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로운 시기와 기근의 시기에는 최적 전략이 서로 다를 수 있다. 그리고 인간은 환경의 이런 측면을 입력 값으로 받아들여서 생리, 욕망, 행동 등을 조절하도록 설계되었는지도 모른다.

 

여기에 제시한 가설들은 대부분 내가 생각해낸 것이다. 하지만 관련 문헌을 뒤져보지는 않았다. 다른 학자가 이미 비슷한 가설들을 발표했을 것 같다.

 

 

 

풍요로운 시기에는 기근의 시기에 비해 비만의 위험이 상대적으로 더 큰 반면 기근의 시기에는 풍요로운 시기에 비해 굶주림의 위험이 상대적으로 더 크다. 따라서 인간이 풍요로운 시기에 비해 기근의 시기에 더 악착같이 지방을 축적하도록 진화했을 가능성이 있다. 만약 인간이 그런 식으로 진화했다면 기근의 시기에 식욕을 더 느낄 것이며, 기초 대사량을 줄일 것이며, 포만감을 덜 느낄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다.

 

요요 현상은 이런 기대와 부합하는 것 같다. 풍요로운 산업국에서 자발적으로 굶어서 급격하게 살을 뺀 사람의 “몸”은 현 상황을 기근의 시기로 “오판”하는 것 같다. 그래서 악착같이 지방을 축적하는 방향으로 생리적, 심리적 상태를 바꾸는 것 같다. 결국 살이 금방 도로 찌게 된다.

 

 

 

풍요로운 시기에는 비만이 위험이 크기 때문에 뚱뚱한 사람과 짝짓기(성교, 연애, 결혼 등)를 하면 불리하다. 반면 기근의 시기에는 굶주림의 위험이 크기 때문에 마른 사람과 짝짓기를 하면 불리하다. 따라서 풍요로울수록 더 마른 몸매를 선호하도록 인간이 진화했을 가능성이 있다.

 

20세기 들어서 선진 산업국에서는 굶주림의 위협이 현저히 줄어들었으며 점점 더 풍요로워졌다. 그리고 몸매에 대한 선호가 점점 더 마른 쪽으로 이동한 것 같다.

 

 

 

풍요로운 시기일수록 일찍부터 자식을 낳아서 기르는 것이 적응적이다.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미숙하더라도 풍요롭기 때문에 자식이 잘 자랄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다.

 

선진 산업국에서 점점 풍요로워지면서 여자의 초경 시기가 빨라지고 있다. 이것은 초경 시기가 풍요/기근에 따라 적응적으로 조절되도록 하는 기제가 진화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풍요로운 시기일수록 자식을 더 자주 낳아서 기르는 것이 적응적이다. 따라서 엄마가 풍요로운 시기일수록 젖을 더 일찍 떼려고 하도록 진화했을 가능성이 있다. 산업국에서는 어차피 분유와 이유식이 있기 때문에 이 가설을 검증하기 힘들어 보인다. 이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서는 사냥-채집 사회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풍요로운 시기일수록 자식을 혼자 키우기가 더 쉽다. 따라서 여자의 입장에서 볼 때 지위가 높은 유부남의 후처가 되는 전략이 기근의 시기에 비해 더 매력적이다. 지위가 높은 남자와 결혼하면 좋은 유전자(good gene)를 얻을 수 있어서 이득이다. 반면 그 남자의 다른 아내와 자원을 나눠야 하는 문제가 있는데 풍요로운 시기에는 이 때문에 굶주릴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작다. 기근의 시기에는 지위가 높은 유부남의 후처가 되는 것보다는 지위가 낮은 남자를 독차지하는 전략이 풍요로운 시기에 비해 더 매력적이다.

 

사냥-채집 사회의 경우 먹을 것을 구하기 힘든 사막 지대에 사는 쿵산족은 더 풍요로운 지역에 비해 일부일처제에 더 가까운 것 같다. 대부분의 문명국에서는 법으로 일부일처제를 정하고 있다. 따라서 이런 상관 관계를 결혼 행태를 통해서 알아내기는 힘들어 보인다.

 

하지만 여러 가지 방법으로 설문조사나 실험을 해 볼 수는 있다. 여자가 지위가 높은 유부남에게 끌리는 정도를 측정해 보면 된다. 만약 여기에서 제시한 가설이 옳다면 여자는 풍요로운 지역(또는 시기)에 살수록 지위가 높은 유부남에 더 끌릴 것이다.

 

 

 

풍요로운 시기일수록 자식을 혼자 키우기가 더 쉽다. 따라서 여자의 입장에서 볼 때 미혼모가 되어도 기근의 시기에 비해 덜 재앙적이다. 따라서 여자가 풍요로운 시기에는 더 기꺼이 남자의 성교 요구에 응하도록 진화했을 가능성이 있다.

 

선진 산업국에서 사회가 점점 풍요로워질수록 성적으로 더 자유분방해지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여기에서 제시한 가설과 부합한다. 하지만 성적 자유분방성에 영향을 끼치는 온갖 다른 요인들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풍요로운 시기일수록 자식을 혼자 키우기가 더 쉽다. 따라서 남자의 입장에서 볼 때 여자를 임신시킨 후에 차 버려도 그렇게 해서 태어난 자식이 잘 자랄 가능성이 기근의 시기에 비해 더 크다. 따라서 남자가 풍요의 시기에는 일편단심 전략보다는 카사노바 전략에 더 가까운 전략을 쓰도록 진화했을 가능성이 있다.

 

선진 산업국에서 사회가 점점 풍요로워질수록 이혼율이 늘어나고 있다. 이것은 여기에서 제시한 가설과 부합한다. 하지만 이혼율에는 온갖 요인들이 작동할 것이기 때문에 확신한 증거라고 보기는 힘들다. 풍요로움의 정도와 남자의 사랑이 빨리 식는 정도 사이의 상관 관계를 알아내야 한다.

 

 

 

인간의 행동에 영향을 끼치는 요인들이 아주 많기 때문에 여기에서 제시한 가설들을 검증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상당히 가망성이 있는 가설들로 보인다. 그리고 머리를 잘 쓰면 그럴 듯하게 검증할 수 있는 방법론을 생각해낼 수 있을 것 같다.

 

 

 

이덕하

2012-1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