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의 글에 단 리플을 보충해 글로 올립니다.)



이영훈류의 탈민족주의 식근론파는 70년대 당시 남한 경제를 식민지반봉건 경제로 규정하고 그 파탄을 예언하던 민족주의 좌파 경제학자 안병직이 일본 가서 사상적 변환을 겪은뒤 난데없이 개발 독재 찬양자가 된것에 기반을 두고 있다.

남한 민중이 자체적으로 근대화(정치적으로는 자유민주주의, 경제적으로는 산업화)할수 있는 역량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 기존 역사학계의 자본주의 맹아론이다. 이 논리에서 박정희의 독재는 자발적으로 이루어질수 있었던 남한 근대화의 도상에 끼어든 불순물이 된다. 따라서 박정희의 공과중 공의 부분을 공략할수 있는 강력한 좌파 민족주의 논리로 작동한다.

하지만 개발 독재 옹호론에서 독재 정치는 남한이라는 후진 사회를 경제적 근대화로 견인하기 위해서 불가피한 요소가 된다. 그리고 독재를 정당화 하기 위해선 기존 남한 시민 사회가 자체 근대화 할 역량이 없었음을 증명해야 한다. 여기서 일제 강점기는 대한민국 역량의 미비를 드러내주는 역사적 증거로 동원된다. 자체적으로 근대화 할수 없었던 조선에 일제라는 폭압적 외부 세력이 개입해 근대화가 이루어졌듯이 박정희라는 개발 독재 세력에 의해 근대화가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일종의 역사적 동형반복이라 하겠다.

나는 이영훈류의 정치경제학자들이 대한민국의 근대화 역량을 폄하하고 일제에 의한 근대화와 개발 독재 세력에 의한 근대화를 긍정하는 것 자체에 대해서는 큰 불만이 없다. 그것은 학술적으로 논의되어야 할 주제이고, 그들이 이 부분에 관해 학술적 관심을 불러일으킨다면은 그것은 경제사학적으로 매우 의미있는 일이다. 그 작업에 오히려 박수를 보낸다. 다만 자신들의 논의를 탈민족주의와 결합시켜 정치 프로파간다로 확대재생산 하는데 대해서는 아주 불쾌하게 생각한다.

내 불만은 "프로파간다"가 아니라 "탈민족주의"에 맞춰져 있다. 원래 정치경제학이라는게 현실 정치와 뗄레야 뗄수 없는것이기 때문에 그들이 뉴라이트 우파 운동에 나서는것 자체는 별 일이 아니다. 문제는 개발 독재에 대한 긍정이 왜 탈민족주의와 만나야 하느냐는 것이다. 우파에는 어울리지도 않는 탈민족주의 레토릭을 반복하는 것이 박정희의 개인적 친일 행각을 옹호하는 것 말고 특별히 자신들의 이론을 강화시켜주는 부분이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게다가 그들은 일제의 근대화가 자본주의적이되 폭압적으로 이루어졌다는 것도 인정하지 않나. 사실차원의 근대화를 인정한다고 해서 규범차원에서 식민지배를 비판하지 않아야 할 이유가 없고 여기에 대해서는 그들도 자각을 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므로 그들이 제국주의의 식민지배에 대한 규범 판단을 보류하는 황당한 피학적 탈민족주의를 말해야 할 어떤 합당한 이유도 난 찾을수 없다. 피식민지 출신의 지식인이 탈민족주의를 가져와 식민지배에 대한 가치판단을 보류한다는게 말이 되는가? 왜 그들은 굳이 48년 이후의 대한민국에만 촛점을 맞추는 것일까? 세상의 어떤 근대국가도 과거의 역사로부터 절연된 인공물인 경우는 없다는 것을 그들은 모를까?
탈민족주의라는 것이 민족국가라는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님을 그들은 모르는 것인가?

그들이 탈민족주의를 내세우는 이유를 굳이 따져 보자면 다음과 같다. 일단 그들의 처음 동기는 개발 독재 긍정이다. 그리고 이는 일반적으로 우파 스탠스에 자리하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의 스탠스에 일정한 법통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즉 이승만-박정희-전두환으로 이어지는 기득권 계보 말이다. 그들은 이 법통을 통째로 긍정하기로 한다. 따라서 그 법통의 출발점에 대한 비판, 즉 친일 청산을 하지 못했다는 비판에 대해서 방어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고, 이것이 개발 독재 근대화론을 뒷받침하기 위해 동원된 "일제 근대화론"과 연결되어 탈민족주의라는 개념에 귀착을 보게 된다.  내 생각에 박정희의 개발 독재를 긍정한다고 해서 이승만의 우악스러운 우익 독재나 친일파 청산의 실패까지 덩달아 방어해줘야 할 필요, 혹 친일파 청산미비에 대한 비판을 방어하기 위해 탈민족주의까지 가져올 필요는 없을것 같은데(그냥 일반론 차원에서 변명하면 안되나? 청산이 힘들었던 현실적 이유들을 설명한다던지), 그들이 학자가 아니라 이데올로그가 되기 위해 약대를 삼키기로 결정했다면, 그들의 자유니 어쩔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