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켑티컬의 링크를 따라 빠르게 훑어보았는데 역시 제 짐작대로 결코 만만한 내용이 아니네요. 제 생각에 이영훈 교수를 제대로 비판하거나 뛰어넘기란 결코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제가 역사엔 아마추어니 뭐라 비판하긴 어렵지만 대략 두어가지 점 정도는 저와 생각이 좀 다르네요.

하나는 조선시대를 성리학의 이념에 따라 운용됐다고 주장하는데, 시대 정신이나 이데올로기로 볼 수야 있겠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현실 정치적, 경제적 필요에 의해 수용되었다고 보는게 더 타당할 것 같습니다. (물론 이영훈 교수도 문맥을 보면 이런 점을 긍정하고 있는 듯 합니다) 가령 중국에 대한 관계도 현실 외교적 필요에 의해 그렇게 저자세를 취했고 그런 저자세를 합리화할 도구를 찾다보니 성리학이 채용되었다는 거지요. 계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 일지라도 말입니다.

두번째로는 이영훈 교수 자신도 조선 시대 후기에 이르러 사유재산 개념이 발달했다고 인정하는데 조선의 내재적 발전론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궁금하군요.

세번째로, 제가 가장 동의하기 어려운 지점인데 이영훈 교수는 한국 전쟁 당시의 이승만에 대해 긍정적입니다. 그렇지만 밀리 매니아로서 전 졸라리 부정적입니다. (그외 건국 당시 이승만의 행적에 대한 평가에 대해선 이영훈 교수의 입장에 대해 많은 부분 동의하는 편입니다.) 이영훈 교수는 이승만에 대해 현실 정치를 냉철히 판단했다고 칭찬하는데 한국 전쟁 과정만 한정해서 평가해보면 아니올시다입니다. 이건 이영훈 교수 글에도 나옵니다. 즉, 이승만이 분단 고착화를 염려하여 계속 휴전을 반대하고 강경 반공 정책을 폈다고 하지요. 그런데 휴전은 이승만이 반대하든 뭐하든 중공군이 개입한 순간부터 그리 될 운명이었습니다. 광복과 분단 과정에 한국이 영향을 미칠 수 없는 것처럼요. 그렇다면 이승만은 미국의 안보 협력을 받는 정도의 조건에서 빨리 휴전에 협조하여 더 이상의 물적, 인적 피해를 막는게 현실적으로 옳았습니다. 포로 석방을 상호 방위 조약을 받기 위한 지렛대로 사용했다고 하는데 글쎄요. 우선 전 저런 주장을 뒷받침할만한 팩트를 본 적이 없어요. 이승만의 땡깡이 없었다면 미국이 휴전 이후 한국을 포기하려 했다는 증거를 본 적이 없거니와  이승만이 그런 의도를 가지고 포로를 석방했다는 증거도, 미국이 포로석방을 계기로 한국을 확실히 안보적으로 뒷받침할 계획을 세웠다는 증거도 본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당시 냉전 상황을 고려하면 이승만이 아니라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미국은 대소 전진 기지로서 한국을 포기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이승만이 중용한 군인들 보면 가히 한심한 수준이었습니다. (이건 미군의 평가에도 잘 나옵니다.) 친일파를 기용해서가 아니라 친일파 중에서도 제대로 된 군인을 중용하지 않은게 문제였지요.

거기에 좌익 색출을 명분으로 비정규 조직을 활용한 것도 큰 문제였지요. 실제로 한국 전쟁 당시 양민 학살은 많은 부분 서북청년단을 비롯한 비정규 조직에 의해 저질러졌습니다. (상대적으로 훈련된 조직인 정규군은 덜한 편이었지요.) 이건 당시 시대 상황으로 합리화할 수 있는 정도를 넘어섭니다. 이영훈 교수는 당시 부패가 어쩔 수 없는 시대적 한계였다고 주장하는데- 부분적으로는 긍정하지만- 서북청년단이 주도한 최대의 부패 사건인 국민 방위군 참사는 그런 합리화로 설명될 수 없습니다. 전쟁이 벌어져 국가 자체가 망하네 마네 하는 판에 대통령이 애지중지한 사조직이 보급을 떼먹어 예비군 2개 사단이 전멸(?)한 경우는 세계사적으로 정말 희귀합니다. 이런건 이영훈 교수가 증오해마지 않을 스탈린 치하의 소련에서도 없었던 일입니다. 천하의 똘아이 스탈린도 전쟁으로 국가가 위기로 몰리자 숙청당했던 장교들을 복권시키고 극심했던 반혁명분자 색출(?)도 자제합니다. 심지어 시베리아 수용소의 처우도 좋아집니다.(이제는 죽어나가면 보충할 인력이 없으니까.) 실제로 스탈린의 공포 정치는 2차 대전 이후 완화됩니다. (안그랬다간 소련 남자의 씨가 마를 판이었으니.)

아무튼 몇몇 구절은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들지만 진보 개혁 진영도 더이상 친일파의 후손이네, 일제 식민지배를 합리화하네하는 식의 단발적 비판은 이제 자제해야할 것 같군요. 자, 역사의 아마추어인 제 주장은 여기까지. 전공하신 분의 비판을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