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임의 변이라고 하니 꽉꽉한 제복을 입은 듯한 거북함이 느껴지는데, 제가 좀 고리타분하기도 하고  제목을 고민하면서 변명과 사과를 하고자 가장 축약된 표현을 찾다보니 그리 표현하게 됐습니다. 

1기 운영진 말기부터 운영진의 일원으로 참여했습니다. 한겨레토론방을 운영한 적 있고 법을 좀 알고 SNS홍보 컨설팅 일을 하고 있다는 이유로 운영진으로부터 운영진 참여를 권유받고 수락을 하게 됐는데요. 2년 동안 해온 것을 보면 제가 과연 운영진이나 회원들이 기대하는 부분을 충족시켰는지에 대해서는 자평하면 낙제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특히나, 토론과 홍보에 관해 저에게 부여된 기대는 아크로북 프로젝트라는 구체적인 임무로 부여됐는데 아크로북 프로젝트는 제대로 시작하지도 못하고 임기를 마치게 됐습니다. 

애초 자발적 투고 방식의 원고 모집 계획에 차질이 있어서 수정된 형태로 추천게시판의 글과 댓글을 발췌 편집하는 형태로 하겠다고 했는데, 막상 진행하려고 하니 논객들의  균형과 조화를 고려하면서 체계성과 완결성이 필요한 한 권의 종이 플랫폼의 책으로 만들기 위한 취사선택 편집의 일이 생활인의 입장에서 큰 압박감으로 다가왔습니다.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점에 대해서 운영진과 회원여러분께 깊이 사과 드립니다. 

게시판 관리 운영에 있어서 2기는 1기보다 운영진 수의 부족으로 인해 처음부터 개입자제원칙, 즉 토론 예절에 치중한 형식적 기계적 운영방침, 회원의 자정 활동 우선 방침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스켑에서 운영자권한의 자의적 남용의 문제가 일어나서 거기에 대한 반성으로 운영자 자의에 대한 판단 개입을  줄인 부분도 있지만 실제로는 이런 현실적인 한계가 크게 작용했다고 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형식적 운영도 제대로 하지 못한 때가 있었습니다. 통감하고 사과드립니다.

변명을 하자면, 아크로 운영진의 현실적인 어려움은 다들 아시다시피 운영자들이 생업이 있어 아크로에만 매달릴 수 없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이 실상은 사실 경험해보지 않으면 잘 모릅니다. 저같은 경우 퇴근 후에 잠시 글을 끄적거릴 수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회식있고 하는 날이면 그것도 못합니다. 요즘 같은 연말이면 일주일에 3~4일은 저녁에 약속이 있습니다. 그러면 한 며칠 아크로에 들어오지도 못합니다. 스마트폰으로 제목이나 확인하는 수준이죠. 

징계건의가 나올 때, 바로 판단할 수 있는 건도 있습니다만, 오랜 글타래를 통해서 이어져 온 것들의 경우 심사를 제대로 할려면 글을 다 읽고 전후 사정 맥락을 모두 살펴봐야 합니다. 그 전후사정 맥락을 다 꼼꼼히 살펴보는 데만 최소한 이틀 정도의 퇴근후 시간을 투자해야 합니다. 이것은 과장이 아닙니다. 늘 아크로에 매달려 있고 모든 게시물과 답글을 꼼꼼히 다 읽어왔다면 그 시간이 줄어들  수도 있겠지만 저는 솔직히 말하면 요즘은 아크로 게시물 글 다 못읽습니다. 운영회의 게시판은 꼼꼼히 챙기지만 정치사회 게시판은 대충 띄엄띄엄 몇몇 본문글, 댓글은 패쓰해가면서 읽고 문화 게시판은 평소에 거의 못 읽고 시간 날 때 한 번씩 몰아 읽습니다.  
   
권고나 경징계가 아니고 글쓰기 중지나 접근 금지 같은 중징계 같은 경우는 운영진의 합의가 필요한데 운영진이 모두 합의(협의가 아닌)에 이르도록 의견 공유를 하고 결정을 하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입니다. 처음엔 저도 제대로 심사해서 잘해보려고 했습니다만 그런데 이게 한 두번이 아니고 계속 생기니까 감당이 안될 때가 가끔씩 있더군요.  신병이나 기타 개인적인 사정이 아크로 운영업무가 겹치는 때가 발생하게 됩니다. 

하소연처럼 길어지는 감이 있는데, 3기 운영진이 원활히 운영할 수 있도록 운영진에 대한 이해를 부탁하기 위해서 길게 썼음을 양해해주시고,  정말 말싸움으로 인한 모욕행위로 인한 징계 건의가 줄어들면 운영진의 운영이 보다 실질적으로 될 수 있고 원활하게 된다는 것을 한 번쯤 생각해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개인적인 이야기를 좀 더 말씀드리자면,  저는 저 자신을 닝구라고 생각하지 않고, 단지 닝구에 가까운 무당파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밖에 나가면 저는 거의 닝구와 같은 포지션에서 사람들과 토론을 하게 됩니다. 굳이 그런 닝구의 스탠스를 취하려고 한 게 아니라 균형잡힌 사고를 하려다 보니 닝구와 같은 입장도 감안해서 이야기한 것일 뿐입니다만, 이 때문에 온라인 뿐만 아니라 현실 오프라인의  인간 관계가 단절 단교된 경우가 4건이나 있었습니다. 말싸움 과정을 보면 저는 아주 정중한 언사로 사실만을 이야기 해주는데도 상대는 크게 흥분하고 먼저 절교해버립니다. 공교롭게도 상대가 대부분 친노들입니다. 

온라인 쪽에서 오랫동안 현업에 종사해오면서 온라인 여론이나 SNS, 공론장 커뮤니티 등을 많이 지켜와봤지만 단언코 아크로만큼 다양한 사상이 존중되고 공존하는 공론장 커뮤니티를 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정치사회현상에 대한 통찰력, 예측력 역시 아크로만큼 뛰어난 곳을 못봤고요. 실책이 남발하는 게임, 순전히 누가 더 실책이 적은지에 따라서 운으로, 재수로 승패가 갈려지는 게임은 저질 게임입니다. 보는 사람 답답하고 한심해지죠. 지금의 새누리당이나 민주통합당이나 그런 게임을 하고 있다고 봅니다. 아마도 민주당이나 새누리당이나 아크로를 모두 꾸준히 지켜봤다면 선거에서 판세분석이나 대책을 그르치는 일이 없었을 거라고 봅니다.  

노무현 당선초기까지의 초창기 한겨레토론마당이나 초기 스켑렙이 제대로된 공론장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만 지금은 대부분의 공론장 커뮤니티들이 특정 정치세력, 정치인을 위한 팬덤의 공간, 자기만족을 위한 배설공간으로 전락한 게 현실입니다.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SNS는 형편없습니다. 친노들이 장악한 세계에서 자기 생각만 반복 배설하고 입장이 다른 이들과의 소통이 없습니다.

참으로 대단한 아크로에서 운영진을 맡았다는 것에 대해 개인적으로 영광이고 소중한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부족함이 많은데도 운영진을 배려해주신 많은 회원님들께 감사드리고요.

마지막으로 운영진을 떠난 개인 토론자의 입장에서 지난 2년간, 영패를 어떻게 척결할 것이냐라는 방법론상의 고민을 하다 진보의 정의에 대해서 미투라고라님과의 이어졌던 토론이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보수주의자이고 자유주의자인 저는 개인적으로 미투라고라님께 특히 진보가 무엇이냐에 대해서 많은 영감을 얻고 제 인식을 넓히는 데 도움을 받고 있어 감사하고 있기에 3기에서 미투라고라님을 아크로에서 다시 봤으면 하는 소망이 있습니다.  

그럼... 연말 정리 잘 하시고 내년에 더욱 발전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