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에 이야기했듯이 박태균의 <우방과 제국, 한미관계의 두 신화>라는 책을 읽었는데,
개인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있던 윤보선의 5.16 책임론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서 한번 글을 올려봅니다.
나중에 윤보선에 대한 글을 쓸 생각인데 그 글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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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6 쿠데타 당시 대통령이었던 윤보선이 쿠데타 소식을 듣고 처음 한 말은 “올 것이 왔구나”였다고 합니다. 


 
 1961년 5월 16일 윤보선 대통령은 박정희 소령, 유원식 대령을 만난 자리에서 “올 것이 왔구나”라고 말했다고 한다. 후에 자신은 “날 것이 났구먼” 또는 “온다는 것이 왔구나”라고 말했다고 주장했지만, 대통령과 자리를 함께한 유원식, 국방부장관 현석호, 밖에서 박정희를 기다리고 있던 김재춘 등은 모두 “올 것이 왔구나”라는 말을 들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우방과 제국, 한미관계의 두 신화> 223p 중에서


 사실 쿠데타가 일어난 것은 의외였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제2공화국은 상당히 혼란스러웠던 것으로 평가되고, 쿠데타 모의도 많았으니까요. 미국의 정보기관 보고서를 보면 쿠데타와 관련해서 박정희의 이름도 자주 언급되고 있고…그런 점을 보면 쿠데타 정보를 알고 있으면서도 막지 못한 게 이상한 일이지, 쿠데타가 일어난 건 결코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고 봐야 될 겁니다. 문제는 윤보선을 비롯한 고위급 인사들이 쿠데타 진압에 매우 소극적이었다는 것입니다. 
 당시의 유엔군 사령관이었던 매그루더와 그린 주한미국 대리대사는 5.16 쿠데타에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었고, 쿠데타 당일 민주당 정부를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합니다.


11(C) 10시 18분쯤 다음과 같은 성명서가 PIO EUSA(Public Information Office, Eighth U.S Army, 미8군 공보처)를 통해 발표되었다: 매그루더 장군은 유엔군 사령관의 권한 아래 있는 모든 군인들이
장면 총리가 이끄는, 적절한 절차를 거쳐 승인된 한국정부를 지지할 것을 요청한다. 매그루더 장군은 통제권을 즉각 정부의 권한 밑으로 복귀시키고, 군대 안에서 질서가 회복되도록 한국군 책임자들이 그들의 권한과 영향력을 행사하기를 희망한다.

12(C) 거의 동시에 다음과 같은 성명이 미국대사관 그린 대리대사에 의해 발표되었다: 자유롭게 선택되고 합법적으로 수립된 한국정부를 지지하라는 유엔군 사령관의 입장에 나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나는 미국이 지난해 7월 한국 국민들에 의해 선출되고 지난 8월의 총리선거에 따라 구성된 한국의 정부를 지지한다는 점을 확실하게 하고자 한다.

 
-"Telegram From the Commander in Chief, U.S Forces Korea(Magruder) to the the Joint Chiefs of Staff(Lemnitzer)," May 16, 1961, FRUS 1961~1963,Vol.XXⅡ, 449~51면.


 사실 이런 입장은 미국 정부의 지시에 따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미국은 당시 쿠바의 카스트로 정부를 무너뜨리기 위해 일으켰던 ‘피그만 침공’의 실패로 인해 타국 사정에 크게 개입하기 힘든 상황이었고, 따라서 이런 성명을 발표한 것은 매그루더와 그린의 독자적 판단이었습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자유민주주의를 지지하는 미국 정부의 입장에서 크게 벗어나는 것은 아니었죠. 
 또한 매그루더와 그린은 민주당 정권을 지지하는 위 성명을 발표한 후, 쿠데타에 대한 윤보선의 의견을 듣기 위해 윤보선을 만나는데, 윤보선은 이미 박정희와 유원식을 만난 후였고, 5.16 쿠데타 진압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인 반응을 보입니다.


 
대통령은 자신의 견해가 매그루더 장군과 나의 견해와는 다르다고 말했다. 현정부에 대한 불만과 환멸은 광범위하게 퍼져 있으며, 국민들은 더이상 장면 내각의 약속을 믿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제2공화국의) 헌법은 사회적 고통을 충분히 줄이지 못했으며, 약속한 실업문제 해결에 실패했다. 그는 부패가 매우 심각하며, 중석 스캔들에서 증명된 바와 같이 정부 고위직 사이에 널리 퍼져있다고 말했다. 대통령은 한국사회가 강한 정부를 원하고 있으며, 장면이 그러한 지도력을 제공하기에는 부족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 (쿠데타) 그룹들에 어떠한 약속도 하지 않았지만, 자신이 직위에서 물어나야 할 어떠한 조치도 있어서는 안된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대통령은 사태의 해결을 위하여 국회 안팎에 있는 지도자들을 포함하는 초당적인 거국내각을 구성해야 한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
 매그루더는 돌아가기 전에 정부 군사력의 우위를 바탕으로 폭도들과의 협상을 실행할 수 있도록 충성을 다하는 한국 육군으로 하여금 쿠데타 그룹보다 압도적인 수로 서울을 둘러쌀 수 있도록 대통령이 승인해줄 수 있는지를 물었다. 반란군이 군사력의 무용성을 느끼게 하는 이러한 전술로 유혈충돌을 피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이 제안에 대한 토론과정에서 대통령은 서울에서 유혈충돌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그러한 행동을 현싯점에서 승인할 수 없다는 입장을 다시금 밝혔다. 대통령은 가능하다면 반란군을 설득하여 자발적으로 그들이 철수하여 원래의 지역으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대통령은 반란군의 체면을 세워줄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하며, 어느정도 관용이 요구된다고 지적했다.
 지금까지 무장한 쿠데타 세력을 묵인해서는 안 된다고 매그루더 장군가 내가 재차 강조한 것은 어느정도 효과를 보았다. 대통령은 어떠한 형식의 정부개편이든 먼저 쿠데타군이 서울에서 철수한 다음 합법적인 수단에 의해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에 동의했다.(…)
논평: 우리의 대담 초기에 윤대통령은 쿠데타의 목적에 동정적인 어조로 말했지만, 우선적인 문제가 한국의 헌법과정을 지키는 것이라는 우리의 토론결과에 부분적으로 동의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장총리의 사임을 보장하면서 즉각적인 난관을 해소한 뒤에 한국을 이끌어나갈 거국내각을 구성해야 한다는 언질을 쿠데타 세력으로부터 받은 듯하다.

-"Embtel No.1536", Section one of two, Section two of two, May 16, 1961, 795B. 00/5-1661, Box 2181, Decimal File, 1960~1963


 인용한 부분을 보시면 매그루더와 그린이 오히려 쿠데타 진압에 더 적극적이고, 윤보선은 별로 쿠데타를 진압할 생각이 없다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중요한 실마리가 바로 ‘거국내각’에 있습니다.
 윤보선이 5.16 쿠데타 진압에 소극적이었던 이유 중 하나는 물론 장면을 비롯한 민주당 구파와의 갈등 때문일 겁니다. 하지만 아무리 장면을 비롯한 민주당 신파와 윤보선으로 대표되는 민주당 구파와의 갈등이 심했다 할지라도 단지 그 이유만으로 쿠데타에 소극적이었다고 보기에는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윤보선이 ‘거국내각’을 통해 정세를 뒤집어보겠다는 판단을 했다면 쿠데타 진압에 소극적이었던 사실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내각책임제 하에서 대통령이었던 윤보선에게는 실권이 없었고, 그렇지 않아도 그게 불만이었는데 쿠데타 세력이 ‘거국내각’을 구성해야 한다는 제안을 하자 이를 바탕으로 한번 실권을 잡아보겠다는 판단을 한 것이겠죠. 실제로 5.16 쿠데타 소식을 듣고 지방의 민주당사에서는 우리 세상이 왔다며 만세를 부른 곳도 있다고 합니다. 이런 걸 생각해보면 윤보선이 5.16 쿠데타에 품은 기대도 수긍할만합니다.


 윤보선은 5․16 쿠데타의 상황을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인식했던 것이 분명하다. 5월 16일 아침 박정희에게서 쿠데타에 대한 보고를 받았을 것이고, 여기에서 자신을 정점으로 한 민주당 구파와 쿠데타 세력의 일부가 연합하는 새로운 권력 형태를 구상했을 것이다. 미대사관 전문에 따르면 박정희는 5월 16일 아침 윤보선에게 오래지 않아 곧 민정이양을 실시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미국대사관과 접촉하는 과정에서 윤보선은 ‘거국내각’을 통해 드골식 대통령제로 정치체제를 개편할 필요가 있다는 구상도 밝혔다. 그는 짧게는 2~3개월, 길게는 6개월 안에 민간정부로의 이양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리고 8월이나 9월쯤 대통령 직선이 이루어지고, 강력한 대통령제 아래 초당적인 내각이 구성될 것으로 생각했다. 윤보선이 미국에 있던 민의원 의장 곽상훈을 급히 소환한 이유도 새로운 정부의 구성을 위한 것이라고 미국무부는 판단했다.

                                                                                                                       -<우방과 제국, 한미관계의 두 신화>228p~229p
 


 그런 생각을 하면 아래와 같은 묘사도 그리 과장된 것만은 아닐 듯 싶습니다.


윤보선은 아무 말 없이 박정희, 유원식을 보다 은근하게 배웅하였다. 둘이 떠날 때 청와대 근처에는 혁명군의 삼엄한 눈초리가 번득이고 있었으나 윤보선은 얼굴에 화색이 돌고 심기가 편안한 듯이 보였다. 무슨 밀약에 세 사람간에 묵시적으로나마 이루어졌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박정희, 유원식이 다녀간 후 윤보선은 영국 <에딘버러> 대학 유학시절 이후 애용해온 스타일에 양손을 주머니에 찌르고 활기있게 청와대 안을 거닐면서 무엇인가를 열심히 생각하고 있었다. 노련한 정객 윤보선의 흉중에 무엇이 있었는지는 그 전모를 알 바 없으나 얼마 안 있어 청와대에 들이닥친 <매그루더>와 <그린>과의 대담에서 그 일단이 나타났다.

                                                                                                                         -<혁명과 우상: 김형욱 회고록> 1권 161p~162p


 
 물론 5.16 쿠데타가 성공한 데에는 많은 사람들의 책임이 있습니다. 쿠데타가 일어나자마자 수녀원으로 피신한 장면이나 쿠데타 모의를 알면서도 방조한 육군참모총장 장도영을 제외하더라도, 쿠데타 진압에 소극적인 입장을 보이는 고위급 인사들도 굉장히 많았죠. 오죽하면 매그루더가 렘니처 장군에게 보내는 전보에서 ‘비록 대통령, 참의원 의장, 국방부 장관, 한국 육군참모총장 등이 한국군의 사용을 반대하고 있지만, 내가 이한림에게 반란 진압을 명령하는 것은 가능하다. 만약 내가 그렇게 해서 성공한다면, 우리는 아무도 운영하려 하지 않고 대중적인 지지도 결여된 정부를 복원하는 셈이 될 것이다.’라고 불평을 했겠습니까.
 그러나 총리인 장면이 자리를 비운 상황에서, 헌법상 최고의 지위에 있던 윤보선이 이렇듯 쿠데타 진압에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이면서 속으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은 윤보선이 5.16 쿠데타의 성공에 상당히 큰 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후에 윤보선이 대통령직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미국이 5.16 쿠데타를 인정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가 됐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죠. 오죽하면 성균관대 교수인 서중석 씨가 '쿠데타가 성공하는 데 제일 큰 공로자는 장도영이고, 두번째는 윤보선일' 거라고 이야기까지 하겠습니까. 
 윤보선은 후에 박정희 정권에 강경하게 저항하는 데 앞장서긴 하지만, 글쎄요...5.16 쿠데타에 있어서 그의 책임을 생각하면 긍정적으로 평가해주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나는 역사에 밀착해서 살아왔다. 역사는 목동의 피리소리에 맞추서 춤추는 것이 아니다. 역사를 움직이는 것은 부상자의 신음소리와 싸움하는 소리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