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혹하는 글쓰기 On Writing 스티븐 킹의 창작론 / 스티븐 킹 지음 . 김 진준 옮김 / 김영사


 

한편, 좋은 책은 한창 배움의 길을 걷는 작가들에게 문체와 우아한 서술과 짜임새 있는 플롯을 가르쳐주며, 언제나 생생한 등장 인물들을 창조하고 진실만을 말하라고 가르친다. 가령 <분노의 포도>같은 소설은 신진 작가들에게 더불어 저 유서깊은 질투심을 심어주기도 한다. 나 같으면 천년을 살아도 이렇게 좋은 작품은 못 쓸 거야 그러나 이런 감정들은 더욱 열심히 노력하고 더 높은 목표를 갖게 만드는 채찍질이 될 수도 있다. 빼어난 스토리와 빼어난 문장력에 매료되는 것은 아니 완전히 압도당하는 것은 모든 작가의 성장 과정에 필수적이다. 한 번쯤 남의 글을 읽고 매료되지 못한 작가는 자기 글로 남들을 매료시킬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독서를 통하여 우리는 평범한 작품과 아주 한심한 작품들을 경험한다. 이런 경험을 쌓아두면 나주에 자기 작품에 그런 단점들이 나타났을 때 얼른 알아보고 피해갈 수 있다. 또한 독서를 통하여 우리는 훌륭한 작품과 위대한 작품을 경험함으로써 자신의 목표를 정하고, 과연 이런 작품도 가능하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 그리고 독서를 통하여 우리는 다양한 문체를 경험한다.

 

여러분은 그 중에서 특별히 멋있어 보이는 문체를 모방하게 될 수도 있는데, 그것은 전혀 잘못이 아니다. 나도 어렸을 때 레이 브래드베리[Ray Bradbury : <화성 연대기>로 유명한 미국 소설가 옮긴이]의 책을 읽고 레이 브래드베리처럼 글을 썼다. 모든 것을 향수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초록색으로 신비롭게 묘사했다. 제임스 M. 케인의 책을 읽을 때는 내 문장도 뚝뚝 끊어지면서 건조하고 삭막해졌다. 러브크래프트의 책을 읽을 때는 내 문장도 화려하고 복잡해졌다. 이렇게 여러 문체를 받아들이는 것은 자기만의 문체를 개발하는 데 필수적인 과정이다. 그러나 저절로 되는 일은 없다. 폭넓은 독서를 하면서 끊임없이 자기 작품을 가다듬어야(그리고 갱신해야)한다. 책을 별로 안 읽는 (더러는 전혀 안 읽는) 사람들이 글을 쓰겠다면서 남들이 자기 글을 좋아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정말 터무니없는 일이다. 그러나 나는 그런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어떤 사람이 나에게 작가가 되고는 싶지만 독서할 시간이 없다고 말할 때마다 꼬박꼬박 5센트씩 모았다면 지금쯤 맛있는 스테이크를 즐길 수 있었을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하여 좀더 솔직하게 말해도 될까? 책을 읽을 시간이 없는 사람은 글을 쓸 시간도 (그리고 연장도) 없는 사람이다. 결론은 그렇게 간단하다.

 

독서는 작가의 창조적인 삶에서 핵심적인 부분이다. 나는 어디로 가든지 반드시 책 한권을 들고 다니는데, 그러다 보면 책을 읽을 기회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한 번에 오랫동안 읽는 것도 좋지만 시간이 날 때마다 조금씩 읽어나가는 것이 요령이다. 각종 대기실은 독서를 위해 마련된 공간이다. 그렇고말고! 그러나 알고 보면 극장 로비도 그렇고, 계산대 앞의 길고 지루한 행렬도 그렇고, 누구나 좋아하는 화장실도 역시 그렇다. 그리고 오디오북 혁명 덕분에 심지어는 운전을 하면서도 독서를 할 수 있다. 내가 일년 동안 읽는 책 중에서 여섯 권에서 열두권 정도는 카세트테이프에 녹음된 것들이다. 물론 그러려면 신나는 라디오 방송을 못 듣게 되겠지만, 한번 생각해보라. 딥 퍼플의 노래 <하이웨이 스타>도 몇번이나 들리면 질리지 않는가?

 

예절을 따지는 곳에서는 식사중에 책을 읽는 것이 무례한 행동이지만, 작가로 성공하고 싶다면 그런 사소한 예절에 연연하지 말아야 한다. 더욱이 예절을 따지는 사람들과 그들의 주장에 대해서는 아예 아랑곳할 필요도 없다. 정말 진실한 글을 쓰려고 한다면 어차피 여러분의 사교생활도 얼마 남지 않은 셈이니까 말이다.

 

그밖에 또 어디서 책을 읽을 수 있을까? 러닝머신을 비롯하여 여러분이 헬스클럽에서 애용하는 각종 운동 기구가 있을 것이다. 나도 날마다 한 시간씩 운동을 하려고 노력하는데, 이 때 좋은 소설을 벗삼지 못한다면 아마 미쳐버릴 것이다. 요즘 대부분의 운동시설은 (집안이든 집밖이든) 텔레비전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텔레비전이야말로 운동을 할 때나, 그 밖에 무엇을 할 때나 작가 지망생에게는 백해 무익한 물건이다. 만약 여러분이 운동을 하면서 CNN에서 뉴스를 해설하는 허풍쟁이나 MSNBC에서 주식시장을 설명하는 허풍쟁이나 ESPN에서 스포츠를 중계하는 허풍쟁이들을 꼭 봐야 한다면, 지금이라도 여러분은 자기가 정말 작가가 되고 싶은 것인지 다시 자문해봐야 한다. 작가가 되려면 상상력이 충만한 삶을 살기 위해 본격적으로 정신을 가다듬어야 한다. 그렇다면 허랄도와 키스 오버맨과 제이 레노는 포기할 수 밖에 없다. 독서를 하려면 시간이 필요한데, 브라운관은 너무 많은 시간을 빼앗기 때문이다.

 

텔레비전에 대한 덧없는 욕구를 벗어던진 사람들은 대게 책 읽는 시간이 즐겁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마련이다. 나는 저 끊임없이 지껄이는 바보상자를 꺼버리기만 하면 작품의 질은 물론 삶의 질까지 향상된다고 주장하고 싶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말하고 있는 것이 과연 그렇게 큰 희생일까? <프레이지어> <ER> 재방송을 많이 보면 우리의 삶이 완벽해질까? 그렇다면 리처드 시몬스는 얼마나 봐야 할까? CNN의 뚱뚱한 백인 고위층들은 또 얼마나 봐야 할까? 말을 하자면 끝이 없다. 제리 스프링어., 닥터 드레, 판사 주디, 제리 폴웰, 도니와 마리. 차라리 말을 말자.

 

내 아들 오웬은 일곱 살 때쯤에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E. 스트리트 밴드에 푹 빠졌는데, 그 중에서도 건장한 색소폰 연주자 크레어런스 클레먼스를 특히 좋아했다. 오웬은 클레어런스 같은 연주 솜씨를 배우겠다고 마음먹었다. 아내와 나는 그 아이의 이런 야망을 지켜보며 즐거워했다. 다른 부모들처럼 우리도 자식에게서 재능을 발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혹시 천재일지도 모르니까. 우리는 크리스마스 선물로 오웬에게 테너 색소폰을 사주고, 부근에 사는 음악인 고든 보위에게 레슨을 받게 해 주었다. 그런 다음엔 행운을 바라는 마음으로 결과를 기다렸다.

 

7개월 후 나는 아내에게, 오웬이 동의하기만 한다면 이제 섹소폰 레슨을 중단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오웬도 기꺼이 동의했는데, 누가 보아도 안도의 기력이 역력했다. 자기 입으로 말하기는 싫었겠지만 더구나 애당초 색소폰을 사달라고 졸랐던 사람이 바로 자기였으니까 - 7개월이라는 시간은 오웬에게 현실을 깨닫게 하고도 남았다. 클레어런스 클레먼스의 멋진 사운드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색소폰은 자신에게 맞지 않는다는 깨달음이었다. 신은 그에게 그런 재능을 주지 않았던 것이다.

 

내가 오웬의 속마음을 눈치챌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연습을 중단해서가 아니라 정확히 보위 씨가 정해준 시간 동안만 연습을 하기 때문이었다. 일주일에 나흘은 방과 후 30분씩, 그리고 주말에는 한시간씩이었다. 오웬은 음계와 음표들을 모두 능숙하게 연주할 수 있었지만 기억력이나 폐활량이나 눈과 손의 협력관계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었으니까 그 단계를 뛰어넘어 뭔가 새로운 것을 찾아내고 스스로 놀라면서 황홀경에 빠져 연주하는 모습은 끝내 한번도 볼 수 없었다. 그러다가 연습 시간만 끝나면 곧바로 색소폰을 케이스에 집어넣었고, 다음 레슨이나 연습 시간이 될 때까지는 두번 다시 꺼내지 않았다. 이런 상황을 지켜보면서 나는 우리 아들이 색소폰으로 진짜 공연을 하는 날은 결코 없으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언제까지나 연습만 하는 것이 고작일 터였다. 부질없는 짓이었다. 즐거움이 없다면 아무리 해도 소용이 없다. 그렇다면 차라리 자기가 더 많은 재능을 지니고 있고 재미도 있는 다른 분야로 눈을 돌리는 편이 낫다.

 

재능은 연습이라는 말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들어버린다. 자신에게서 어떤 재능을 발견한 사람은 (그 무엇이든지 간에) 손가락에서 피가 흐르고 눈이 빠질 정도로 몰두하게 마련이다. 들어주는 (또는 읽어주는, 또는 지켜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도 밖에만 나가면 용감하게 공연을 펼친다. 창조의 기쁨이 있기 때문이다. 환희라고 해도 좋다. 그것은 악기를 연주하거나 야구공을 때리거나 400미터 경주를 뛰는 일뿐만 아니라 독서나 글쓰기에서도 마찬가지다. 여러분이 정말 독서와 창작을 좋아하고 또 적성에도 맞는다면, 내가 권하는 정력적인 독서 및 창작 계획도 날마다 4~6시간 별로 부담스럽지 않을 것이다. 아마 여러분 중에는 벌써 실천하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여러분이 누군가에게서 그렇게 마음껏 책을 읽고 글을 써도 좋다는 허락을 받고 싶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내 허락을 받았다고 생각하라.

 

독서가 정말 중요한 까닭은 우리가 독서를 통하여 창작의 과정에 친숙해지고 또한 그 과정이 편안해지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사람들은 작가의 나라에 입국하는 각종 서류와 증명서를 갖추는 셈이다. 꾸준히 책을 읽으면 언젠가는 자의식을 느끼지 않으면서 열심히 글을 쓸 수 있는 어떤 지점에 (혹은 마음가짐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이미 남들이 써먹은 것은 무엇이고 아직 쓰지 않은 것은 무엇인지, 진부한 것은 무엇이고 새로운 것은 무엇인지, 여전히 효과적인 것은 무엇이고 지면에서 죽어가는 (혹은 죽어버린) 것은 무엇인지 등등에 대하여 점점 더 많은 것을 알게 된다. 그리하여 책을 많이 읽으면 읽을수록 여러분이 펜이나 워드프로세서를 가지고 쓸데없이 바보짓을 할 가능성도 점점 줄어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