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논쟁이 게시판을 뜨겁게 달구고 있네요. 이젠 좀 식혀졌나요? 

이곳에 푸코에 대해서 쓰면서, 저는 언제나 우리 역사를 염두에 두고 있었습니다. 푸코와 관련해 다른 무엇보다 근대성, 근대적 인간의 탄생과 같은 개념들을 쓸 때, 우리 역사에 있어서의 근대성의 형성에 대해 쓸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단적으로, 서구에서의 광기의 역사, 병원의 역사, 지식의 역사, 감옥의 역사, 성의 역사를 기술한 푸코는 우리 역사 기술에 있어 새로운 관점을 제시할 수도 있다고도 생각을 합니다. 현재 그러한 작업이 이뤄지고 있을 듯도 한데, 자세한 것은 모르겠네요. 그러나, 저는 푸코에 대한 명확한 이해 없이 푸코를 우리 역사 기술에 적용하는 것에 조심스러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단적인 예로, 일반적으로 푸코가 받아들여지는 방식으로, 서구 근대 시대의 지식과 권력의 형성에 대해서 쓰고, 이 지식과 권력의 형성에 의해, 근대적 정신병원, 감옥 등등의 제도들과 정신의학, 형법학 등등의 담론들이 탄생했으며, 이는 근대적 인간의 탄생을 가능하게 하고, 그 제도들과 담론들은 그 근대적 인간을 조건지우며, 억압한다는 방식으로 푸코가 이야기되어지는 것에 대해 반대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러한 푸코 해석으로부터 우리 역사를 기술한다는 것에 반대한다는 것입니다. 단적으로, 푸코는 그와 같이 철두철미하게 근대적 인간을 감금했던 팬옵티콘(원형감시감옥)에서 조차 그 주체들의 저항을 얘기했으며, 이 저항들을 통해, 팬옵티콘으로서의 감옥과 형법이라는 유토피아적 망상은 실패했다는 것을 역사적으로 기술하고 있으니까요.

제가 생각하는 푸코와 우리 역사에 대한 연관성의 예들을 몇 가지 들어보죠. 한 예로, 푸코의 <<광기의 역사>>에서와 같은 서구 18세기말에서의 근대적 정신병원과 정신의학의 탄생이라는 주제를 1970년대 대한민국에서 정신병원이라는 제도가 자리잡은 것과 연결시킬 수 있지 않을까라고 썼었죠. 저의 또 다른 글에서 서구에서의 "개인, 개인주의의 탄생"을 논하기도 했습니다. 이는 이영훈에 대한 댓글에서 메타님이 "일제시대는 아마 조선 민중이 최초로 '개인'을 발견한 시대일지도 모릅니다"라고 쓴 것과 연결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는 마치 서구에서 전근대적인 봉건주의에서는 존재하지 않았던, 근대 자본주의적인 "경제학적 인간"으로서의 "개인"이 근대 시대에 탄생하였던 것과 같이, 봉건시대 조선왕조에서 통치의 대상일 뿐이었던 백성이 일제시대에 내선일체, 즉 대동아공영에 자발적으로 동일시해야하는 "개인"으로, 혹은 이와 반대로 그것에 저항하는 개인으로 탄생하는 것과 유사하게 말이죠.

서구의 경제적 근대화, 정치경제학, 경제학적 인간의 탄생과 같은 특정한 주제를 식민지 시대 혹은 해방공간 혹은 대한민국에서의 경제적 근대화와 연결시킬 수도 있지 싶습니다. 물론, 서구와 우리는 그 시기도 다르고, 위치도 다르고, 환경도 다르기 때문에, 푸코의 이론을 직접 연결시키는 것은 불가능 할 것입니다. 단지, 푸코의 근대화, 근대성 등등의 문제설정을 빌려올 수 있겠네요. 단적인 예로, 서구에서와 같은 아담 스미스식의 "시장"에서의 "자유로운 가격결정"과 같은 것이 식민지 시대에 있었는가를 살핀다면 어떠할까 싶습니다. 이영훈에 대한 북극곰님의 댓글에서보면,  일제치하 미곡에 대한 가격결정은 결코 자본주의적으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뭐, 자본주의=착취라는 것에까지 다다른다면, 앞 문장에서의 "자본주의적으로"라는 말은, "스미스식의 정치경제학적인 방식으로," 혹은 "중농주의의 방식으로"라고 고쳐야겠네요. 물론 자본주의는 채찍이면서 동시에 당근이기는 하겠습니다만...) 마치 17세기 유럽 중상주의에서 미곡의 가격결정이 자본주의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수출을 위해 인위적으로 낮은 가격, 낮은 임금을 매겼던 것과 비교될 수도 있겠네요. 결과적으로 기근이 이곳 저곳에서 생겨나고 많은 농민봉기가 유럽에서 발생했었죠. 일제시대에 어떤 정도로 그러했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비교가 잘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위에 열거한 예들 만으로도 푸코를 우리 역사에 비교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혹은 푸코 전체를 우리 역사 전체와 비교한다는 것은 아예 불가능한 것이어서, 푸코의 특정한 역사 기술을 우리 역사의 특정한 한 부문에 연결시킬 수 있을 뿐이며, 이러한 시도 또한 푸코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없이는 헛발질이 되고 말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감시의 내제화로 대표되는 푸코의 팬옵티콘이 그 한 예가 될 수 있겠습니다. 즉, "억압적인 권력"이라는 관점에서만 읽혀지는 푸코를 통해서는, 철두철미한 감시라는 관점에서만 읽혀지는 푸코를 통해서는 제시될 수 있는 새로운 관점이란 하나도 없습니다. 그리하여 이러한 푸코 해석으로부터라면, 일제의 식민 통치와 이에 저항하는 "민족주의"와 같은 "고공담론"만을 양산할 뿐입니다. 그리고 이에 반기를 드는 "탈민족주의" 담론도 "현재의 민족주의와 파시즘, 획일주의적인 군사문화가 결합해서 적대적공범관계를 형성하고, 그 시스템 속에서 스스로 생체권력을 양산하며 시민을 억압하고 있다는 사실"과 같은 고공담론만을 양산할 뿐이죠. (미누에님의 자유게시판의 <질문 하나>라는 글에서 인용해왔습니다.)

이러한 푸코라면, 저는 푸코를 읽지 않을 것입니다. 널리고 널린 역사 서적들 속에서, 굳이 푸코를 골라서 읽어야할 어떤 이유도 없다는 것이죠. 심지어는, <<감시와 처벌>>이 출판될 즈음에, 프랑크푸르트 학파에서도 유사한 책이  출판되었습니다. 프랑스의 아날 학파는 더 말할 필요도 없겠죠. 원형감시감옥이 어떻게 철두철미하게 작동할 수 있는 지는 18세기 말, 19세기 초 영국, 미국 행정부에서 발행되었던 출판물을 보기만 하면 되겠죠. 그러한 푸코라면 읽을 필요조차 없다는 것은, 심지어는 밴담이 고안한 팬옵티콘에 대한 가장 진일보한 비판을 밴담의 동시대인들에게서 찾아질 수 있다는 것에 있겠죠. 최초의 무정부주의자로 읽힐 수 있는 윌리엄 고드윈의 비판이 그러하고, 19세기 초 영국의 평론가인 윌리엄 헤이즐럿의 비판이 그러합니다. 그는 감시 장치의 창안자는 사람들을 "유리 벌집"에 가두고, 그들이 꿀벌처럼 열심히 일할 것이라고, 그래서 게으름이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비아냥거립니다.

결국 푸코가 <<감시와 처벌>>을 통해서 말하고자 했던 것은 "멀리서 들려오는 민중붕기의 함성소리(a distant roar of riot)"였습니다. 그리고 푸코는  밴담의 원형감시감옥이라는 "유토피아"는 (지배자에게는 유토피아, 피지배자에게는 디스토피아였을 뿐인) 하나의 "환상(illusion)"이었을 뿐이라고 단정짓습니다. 밴담의 원형감시감옥은 역사적으로 실패를 했습니다. 원형감시감옥은 밴담의 허구 이론(theory of fiction)을 통해 창안되는데, 허구 이론이란 이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허구라는 겁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허구를 얼마나 잘 짜맞추느냐가 되는 것이고, 여기서 허구적으로 작동하는 중앙의 감시탑이라는 원형 감시 감옥이 창안이 되는 것이죠. 하지만, 그것은 실패하고 마는데, 그것의 실패는 그 허구성이 폭로된다는 것에 있습니다. 중앙의 감시탑은 허구에 불과하다라는 사실이 폭로된다는 것이죠. 밴담의 동시대인들인 고드윈과 헤이즐럿을 통해 그러했구요, 당시의 소설들을 통해서도 그러합니다. 최초의 여성주의자인 메리 울스턴크래프트(고드윈의 부인이기도 합니다)의 <<마리아>>라는 소설은 남성중심의 형법 체계라는 허구(fiction)가 어떻게 무너질 수 있는지도 보여줍니다. 그 소설의 여주인공은 "만일 내가 당신들의 법을 무시한다면 어떠한가?"라고 말합니다. (물론? 제가 허구로서의 가부장제가 실질적으로 어떻게 작동하는지 모르는 바는 아니라는 말은 써야겠습니다. 허구로서의 형법이, 허구로서의 제도(감옥, 정신병원 등등)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모르지 않았던 푸코처럼 말입니다.)

따라서, 푸코에 대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감시의 내재화"라는 것 또한 오류입니다. 이러한 감시의 내제화는 제가 13년전 신문에서 푸코에 대한 기사에서 읽었던 내용이기도 하네요. 물론, 감시의 내재화라는 것이 작동하기는 할 터인데, 감시를 내재화를 하는 만큼, 감시의 시선을 피해 무언가를 꾸미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푸코가 <<감시와 처벌>>을 통해 말하려고 했던 것은, 감옥의 실패, 형법, 사법의 실패 였지, 다른 무엇이 아닙니다. 그 실패들을 극복하기 위해 보다 더 정교한 장치들, 예를 들면, 생체권력이 만들어지겠지만요. 그럼 사람들은 또 그러한 권력에 저항을 할 것입니다.

밴담의 허구 이론에서 또한 그의 형법 이론이 나옵니다. 무엇이 범죄인지를 결정하는 형법 말이죠. 근데, 이 형법 또한, 원형감시감옥과 마찬가지로 허구일 뿐이죠. 그래서 윌리엄 고드윈이라는 최초의 무정부주의자는 밴덤의 효용성에 기반한 형법이론을 비판하면서, 포고령 위에 포고령(edict upon edict)을 끊임 없이 반포해야하는 위풍당당한 형법에 대해 비판을 합니다. 형법이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새롭게 발견되는 범죄자들을 감옥에 가두기 위해, 형법은 끊임 없이 이런 저런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행위들에 범죄라는 딱지를 붙여야 하는 것이죠. 전근대 시대에는 형법이 이미 저질러진 해악에 대해서만 범죄라는 꼬리표를 붙이는 반면에, 근대 시대에는 사회에 해악을 끼칠 위험성을 잠재적으로 가지는 행위에 대해서 범죄라는 꼬리표를 붙이게 되는 것이죠. 대표적으로 이 시대에 나태함(delinquency)이 범죄가 되는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그래서 19세기 영국에서라면, 판사는 언제나 범죄인에게 왜 범죄를 저질렀는지를 물어야 합니다. 즉, 어떤 행위의 동기에 대해 물어야 하는 것이죠. 잠재적인 위험성이 있나 없나를 판단해야 하는 것이죠. 그러나 재판정에 선 범죄인이 입을 다문다면? 이때 부터, 형법 체계는, 사법 체계는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하는 것이죠.

왜 푸코여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제가 왜 푸코여야 하는지를 이야기하는 것으로 이런 저런 답이 될 수 있겠다 싶습니다. 이 글로 어느 정도 답이 되었기를 바라기는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