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 대선 토론회는 약속이 있어 직접 보지 못하고 어제 저녁 다시보기로 전편을 다 보았습니다. 역시 언론이나 이 아크로에서도 말했듯이 이정희가 화제의 중심이 될 토론회였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아크로의 분위기와는 달리 이정희의 싸가지 없음도 마음에 들지 않지만 이정희의 사고체계와 소통방식이 더 큰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제가 이렇게 보는데는 “됐습니다‘라는 이정희의 단 한마디면 충분했습니다. 이 한마디면 이정희의 정신세계를 다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1. 이정희의 소통방식

이정희는 주제와 상관없는 골목상권 보호를 위한 유통법 개정을 새누리당이 무산시켰다고 박근혜를 공격했습니다만, 박근혜가 새누리당이 무산시킨 것이 아니라 대형 마트의 영업규제는 농어민, 중소업자들의 피해, 맞벌이 부부의 불편 등의 부작용이 있고, 지역 영세 슈퍼업자들도 이를 이해하고 최선의 방법을 찾는 중에 있다고 답변하고 이런 세세한 내용을 이정희는 알고 있냐고 되받습니다. 이 때에 나온 이정희 말이 바로 “됐습니다”였습니다. 저는 이정희의 저 한마디가 앞서 했던 이정희의 발언, 그리고 토론이 끝날 때까지 이정희가 한 발언이 모두 공허한 것으로 만들었다고 봅니다. “됐습니다”라는 이 한마디에 이정희와 진보당의 문제가 다 내포되어 있다고 봅니다. 쌀쌀맞게 내뱉는 말투나 표정은 마치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선생이 학생에게, 오너가 직원에게 말하듯이 하더군요. 이런 싸가지 없음이야 이정희의 성정이라고 치더라도 본인의 공격이 잘못 알고 저지러진 것을 알았다면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이 진보를 그 무엇보다 소중한 가치로 생각한다는 이정희나 진보당의 태도가 아닐까요? 그런데 이정희는 자기의 잘못을 쿨하게 인정하는 대신 저렇게 싸가지 없이 끊어버리고 넘어가 버립니다. 만약 저런 식의 답변이 off에서 있었다면 이정희는 주변으로부터 귀싸대기 맞고 딱지 가라앉은데 또 맞고 비오는 날 먼지 나도록 두들겨 맞았을 것입니다. 저것이 대화를, 토론을 하는 태도인가요? 저것이 소통을 하는 방식인가요? 차라리 진중권이 이정희보다 백배 낫습니다. 진중권은 그래도 사망유희 배틀에서 자기가 몰랐던 부분은 시인하고 변희재를 인정했습니다.(나중에 번복하긴 했습니다만)

이정희는 이 발언에 앞서 박근혜를 향해 고집불통의 제왕(여왕적)적 인물이라고 비난했습니다. 이정희가 박근혜에게 소통의 문제를 거론할 수 있나요? 저런 권위적이고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 자기 주장이 사실에 부합하지 않음을 회피하는 사람, 자기가 원하는 답만을 기다리는 사람, 이해보다는 공격거리를 찾기에 혈안인 사람이 소통 운운하는 것이 가증스럽습니다.


2. 이정희가 당당하다구요?

이정희의 선거 포스터에 나온 구호는 “당당한 대통령”입니다. 그리고 토론 뒤의 소위 좌파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정희가 속 시원히 잘 말해 주었다는 평도 있더군요. 그런데 이정희가 토론회에서 당당했습니까? 저는 무지 비겁해 보이던데요. 진보당의 정체성에 대해서 당당히 이정희가 드러냈습니까? 구체적 대북정책(NLL 문제, 연평도 포격, 천안함 문제)에 대한 박근혜의 질문에 왜 평소의 입장을 당당히 국민들에게 밝히지 못하고 질문과 관계없는 엉뚱한 이야기로 피해갑니까? 애국가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민노당 시절에 공식 행사에서 애국가를 불렀습니까? 강기갑 대표시절에 어쩔 수 없이 딱 한번 애국가를 부른 것을 두고 이정희는 마치 진보당(구 민노당)이 국민의례를 하고 애국가를 부른 것 같이 사기를 칩니다. 최근에도 애국가 대신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진보스타일로 개사해 불렀지 않습니까? 저는 진보당이 국민의례를 하지 않거나 애국가를 부르지 않는 것에 대해 비난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자기 당의 정체성에 맞게 의례를 만들고 자기 식대로 하겠다는 것을 막을 이유도 없고 제3자가 간섭할 이유가 없지요. 자기 정체성을 제대로 드러내고 국민들의 평가를 받는 것이 솔직한 것이죠. 그런데 이정희는 토론회에서는 자기 정체성을 밝힐 기회가 있음에도 떳떳하게 말하지 못하고 회피 기동을 시도했습니다. 이건 비겁한 것입니다.


3. 박근혜를 떨어뜨리게 위해 나왔다구요?

이정희는 대선에 나온 이유와 토론회에 나선 이유를 박근혜를 떨어뜨리기 위함이라고 당당히(?) 말하더군요. 대선에 나오는 이유가 본인과 당이 국민들의 선택을 받겠다는 것이 아니라 상대 후보의 낙선이 목적이라는 것도 웃기지만, 스스로 박근혜 낙선이 목적이라면서 하는 짓은 반대로 하고 있으니 이해하기 힘들어집니다. 그저께 토론회의 최대 피해자는 문재인이고 최대 수혜자는 박근혜라는 것에 異論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 원인 제공자도 이정희라는 것에도 누구도 토를 달지 않고 있구요. 박근혜측에서 이정희의 토론회 발언을 보고 환호했다고 하지요? 이정희는 자기가 말한 것처럼 박근혜를 낙선시키는데 도움을 주기는 커녕 오히려 박근혜 당선을 굳혀주는 X맨 노릇을 톡톡히 한 것이죠.

이정희는 윤똑똑이의 전형을 보여준 것이죠. 자기는 말 잘하고 똑똑하다고 생각하지만, 전체적인 조망을 못하고 상황 파악을 못하면 말 잘하는 것이 오히려 의도와 다른 결과를 낳고, 오히려 자기 진영에 독으로 작용합니다. 이정희와 꼴통 좌파(진보)들이야 속 시원한 카타르시스를 느꼈을지 모르지만, 전체 진보진영이 원하는 바에는 똥물을 끼얹은 것이죠.


사족 : 박근혜는 예상했던 대로 버벅거림도 있고 시간 활용에도 문제가 있음을 드러내더군요. 하지만 가장 토론을 잘 한 것은 저는 박근혜라고 봅니다. 대선 토론회를 어떻게 활용하겠다고 생각하고 전략적으로 준비를 잘한 것으로 보이더군요. 토론회는 국민들 입장에서는 후보의 면면을 잘 보여주는 자리여야 하지만, 후보의 입장에서는 토론회를 통해 상대보다 어필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최종 목표인 당선에 유리하도록 접근하는 전략이 필요하죠. 기조연설도 자기의 장점을 일관성 있게 말하고, 토론에서도 어차피 문재인과의 싸움이니까 문재인의 약점을 교묘히 이정희(진보당)의 정체성과 엮고 NLL 문제를 거론해 국민들로 하여금 문재인의 안보관을 의심케 하도록 유도하더군요. 이정희와의 단일화 여부와 4.11 총선에서의 통진당(구 민노당)과의 연대에 대해 질문하는 방식으로 문재인을 곤혹스럽게 만듭니다. 그런 와중에 이정희는 “남쪽 정부”니 하는 발언으로 문재인을 코너에 몰아버리고.

박근혜는 이정희의 유통법 무산 질문에 구체적 경위 설명으로 되치기 함으로써 어눌한 말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상쇄시켜버렸습니다. 이정희가 마침 박근혜가 잘 알고 있는 내용(유통법 개정안)을 질문해 준 것은 박근혜에겐 운이 많이 따랐다고 봅니다. 이정희가 “됐습니다”라고 내뱉는 바람에 상대적으로 박근혜가 더 돋보이게 되는 부수효과도 보았구요. 이 장면은 이정희와 박근혜가 박근혜를 띄우기 위해 마치 미리 짜고 들어왔다고 보아도 무방할 정도로 박근혜에게 엄청난 플러스 효과를 발현했습니다. 이 장면이 이정희의 헛발질의 최고봉이었고 윤똑똑이가 나댔을 때 어떤 후과가 오는지 잘 보여준 장면이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