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언론들이 저 보고서 인용할 때마다, 그리고 소위 진보적 여성단체들이 저 보고서를 근거로 무슨 주장할 때마다 의아했어요. 다른 나라 돌아다니며 느낀 체감으론 한국 여성들의 지위가 전 세계적으로 그리 낮은편은 아니라고 느꼈거든요. 그런데 진보적 여성들이 '차라리 아랍에서 사는게 여성으로선 더 낫다. 아프리카가 더 낫다. 한국이 최악이다.'이럴 때마다 속으로 '진짜 그렇게 생각하면 거기 가서 살아보든지.'라며 냉소를 보낸 적도 몇번 있습니다만.

이 글 보니 역시 문제가 많은 보고서네요. 아래 가 보시면 전문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여성차별 세계 최하위?
http://scientificcritics.com/news/view.html?section=79&category=81&no=272

......
세계경제포럼의 보고서에서 우리나라는 108를 차지했는데 아프리카의 여성할례가 벌어지는 국가들도 우리보다 높은 순위에 있다. 우간다28위, 탄자니아 46위, 세네갈이 90위다. 전체 순위를 보면 필리핀 8위, 베트남 66위, 중국 69위, 여성할례와 명예살인이 모두 자행되는 인도 조차도 우리보다 높은 105위를 차지했는데 이쯤되면 성평등이나 여성인권을 제대로 반영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보고서는 경제활동 참여 및 기회, 교육 성취도, 건강과 생존, 정치적 권한 총 네 가지 항목으로 구성되는데 항목별 순위를 봐도 이상하긴 마찬가지다. 

우리나라가 116위에 랭크된 경제부분에서는 몽고 1위, 카자흐스탄 19위, 케냐 35위이고, 우리가 99위인 교육 부분에서는 아프리카의 레소토라는 나라와 브라질, 필리핀, 아랍에미레이트 등이 공동 1위다. 건강에서 우리나라는 78위인데 반해 카자흐스탄, 스리랑카 우간다 등이 공동 1위다. 우리나라가 86위인 정치부분에서는 남아공 7위, 인도 17위, 우간다 28위이다.

이런 믿기 힘든 결과가 나온 이유는 무엇일까?

점수를 산정하는 방식 때문이다. 보고서에서는 각각의 세부 항목에 대해 남자와 여자의 비율을 계산한 값을 사용했다. 

세부 항목 중 문맹률을 보자. 레소토에서는 여자의 96%, 남자의 83%가 글을 읽을 수 있다. 우리나라는 남녀 모두 99퍼센트다. 이를 남녀의 비율로 계산한 결과 Lesotho는 96/83=1.15로 점수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반면 한국은 99/99=1로 공동 21등이다. 
......
언론이 어떻게 헛다리를 짚고 있는지 프레시안에 실린 시민건강증진연구소의 논평을 보자. 우리나라가 성평등 하위권을 차지했으며 우리의 평균수명은 20위 안에 드는데 건강 부문에서는 78위를 차지했으니 심각한 수준이라고 문제삼는다.

한국에서도 여성의 평균 수명이 더 길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만하면 평등하다고 하지 않는다. 잠재력으로는 지금보다 더 차이가 많이 나야 한다. 그래도 다른 불평등에 비하면 낫지 않느냐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전체 건강 지표를 함께 놓고 보면, 건강 쪽이 낫다고 자신하기도 어렵다. 최근 한국인의 평균 수명을 순위로 매기면, 자료에 따라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세계 20위 안에 든다. 그런데 양성 불평등 측면에서는 78위라니, 그 격차가 엄청나다.

이 두서없는 논평은 여기서 갑자기 삼성전자 반도체 직업병 문제를 연관짓는다.

이런 불평등의 네트워크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가 있다. 삼성전자 반도체 노동자들의 직업병이 그것이다. 결론은 나지 않았지만, 건강의 성 불평등과 노동의 성 불평등을 함께 놓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어서다. 피해자를 지원하는 인권 모임인 '반올림'이 모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3월까지 사망한 피해자는 30명이다. 그런데 그 중 20명이 여성이다. 이게 우연일까.

자신이 어떤 데이터에 근거했는지 이해하지도 못한 채 주장은 점점 산으로 가서 고용과 노동 환경의 차별이 원인이라고 주장하기까지 이른다.

그러나 우리는 결과적으로 이런 '성 격차'가 우연히 생겼다고 보지 않는다. 경로가 무엇이든 근본 원인은 여성이 불리한 고용과 노동 환경일 가능성이 크다. 노동의 불평등 구조를 좀 더 확대하면 임금 격차, 비정규 노동, 여성 노동의 성격 같은 문제로 연결된다. 낮은 임금과 비정규 노동이 여성에게 집중되는 한, 여성의 건강이 차별적으로 악영향을 받는 것을 피할 수 없다.

이 혼란스러운 논평의 결말은 다음과 같다. 

여성이 본래 가진 건강의 잠재력이 온전하게 발현되려면 사회경제적인 족쇄를 풀어야 한다. 정치, 경제, 고용과 노동, 교육에서 성 불평등을 줄여야 건강 불평등도 줄어든다. 보태는 한 마디. 우리가 성 평등을 말하는 목적은 인적 자원을 키우고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아니다. 남성을 포함한 모든 이의 권리이고 그게 정의이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커다란 반전이 있다. 논평을 작성한 시민건강증진연구소는 보고서를 읽어보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아래 보고서를 캡쳐한 화면을 보자. 

▲건강과 생존 부문의 우리나라 순위

건강과 생존 부문에서 우리나라는 78위이며 세부항목 중 성비는 121위로 최하위권이지만 기대건강수명에서는 세계 1위를 차지했다. 여성과 남성의 건강기대수명 차이가 세계에서 가장 심하다는 의미다. 물론 남성의 수명이 짧다.  

보고서의 수치는 프레시안 논평과는 반대로 우리나라 건강의 양성 불평등은 남성이 가장 열악한 상황에 처했음을 가리킨다. 이제 남성의 열악한 고용과 노동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들고 일어서자고 주장을 바꿔야 하나?

이상한 데이터를 의심없이 받아들이면 엉뚱한 진단이 나오고 종국에는 황당한 처방을 낳게 된다. 언론에 '합리적인 의심'이 필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