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사무실 내 자리에 앉아있다. 대강의 일을 끝내고 내일 할 일을 살짝 정리해 두었으니, 나머지 일들은 내일로 미루어 두련다.

하루 종일 사람들을 만나러 다녔다. 한 사람에 대하여 쏟아지는 원망을 들어주고 풀어주기 위하여 엄청난 시간을 소비해야 한다. 물론 그 사람은 그 사실을 모른다. 아마도 내가 이러고 있는 것을 보면 화를 낼 거다. 왜 쓸데 없는 짓을 하냐고. 그냥 나가라고 하면 그만 아니냐고.

글쎄다. 과연 그럴까? 한명, 두명 떠나갈 때마다 조직에는 피로가 누적되어 간다. 조금만 신경써주고 조금만 불만을 덜어주면 그들은 떠나가지 않는다. 그러나 아주 작은 비용을 아끼기 위하여 그는 그들의 불만을 무시한다. 그리고 겨우 사고가 터지기 직전에 와서야 사람을 충원해주고 불만을 잠재우려 한다. 그러나 그때가 되면 이미 늦다. 사람들은 떠나고 할 일들은 꼬여만 간다.

그는 아마 생각할 것이다. 나야말로 진정으로 회사를 생각한다. 나야 말로 조직을 위한다. 그래서 내 말을 듣지 않는 인간은 회사를 위하지 않는 인간이다.

유치하기 짝이 없는 인간유형이다. 일류대를 나왔고 자타가 공인할만큼 스마트한 사람이 왜 이리 타인의 마음을 들여다 볼 줄은 모르는 것일까? 그의 대화는 늘 일방적이다. 심지어 술자리에 가서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보면 정말 불쌍해 보인다. 

조직 전체에 그가 고안한 온갖 시스템과 제도가 넘쳐나지만 정작 일의 효율성은 더 떨어지고 난이도는 높아만 간다. 그러나 누구도 그의 고집을 막을 수는 없다. 자신만이 조직을 위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만이 조직을 위할 것이다. 그가 생각하는 조직은 오로지 그의 통제 속에서만 움직여야 하니까.

가끔 머리 좋은 바보를 만나게 된다. 수치와 데이타를 숭배하면서 그 디지털라이징된 기호가 표상하는 그 너머의 것은 전혀 읽지 못하는 그런 바보들 말이다. 그는 자신이 읽지 못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수많은 것들을 잃어가면서도 자신이 잃은 것도 인식하지 못한다.

삶은 그런 바보들을 위하여 거대한 공허를 마련해 둔다. 그래서는 그 공허안에 수많은 것들을 쏟아 넣는다. 수치화 할 수 있는 모든 것들. 자신의 것으로 부족하면 타인의 삶도 송두리채 그 공허 안으로 쏟아 붇는다.

그의 앞날이 뻔히 눈앞에 보이는 것 같다. 이건 어떤 블랙코미디 영화에서나 다 볼  수 있는 클리셰같은 삶 아닌가. 왜 자신의 삶을 이토록 뻔한 파국으로 몰아가는 것일까? 흠....... 그래, 나는 그 이유도 알 거 같다. 그 이유조차 클리셰니까.

때로 삶은 무척 무의미하게, 그리고 매우 뻔하게 절망으로 치닫는다. 그래서 그런 절망이 우스워 보이는 법이다. 지겹도록 많이 보아온, 투명스러운 그의 파국을 위하여 건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