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소위 민주화의 원로들을 '권력충'이라고 비난했던 이유는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민주주의 성장을 위한 심판 역할'에 국한되어야 했던 그들이 '신문의 행간을 읽다보면' 그들이 무한 권력을 탐했던 박정희와 무엇이 다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떠올려지기 때문이다.


 

여기서 행간이란 과거 독재정권 시절에 언론에 대한 정권의 '시퍼런 감시'의 눈을 피해 신문기자들이 독자들에게 사실을 알렸던 '역사적 사실'과는 반대로 독자들이 알아야할 사실을 숨기느라고 기사를 왜곡하다 보니 어색한 문장의 흐름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역사적 사실이건 정치적 사실이건 '현장에 있지 않는 한' 우리는 기록과 언론이라는 '제 3자'의 말을 듣는 것이며 '기록과 언론'의 특성 상 '사실관계'에 대하여 '퇴고와 편집'이라는 정화과정을 거치면서 '현장의 사실'과는 동떨어진 문장을 읽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런 상황에서 '사실'을 확인하는 추리력은 두가지가 있다.


 

첫번째는 '코난 도일'류의 추리 방식이다. 셜록 홈즈라는 '추리소설 역사 상' 최고의 명탐정을 탄생시킨 코난 도일의 추리 소설은 '드러난 사실들의 참, 거짓을 판단한 다음' '참으로 드러난 사실들'만 가지고 새로운 사실을 도출해내는 방식'이다.


 

두번째는 '아가사 크리스티'류의 추리방식이다. 추리소설이 소설의 한 장르로 정착되면서 가장 많은 논란을 야기시킨 작품의 주인공이자  '성서(The Blble)' 이후로 가장 많이 팔렸다는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들에서 탄생시킨' '회색 뇌세포 주인공'인 '벨기에인'인 에류클 포와르는 물론 미스 마플, 그리고 부부 탐정 및 경감이 주인공으로 등장시키면서 '추리소설들의 성격에 따라' 주인공을 적절히 바꾸어 등장시키는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방식은 주인공이 누가 등장하던 코난 도일의 추리 소설과 비슷한 과정을 거치지만 새로운 사실을 도출해내는 방식은 '참으로 드러난 사실들' 중에 '어색한 사실'에 주목하여 새로운 사실을 도출해 내는 방식을 구사한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셜록 홈즈의 추리 방식은 '있어야 할 사실이 없어진 부자유스러움에 주목하여 결론을 도출하는 방식'이고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 방식은 '없어야 할 사실이 돌출된 부자유스러움에 주목하여 결론을 도출하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이런 독특한 추리 전개 방법의 진수를 보여주는 것이 바로 부부탐정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Why didnt' they ask Evans?'(왜 그들은 에반스에게 물어보지 않았나?)라는 추리 소설이다. 다른 장편과는 달리 단편으로 '휴일날 반나절이면' 충분히 읽어갈 분량으로 추리소설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무엇인가를 탐색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분들'의 '사고전환용'으로 충분히 읽어둘만한 소설이다.


 

내가 역사를 탐구하면서 또는 사회적 현상들을 추론하면서 주로 사용하는 방식이 바로 '아가사 크리스티'류의 '추리소설 방식'이다. 이러한 추론 과정은 그동안 알려진 사실들의 이면에 숨겨진 새로운 사실을 밝혀내는데 도움을 준다. 그러나 이런 방식의 추론은 잘못하다가는 '관심법'이라는 괴물을 등장시키게 된다. 추리소설에서야 '범인'의 시인으로 통해 이러한 추리 방식이 '옳음'을 증명시키지만 현실에서는 내가 '현장에 있었지 않은 한', 또는 '현장에 있었다고 하더라도 나 또는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의 불완전한 요소들' 때문에 도출되는 결론은 말 그대로 '추론일 뿐' '새로운 사실로 확정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한계 때문에 제목에서처럼 "김지하에의 자살권유와 안철수의 사퇴 발표'가 같이 연상되는 이유'가 언론기사들의 행간을 읽은 결과이지만 내가 그 현장들에 있었지도 않았고 또한 당사자인 안철수의 말에서 나온 것도 아니기 때문에 '추측을 할 뿐'이라는 것이다.


 


 

안철수의 사퇴발표 후 나는 '김지하에의 자살권유'와 고 최규하 전 대통령을 같이 떠올렸다. 고 최규하 전대통령에 대한 나의 판단은 '비겁함'이다. 우리나라 당시 역사의 '열쇠를 쥐고 있는 사람들 중' 한 명인 그가 살아 생전은 물론 임종하면서까지 당시의 진실들에 대하여 단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는 것은 역사적 소명 의식이 없는 탓이라고 생각한다.


 

안철수의 후보 사퇴는 '김지하에의 자살권유'와 같은 정말 질긴 후보 사퇴 요구와 그리고 그런 사퇴 과정에서 그를 믿고 지지했던 유권자들에게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비겁함은 고 최규하 전대통령의 비겁함과 무엇이 다를까?


 


 

만일, 내 추론이 맞다면 안철수가 후보사퇴한 것이 '하나도 아쉬울 것'이 없다. 물론, 박근혜나 문재인이 안철수보다 낫거나 또한 비슷하다고 판단했으면 안철수가 후보사퇴한 것을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했겠지만 말이다. 아닌 말로, 그 정도의 깜냥으로 대통령 되어보았자 '저격을 각오할 정도가 아니면 대통령에 백번 취임해도 개혁의 'ㄱ'자도 꺼내지 못하기 때문'에 고 노무현 대통령과 같이 '맨날 징징대거나' '남의 탓만 하다가 세월 다 보내거나' 아니면 '지지자들을 알뜰하게 배신하는' 추한 꼴을 보일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안철수가 단일화 하지 않고 독자 출마했을 때에는 '지지는 유지, 투표는 미정'이었고 설사 안철수로 단일화되는 경우에는 '지지 철회, 투표 기권'이라는 나의 생각을 넘어서 안철수의 사퇴 발표는........... 그래도 미련이 남았던 '한국 정치'에 대해 손절매할 기회를 주었으니 그 점에 대하여는 안철수에게 고맙다고나 할까? 물론, 관성이라는 것이 남아서 또 '주둥이 겐세이'하겠지만 말이다.

 

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