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이 벽지 위에 무슨 말을 쓰지?
-거룩한 유신(維新)선포를 반대하는 경거망동을 했으니 어떤 벌도 달게 받겠으며
앞으로는 국가중흥을 위한 정부 정책에 몸과 마음을 바쳐 협력하겠다. 같은 실수는 다시 반복하지 않을 것이다. 본인의 행동을 깊이
뉘우치고 반성한다.-
 이런 논조의 글을 써야 하나? 그러면 무사히 이 방에서 빠져나갈 수는 있겠지.
그런데 명색이 패기만만한 신참작가라는 인간이 보는 사람이 없다고 해서 이런 노골적 아부성 글을 어떻게
쓰나? 만약 지금 이런 글을 쓴다면 나는 두고두고 일생에 걸쳐서 자기모멸감에 시달릴 것이며 작가라는 자긍심마져 상실해버릴 것이다.
 
 이런 고민을 하는 동안 시간이 훌쩍 지나서 금방 정오가 되었다. 그동안 나는 백지 위에 한줄도 쓰지 못했다. 이 방을 담당한 사십대의 대머리
가 문을 살짝 열고 점심시간이 되었으니 잠시 휴식해도 좋다고 말했다. 점심은 방으로 배달된다고 그가 말했다. 점심이 오기 전 누군가가 방
문을 빠끔히 열고 안을 기웃거리더니 뜻밖에 내게 나오라고 손짓을 했다. 나는 그의 지시대로 복도로 나갔는데 거기 서있는 인물이 얼굴이
많이 익었다.
"당신이 아침에 들어올 때 내가 창문으로 당신이 오는 걸 봤지."
정보부 직원이 분명한 그는 대학의 선배였다. 과가 서로 다르지만 작은 학교여서 복도에서 자주 얼굴을 마주친 기억이 떠올랐다. 프랑스어
과 아니면 스페인어과 출신일 것이다. 이런 장소에서 얼굴이 익은 학교 동문을 만났다는 게 신기했다.
"나하고 같이 식당에 가서 식사합시다."
인상이 비교적 괜찮은 이 동문 선배가 앞장서 계단을 내려갔다. 식당은 지하에 있었는데 방이 매우 넓었고 이미 많은 직원들이 들어와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곳은 직원 전용 식당으로 물론 외부에서 끌려온 나 같은 신분은 한 사람도 없었다. 그러고 보면 나는 선배 덕분에
잠시 특혜를 받은 것이다.
 선배와 나는 비빔밥을 시켜 점심을 먹었다. 선배가 나를 위해 계란 후라이 하나를 더 시켜주었다. 식사 후에 커피도 시켜 마셨다. 나는
궁금한 게 많아서 이것저것 묻고 싶었지만 이곳 분위기를 볼 때 그건 금기사항이란 걸 알고 있었다. 식사를 함께 하는 동안 동문선배도
불필요한 이야기 같은 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봐도 그는 내게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친절을 베풀었다고 여겨진다. 그
는 내가 밤 늦게 그곳에서 나올 때도 그 시간에 나타나서 나를 정보부 문 바깥까지 배웅해주었던 것이다. 이 친절하고 고마운 동문선배
를 그 이후로 한차례도 만날 수 없었다.

 나와 같은 방에 있던 평론가 K씨는 글씨 때문에 유난히 수난을 겪었다. 글씨가 악필이어서 그런게 아니고 지나치게 명필이란 점이
대머리의 비위를 건드린 것이다. 
 "하, 내용은 알맹이도 없는 헛소리 뿐인데 글씨 하난 천하명필이로군. 이런걸 양두구육(洋頭狗肉)이라고 하지. 당신 정신 차려야
겠어. 글씨 따윈 관심 없다고. 바른 내용으로 다시 써!"
대머리는 K의 원고를 획 집어던지며 험상궂은 표정으로 평론가를 노려봤다. 나는 그때까지 겨우 몇줄을 썼는데 주로 성명서 낭독
장에서 있던 사실관계 나열이었다. 대머리는 내가 거의 진도를 나가지 못하고 있는 걸 알았다. 그가 내게 말했다.
"당신 아예 여기서 며칠 보낼 작정이야? 이곳이 맘에 들어? 다른 방은 벌써 끝내고 집으로 돌아간 사람도 있다고. 설마 글 쓸줄 모
른다고는 하지 않겠지."

 대머리와 우리 사이에 이런 실랑이가 몇차례나 되풀이 되었다. 저녁식사 시간이 지났으나 저녁은 제공되지 않았다. 대머리의
말처럼 다른방 사람들이 모두 자술서를 마무리짓고 일찍 귀가한 탓인가? 자정이 가까왔을 때 나는 겨우 다섯장 분량의 자술서
를 써냈다. 그 내용이 자세히 기억되지는 않으나 아마 대머리의 요구와 내 생각을 적당히 절충한 타협적? 인 것이 아니었나 생
각된다. 대머리도 지쳤는지 더 이상은 요구하지 않았다.
"여기서 있었던 일을 절대로 밖에서 발설하면 안 된다."
이게 대머리의 작별인사였다.

 청사 마당으로 나왔을 때 낮에 만났던 그 동문선배가 어디서 불쑥 튀어나왔다. 그는 퇴근도 미루고 내가 걱정이 되어 하루 종
일 기다리고 있었을까? 이미 자정을 눈 앞에 둔 시간이었다. 지금까지도 그것은 의문으로 남아있다. 선배와 나는 마당을 지나
빠스띠유 감옥의 철문 같은 정보부 정문을 통과했다. 그리고 그 앞에서 바로 헤어졌다. 별다른 인사말도 나누지 못한채.

 인적이 끊어진 깜깜한 필동 골목길을 혼자 터벅터벅 걸어내려오는데 몸이 천근이었다. 배가 몹시 고팠으나 문을 연 식당
도 없고 주머니에 돈도 없었다. 나는 걸어서 논골의 하숙방까지 갔다.
 

  자술서를 쓰고 온지 며칠 뒤 종로 뒷골목 허름한 대폿집에서 몇사람이 만났다. 이 부분은 기억이 또렷하지 않아서 누가
연락을 했고 논의내용이 무엇인지 확실히 떠오르지 않는다. 다만 주로 중부서에 갔던 사람들이 모였고 남산에서 훈계 한
번 받은 걸로 유신에 대해 벙어리행세를 해야 할 것인가, 그런 이야기를 나눴던 것 같다. 결론은 나오지 않았고 당장 뾰
쪽한 대응책도 없었다. 곧 반대세력에 대한 초강경책이 나올거란 얘기를 누군가가 알렸다. 그 무렵에는 청진동이나 충
신동 같은데 방석집(방에 앉아 술마시는 곳을 우리는 흔히 이렇게 불렀다.)에 모여 술마시고 잡담 나누고 흥이 오르면
노래자랑도 하곤 했었다. 당장 어떤 행동을 하기 보다 우선 상황전개를 지켜보자는 쪽으로 결론을 내고 있는데 술집
선반의 라디오에서 긴급조치가 발령되었다는 아나운서의 보도가 들렸다. 긴급방송이었으므로 누구나 그 내용을 분
명하게 들을 수 있었다.
 국회해산에 따른 여러 조치가 있었지만 핵심은 앞으로 실내, 야외를 막론하고 유신에 대한 반대행위를 엄중처단한
다는 것이 골자였다.
 "이미 수배령이 떨어진 것 같은 걸."
거기 있던 김지하의 말이었다. 그는 벌써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 말은 당국에서 자신에 대한 체포령을 이미 내렸을 거란 뜻이었다. 후일의 진행상황을 보면 그의 이 말은 그대로 적
중했다. 분위기가 금방 싸늘하게 식었다. 우리는 서둘러 일어나 대폿집에서 밖으로 나와 헤어졌다. 그런데 어떤 이유
로 그랬던지 모르지만 나는 김지하와 같은 방향으로 움직였다. 유난히 친한 것은 아니지만 서로 좋은 감정을 갖고 있
는 사이였다. 그는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출간시집이나 에세이집을 빠짐없이 내게 보내온다.
 우리는 버스를 타고 수유리 방향으로 가다가 길음동인가 미아리인가 그 부근에서 내렸다. 그는 수유리 갈멜 수녀원
으로 가고 있었다. 그때 이미 그는 추기경의 보호를 받고 있었는데 언젠가 추기경에게서 받은 용돈이라며 내게 돈다
발 자랑한 적도 있다. 그냥 돈자랑한  것은 아니고 내가 먹고 싶은 것이 있다면 자신이 한턱 낼 능력이 있다는 걸 증
거로 보여주기 위해 돈을 꺼내 보인 것이다. 추기경 이야기가 나왔으니 얘긴데 진보신당 홍세화도 추기경의 도움
으로 프랑스에 건너간 걸로 알고 있다. 
 
길음동에서 우리는 허름한 여관에 들었다. 거처가 너무 멀어 갈 수가 없는 나는 이층 여관방에서 하룻밤을 묵기로
했다. 김시인은 마치 내 보호자처럼 행동했다. 막상 신변에 위험이 다가온 사람은 그 친구 자신인데 그는 내가 묵을
여관방을 찾아주고 그리고 그 방에서 한참 머물다가 내가 자리에 눕는 걸 보고 수녀원을 향해 떠났다. 그 방에 그가
머무는 동안 둘이 소주 몇잔을 기울였던 것 같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암튼 종로에서 마신 것도 있
어서 둘 모두 기분 좋을만큼 취해 있었다. 자, 여기서부터 미스테리다.
 
 기분 좋을만큼 취한 나는 자리에 눕자말자, 곧 잠이 들었다. 깊은 잠은 아니었다.잠자리가 바뀌면 나는 도무지 깊
은 숙면에 빠질 수가 없다. 시간이 얼마나 지나갔을까? 불현듯 인기척을 느꼈다. 천정에 매달린 형광등은 그대로
켜져 있는 상태였다. 인기척에 놀라 나는 눈을 떴는데 누군가가 싱긋 웃는 얼굴로 잠자는 내 얼굴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이다. 피신하기 위해 조금 전 수녀원으로 떠난 김지하였다. 
 "아니, 거기 가지 않았어?"
"가다가 돌아왔지.나는 괜찮아."
그는 또 빙그시 웃었다. 그는 왜 다시 돌아왔나? 지금 촌각을 다퉈 몸을 피해야 할 친구가 한가롭게 다시 여관방엘
찾아들다니! 설마 어린애도 아닌 내가 무서워서 떨고 있을까봐?  평소 나약해 보이는 친구가 아무래도 걱정이 되
어 다시 들른 건가? 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한참 서 있다가 '잘 자라'는 말을 남기고 다시 방에서 나갔다.

 그는 수녀원으로 갔다. 그런데 얼마 뒤에 긴급조치 위반자로 그는 구속되었다. 그 여관방의 기억은 40년 전 일이
다. 그 여관방에서 헤어진 뒤 40년이 지난 이날까지 나는 그를 만난 일이 없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