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늘 발전하고, 확장되는 토론문화를 만들어가 보자!

주제: 민주적인 토론 문화 발전, 시민의 지적 . 의식 성장 


추가: 09 7/24 22:42 ~ 43  
[좋은 토론의 원칙] :  http://no-smok.net/nsmk/%EC%A2%8B%EC%9D%80%ED%86%A0%EB%A1%A0%EC%9D%98%EC%9B%90%EC%B9%99

 

역사에서 교훈을 배우지 못하면, 사회는 항상 퇴보한다.

우리는 역사 이래로 엄청난 지적 발전과 의식의 상승을 경험했다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깊은 생각해보면 우리의 정신문화는 오히려 퇴보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다. 정신 문명은 악화일로에 있으며, 민주주의는 발전한 듯 싶으나 타락하고 있다.

 

일찍이 오래 전부터 지켜본 토론 싸이트는 거의 다툼과 분열의 장으로 변하고 만다. 그것은 인간이 모여서 만들어 가는 사회, 역사가 있는 곳은 어디에서나 마찬가지이다. 오늘날 대한민국 정치 현장에서 그것을 목격하고 있으며, 미국 등 선진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왜 인류 (민주)의식은 계속적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퇴보하고 있고 타락하고 있을까. 무엇이 근본 원인일까?

 

나는 그것을 정신의 퇴보라고 규정한다. 지켜야 할 소중한 정신이나 신념은 완전하게 깨어있는 마음으로 유지하려고 늘 날카로운 이성의 눈으로 감시를 하고 있어야 겨우 지킬 수 있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느슨한 마음을 갖고 있으면 무너진다. 인간 의식이나 정신은 성장, 발전시키려고 노력을 하지 않으면 무뎌지고 나태해지는 본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것은 강의 배가 자연스럽게 아래로 흘러가는 이치와 같다. 우리가 강을 거슬러 올라가서 정신의 발현지에 도달하여 영원히 타락하지 않는 정신을 가지려면, 전체 사회 정신의 배를 지적 성장과 의식 향상의 노로 저어 강을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것과 같다. 성장을 위한 의지적인 노력이 없인 모든 것이 아래로 흘러 부패, 타락, 패망의 길을 걷고 말 것이다. .

 

우리가 이런 정신을 가꾸려고 노력하지 않는 한, 어떠한 사상이나 철학, 법이나 제도도 변질되거나 왜곡되고 말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것을 방지하고, 우리 자신이 지적으로 성장하여 가능한 한 완전한 합의에 이르는 참공론을 형성할 수 있을 것인가.

 

이러한 문제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을 한 사례를 우연히 읽게 되었다. 헌책방에 우연히 한 권의 책을 얻었다. 그것은 바로 모티머 J. 아들러의 자유인을 위한 책읽기, 이 책에서 민주주의를 잘 유지해 나갈 수 있는 힌트를 발견했다.

 

이 책의 저자는 하버드 대학생들도 고전을 잘 읽지 못한다며, 제대로 책읽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있다. 좀 의아했다. 어찌보면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수재들이 모인 곳이 하버드 대학인데, 그 곳의 학생들이 책을 하나 제대로 못 읽는다니 이해가 가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나서 과연 그렇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독서에 관한 책이 참으로 심오한 이야기로 끝을 맺는다.

 

그것은 우리가 토론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민주주의는 성립되지 않는다는 놀라운 이야기였다. 참으로 뜻밖의 일갈이었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를 듣고 보면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이런 이야기가 마지막 17 , <자유로운 정신과 자유로운 인간> 편에서 논술되고 있다. 이런 이야기야말로 우리 모두가 읽어보고 배워야 할 내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부터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도대체 대한민국에서 왜 민주주의가 잘 실현되지 않고 있을까 의아했다. 그러 보니, 민주주의의 폐단만 보이는 것이다. 지난 총선 결과를 보고 절망을 했다. 작년에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대통령이 독재를 할 기미를 보이고 있는데도 국민들은 총선에서 여당에 몰표를 주었다. 정말 위태로운 결과였다. 너무나 한심스러웠다. 합법적인 독재와 민주주의 파괴가 예측되는 것이었다. 절망했다. 실제 예측한대로 대한민국은 역주행을 하기 시작했다. 대통령이 독재를 하고 있는데도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다. 거대한 촛불 함성도 잦아들고, 전직 대통령의 추모의 열기도 식었다. 이제 정녕 우리는 민주주의가 죽어가고 있는 것을 맥없이 지켜보고 있어야만 하는가. 낙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가 쟁취하려고 목숨을 걸고 외치고 사랑했던 민주주의였던가 회의가 많이 들었다.

 

사실이 이런데도 일부 우파(?) 논객들은 사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있다. 진실을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이 또한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일이었다. 일부겠지만 이성을 상실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칭 보수라며 문필의 칼을 휘두르고 있다. 정말 위험한 일이다. 왜냐하면 문은 무의 힘보다도 더 위험하기 때문이다. 언뜻 보아도 보수라고 하는 사람들의 행태는 3, 3, 3, 1집이였다. 무원칙, 무개념, 무법리가 3무이고, 몰상식, 몰가치, 몰염치가 3몰이며, 비합리적, 비이성적, 비논리적이 3비이며, 똥고집이 1집이다. 한마디로 무뇌아들이다. 뇌가 있다면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할 리가 없으니깐 말이다. 그런 그들을 지지하고 옹호한다. 한마디로 제 정신이 아닌 것을 모르고 있다. 나는 이에 크게 분노한다. 그렇기 때문에 작은 노력이라도 기울이고 싶은 것이다. 

 

어제 밤에 일부 구절을 옮겨 적으며 다시 한번 책을 훑어 보았다. 저자는 책에서 1966년에 미국에서도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다며 한탄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안을 제시해 놓고 있었던 것이다. 민주주의가 무너질 수 밖에 적어도 퇴보할 수 밖에 없는 이유들이 예언이 되어 있었다. 같이 공유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 싶어 일부 내용들을 타이핑 해보았다. 그 놀라운 예지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왜 그런지 이유를 소상히 알 수 있었다. 한번 꼼꼼하게 읽어보시길 바란다.

 

<숨쉬는 바람>님께서 ( http://acro.pe.kr/zbxe/?document_srl=6353 ) 자유게시판의 문화.예술 쌀롱의 발전을 위해서 독서토론을 제안하셨는데, 나는 그 출발점으로 이 곳 공론장에서 가능한 많은 회원들이 위 책을 갖고 토론을 한번 해보자고 제안을 하고 싶다. 우리의 성숙된 민주주의, 또 그 토론문화 형성을 위해서 말이다. 지적 성장과 정신의 고양을 위해서

 

민주주의는 꽃밭처럼 가꿀 때만 아름답게 꽃피울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냥 방치해 두면 잡풀에 치어 꽃들은 채 자라지도 못하고 죽고 말 것이다.

 

 

2009. 7. 4.     20:50

 

대한민국에서 가장 수준 높은 민주주의의 실현을 지켜보고 싶은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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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자유인을 위한 책읽기 인용 - 자유로운 정신과 자유로운 인간

 

자유인을 위한 책읽기 How to Read a Book / 모티마 J. 아들러, 최영호 옮김 / 청하

(1966년판을 완역한 책임.)

 

모티마 제롬 아들러 Motimer Jerome Adler

             1902   뉴욕 출생

             1929   콜롬비아 대학 문학박사

             1930   시카고 대학 N. R. 허친스 총장과 함께 명저 읽기 프로그램 개발

             1952   미국 철학협회 설립, 회장 피선

브리테니카 엔사이클로페디아 편찬위원 역임

 

17장 자유로운 정신과 자유로운 인간

 

훌륭한 책읽기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인 저자와 독자 간의 대화는 독자가 그 책이 펼쳐보이는 논의에 익숙하지 못할 때는 결코 일어날 수 없는 것이다. 만일 독자가 탐독한 책에 대해 더불어 논의할 수 있는 친구들이 있다면, 책과는 훨씬 더 많은 얘기를 주고 받을 수 있을 것이다. (329p)

 

하지만 또 다른 문제가 있으며 이것은 좀더 중요한 점이다. 명저들을 잘 읽는다고 해서 그것이 곧 끝은 아니다. 그것은 버젓한 삶, 즉 자유로운 인간, 자유로운 시민의 삶을 영위하는 수단이다. 이것이 우리의 목적이 되어야만 한다. (329p)

 

혹자는 정보에 밝은 모임에 참여해 지금 논의되고 있는 저서들을 읽었을 수도 있다. 거기에는 대화를 시작할 수 있는 여타의 기회가 많다. 하지만 만일 다름 사람들도 똑 같은 책을 읽지 않았다면, 그 기회는 이내 사라질 것이다. (330p)

 

사람들이 그 다음에 읽을 책을 추천하고 또 그런 추천을 받아들였을 때, 대화는 사람들이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것에로 옮겨갈 것이다. 그리고 비록 그 책을 읽은 사람들 몇 명이 대화에 참여했다고 하더라도, 일정한 방식으로 논의를 이끌어 가지 못하면 그들의 무능 때문에 여지껏 해온 대화는 얼마 안 가서 끝이 날 것이다. (330p)

 

고전들은 학생들로 하여금 사상의 세계로 안내해 줄뿐만 아니라 그들간에 보다 나은 대화를 위한 참조틀을 제공할 것이다. 그들은 책에 관해서 뿐만 아니라 인간의 사고와 행동에 관련된 갖가지 문제들을 전적으로 다룬 책들을 통해 지적으로 그리고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서로 얘기하는 법을 알게 될 것이다. (322p)

 

어스킨 교수는 그러한 공동체 내에서 민주주의가 보장될 것이라고 말했는데, 왜냐하면 민주주의는 인간 문제의 해결에 관한 지적인 의사 전달과 그 해결을 위한 공동 참여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지 않으면 민주주의가 다시 위협받게 될 것이다. 기억해 보면, 그 당시 우리는 어스킨 교수의 통찰력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분명 그의 통찰력은 옳았다. 민주주의의 가장 강력한 보루는 자유로운 교육인 것이다. (332p)

 

그러나 성인 교육에서는 단지 함께 모여 고전들을 읽고 그 책에 관해 토론하면 된다. 책읽기를 통해 책읽는 법을 알게 되듯이, 논의를 함으로써 토론하는 법을 알게 될 것이다. (332p)

 

인근 교외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찾아와 그들에게도 그것을 얘기해주었으면 하고 나를 초청했다. . .. 처음에 그들은 대부분의 대학 졸업생들이 하듯이 책을 읽었다. 그들은 대학 교육을 떠난 지점을 출발점으로 해서 책읽기를 시작했다. 일상 신문이나 심지어는 정기 간행물 또는 최고의 양서들을 읽는 데 적용된 그들의 책읽는 습관들이 일리아드, 신곡, 죄와 벌, 플라톤의 공화국, 스피노자의 윤리학, 밀즈의 자유론, 뉴우톤의 광학, 다아윈의 종의 기원 따위의 서적을 읽을 때는 전혀 도움도 안된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하지만 그들은 그 책을 전부 읽었으며, 탐독하는 과정에서 점차 책읽는 법을 인지하게 되었다. 그들은 매년 자기 자신이 점차 숙달되어 가고 있음을 느꼈기 때문에 계속 (333p)

 

책읽기를 시작하기 전, 그들은 서로 그냥 그저 만나고 헤어지는 단순한 친구들에 불과했지만, 이제 그들 간의 우정은 지적으로 성숙해졌다. 대화도, 이전에는 곧 시들해져 버리거나 다른 주제로 넘어가곤 하던 것이 보다 풍성해졌다. 그들은 총명함과 터득한 요령에 의해 전제들과 논의들을 판단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334p)

 

중요한 문제들에 관한 논의를 하는 것은 늘 성인들이 계속해서 교육받는 방법이었으며, 그 방법은 거의 중요한 책들을 섭렵함으로써 일반적으로 소양을 습득하도록 해 주었다. (334p)

 

논의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그것이 중단되었던 것은 책읽기 토론을 지탱시키고 유지를 위한 재정적 지원을 계속해서 얻어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모임은 고전들을 함께 어울려 읽고, 탐독한 것에 대해 논의하려고 마음먹은 사람들에 의해서는 언제 어디서든지 다시 부활될 수 있다. 여기에 필요한 것이라고는 함께 논의를 시작할 몇몇 친구들뿐이다. 분명 논의를 마치기 전에 그런 친구들은 훨씬 나은 친구들로 변모되어 있을 것이다. (335p) ~ 00:30

 

00:46~

사람들은 가장 민주주의적 양식으로 매 회합마다 그 때에 가장 적격인 리더를 선출해서 논의를 진행시켜 나갈 수 있다. 회합 때마다 매번 리더를 다른 사람으로 교체시켜 보라. 각 경우에 선출된 리더는 아마 어떤 사람들보다 그 책을 읽고 논의하는 데 훨씬 많이 배우게 될 것이다. 또 집단의 구성원들이 모두 차례로 이런 경험을 해 본다면, 전체 집단은 외부에서 리더가 초빙되었을 때, 좀 더 빨리 논의를 터득하게 될 것이다. 비록 시작하고자 하면 좀 힘이 들겠지만, 내가 제시하는 이 같은 계획은 위와 같은 보상을 해 줄 것이다. (335p)

 

그렇다고 해도 훌륭한 논의는 몇가지 점에서 볼 때 모두 동일하다. 그런 논의는 자유롭게 진행된다. 논의가 이끌려 나온 곳 어디든지 다음 논의가 뒤따른다. 이해와 동의가, 무한하고 다양하게 뻗어 가는 논의의 가지들에 의해 도달되는 만족스런 목적들이다. 훌륭한 대화에는 분명 목적이 있으며, 공허하지도 않다. 논의되어질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 진지하게 논의되었을 때, 그 논의는 흔히 사람들이, 논의는 논의를 위한 논의라고 싸잡아 버리곤 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의 생각 만큼 진부하며 소득이 없는 것이 아니다. (336p)

 

책을 잘 읽도록 훈련된 정신은 증진된 분석력과 비판력을 내포한다. 훌륭하게 토론하도록 단련된 정신은 훨씬 더 예리한 분석력과 비판력을 갖는다. 사람들은 이러한 것들을 참을성 있게, 그리고 공감적으로 다룸으로써 논의를 위한 관용을 배우게 되며 또 습득하게 된다. 따라서 자기 의견만 옳다고 다른 사람들에게 강요하는 동물적인 충동은 점차 억제된다. 즉 논쟁의 유일무이한 중요 요소들은 이유와 증거이다. 우리는 힘을 과시하거나 자신들에 동의하는 수를 헤아려 봄으로써 우월해지고자 하지는 않는다. 진정한 쟁점들은 단순히 의견의 비중에 의해 결정되어질 수 없다. 이유에 호소해야 하며, 집단의 압력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 (337)

 

.. 훌륭한 토론은 비뚤어진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우리를 바로 잡아 줌으로써 더 큰 도움을 제공할 수 있다. 만일 동료들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사람들을 살해하는 일과 같은 나쁜 생각은 곧, 그리고 항상 드러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당혹감으로 인해 이제껏 우리들의 의지력 내에 있다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노력을 기울이게 될 수도 있다. 책읽기와 토론이, 올바르고 명백한 사고를 위해 이러한 요구들을 강요하지 않는다면, 우리들 대다수는 지각과 판단에서 있어 놀라울 정도로 잘못된 확신을 가진 채 나머지 생을 마감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들은 생애 대부분을 나쁘게 여기게 되며, 더더욱 나쁘게는, 우리가 그러한 것을 알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337p)

 

잘 읽고, 잘 청취하고, 잘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은 단련된 정신을 갖고 있다. 훈련은 우리의 능력을 자유로이 사용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다. (337p)

 

내가 앞서 언급했다시피 훈련은 자유의 근원이다. 훈련된 지성만이 자유로이 생각할 수 있다. 생각하는 자유가 없는 곳에서는 그 어떤 사고의 자유도 있을 수 없다. 자유로운 정신없이 자유로운 인간은 존재할 수 없다. (338p)

 

이제 독자 여러분은 책읽는 법을 배운다는 점이 다른 것과 (사실 독자의 나머지 삶과) 중요하게 관련이 있다는 점을 인정하게 될 채비가 차려진 것이다. 그것은 사회적.정치적 의미와 관련이 있다. (338p)

 

책읽기가 즐거움의 즉각적인 원천으로서는 아무리 좋다고 할지라도 그것 자체로 목적에 도달한 것은 아니다. 인간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생각하고 배우는 것 이상이어야 한다. 우리는 행동해야 한다. 여가를 무관심한 활동들로 보내고자 한다면, 우리는 거기에 따르는 실제 책임을 기피할 수 없다. 책읽기가 그것의 궁극적인 명분을 가진다는 것은 우리의 실생활과 관련있기 때문이다. (338p)

 

명저들을 읽는 것이 우리가 좋은 사회를 만드는 것과 관련되지 않는다면 아무런 쓸모없는 짓이다. 사람들은 모두 좋은 사회에 살고자 바란다. 그러나 그런 사회를 위해 일하려고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나는 훌륭한 사회가 의미하는 바를 간략하게 설명해 보겠다. 우리는 평화롭고 현명하며 슬기로운 교제를 하면서 친구들과 더불어 살아간다. 또 공통의 사상과 목적을 공유하고 전달한다는 한도에서 우리는 하나의 공동체를 결성한다. 대게 좋은 사회란 현명한 의사 전달로 인해 친구들을 사귀게 되는 사람들의 결합임에 틀림없다. (339p)

 

의사 전달의 기술이 부족할 때 지적 토론은 점차 시들해진다. 생각을 주고 받는 매개체를 완전하게 파악하지 못한 곳에서는 사고들이 더 이상 인간의 삶에 기능할 수 없다. 그러한 일이 발생할 때, 사람들은 금수와 다를 바 없이 물리적인 힘과 꾀로서 지배하려고 할 것이며, 그들의 상대방도 서로 똑 같은 방법으로 억압하려고 할 것이다. (339p)

 

.. 하지만 나는 우리의 자유주의가 건전한지 아닌지 이제 의심스러워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자유의 기원과 그것의 종말을 알지 못한다. 우리는 모든 류의 자유, 즉 언론, 출판, 집회의 자유 등을 부르짖는다. 그러나 사상의 자유가 모든 이런 여타의 자유들의 기반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그것 없는 언론의 자유는 공허한 특권이며, 그것 없는 자유로운 의식은 개인적인 편견에 불과하다. 사상의 자유가 부재한 시민의 자유는 <형식적인 방법으로만> 활용되어지며, 그런 자유를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알지 못한다면 오래도록 그 자유들을 존속시킬 수 없을 것이다. (339p) 

 

……. 읽기와 쓰기, 듣기와 말하기의 기술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유롭게 사고하는 것을 가능하게 해 준다. 그 까닭은 <그런 기술들이 정신을 훈련시키기 때문이다.> ……. ………. 여기서 그릇된 자유주의란 권위와 압제, 훈련과 통제를 혼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모든 것이 견해 차이일 뿐이라고 여기는 곳 그 어디든지 뿌리내려 있는 자멸적인 독단으로서 궁극적으로는 힘만이 권리이다라는 입장을 취한다. (340p)

 

기초교육, 다시 말해 자유로운 기술의 정치적 의미는 가까이에서 찾아볼 수 있다. 민주 국가가 자유로운 인간 사회인 한해서 그것은 자유로운 교육을 지속, 발전시켜나가야 한다. 만일 그렇지 못할 경우 민주 국가는 사멸해 버릴 것이다. 민주 국가의 시민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되려면, 우선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하고 사고할 관념체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의 의사 전달시 분명하게 할 수 있어야 할 뿐 아니라, 온갖 종류의 커뮤니케이션을 비평적으로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책읽기에 있어서의 숙련은 바로 그와 같은 목적을 지향하며, 고전들을 읽는다는 것은 명확하게 말해 그 목적의 수단에 불과한 것이다. (341p)

 

오늘날 문필의 힘은 폭군들이 사용하는 칼의 힘 만큼이나 강력하다. 과거의 폭군들은 대부분 유명한 장군들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그들은 의사전달에 있어 연설가나 선전가를 현혹시키는 전략가들이며, 그들의 무기는 비밀 경찰, 강제 수용소 만큼이나 많은 언론 매체들이다. 그리고 선전으로 거칠게 다루어질 때, 사람들은 폭력으로 억압당할 때 만큼이나 굴욕감을 느끼게 된다. 오늘날 사람들은 민주적으로 통치받고 있는 자유로운 인간이 아니라 한낱 정치적 꼭둑각시에 불과하다. (342p)

 

홉스는 민주제를 미심쩍어 했는데, 그 이유는 민주제가 모략꾼들의 과두정치로 타락하기 쉬운 성향을 갖고 있기 때문이었다. 비록 우리의 목적이 그것의 이유를 규명하는 것과는 다르다 할지라도, 최근의 역사가 홉스의 논증을 증명해 주고 있다는 점은 인정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탁월한 연설가가 어떻게 그 나라의 압제자로 될 수 있었는지 세계 도처에서 그 예를 찾아볼 수 있다. 우리는 독재에로 이르는 길을 차단함으로써 이런 내적 약화의 질곡 속에서 민주주의를 구출해야만 한다. 만일 교묘하게 짜여진 무력에 의해 억압받고 있다면, 우리는 그것의 무장 해제를 위해 투쟁해야만 한다. 그래서.. . 요컨데 시민들은 그들이 탐독하고 청취한 것을 비평할 수 있어야 하고, 또 그런 교육도 자유롭게 받아야 한다. 만일 학교가 그러한 교육을 제공해 주지 못한다면, 스스로가 읽는 법을 터득하고 책을 읽음으로써 깨우쳐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에서 그들의 자녀들을 위해서 학교 교육 제도에 어떠한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결국 깨닫게 될 것이다. (342p)

 

…… 배움의 기술을 터득하지 못한 학생들은 단지 수동적인 가르침만 받을 뿐이다. 다시 말해 그들은 나쁜 의미에서 <주입식으로만> 배울 수 있는 것이다. 이와 비슷하게, 행해지고 있는 통치를 받아내는 기술을 나름대로 겸비하고 있지 못한 시민들은 무력과 그것의 부속물에 의해서만 지배될 수 있다. 간략히 말해, 민주주의는 통치받는 기술을 갖고 있음으로써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는 사람들에 의존한다. ……. 통치하는 것과 통치받는 것간의 상호성을 유지하는 것은 정치적 자유와 시민적 자유를 동시에 보장하는 것이다.  / 가르치고 가르침을 받는 기술의 경우와 같이, 통치하고 통치받는 기술은 상호 정신적 기술이자 자유로운 기술이다. (343p)

 

따라서 통치받는 방식을 아는 것은 민주 시민의 주요한 자질이다. ... 책 읽는 기술은 가르침을 터득하는 기술뿐만 아니라 통치받는 기술과도 관련된다. 이 두 가지 경우 모두에 있어, 사람들은 의사 전달을 적극적이면서 현명하게, 그리고 비판적으로 행할 수 있어야 한다. 민주주의 정부는 그 무엇보다도 성공적인 의사 전달에 의존한다. 민주적인 과정이 겉만 번지르르한 것으로 될 때에는 사람들간에 불신 풍조가 만연할 때이다. (344p)

 

그렇지만<우리는 실천으로 옮겨야만 한다.> 이것은 인간 삶의 모든 국면에 있어 최종적인 말이다. 나는 명저들을, 본질적으로 좋은 것으로서 읽고 논의하는 데 한번도 주저해 본 적이 없다. 그러나 여기서 되풀이해서 말해 보면, <그것들이 바로 우리 삶의 궁극적인 목적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가 염원하는 것은 행복과 훌륭한 사회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책 읽기는 단지 그런 목적을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344p)

 

만일 책읽기를 잘 했던 사람이 행동 또한 그렇게 모범되게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러한 성취에서 누린 즐거움이 박탈되고 있다는 것을 얼마 못 가서 느낄 수 있게 된다. 지식은 그 자체로 좋은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올바른 행동이 뒤따르지 않는 지식은 우리를 지식 그 자체의 추구가 불가능한 세계, 즉 책들은 매장되고, 도서관은 폐쇄되고, 진실을 추구하는 열정은 압박받는 그런 세계로 데려갈 것이다. (344 ~ 345)

 

내가 재학 중 그리고 졸업 후의 교육이 진정 자유로운 교육에 역행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단지 나의 고지식한 생각에서 나온 것만은 아닐 것이다. 실제로 한번이라도 명저들을 탐독했던 자라면 아마도 우리가 오늘날 당면하고 있는 문제들에 대해 신중히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실질적인 문제에 관해 분명 생각해 본 사람은 그런 문제들이 올바른 실천에 의해서만 제대로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기술들은 자유를 위한 준비가 되며, 나아가 자유로운 정신을 형성시켜 주고, 공감대를 이루는 동료들의 공동체를 형성시킬 것이다. 그것을 넘어서, 자유로운 사람으로서 행동하는 것에 대한 책임감은 우리가 수용해도 좋고 회피해도 좋은 것이다. (345p) ~ 02: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