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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tural Selection’s Evolution: Rebecca Stott Talks About ‘Darwin’s Ghosts’

(By John Williams)

 

자연선택의 진화: 레베카 스토트 다윈의 유령들에 관해 얘기하다 (존 윌리엄스)

 

출처: 뉴욕 타임즈 아트비트 블로그 / 201288

http://artsbeat.blogs.nytimes.com/2012/08/08/natural-selections-evolution-rebecca-stott-talks-about-darwins-ghosts/

 

 

Soon after he published “On the Origin of Species,” Charles Darwin was accused of neglecting to mention the thinkers who had helped to shape evolutionary theory before him. He scrambled to put together a list of predecessors that would be added to future editions of his book. In “Darwin’s Ghosts,” Rebecca Stott tells the story of those predecessors’ work, from the empirical research of Aristotle to the studies of Alfred Russel Wallace, who was piecing together the science around the same time as Darwin. In The New York Times Book Review, Hugh Raffles called the book an “absorbing account” with a narrative that “flows easily across continents and centuries.” In a recent e-mail interview, Ms. Stott discussed the roots of her interest in Darwin, the reasons Wallace played second fiddle without complaint and more. Below are edited excerpts from the conversation:

 

<종의 기원에 관하여>를 출판한 후 곧 찰스 다윈은 그 이전에 진화론을 형성하는데 기여했던 사상가들을 언급하는 것을 무시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그는 장차 출간될 신판들에 덧붙일 선구자들의 목록을 긁어모았다. <다윈의 유령들>에서, 레베카 스토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경험적 조사로부터 다윈과 거의 동시에 그 과학을 완성하고 있었던 알프레드 러셀 왈라스의 연구에 이르기까지 그 선구자들의 작업 이야기를 해준다. <뉴욕 타임즈> 서평에서, 휴즈 라플즈는 그 책을 대륙들과 세기들을 거침없이 휘젓고 다니는이야기로 이루어진 흡인력 있는 설명이라고 평했다. 한 최근 이메일 인터뷰에서, 미스 스코트는 다윈에 대한 그녀의 관심의 뿌리, 왈라스가 불평과 그 이상의 것 없이 제 2 바이올린 역할을 했던 이유들을 논했다. 아래는 그 대화 일부를 발췌 편집한 것이다:

 

Q.

The very first sentence of your book is: “I grew up in a creationist household.” How much did that drive your interest in Darwin?

 

질문.

당신 책의 첫 문장은 나는 창조론자 집안에서 성장했다입니다. 그게 다윈에 대한 당신의 관심을 얼마나 발동시켰나요?

A.

Darwin was described as the mouthpiece of Satan in the fundamentalist Christian community in which I was raised. His ideas were censored, and of course censorship can act as a kind of provocation to curiosity. The school library had a good encyclopedia with several pages on Darwin. I can’t say I understood much of his ideas back then, but I understood enough to be mute with fascination. It was extraordinarily different from the biblical version of how things had come to be but no less strange.

 

답변.

제가 양육되었던 근본주의 기독교 공동체에서 다윈은 사탄의 대변자로 묘사되었습니다. 그의 관념들은 검열되었는데요, 물론 검열은 호기심을 자극하는 작용을 할 수 있습니다. 학교 도서관에는 다윈에 몇 페이지가 할애된 훌륭한 백과사전이 있었습니다. 저는 당시 그의 많은 관념들을 제대로 이해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만, 매혹된 나머지 말문이 막힐 정도로는 이해했습니다. 그것은 어떻게 만물이 있게 되었는가에 대한 성서의 설명과 대단히 달랐습니다만 그것보다 덜 이상하지는 않았습니다.

 

Q.

You’ve written about Darwin before. What led you to concentrate on this aspect of his story?

 

질문.

당신은 다윈 이전에 관해 썼습니다. 무엇이 당신을 그의 이야기의 이 측면에 집중하도록 이끌었나요?

 

A.

In writing “Darwin and the Barnacle,” I had come to respect the kinds of risks Darwin took in asking these dangerous questions about the origins of species. But I also knew there had been others before him who entertained similar ideas, and I wanted to know if they had had to take similar risks.

 

답변.

<다윈과 조개삿갓>을 쓰면서, 저는 종의 기원에 관한 이 위험한 질문들을 던지면서 다윈이 감수했던 위험에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또한 그 이전에 유사한 관념들을 가졌던 다른 이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들이 유사한 위험을 감수해야만 했는지 알고 싶어졌습니다.

 

Q.

Alfred Russel Wallace was independently reaching the same conclusions as Darwin around the same time, and Darwin felt compelled to rush his book to publication to establish his primacy. Wallace responded to the situation with incredible equanimity. Why didn’t he fight for more turf?

 

질문.

알프레드 러셀 왈라스는 나름대로 거의 동일한 시기에 다윈과 동일한 결론에 도달하고 있었고 다윈은 선두에 서기 위해 그의 책을 서둘러 출간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왈라스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침착하게 그 상황에 반응했습니다. 왜 그는 더 많은 자기 몫을 위해 싸우지 않았을까요?

 

A.

I don’t think it occurred to him to do that. There were subtle class issues that determined his place in the question of priority for him, I think. Wallace had long looked up to Darwin and [the geologist] Charles Lyell and [the botanist] Joseph Hooker they were gentlemen of science, whereas he thought of himself as a collector. Other things mattered to him more than fame he was determined to play his part in the collection of proof about evolution. He was deeply proud to have been part of that, and also probably relieved to be able to slip away from the politics and the fuss and get back into the field.

 

답변.

저는 그에게 그렇게 할 뜻이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순위 문제에서 그의 자리를 결정했던 미묘한 계급 쟁점들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왈라스는 오랫동안 다윈과 [지질학자] 찰스 라이엘과 [식물학자] 조셉 후커를 존경해왔습니다 그들은 과학의 향신들이었던 반면 그는 자신을 수집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에게는 명성보다는 다른 것들이 더 중요했습니다 그는 진화의 증거를 수집하는 역할을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는 그 역할을 해온 것을 대단히 자랑스러워했고 아마 또한 정치와 소동에서 슬며시 빠져 나와 그 분야로 되돌아갈 수 있었던 것에 안도했을 것입니다.

 

Q.

Aside from Wallace, who came closest to scientifically (as opposed to metaphorically) figuring out natural selection before Darwin?

 

질문.

다윈 전에 왈라스 외에 누가 자연선택을 (은유적으로가 아니라) 과학적으로 구상하는데 가장 근접했었나요?

 

A.

Jean-Baptiste Lamarck was one of the first men of science to have access to enough fossil and living animal specimens and bones to really gather the weight of evidence that would be needed to understand the ways in which species evolve. Lamarck worked in the Museum of Natural History in Paris, which in 1800 had the most remarkable collection of natural history specimens in the world Napoleon Bonaparte had stolen hundreds of famous European natural history collections during the Napoleonic Wars and brought them all to Paris.

 

답변.

-밥티스트 라마르크는 종이 진화하는 방식을 이해하는데 필요로 될 비중 있는 증거를 실질적으로 입수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화석과 살아있는 동물 표본들과 뼈들을 이용할 수 있었던 첫 번째 과학자들 중 하나였습니다. 라마르크는 파리 자연사 박물관에서 작업했는데, 그 박물관의 자연사 표본들 컬렉션은 1800년 당시 세계에서 가장 뛰어났습니다 나풀레옹 보나파르트는 나풀레옹 전쟁들 동안 수백 점에 달하는 유명한 유럽 자연사 컬렉션들을 탈취해 그것들 모두를 파리로 가져갔습니다.

 

Q.

The book’s roster of notable predecessors starts with Aristotle. As brilliant as he was, that’s a very early time for thoughts about evolution. What did he know or intuit that makes him a part of this intellectual lineage?

 

질문.

그 책의 특기할 만한 선구자들  명부는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시작합니다. 그가 아무리 명석했다 한들, 당시는 진화에 관해 생각하기에는  매우 이른 시기입니다. 무엇을 알아냈거나 깨달았기에 그가 이 지적 계보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인가요?

 

A.

What is remarkable about Aristotle is that he was the first to practice empirical science, rather than to settle for large-scale hypothetical theories about natural laws or cosmologies. He insisted on gathering facts; only facts he had verified with his own eyes. By trying to gather together all the information on all the animal species in the world, he was asking questions about species diversity and adaptation that would lead later scientists to evolutionary speculations. But he was not an evolutionist. He believed in the fixity of species.

 

답변.

아리스토텔레스의 남다른 점은 그가 자연법칙들이나 우주론들에 관한 대규모의 가설적 이론들에 매달리기보다는 경험적 과학을 실천한 첫 번째 인물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사실들을 그러모으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그 자신의 눈으로 사실들만을 확인했습니다. 세계의 모든 동물종들에 관한 모든 정보를 끌어 모으려 하면서, 그는 나중의 과학자들을 진화론적 고찰들로 이끌었던 종의 다양성과 적응에 관한 질문들을 던졌습니다. 그러나 그는 진화론자는 아니었습니다. 그는 종들이 고정되어 있다고 믿었습니다.

 

Q.

You start in 344 B.C. Then you hop forward to A.D. 850. And then to the late 15th century. What accounts for such large gaps between periods of progress in this subject?

 

당신은 기원전 344년에서 출발했습니다. 그 다음 당신은 기원후 850년으로 건너뛰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은 15세기 말로요. 이 주제에서 진보가 이루어진 시기들 사이의 그러한 넓은 간격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A.

I wish I knew. Perhaps certain thinkers or schools of thought have been lost to history. Perhaps in the West it was due to the dominance of Christianity, and particularly Catholicism, over intellectual inquiry. Some of the periods of acceleration in the history of evolutionary thought were caused by material changes the development of the printing press or of the microscope, growth in literacy rates, the gradual opening up of libraries and natural history collections to the public but it always strikes me as salutary that one of the greatest periods of acceleration in evolutionary speculation took place in post-Revolutionary Paris between 1790 and 1815, when the priests had been banished and the professors had been given license to pursue any question they liked. That’s when evolutionary ideas really came into their own.

 

답변.

저도 알고 싶습니다. 아마 어떤 사상가들이나 사상학파들이 역사에서 실종되었을 지도 모릅니다. 서구에서는 십중팔구 기독교, 특히 카톨릭이 지적 탐구를 통제한 것이 그 원인일 것입니다. 진화론 사상의 역사에서 가속이 일어났던 시기들 중 몇몇을 보면 그 가속은 물질적 변화들 - 인쇄술 또는 현미경의 발달, 읽고 쓰는 능력의 증대, 도서관들과 자연사 컬렉션들의 점진적인 대중 공개 - 에 의해 야기되었습니다만 진화론적 고찰에서 가장 큰 가속들 중 하나가 사제들이 쫓겨나고 교수들이 마음대로 아무 질문들이나 파고들 수 있다는 허가를 받았던 1790년과 1815년 사이 혁명후의 파리에서 일어났던 것은 언제나 제게 의미심장한 것으로 주의를 끕니다. 당시는 실로 진화론적 관념들이 본연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던 시기입니다.

 

Q.

The polyp is a small organism that plays a large role in the story. What about it captured people’s imaginations?

 

질문.

폴립은 그 이야기에서 큰 역할을 하는 작은 유기체입니다. 그것의 어떤 점이 사람들의 상상력을 사로잡았나요?

 

A.

I am particularly fond of the polyp. It was first “discovered” by a Swiss naturalist called Abraham Trembley in The Hague in the 1730s. Under a powerful microscope, he found that if you cut the “animal” in half, it could regenerate itself. The discovery caused a sensation amongst European naturalists, philosophers and theologians because it seemed to challenge all natural laws animals cannot regenerate themselves. Why could a simple organism like the polyp have such powers and not humans?

 

답변.

저는 특히나 폴립을 좋아합니다. 그것은 1730년대 헤이그에서 아브라함 트렘블리라는 한 스위스 박물학자에 의해 처음 발견되었습니다. 강력한 현미경을 사용해, 그는 그 동물을 반으로 자르면, 그것이 자신을 재생시킬 수 있음을 알아냈습니다. 그 발견은 유럽의 박물학자들, 철학자들 그리고 신학자들 사이에 물의를 야기했습니다. 그것이 전적으로 자연스러운 법칙 - 동물은 자신을 재생시킬 수 없다는 법칙에 도전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죠. 왜 폴립같은 단순한 유기체는 그러한 능력을 가질 수 있는 반면 인간은 그럴 수 없는가라는 의문이 생겼습니다.

 

Q.

Darwin would add people to a list of acknowledgments, then cross them off. He criticized a predecessor in one edition of “Origin” and then struck that criticism from the next edition. What drove his anxiety about the list and his fiddling with it the way he did?

 

질문.

다윈은 감사의 말의 명단 부분에 사람들을 추가하곤 했지만 그 다음 그것들 위에 X표를 그었습니다. 그는 <종의 기원>의 한 판에서 한 선구자를 비판하고는 그 다음 판에서는 그 비판을 삭제했습니다. 그는 무엇 때문에 그 명부에 관해 불안해하고 그 명부를 그런 식으로

손보았을까요?

 

A.

I am more and more convinced that assembling that list of predecessors was a kind of political act as well as a public relations exercise for Darwin. He was effectively saying: “Look, I’m not the first. Here are the men who have made this claim before me. We are all responsible.” He wanted to have sane, respectable, ordinary people on that list to try to persuade his readers that evolution wasn’t a mad, French, radical, anti-establishment idea. So it seems no coincidence that he worked particularly hard at finding hard-working respectable people like himself to put on his list, and that a large proportion of those people are British.

 

답변.

저는 다윈에게 선구자들의 명단을 작성하는 일은 일종의 정치적 행위이자 하나의 광고활동이었다고 전적으로 확신합니다. 그는 결국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잘들 보시오. 나는 첫 번째가 아니요. 여기 나보다 앞서 이 주장을 했던 이들이 있소. 진화론은 우리 모두에게서 비롯된 것이요.” 그는 그 명단에 올라있는 분별 있고 존경할 만한 보통 사람들이 진화는 미친, 프랑스적인, 반기성체제적인 관념이 아니라고 그의 독자들을 설득하고자 하게 하기를 원했습니다. 따라서 그가 명단에 올리기 위해 그 자신 같이 열심히 일하는 존경할만한 사람들을 찾아내는데 주력했고 그 사람들 중 상당수가 영국인이라는 점은 우연이 아닌 듯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