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 대화방에서 코지토님, 미누에님, 지아스데자님등과 수다를 떨다가 문득 움베르토 에코, 관해서 언급을 하고 보니, <장미의 이름> 다시 읽고 싶어졌습니다. 그러나 수중에 갖고 있지도 않고 도서관에 빌리러 가기는 귀찮아서 어쩔까.. 궁리하느라 벌러덩, 소파위에 드러누운 것이 기억에 의존한 공상으로 이어져서 데이드리밍타임에 관한 룰을 어기고(절대로 5 이상 쓰잘데없는 망상에 몰두하지 않는다!..하는..  지켜질 턱이 없는..) 서너시간을 그러고 있었네요..

 

장미의 이름의 남자, 윌리암수사와 아드소는 각각 강렬한 이미지로 기억에 있습니다.

 

책을 많이 읽어서 손가락에 금박가루가 묻어있는, 키와 수염과 박학다식함과.. 무엇보다도 신학자답지 않게 나침반을 이해하는 자연과학자였던 윌리암수사가 가진 매력은 역시 중년의 나이에 어울리는, 흔들리지 않고 좀처럼 흥분하지 않는 무게감으로 기억합니다. 단어로서는 같은 '무거움'이지만 웃는 일을 두려워하던 호르헤의 숨막히는 무게.. 그러나 지나치리만치 얄팍해서 못으로 쇠를 긁는 소리를 들을 때처럼 소름이 돋게 하던 무게감과는 정반대의 것이었던 그의 분위기는, 시종일관 일종의 경외감을 불러일으키는 스승의 이미지입니다.

 

하지만 제가 소파에서 데리고 노느라고 시간을 보낸 남자는 폼생폼사의 선생님이 아니고 그가 데리고 다닌 귀여운 소년 아드소였습니다. 예쁘장한 얼굴을 가진 미소년..  궁금한 것도 많고 말도 많고 아직 아무런 때가 묻지 않은 순수한 백지같은 마음이 하는 짓마다, 떠드는 말마다 드러나는 아드소를 에코는, (물론 번역된 것을 읽은 것이지만 대충 기억나는대로 읊어보면) '아름다워라 젖가슴이여, 부풀어 올랐으되 지나치지 않고 자제하고 있으나 기죽지도 않았으니.. '(비스무리한 내용.. 암튼.) 하는 글만 읽어도 정신이 아리송해지는, 굉장히 민감한 소년이라고 표현합니다.

 

스승을 따라 살인사건이 일어난 수도원으로 현장조사를 아드소는 곳의 도서관에서 발견한 (제목이.. 사랑의 거울,이던가..하는) 읽으면서 전날 자신이 경험한 한번의 사랑 때문에 감정과 이성의 롤러코스터를 타게 됩니다.

 

'사랑이 괴질인 이유는 병에 걸린 사람은 결코 치료를 원치 않기 때문이고 일단 병에 걸린 사람이 자신이 사랑하는 상대방을 보지 못하면 공연히 흥분해서 날뛰거나 구석으로 숨어들거나 자기 학대증상을 보이면서 괴로와하며, 심할 때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헛소리를 하거나 식당에서 기절을 하는 수도 있다.. 사랑때문에 경험하는 그리움이야 말로 지옥을 경험하는 완벽한 우울증의 원인이며.. 병에 걸린 사람은 하는 짓이 늑대와 비슷해지고.. 치료방법은 결혼을 하는 수밖에 없지만 그게 안된다면 뜨거운 물에 목욕을 하고 자기가 사랑하는 여자를 몹시 욕해줄 지혜로운 사람을 찾아가서 상담해야 한다. 하녀들 여러명이 난교하는 것을 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운운하는 글을 읽었으니 자신이 전날 동정을 바친 후에 환희감과 쓸쓸함으로부터 진정이 되지 않았는데다가, 숫사슴 같은 여자와 자고 후에 그런 경험을 일생에 한번만이라도 사람은 축복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아드소로서는 정신이 시끄러울만도 했을 겁니다.

 

감정의 비약을 경험하며 괴로와하던 아드소가 드디어 포착한 인생의 비밀.. 그것은 아무리 지식이 많아도 사랑에 빠진 경험만큼 만큼 많은 것을 가르쳐주지 못한다는 , 그리고 사물을 이해하는 눈은 사랑을 이해하는 눈이 없다면 완전할 없으며 세상과 화해할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을 이해한 아드소에게 날의 경험은 신이 그에게 참된 지혜가 무엇인지를 가르쳐주기 위해서 마련해준 수업이 되고 그는 한번의 경험으로 자신이 인류를 사랑하게 되었다고 느낍니다.

 

사실 한번의 사랑으로 인생의 비밀을 알아버렸다, 류의 표현은 흔합니다. 그러나 <장미의 이름>에서 아드소가 자기 내부의 갈등과 혼란을 해결하기 위해서 스스로 자신과 주위의 사물을 '공부'하는 과정, 양이나 소같은 동물을 관찰하고 그런 생명 하나하나를 사랑하며 자신이 알고 있던 모든 교훈이나 옛날 이야기들을 기억해내면서 동물들에 대한 경외감을 배우는 방법으로 자신을 위로하는 과정은 스스로 세상과 자신의 사이에 서서 둘을 화해시키는 일이었습니다. 화해하지 못한다면 결코 다시는 평온해질 없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지요.

 

스승과 헤어져 남을 것을 결심하고 함께 떠나던 길에서 우뚝 멈춘 아드소의 표정.. 그것은 물리적인 거리와는 상관없이 작용하는 나침반의 바늘처럼 바르르 떨리면서 한쪽만을 향해 한사코 몸을 트는 마음을 경험한 사람만이 지을 있는, 경험하면 결코 지워지지 않는 그런 표정이었을 같습니다. 표정을 알아본 윌리엄 수사는 두말없이 말을 돌려 혼자서 길을 떠나지요..

 

아드소의 표정이, 영화<장미의 이름>에서 아드소의 역을 맡았던 배우가 연기한 표정이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영화보다 책을 먼저 읽었던 저는 그가 멀어져가는 스승을 배웅하면서 어떤 표정과 마음으로 거기에 있었을까, 상상했던 적이 있었는데, 영화를 보면서 스크린 안의 아드소가 보여주는 표정이 제가 상상했던 그것과 그리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었습니다. 밝은, 그러나 크게 웃지도 않는, 눈은 깊은 고통을 스스로 감당하고 해답을 찾은 기억이 있는 사람에게서만 찾을 있는 빛을 담아서 반짝거리고.. 다문 입은 살짝 웃는 보이지만 그것이 기대감인지 만족감인지 정확히 읽을 수는 없는( 고유의 경험이 아니므로 독자나 관람자로서는 단지 상상만 있는), 갑자기 무작정 하염없이 소년이 부러워지게 만드는 그런 표정이었다고 기억합니다.

 

서울의 지하철에서 쩍벌남이 옆에 앉아서는, 내가 아무리 다리를 모아도 자꾸 영역을 침범해오는 뻔뻔함을 경험할 , 머리 속에선 가지 옵션들이 재빠르게 지나가곤 했습니다.  접어 읽어도 마땅히 차지해야 공간을 넘어서 장악할 판에 아예 있는대로 넓다랍게 펴든 신문으로 얼굴을 가리고 앉은 아저씨한테 '시비를 걸어봐야 나만 손해다, 참자..' 라던가, ' 인간이 내가 양보해주면 낼름 침범해오고 하는데 거슬리자나? 정중하게 부탁해볼까? 아마 미친척 슬그머니 넘어올걸. 전에 그넘도 그랬잖어.',  '그냥, 조용히 발끝으로 이쪽다리를 밀어내버릴까.. 아니다 그럼 지난번의 황당남처럼 발로 차냐고 지랄거릴거야..' 혹은 '아씨, 오늘 일진도 사나운데 거슬리게 하네. 남자들이 여자들보다 공간감각이 좋다는 뻥이야. 덜떨어진 인간 같으니라고.. 속으로만 욕을 바가지로 하면서 투덜하고 말까'  암튼 이궁리저궁리 하다보면 신경이 벅벅 긁히다 못해 벌떡 일어나서 그가 한사코 높게 들어 얼굴을 가리고 있는 바리케이트(신문) 걷어내고 따따부다 퍼부어주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이 듭니다.

 

그럴 억지로라도 아드소를 기억해내는 일은 품위를 유지하고 꼴사나운 장면의 주인공이 되지 않아도 되게 나를 조치하는 것에 많은 도움이 되지요.  실눈을 뜨고 쩍벌남의 옆모습을 위아래로 째려보면서, 아마 인간도 첫사랑이랍시고 완존히 맛이 가서는 정신 못차리고 헤메거나, 금방이라도 죽어버릴 것처럼 고통스럽다고 느끼면서 온갖 시나부랭이의 사소한 단어 하나하나를 자기 마음 같다고 징징거리느라 밤을 새기도 하고, 윤세원의 영화음악실, 이런 방송을 들으면서 수백명의 영화의 주인공으로 밤마다 다시 태어나곤 했을테지.. 지금은 술냄새에 쩔고 수염깎은 자리는 황무지처럼 앙상해서 보기만해도 그가 보낸 하루의 피곤함이 나한테까지 전염되어 오는듯해도 처음 면도를 시작할 무렵엔 제법 심각하게 거울을 보면서 마치 의식을 치르는 듯이 경건한 마음으로 뿌듯하게 자길 보고 있었을지도 모르지.. =+=  암튼. 이런 류의 상상을 하다보면, 괜시리 염치모르는 쩍벌남이 귀여워지는 것도 같아서 엽기적인 그녀처럼 벌떡 일어나서 살벌하게 버릇을 고쳐주기 보다는 가방을 그와 다리 사이에 옮겨놓는 것으로 (물론, 이상은 그의 다리 위로 걸쳐져도 전혀 의식 못하는 미친 데를 봐야함다) 그를 용서해줄 수가 있게 되더군요.

 

.. 귀여워하기 쉬운 남자.. 대해서 얘기하다 보니 < 읽어주는 남자> 소년이 문득 떠오르…   .-_- 아님다. 오늘, 이미 너무 많은 분량의 수다를 떨었습니다. 당장 이번 주말부터 백콜을 받아야 하고 다음 주는 살벌빡빡한 스케줄이 일터에서 기다리고 있는 의식해서인지 그걸 부정하느라고 개기고 싶어지는 심리가 자꾸 싱거운 짓을 하게 만드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