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음복주 받을 날만 기다리는 노빠 분들이 워낙 히스테릭하시니 팩트만 짚고 넘어갑니다.


일단 노-정 단일화는 (이하 모두 2002년) 11월 3일 그 동안 단일화에 소극적이던 노무현의 전격 역제안으로 공식화되기 시작합니다. 이 때 노무현은 경선 단일화를 주장했는데 당연히 정몽준이 받을 이유는 없었습니다. 지지부진하던 단일화 무드는 11월 16일 새벽의 러브샷 쇼로 절정에 들어갑니다. 지지부진 하긴 했지만 각자의 준비가 2주 정도 있었기 때문에 생각보다 논희는 빠르게 진척되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이호웅이 17일 오후 여론조사 기관을 언론에 알림에 따라 18일 조간신문에 이 사실들이 보도되었고 이로 인해 정몽준 쪽의 협상단 전원이 사퇴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그리고 단일화는 깨지는 듯 하더니 생각보다 빨리 협상이 재개되어 물밑 접촉은 19일 부터 있었습니다. 결국 21일 발표하기로 했던 단일화 합의 사항은 막판 진통이 있었으나 22일 오전에 완전히 공표되었습니다.

후보간 회동과 단일화 룰의 성사까지 일주일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노무현의 단일화 역제안 시점부터 계산하면 15일입니다.


2012년 단일화는 경쟁력이 심하게 처졌던 문재인이 2011년 10월 부터 줄기차게 요구한 사항이었습니다. 이 점에서 "내가 왜 나랑 맞지도 않는 정몽준과 단일화를 해야 하냐"고 자존감을 가졌던 노빠와 노무현과 달리, 대선 1년 2개월 전부터 안철수에게 단일화를 얘기하면서 거의 구걸한 문재인은 사정이 다릅니다. 따지고 보면 2002년의 정몽준도 문재인처럼 단일화 구걸을 하진 않았습니다. 나름대로는 영민하게 행동했다고 봐야지요. 정당 후보가 반대이니 무소속 후보도 반대로 안철수는 단일화에 소극적인 편입니다.

200년엔 공식적 회동 이전에 조율작업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안철수의 일방적 공표에 의해 결정되고 맙니다. 백범김구기념관에서의 만남은 좋으나 싫으나 안철수의 일방적 통보가 가장 큰 지렛대입니다.

안철수와 문재인은 후보 등록일을 일주일 정도 남긴 현재 물밑조율은 커녕 경선 방법조차 정하지 못했습니다. 여론조사 방식을 동원한다고 해도 후보등록일 이후 결정될 상황입니다. 경선을 하게 된다면 그보다 더 긴 시간이 소요될텐데 투표용지 인쇄가 이뤄지는 12월 3(부재자)까지는 15일 , 12월 10일(본선거)일까지 22일 남았습니다.

이론적으로는 12월 9일에 후보를 결정한다면 경선도 가능합니다. 그러나 대선이 지방선거도 아니고 12월이 넘어가서 경선까지 하고 그런다는 것은 이미 서로 틀어질대로 틀어진 것이고, 경선 후유증만 클 가능성이 높습니다. 특히나 모바일 경선을 하게 될 경우 부정투표 논란, 논쟁이 지리하게 나오면서 판이 깨지고 똥 바가지 뿌리는 격이 될 겁니다.

현실적으로는 11월 26일까지 여론조사 단일화를 하기도 어려워 보입니다.

결국에는 지지율이 더 낮아지는 후보가 자의반 타의반으로 쫓겨나거나 억지로 단일화에 응하는 구도로 단일화가 되면 됐지, 시너지가 나오는 아름다운 단일화는 매우 어려울 것으로 보여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