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에 얼굴 들이민지 이제 1년여, 그리고 대선판에 뛰어든지 이제 3개월 여밖에 안된 정치인에 대해
벌써 종언이라는 표현을 쓰는 게 대단히 성급하고 시건방진 판단이라는 것은 잘 압니다.

하지만 최근에 이루어진 안철수의 몇 가지 행동과 선택들을 보면서
더 이상 그는 한국정치의 새로운 흐름과 발전을 만들어나갈 거물 정치인이 되지 못할 것이며
많은 국민들의 기대와 달리 차기 19대 대선에서 그의 이름이 오르내릴 가능성은 별로 없을 거라는 판단을 하게 됩니다.

아, 물론 나중에 2012년 대선을 추억하는 과정에서 그의 이름이 많이 오르내리긴 할 겁니다.
하지만 앞으로의 대선에서 더이상 그는 유력한 상수가 되지는 않을 거란 얘깁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정치인은 똥밭을 굴러볼 줄 알아야 합니다.
정치라는 세계 자체가 어차피 똥밭의 연속인데 자기 옷에 똥묻히기 싫어 허공에만 매달려 있는 자는 절대 정치판에서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정치인이라면 모름지기 시장통 아낙네나 서울역 노숙자들도 알아들을 수 있는 현실적인 얘기를 입에 올려야 합니다.
철학적 선문답과 통역이 필요한 어휘력을 구사하는 데만 재미붙이다간 동네에 흔한 개똥철학자만큼도 대우받지 못하는 곳이 정치판입니다. 
  
모름지기 정치인이라면 국민으로부터 심판받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될겁니다.
이기고 지는 것은 그 다음의 문제일 뿐, 일단 출마를 결심했다면 국민들이 강제로 끌어내리지 않는한
함부로 양보나 사퇴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면 안됩니다. 

정치인, 그중에서도 특히 최고의 정치리더가 되고자 한다면 측근들을 자유자재로 통솔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 측근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따라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모습은 소통과 공감의 리더십이 아니라 그냥 깨방정일 뿐이죠.

성장하지 못하는 정치인은 절대 오래가지 못합니다.
하늘에서 벼락같이 내려온 정치인은 그 순간 강렬한 어떤 결과를 내놓아야 합니다.
아역배우 시절 이미 절정의 인기를 얻은 배우들이 쉽게 쇠락하듯, 국민들은 하늘에서 내려온 정치인의 성장을 오래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안철수는 이미 1년여의 짧은 기간 동안 서울시장과 대통령이라는 우리나라 선출직 공무원중 가장 중요하고
가장 많은 사람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선거에 참여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는 그 두번의 선거에서 아무런 시드머니도 확보하지 못했습니다.
이인제의 500만표든 정동영의 600만표든 일단 무언가 시드머니를 손에 쥐고 있어야 그 다음에 뭘해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그럼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까요?

1992년의 대통령 선거 때의 박찬종은 정말 화려했습니다. 
하지만 1995년 서울시장, 그리고 그 이후의 각종 국회의원 선거에 나타난 박찬종은  이미 쇠락한 정치인중 하나일 뿐이었죠.

앞으로 사람들은 문재인 옆에서 미소짓는 '도우미' 안철수를 보며 많은 안타까움을 느끼게 될 겁니다.
추후 보궐선거 등을 통해 국회의원 선거에 안철수가 나선다면 사람들은 그에게서 자기 정당에서도 대접받지 못한 채 
무소속으로 고향에 출마한 초라한 전직 대선후보 정동영의 얼굴을 떠올릴지도 모릅니다.
그 안타까움은 차츰차츰 무관심으로 변질되어 가겠죠.

안철수가 민주당원의 길을 선택하지 않은 이상, 그는 이번 대선에 끝까지 완주했어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그랬다면 비록 정권교체는 실패했을지 몰라도 그의 정치적 미래는 훨씬 더 탄탄하게 열렸을 겁니다.

하지만 그는 후보등록전 단일화 약속과 정권교체에 일조하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그의 정치적 미래를 던져버렸습니다.
문빠, 안빠, 박빠의 정치적 입장을 따지기 이전에 한국정치의 새로운 흐름을 열어갈 수도 있었던 한 정치인의 미래가 사라졌다는 겁니다.
  
문재인이 박근혜를 이기든, 아님 지금의 여론 그대로 처참한 패배를 당하든 상관없이
정치인 안철수는 더이상 한국정치의 구세주도 아니고, 새정치 혁신의 아이콘도 될 수 없을 겁니다.

이번 선거에서 그는 정말 아무런 소득도 없이 자신이 가진 정치적 에너지를 죄다 소진해버렸다는 느낌이 강하게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