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이미자씨가 박근혜 후보 대선 운동에 나와 같이 노래를 했다. 내 가슴에 작은 파문이 일었다.
이미자씨는 요새 유행어로 말하자면 30대 중후반 이후 궁민들에게는 국민가수다. 같은 범주에 드는 사람들로는 최불암씨, 
백일섭씨, 김혜자씨, 이순재씨, 현철씨 등등 많은 사람들이 있다.


사진 출처: 오마이뉴스

연기자로서 연기력과 생활인으로서 개인을 구분해 보는 건 중요한 일인 모양이다. 영화 속 어떤 배역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대리 만족을 느끼고 때로는 공감하고 때로는 분노한다. 악역을 잘해내는 연기자 역시 필요하고 악역 전문 연기자가
악인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선하거나 멋진 배역을 맡아 잘 우려내는 연기를 했다고 해서 그 연기자가 그런 사람인 것은 아니다.

물론 연기자가 정치적 발언을 하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아웅산 피격 당시 사망한 국가 고위 공무원의 아들 심현섭씨가
보여온 기득권 세력 지지 움직임 역시 그의 아픔을 안다면 이해가 가는 부분이 있다. 그 외에도 많다. 민주당을 지지한다고 해서
요새 유행하는 말로 개념이 있는 사람인 것도 한나라당 지지한다고 해서 무개념인 것도 아니다.
핵은 어느 조직에 몸을 담고 어떤 정파를 지지하느냐가 아니라 그 사람의 식견과 행동인 것이다.

아직 개체가 되기 이전엔 팬덤에 휩싸인다. 트위터에서 게시판 댓글에서 어린 사람들(내가 마흔 넷인데 한 30대 중반까지는 아직
개체가 되기엔 어린 나이라고 보는 편이다. 이건 그냥 어림짐작이고 개인차가 있다.)이 써내려간 글들을 보며 아직 서툴구나 느낀다.
아직까지는 영양분을 공급해주는 모체에게서 독립하지 못하고 그냥 주위 성체들의 시각을 그대로 되풀이하는 앰프같은 역할을 한다.
그리고 정치란 어찌보면 그런 앰프를 여럿 모아 출력을 높이는 게임이다. 출력 큰 쪽이 이긴다. 어찌보면 유체들을 성체들이 이용해
먹는 부분도 있다.

연예인들을 정치 행사에 동원하는 일은 비일비재하고 예전에 비해 권력 집단이 물리적 폭력과 협박을 통한 강제 동원을 하는 일은
줄어들었다. 대신 물리력을 돈과 명예, 감투, 개인적 인연 등등이 대신하고 있다.
80년 신군부의 자축 파티 비디오에는 여러 남녀가수 연예인들이 등장한다. 은밀한 남녀 관계를 충분히 엿볼 수 있는 여가수의 움직임도
있고. 거기서 가수 최헌씨를 보았다. 멋진 가수다. 거기 가게 된 경위는 모른다. 그렇다고 거기서 노랠 불렀다고 최헌씨를 욕하기엔
세상이 아직 힘들다.

배역은 배역대로 감상하고 정치 행위자로서 연예인의 모습은 또 그렇게 받아들여 평가하는 게 좋다. 박근혜씨 지지한 연기자들 나오는
영화나 음반을 사지 않는다는 사람들도 있는데 나는 좀 그 사람들 곁에 있기가 망설여진다.

국민들의 사랑을 받는 연기자로서 최불암씨의 모습과 다큐멘터리 방송 음성은 좋다. 그가 설령 박근혜씨를 지지한다고 해서 그리고
과거 민정당 계열 사람들과 친분이 있다는 점 때문에 그의 연기는 보지 않을 것인가?

박근혜씨 옆에 서 있다는 이유만으로 이미자씨는 무개념 가수가 되는 것일까?

우리 또래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연예인 중에 많은 이들이 한나라당을 지지한다. 겉으로 잘 드러나지는 않지만. 알게 되면 정말
그렇단 말이야 하고 놀라게 될 사람들도 종종 있다.

내가 언젠가 여조카애게 들려주고 싶었던 이야기:

영화 박하사탕에서 아련한 추억과 순애보의 여주인공으로 나오는 문소리씨, 그리고 그 대척점에서 남주인공 영호의 아내가 되어 바람을
피우게 되는 김여진씨. 두 사람 나이는 엇비슷하고 둘이 경쟁 관계이지만 친하기도 하단다. 거기서 김여진씨는 여성으로서는 썩  매력적인
모습으로도 예쁘게도 나오지 않는다. 문소리씨는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아바타 같은 존재로 나오고.
그러니 김여진씨는 문소리씨보다 못한 배우이고 미모도 상대가 되질 않는가?

면회 갔다가 광주로 출동하는 군용 트럭에 탄 영호를 만나지 못한 순임(문소리)씨, 아직 여려서 남자 군인들의 찐한 말과 시선에 슬몃
치맛단을 매만지며 고개를 숙이고 수컷들 관심에 수줍어하는 문소리씨. 그 모습은 김여진씨가 그 역을 해도 넉넉히 소화했을 것이다.
만약 김여진씨가 문소리씨의 역할을 했다면 전혀 어울리지 않았을까?

조카애 치마 속으로도 언젠가는 남자의 손길이 찾아들어 가슴이 콩콩 뛰고 또 결혼을 하고 나면 그 손길을 애타게 찾을 때가 있을 테지.
그 전까지 조카애는 변태, 짐승, 남자는 도둑놈이라는 말을 해댈 것이다. 물론 같은 여자들끼리 합창하면서. 그렇게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나간다. 그리고 조카애도 김여진이 소화해낸 평범한 여자들의 삶의 살면서 마음 한편에 문소리 같은 비련의 주인공이 되는 꿈을 간혹 꾸며 살아갈 것이다. 옆자리 남편에게 변태니 짐승이니 해가면서. 하지만 그 의미는 달라져 있을 게고.

매트릭스에서 네오와 입술과 혀가 맞닿는 입맞춤을 원하는 모니카 벨루치의 모습이 문소리 배역이었다면 거기 성흥분제를 마시고 흐느적거리며 메로빈지언과 화장실로 향하는 여성은 아마도 김여진씨의 역. 우리네 인생에서 어느 게 진짜일까?  영화에서 모니카 벨루치가
말하지 않았든가? 그도 한 때는 네오였다고. 네오였던 시절의 메로빈지언을 애타게 갈구하는 그 여배우가 우리가 매일 만나는
중년 여자들이다. 남자들은 모두 한 때는 네오였고 여자들은 모니카 벨루치, 순임이었다.

저 각인(imprinting)에서 조금씩 벗어나는 게 개체가 되어가는 길이다. 개체는 뭐 별 게 아니다. 자기 마음 들여다보고 남의 마음을
헤아리는 일반화 능력을 키워나가는 것,나도 니 나이땐 그랬다고 나어린 사람들에게 말할 수 있는 것. 그런데 그거 별 게 아니지만
그거 엄청 어려운 거다 :) 요새 어른들은 싸가지 없어놔서 지 어릴 적 생각을 도통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