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화--->민주화 도식은 막시즘적 극좌파적 세계관의 반영입니다. 즉 자신들의 인민민주주의가 진정한 민주주의라는 것이죠. 그러니까 부르조아 혁명은 진정한 민주주의가 아니고 나아가 산업화가 완성되어 공장제 기계공업이 완성된 이후 그 공장제 기계공업하의 착취당하는 노동자들에 의한 혁명에 의해 진정한 민주주의가 이루어진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들의 사회구성체론에 입각한 경제결정론의 반영입니다. 이것을 우파가 취한다는 것 자체가 우수운 일이죠.

나아가 산업화라는 이름의 결제발전이 민주주의 혁명을 가져온다는 것 역시 전형적인 경제결정론이고 우파가 취할 입장이 아닙니다. 나아가 역사적 경과과정도 그러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독일의 경우 비스마르크체제하에서 엄청난 경제발전을 가져왔지만 그들의 정치체제는 지극히 반민주주의적인 독재체제였습니다. 그리고 그 독재체제가 가져온 경제발전이라는 것도 영국이나 미국 나아가 프랑스와 비교하면 매우 후진적인 것이었습니다. 결국 전쟁으로 망했구요. 바이마르공화국시기가 잠깐 있었지만 워낙 반민주주의적인 전통이 강해서 바로 나찌에게 정권을 내어주고 맙니다.

그리고 그러한 반민주주의적인 정치체제는 시민적 자유에 가장 해로운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이죠. 독일인들은 집단최면에 걸려서 스스로 자신이 자유민주주의라고 위장을 했지만 그들의 정치체제는 외견적 자유민주주의 즉 사이비 자유민주주의였고 결국 나찌파쇼로 귀결 되었습니다. 2차세계대전 이후에야 독일에는 진정한 자유민주주의 정치혁명이 시작되었고 그와 동시에 독일의 산업화도 미국을 위협할 만큼 성장하게 됩니다. 이것은 일본의 경우도 마찬가지이고 박정희와 그의 후예들 즉 아프리카의 군부독재체제가 다 그러한 영향을 받은 것들입니다. 일본이 비스마르크의 군국주의를 베낀 근대화를 시도했지만 결국 2차대전으로 철저히 깨어지고 나서 자유민주주의가 그나마 어느정도 이루어지게 되죠.  박정희전두환체제가 붕괴된 이후에야 한국에 비로서 자유민주주의가 꽃피웠고 동시에 그 이후 한국의 자본주의는 부분적으로는 일본이나 미국을 위협하는 수준에 다가섭니다.(물론 아직 그 기간이 10년밖에 안되었기 때문에 아직 추월한 단계는 아니져.)

원래 영국을 보더라도 산업혁명은 명예혁명 뒤에 명예혁명의 결과 그 영향을 받아서 나온 것입니다. 즉 정치적 변혁이 이루어지고 나서 근본적인 산업적 변혁이 이루어진 것이죠. 여기서 산업혁명은 소규모적인 도구에 의한 수공업 및 매뉴팩처(공장제수공업)체제에서 대량의 기계를 이용한 공장적 기계공업으로의 전환을 의미합니다. 참고로 공장제 수공업화에서 영국의 면직물은 인도산 면직물에 밀리기까지 했습니다. 즉 절대왕정체제하에서는 주로 선대제수공업과 공장제수공업이 이루어졌는데 이 시기 서유럽은 결코 아시아 특히 중국을 능가하지 못했습니다. 설사 어느시점에서는 아시아를 비슷해지거나 어느정도는 우위에 있었다 하더라도 식민지지배를 할 정도의 경제적 차이가 벌어진 것은 아닙니다. 그들이 아프리카나 아메리카는 16세기에 바로 무력으로 지배를 했지만 아시아에 대해서는 바로 그러지 못한 것도 그 당시만 해도 아직 그들의 경제적 군사적 역량이 아시아에 대한 식민지지배를 할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이죠. 참고로 오스만투르크의 경우 16세기에는 2번이나 오스트리아 빈을 포위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18세기에는 오히려 오스트리아에 져서 헝가리와 다뉴브강 중부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결국 서유럽이 15 16세기 아프리카 17 18세기 인도와 동남아지배를 이루어갔고 19세기에 중국지배를 완성시킨 것은 서유럽경제발전수준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영국이 명실상부하게 세계에서 일류의 국가가 된 것은 공장제 기계공업이 정착된 뒤에나 가능합니다. 이러한 영국을 모방해서 공장제 기계공업을 채택한 모든 서유럽국가는 아시아를 능가하게 된 것이죠.

유럽의 모든 변혁을 보세여 기본적으로 정치적 변화가 먼저고 그 다음에 산업혁명이었습니다. 여기서 정치적 변화에는 두가지로 나뉘어집니다. 영미식 <자유민주주의 정치혁명>과 <독일식 외견적 독재적 정치변화>이 그것입니다. 그리고 그 중간에 기본적으로 영미식에 해당되는 프랑스의 절충형적인 정치혁명이 있죠.

일단 정치적 변화가 이루어진 시기를 보죠. 영국 1649과 1688년에 청교도혁명과 명예혁명이 있었습니다. 미국은 1776년에 독립혁명이 있었습니다. 프랑스는 그보다 뒤에 1789년에 있었죠. 독일은 언제일까요? 1848년대에나 프랑크프르크 국민회의가 세워졌서 자유민주주적 방식이 논의하다가 실패해서 1862년 비스마르크에 의한 군국주의체제가 출범하게 됩니다. 일본의 1867년 명치유신은 비스마르크체제와 거의 비슷합니다.

그리고 산업혁명(공장제 기계공업)이 이루어진 시기를 보면 이러한 정치적 변화가 일어난 다음에야 나오게 됩니다. 영국의 산업혁명 즉 공장제 기계공업은 1760년에나 시작됩니다. 그리고 네덜란드 벨기에가 1810년 프랑스가 1830년 미국이 1840년 독일이 1850년  이탈리아 러시아 일본은 그 뒤에 19세기 후반기에나 시작됩니다.
 
이러한 관계를 한국에 대입해보면 한국의 자유민주주의 정치혁명의 1987년 6.10항쟁이고 그 뒤 진정한 자유민주주의에 기초한 산업혁명은 아이엠에프를 겪고 나서 시작되었다고 봅니다.(물론 그 전에 수차례 시도가 있었지만 매번 제국주의세력 군부독재세력에 의해 좌절되었습니다.)

이러한 관계는 사실 러시아에서도 그대로 반복됩니다. 러시아혁명(기본적으로는 독재체체)이 있고 나서 공장제 기계공업이 시작됩니다. 좀 세밀하게 분석한다면 독일의 경우 1848년 프랑스의 2월혁명의 영향을 받아 그 다음해인 3월에 3월혁명이 일어났고 그 결과 프로에센국왕이 자유민주주의 개혁을 약속하게 되었고 그 결과 프랑크프루크 국민회의가 성립되었는데 오스트리아와의 편입여부로 놓고 소독일주의가 대독일주의가 대립하다가 결국 소독일주의 입헌군주제(군주는 형식적) 채택했지만 그 당시 독일의 기득권자였던 융커라는 토지귀족이 중심이 된 반혁명세력에 의해 국민회의가 해산되고 그 결과 자유주의의 길을 걷지 못하고 군국주의 노선을 가게 되었죠. 그 이후 등장한 사람이 융커귀족으로 대표하는 비스마르크죠. 아무튼 정치적 변화가 먼저였고 그 정치적 변화가 자유민주주의적인 정치혁명이냐 여부와 그 질 나아가 설사 자유민주주적 정치혁명이 있었더라도 그  자유민주주의 정치혁명을 유지했느냐 여부에 따라 그 이후 경제발전의 질적 차이와 패망이 결정되었습니다.

독일 이탈리아 일본의 실패는 바로 군국주의정치모델을 택한 필연적인 결과입니다. 한국 역시 일제식민지지배와 박정희때문에 군국주의모델로 가게되어서 망하게 될 경로를 밟아 가다가 독립운동과 4.19혁명 그리고 6.10항쟁에 의한 자유민주주의쟁취로 인해 정상국가로 가게 된 것이죠. 아무튼 군국주의 모델은 어느정도의 경제적 성과는 얻을 수 있을지라도 거기에는 개개인의 자유와 창의성이 부정되기 때문에 결국 경쟁에서 지게 되어 있습니다.(민주주의가 부정되는 곳에는 자유주의도 차츰 죽게된다는 명제가 도출되네요. 고로 자유민주주의는 하나로 봐야 한다고 봅니다.) 거기에는 개인의 자유로운 상상에 의한 창조적 파괴가 일어날 수 없기 때문에 일류국가로 발전할 수가 없는 것이죠. 잘 해야 중진국까지 갔다가 전쟁이나 내부모순으로 후진국으로 회귀할 운명이 군국주의 모델이죠.(우리도 박정희전두환체제를 바꾸지 못했다면 결국 중진국에서 추락의 길을 걸었을 겁니다.) 아니면 아프리카처럼 처음부터 후진국에서 못 벗어나던지요. 러시아도 공산주의로 가버렸기 때문에 정치적인 독재체제로 귀결되어 망하게 된 것이죠. 공장제 기계공업은 어떻게 대충 흉내낼 수 있을 지 모르지만 그 정신에 해당되는 자유민주주의가 뒷받침되지 않는 한 계속적인 창조적 파괴에 의한 창발적인 자본주의는 애초 불가능한 것이라는 것이죠.

그리고 본격적으로 서유럽국가가 중국을 식민지화 시킬 수 있었던 시기는 아편전쟁이 일어난 시기쯤에야 가능하게 됩니다. 즉 1760년에 공장제 기계공업이 시작해서 1840년쯤에 와서야 비로서 아시아를 경제적으로 군사적으로 지배할 수 있는 수준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참고로 중국은 과거 자신이 문명의 중심이라고 생각하면서 중화사사에 젖어 있었는데 서유럽열강의 침입 이후로는 중국은 자신의 문명이 서구화되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됩니다. 과거 중국이 몽고나 여진과 같은 종족의 지배를 받았더라도 그것을 문화를 기반한 것이 아닌 단순한 군사적 지배였기 때문에 그들은 여전히 문화의 중심이 자기들에게 있다고 여겼고 실제 몽고나 여진등은 급격히 중국화되었지만 서유럽진출이후에는 오히려 중국이 서유럽화되어야 하는 처지가 되므로써 중국의 아시아 패권은 그 이후 사라지게 됩니다.

참고로 영국의 명예혁명이 나온 시점은 영국이 아직 상업이 가미된 농업국가수준일때 나온 것입니다. 다만 공장제 수공업형태의 1차 공업이 어느정도 발전한 단계이기는 했지만 말입니다. 미국조차도 기본적으로는 농업국가였습니다. 제퍼슨이 원래 분권주의를 고안한 것도 농업국가를 모델로 해서 만든 것입니다. 헤밀턴의 연방주의에 대한 제퍼슨과 메디슨의 반연방주의 승리는 미국의 농업세력의 승리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 뒤에 1840년쯤에야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그 결과 공업국의 면모가 세워지므로써 결국 1860년대 남북전쟁을 통해 공업국으로의 재편이 완성되어 간 것이죠.  더구나 1789년의 프랑스는 말도 할 것 없이 농업국가였구요. 독일은 1850년전까지 융커라는 토지귀족의 세력이 강한 농업국가였고 1850년대에 비로서 산업혁명이 시작되었고 그 융커들에 의해 산업화가 이루어졌고 그 대표자가 비스마르크입니다.

결국 상업이 가미된 농업국가수준에서 정치적 변화가 이루어졌고 그 이후 급격하게 공장제 기계공업이 도입되면서 모두 산업국가로 변신하게 됩니다. 자본주의 발전사에서 공장제 수공업에서 공장제 기계공업으로 변화는 엄청난 차이를 가져오는 것이었습니다.

보통 경영형 부농과 같은 것을 자본주의 맹아라고 하는 것도 그것이 공장제 수공업과 연결되기 때문이죠. 공장제 수공업이 나온 뒤에 공장제 기계공업으로의 전이가 가능한데 그 중간에 급격한 정치적 변화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공장제 수공업하의 경제수준은 중국의 경제수준과 그리 차이가 나는 것이 아니었고 설사 공장제 수공업의 후반기에 어느정도 우월하였다고 하더라도 식민지지배까지 가능하게 하는 수준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오직 공장제 기계공업에서 나온 그 힘이 식민지지배를 가능하게 한 것이죠. 그리고 영국외의 나라는 영국의 공장제 기계공업을 보고 공장제 수공업단계를 약하게 거치거나 생략한채 바로 공장제 기계공업으로 넘어간 것이죠. 참고로 미국이 영국을 이긴 것은 영국지배하에 식민지하에서의 프랑스와의 식민지전투경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메리카 식민지 경영에서 영국에 패한 프랑스가 미국의 독립운동을 지원했구요. 한국도 미국이 한국의 독립운동을 지원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여? 당연히 성공할 가능성이 높죠. 그와 비슷한 이치죠.

서유럽사에서 보건데, 영국의 공장제 기계공업 자체만을 벤치마킹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독일조차도 1850년도에 시작해서 몇십년만에 어느정도 수준에 이르렀으니깐요. 문제는 그 정신을 얼마나 배우느냐입니다. 사실 영국의 경우와 같이 공장제 수공업에서 공장제 기계공업이 나타나는 것이 어렵고 그게 대단한 것이지 그 뒤에 공장제 기계공업을 보고 따라 배우는 것은 물적자본이 있고 어느 정도의 양질의 노동력만 확보된 상태에는 그것을 조합하는 공권력만 추가된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일본이 타이밍 좋게 그게 맞아떨어진 것이 운이 좋았죠. 중국과 조선은 그들의 내부모순이 그것을 불가능하게 만들었구요.(그 내부모순에 대해서는 그동안 아래 토론이 있었죠.) 하지만 동시에 중국이나 조선의 경우 늦었지만 서양을 배우려고 했음에도 제국주의가 가지는 속성에 의해 그러한 움직임이 좌절된 부분도 있습니다.
 
결국 산업화---->민주화 논리는 독일식 후진 민주주의발전경로만이 아시아에서는 가능하다는 서구의 편견적인 논리일 뿐이라고 봅니다. 영원한 킹왕짱은 서유럽이고 말입니다. 서구학자들이 은근히 박정희를 띄어주는 것은 결국 아시아를 폄하하기 위한 서구의 열망이 녹아 있는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