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판 오분 전이군"


회사 개발 과제인 소프트웨어 알고리즘을 생각하다가 잠이 들은 모양이다. 문득 깨어나 기지개를 켜면서 책상 위를 보니 한마디로 개판 오분 전이다. 독신인 내가 평소에 잠재의식 속에서나만 외로움을 느꼈던 것일까? 책상 위에 있는 구성물을 보니 쌍쌍이다.


컴퓨터와 노트북. 모니터 세 개..... 데스크탑 듀얼 모니터용 2개 노트북 듀얼 모니터용 2개. 스피커 네 개... 컴퓨터용 2개 노트북용 2개. 컨디션이 좋을 때는 경쾌한 음악을 듣고 기분이 꿀꿀할 때는 차분한 음악을 듣기 위해서인데 음악 파일 찾는거 귀찮아서 아예 따로따로 동작시키게 해놓았다.


지갑 두 개..... 하나는 한참 뚱뚱했을 때 나를 닮은듯 터질듯이 뚱뚱한 지갑과 내가 지향하고자 하는 S라인의 몸매를 닮은 듯 홀쭉한 지갑..... 뚱뚱한 지갑에는 신용카드를, 내 은행 빚을 모두 변제해 준 누님에게 모두 압수 당한 탓에 통신비며 핸드폰 두 개 요금 영수증... 바빠서 미처 정리 못한 영수증이 대여섯 장..... 그리고 언제 쓸 지 몰라 항상 넣고 다니는 이십만원...... 철저히 현찰 모드로 생활하다 보니 뚱뚱해질 수 밖에 없는 지갑과 반대로 카드리고는 달랑 교통카드와 현금카드 두 개 밖에 넣을게 없어 항상 홀쭉한 지갑.


두 개의 탁상 시계가 서로 다른 시간을 가르키며 나란히 위치하고 있다. 미국에 빈번히 전화를 해야 했던 시절.... 시차 계산하기 귀찮아서 마침 선물로 들어온 시계를 하나 더 놓고 하나는 국내 시각 다른 하나는 미국 LA 시각에 맞추어 놓고 돌린다. 탁상 시계가 AM/PM 구분이 안가는 터라 미국 LA 시각을 국내 시각으로 착각, 엉뚱한 시간에 전화를 해서 상대방에게 불평을 들은 적도 있는데 그 간단한 '서울 시각', 'LA 시각'이라는 견출지 하나 붙이지 않았다.


필통이 두 개다. 필통 하나에는 볼펜 4개, 4색 볼펜 두자루, 샤프 한자루..... 아! 샤프만이 주인을 닮아 '샤프하게' 독신이다. 불쌍한 것. 기둘려라. 다음 주에는 회사에 놓고 온 샤프를 가지고 와서 주인이 집에 있는 동안만이라도 쌍으로 있게 해줄테니까..... 그리고 다른 필통에는 잡다한, 그러나 요긴한 것들이 들어 있다. 포스트잇 두 매, 클립 네 개, 풀 두 통........


풀이 두 통이 된 이유는 매사에 엄벙덤벙한 내 성격 탓이리라. 집에 풀이 있는 줄도 모르고 다시 풀을 사왔으니까. 근데 내가 도대체 왜 풀을 샀었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배가 고팠나?


하이라이트는 책상 위에 재터리가 두 개라는 것이다. 하나는 깜박 잠들기 전에 깨끗히 비워둔 재털이에 꽁초 두 개..... 그리고 다른 하나에는 피다만 장초가 반쯤은 채워져 있다. 재터리가 두 개인 것은 빚을 갚느라 허덕였던 과거의 '나의 슬픈 역사'의 잔재이다. 하다 못해, 핸드폰 요금도 아까워, 공중전화를 이용할 정도로 절약에 절약을 해야 했던 내가, 담배를 아껴 피우는 것은 필수.


담배를 허비하는 내가 수없이 버려지는 장초들을 따로 모았다가 이 것들을 폈었다. 그래서 하루에 한갑 반, 한달에 마흔 다섯갑은 피는 담배....돈으로 구만원.....을 한달에 서른값으로 줄일 수 있었고 돈으로 3만원 정도가 절약되었는데 빚의 덩치에 비하여 삼만원은 간에 기별도 안가는 액수지만 어쨌든 불가능할 것 같았던 빚을 전부 변제하고 지금은 거꾸로 저축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빚이 없는 생활을 하게 된 것은 바로 이 재털이에 모아둔 장초의 역할이 컸다. 한국에서 빚만 없으면 부자라고 하지 않는가?


가게 평균당 빚이 삼천만원이 넘어가는 시대에 우리집 가계빚은 '삼천원'. 그저께 맞겨놓은 양복 세탁비를 아직 양복을 찾지 않아서 주지 않은 세탁비가 전부이다.


핸드폰 두 개 중 하나가 울린다. 왠 일인가 짚어보았더니 밧데리가 다 떨어져서 이제 꺼진다는 경고 음악이다. 충전기는 하나인데 핸드폰은 두 개라 둘 중 하나는 '꺼져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핸드폰 하나는 요금을 월간 십만원이 넘으면 월급에서 공제한다며 엄포를 놓으며 회사에서 업무용으로 준 것이다.


핸드폰을 받으면서 두가지 의문이 생겼다. 하나는 도대체 엔지니어에게 왜 핸드폰이 필요한지 의문이고 또 하나는 영업 사원도 아닌데 한달에 요금을 십만원씩 낼 정도로 쓸 일이 있나? 이제 근무한지 보름이 되가는데도 이 의문은 풀리지 않는다. 걱정은, 핸드폰을 전혀 사용하지 않아 요금에 적게 나왔을 때 사장이 어떤 표정을 지을까? 하는 것이다. 일을 전혀 안한다고 질책을 할까? 아니면 회사 용품을 아껴 쓴다고 고마와 할까?


한 7만원.................. 정도 요금이 나오게 뭐엔가는 써야하지 않을까? 핸드폰 결재로 책을 살까? 뭘 해서 7만원을 채우나? 여태까지 '없어서 못 썼지' 무엇을 써야할지 고민을 해 본 적이 없어서 새로운 고민거리로 등장한 놈이다. 그 핸드폰 옆에 머그컵이 두 개. 다이어트를 위해 블랙커피를 먹는데 왠지 입맛이 써서 타놓은 블랙커피가 담긴 컵을 그냥 놓아둔 채 쥬스를 새로 따라 마시면서 갔다 놓은 머그컵.


등등........... 책상 위에 '개판을 이루는 구성물'을 설명하려면 아직도 한참이나 기술해야 하는데 본건이 아니니 이 정도로 언급하기로 하고..... '개판 오분 전이군'이라는 생각을 하다가 문득 이 '개판 오분 전'이라는 표현의 유래가 궁금해졌다.


우선 '분'이라는 표현에 주목을 했다. 조선 시대에는 시간의 단위를 '힌식경' '반식경' 등 전혀 다른 단위를 썼으니 '개판 오분 전'은 최소한 조선 시대에 유래한 것은 아니다...라는 생각을 했다. 아마 20세기에 새로 생긴 표현이되, 새로운 용어인 '분'이 이런 표현에 익숙해질 정도면 아마도 20세기 중후반 이후일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백과사전에도 안나오고 딱히 참조할만한 책이나 컴퓨터에 세상의 모든 자료를 옮겨놓은듯한 하드 세 개, 그리고 언제든지 유용한 자료가 생기면 복사를 하고 그 복사를 한 것을 다시 스캐닝을 떠서 그래픽 자료로 만들어 저장해 둔 CD 5백장에 이르는 자료집에서도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인터넷 검색을 해보았다. 아아............. 개판 오분 전의 개판은 콩글리쉬로 'dog plate'가 아닌 것이었다. 개판은 開版이라는 한자 성어였다.


開는 열린다는 의미이고 版은 씨름'판', 싸움'판' 등 어떤 왁자지껄한 상황이 벌어지는 장소를 의미하는 것으로 결국 어떤 요란한 상황이 열린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개판 오분 전이란 어떤 요란한 상황이 벌어지기 오 분전이라는 의미라는 것이다.


'개판 오분 전'은 슬픈 우리의 역사가 담긴 그런 의미였다.


"6.25 당시 전쟁통에 사람들은 식량을 배급 받았다. 그런데 피난촌에 식사 시간이 되면 밥짓는 연기가 피어올랐고 배급 준비가 끝나면 신호를 했는데 그 신호가 바로 개판이라는 것인데 수요보다 공급이 부족하기 마련이어서 사람들은 '개판'이라는 신호에 따라 움직이지 않고 개판이라는 신호 오분 전에 미리 움직여 난장판이 되는 상황을 일컷는 것"(주*1)이라는 것이다.


개판 오분 전......


개판 오분 전......... 그리고 오분이 흐른 후에는 어렵게 끼니를 배급 받은 '승자'와 끼니를 배급 받지 못해서 한끼를 굶을 수 밖에 없는 '약육강식 하'에서의 처절한 승자와 패자만이 존재하게 되는 것으로 미리 움직이지 않으면 한끼 식사를 굶을지도 모른다는 그 초조감이 오늘날 현대의 대한민국 국민들이 '빨리병'에 걸리게 된 주요 원인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그런데 개판 오분 전인 이명박 정권의 현실. 그들은 모두 고소영족이고 강부자족이라 '한끼 걱정은 진작에 털어버린 사람들'인데 왜 저리도 개판 오분 전, 아니 개판 일분 전 사람들처럼 이전투구를 벌리고 있을까?


십년 간의 권력욕을 금지 당한 금단 현상이 막상 풀리자 오히려 당황하는 '권력이라는 아편의 중독자들'의 개판 오분 전의 모습을 보다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왠지, 잘못했다가는 국민의 다수가 '개판 오분 전'의 상황에 처할 것 같아서 말이다.



주*1 : 출처 - 네이버 블로거 '안군' "전문은 여기를 클릭"
         출처 - 네이버 지식 사전 "전문은 여기를 클릭"

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