란 말이 그냥 조선일보의 소설같은 창작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노무현 사후 3년이 됐지만...지금도 친노직계에 반대한다 싶으면 과거가 고스란히 드러나고

이런식으로 노무현을 반대한 인물이라는 선동이 이뤄지죠.

김한길이라는 인물에 대해 호불호가 있을수 있겠지만.....

김한길이 총선에 공천됐을때만 해도 온라인 야권에서는 호평이 주류였습니다.

전략가고 민주당에 도움되는 인물이다....선거도 아무 연고도 없는 곳에 전략공천받았지만 낙승했죠.

그런데 이해찬과 대립각을 세우고 대표에 출마하자 그때부터 비토가 쏟아집니다.

원래부터 형편없는 놈, 무능한 놈, 허약한 놈, 노무현을 배신한 놈...

언제나 스토리는 같습니다.

그냥 친노계가아니고 끝내는 노무현을 배신한 놈이라서 안된다는거죠.

심지어 김한길은 야권연대 끝내자는 입장이고 이해찬은 야권연대 계속 하자는 입장인데

이것도 꺼꾸로 얘기하죠. 김한길이 되면 야권연대 끌려다닐것이다.

야권연대는 친노직계를 형성하고 있는 PK친노의 약한고리이기 때문에 통진당에 아쉬운 소리할 수 밖에

없다는 구조적인 약점을 안고 있는데도 말이죠.

- PK 지역에 정치적 진출을 하는게 그들의 수십년간 숙원인데 PK지역에선 통진당의 지지율이

일정한 수준으로 있기 때문에 PK친노는 그들의 표를 받아야만 승리할 수 있다는 생각이 깔려 있습니다 -

다시 논지로 돌아가서, 대체 언제까지 인물 중심의 사고를 하시렵니까?

김근태가 아파트 분양원가 문제로 노무현과 충돌하자 난리를 쳤던게 유시민과 열혈유빠와 친노입니다.

아주 인터넷에서 김근태를 몹쓸놈 만들고 죽여놓았죠.

  

그뒤 민평련(김근태계)와 앙숙이 되어버림 근태형도 유시민하면 생전에 치를떨었다하죠(지금은 모조리 안철수쪽에 가있음)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가 노무현과 충돌하면 죽일놈이 되어야 하는겁니까?

김한길이 처음에 선도탈당한게 문제라면 나중에 탈당한 사람들은 왜 탈당했나요?

김한길의 탈당이 이치에 맞으니 결국 다 민주당으로 모인거 아닙니까?

이런식으로 과거를 파면 대선후보 경선까지 나왔다가 나중에 손학규가 대표된게 기분나쁘다고

탈당한 이해찬은 어떤 문제가 있는걸까요?

차라리 김한길은 정동영 낙선에 책임을 지고 4년간 정계은퇴라도 했지요.

제가 누차 말하는건 친노직계의 증오의 정치를 버리라는겁니다.

이런식으로 인물중심으로 사고하는건 끝없는 분열만을 낳을 뿐입니다.

언제부턴가 정책과 가치라는 부분이 사라졌어요.

친노직계가 할줄아는건 정치싸움밖에 없고 우리편과 적을 가르는 분열의 정치니까요.

유시민뿐만 아니라 문재인도 정치판에 뛰어들어서 아무런 정책이나 가치조차 말하지 못한다는게

우연이거나 시간이 없어서라고 생각하십니까?

민주당내에서 가장 유력한 대권후보라면 지금쯤이면 어떤 슬로건을 걸고 정책하나라도

뇌리에 박히게끔 들고 나올텐데 이런게 없죠.

검찰개혁같은 소리는 중도층에겐 정치보복하겠다는 얘기로밖에 들리지 않는거고요.

이런게 민생에 중요한 것도 아니죠.

손학규가 말하듯 '저녁이 있는 삶' 같은 슬로건을 내걸고 무언가의 그림을 그려주는게

정치인이 해야할 일입니다.

맨날 정당개혁이 어쩌구 내편, 니편 싸움하다가 결론은 노무현을 배신한 놈으로 귀결되는

정치는 정말 그만해야죠.

인터넷 자체가 친노빠 편향이기도 하지만.......

정말 웃긴게 이번에 김한길 대 이해찬 구도에서도.....

김한길 편에 가담했다고 알려진게 정세균과 김두관입니다.

둘 다 친노고.....흔히 말하는 범친노죠.

그런데 친노직계...- 친노직계의 주류가 흔히 말하는 PK친노입니다 - 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그들은 친노가 아니다....이런 소리 해대고 있어요.

그러면서 민주당에서 친노를 몰아내려고 한다는둥.....

아쉬울땐 범친노도 다 친노고....대립하면 너희는 가짜친노 타령입니까?

심지어 한명숙도 친노가 아니라고 하고 있죠.....

이렇게 빼기만 하는 뺄셈 정치.....이 정치놀음을 그만해야 발전이 있습니다.

누구는 이렇게 노무현에 대해 반대했으니 친노라 할 수 없어....라는

너무나도 유치한 발상들.....

정치는 가치와 정책의 싸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노무현에 충성했다, 반대했다가 정치의 어떤 기준이 되어서는 안돼요.

2012년 대선을 바라보고 당대표를 뽑는데 아직도 노무현에 반대했다가 정치적 선택의

주요한 기준이 된다는것. 문제가 있지 않습니까?

문제는 이번만 그러는게 아니라 항상 그런다는거죠. 

노무현을 배신한 놈이거나 덜 충성한 놈 타령이요.

이런 분열과 증오의 습관을 고치지 않는한 문제는 반복될 뿐입니다.

도돌이처럼 노무현의 행적에서 왔다갔다 할 뿐인거죠.

이것이 친노가 일정한 지지율을 갖고 있지만 표의 확장성을 가지지 못하는 문제입니다.

정치를 인물 중심에서 다시 가치와 정책 중심으로 바꿔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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仲尼再生 " 夜 의  走筆  " 취임사

 

저를 아크로 주필로 추천하시는 회원여러분의 글을 읽고, 오늘 본인은 본인의 향후 거취를 놓고 깊이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프루스트의 '가지 않은 길'을 끝없이 되뇌며, 다수 회원의 요청대로 아크로 "밤의 주필" 직을 기꺼이 수락하기로 결심했던 것입니다. 내 일신의 안녕 만을 위한다면 봉급 한 푼 못 받는 이 명예직을 수락할 수 없었겠지만, 이미 공인 아닌 공인이 된 몸으로서 이 위기의 시대에 역사가 제 어깨에 지운 이 짐을 떠맡기로, 본인은 이 아름다운 밤 위대한 결단을 내렸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