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위대한 책이다!

 

이 책이 1935년에 출판되었으니 그로부터 78년이라는 엄청난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빛을 발하고 있으며, 나아가 더욱 문명화된 현대인들의 반지성과 어리석음에 통렬한 일침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위대한 명저를 '제대로' 읽지 못한 지식인은 결코 지성인이라 할 수가 없다.

 

그런데 심히 의심스러운 점은, 이 책을 읽고 과연 어떤 이들이 배우고, 깨우쳤을까 하는 것이다. 반세기 하고도 사반세기가 더 흘렀지만 그의 가르침이 따끔한 일침이 되기는 커녕 점점 더 우려되는 상황으로 현대문명과 과학은 그 위험한 관성을 지속해 왔고, 더욱 타락해 -그의 주장에 의하면, 물질물명 위주의 맹목적인 과학주의에 빠진 발전은 발전이라기보다는 퇴보이고 타락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 가고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이민 귀멀고 눈멀은 현대인들에게는, 소귀에 경읽기인 셈이기 때문이다.

 

악화는 양화를 구축한다고 했다. 질 낮은 나쁜 것들이 참되고 진실되며 아름다운 것들을 구축하는 것이다. 맹목적인 과학에 바탕을 둔 물질문명과 산업화에 따라 진정한 모든 것들을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이제 그가 진정한 인류의 발전을 위해 외쳤던 고견은 사장되어버리고만 것이다. 누구도 귀기울이지 않는다.

 

언제나 무식과 무지는 진리나 진실 보다 강하다. 그들은 보다 폭력적이고 맹목적이기 때문이다. 저들을 다스리는 방법은 더 큰 무력을 사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세상은 어설픈,  어중띤. 대충밖에 모르는 지적 수다장이들이 득세하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도대체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끊임없이 떠들어대고 글을 써질러대니 어떻게 냉철한 판단력이 없는 무지한 일반 사람들이 저들의 세 치 혀에 넘어가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그러면에서 인터넷은 너무나 위험한 장난감이다. 극히 위험한 저들의 패악을 막기 위해서는 세치 혀를 잘라낼 수 없다면, 손가락이라도 꺾어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 그들은 한 국가의 반역자나, 한 지역에서 무수한 생명을 살상한 정신 이상적 범죄자보다도 더 위험하다. 반인류적인 범죄자들이기 때문이다.

 

아는 것이 힘이라고 했으나, 어설픈 앎은 폭력에 불과하다. 불충분한 전문적인 지식은 차라리 없느니만 못하다. 무지한 자가 부지런하면 그것은 만행을 자행하게끔 된다.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지 않으며 끊임없이 도전한다. 그럴 때는 가차없이 묵사발을 내는 도리밖에 없다. 그 무지가 용맹을 발휘하기 전에 완전히 굴복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어리석음 그 자체보다도 그 자신이 다 알고 있다고 하는 착각이 진정 위험한 것이다.

 

현대 사회는 알렉시스 카렐이 경고했던 것보다 훨씬 더 타락했고, 엄청나게 위험해졌다. 무식한 자들이 더욱 판을 치는 세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카렐은 과학 맹목적인 도그마와 물질문명의 발전을 크게 우려하였다. 그러나 오늘날 그런 경향이 더욱더 심화되었다. 질병을 제대로 치료하고, 인간을 인간답게 하려면 결코 물질만 강조하는 과학 맹신에 빠지지 말고 산업 문명이 주는 달콤함이나 안락에 빠지지 말라고 경고했다. 그런데 과학교로까지 변해버린 과학의 폐단은 이루말할 수가 없다. 그런데도 무지한 자들이 과학, 과학만을 외치고 있다. 과학교에 의하면 인간은 육체만을 가진 물질에 지나지 않으며, 진화론적 생물 혹은 동물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인간을 그렇게 간주하고 있다.  육체의 질병에 있어서도 그런 과학적 방법만을 근거로 삼고 있다. 알렉시스가 얼마나 경계했던 일인가!

 

카렐의 주장은 간단하다. 인간에 대한 연구는 과학적이어야 하지만 육체만을 대상으로 하는 과학이 아닌, 인간 (전체 존재)에 대한 과학이어야만 한다고 역설한 것이다. 모든 아류 과학을 아루르는 '진정한' 과학이어야 한다고 외친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과학은 인간을 공장에서 생산하는 인조인간쯤으로 여기고 있다. 과학의 굴레에 갇혀 스스로를 기계인간으로, 짐승이나 야수에 지나지 않는 동물종으로 정의한다. 수만년 전, 혹은 수억년 전에나 존재했을 법한  동물 혹은 생명체로 인식하고 있다.

 

사람들은 현대 과학이 얼마나 타락했는지는 문제삼지 않는다. 오로지 그 편익에 매달리고 있다. 그것이 주는 편하고, 안락하고, 달콤함에만 빠져 있다. 그것이 낳는 인류의 타락, 인간의 질병, 개성의 사멸은 보려고 하지 않는다. 어디로 가고 있으며, 어디로 가야할지를 모르며 출항하는 배와 다름없다. 그러한 배는 필시 난파하기 마련이다. 지금 인류라는 배는 난파당하고 있지 않은가?

 

이 책에 대해 정리를 제대로 하자면 몇날 몇일이 걸려도 부족할 것이리라. 인간, 그 미지의 존재에 대해서 그가 관찰한 것이 너무나 광대하기 때문이다. 그 때로부터 여러 과학에  있어서 많은 발전과 발견이 있었겠지만 그가 갈파한 중심 내용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늘날 의학의 전문가라는 사람들도 무지한 자나 다름이 없다. 어느 한 분야의 전문가라는 것은 다른 수많은 분야의 지적 장애자와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전문가들이 큰 소리를 내어서는 곤란하다. 그들의 지식은 인간에 대한 것이라면, 하나의 파편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 파편으로부터 인간은 정의될 수 없으며, 따라서 질병에 걸렸다고 해도 결코 치료할 수가 없다.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어떻게 들으면 될까? 다른 분이 써놓은 리뷰에 책으로부터 인용해 놓은 것이 있어서 재인용해 본다.

 

다른 부분을 희생시키고 어떤 부분만을 중히 여기는 일이 종종 일어난다. 우리들은 인간의 여러가지 면, 즉 물리 화학적, 해부학적, 도덕적, 예술적, 종교적, 경제적, 사회적인 면 모두를 고려에 넣지 않으면 안 된다. 무릇 전문가들이 편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그 편견 때문에 실제로는 불과 일부만을 파악하고 있으면서 자기는 인간 전체를 이해하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만다. 단편적인 부분인데도 전체를 나타내는 것으로 말이다. 게다가 이 부분이라는 것은, 그 당시의 유행에 의하여 제멋대로 거론되어 그때마다 중시되는 것이 개인이거나 사회이기도 하고, 생리적 욕구이거나 정신적 활동이기도 하고, 근육 발달이거나 높은 지능이기도 하고, 아름다움이나 실용성이기도 하다. 그래서 인간은 다른 얼굴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고 사람들은 그중에서 제 마음대로 자기 취향에 맞는 것을 골라 내고 다른 것은 잊어버리는 것이다

 

[출처]: 위대하지만 조금은 꺼림직한 작품

 

전문가들은 극히 좁은 한 분야의 지식인이라고 보면 된다. 그 전문분야에 대한 주제가 아니라면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할 필요가 전혀 없다. 위의 인용글에서 지적했던 것처럼 극히 작은 일부분만을 알고 있기 때문에 전체에 대해 제대로 된 의견을 낼 수가 없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심장병 전문가가 우울증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나서지 말아야 한다. 그에 답할 수 있는 자격있는 사람은 인체의 질병 전체를 연구한 매우 사려깊고 통합적 사고를 가진 진정한 의사가 아니면 안 된다. 그렇더라도 여전히 그는 겸손하게 굴어야만 한다. 필시 그러한 과학자이자 의사일지라도 '인간 존재'에 대해서는 무지한 자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확인하기 위해 알렉시스 카렐의 주장을 인용해보자.

 

편견은 이성의 눈을 흐리게 한다

 

의사의 극단적인 전문화 때문에 더욱 큰 폐단이 일어나고 있다. 의학은 병자를 작은 부분으로 분할하여 각 부분마다 전문가가 있다. 어느 전문가가 처음부터 인체 속에 있는 극히 작은 일부분에 대해서만 연구한 경우, 다른 부분의 지식은 매우 초보적인 것이므로 자기가 전문으로 하는 분야마저도 완전히 이해할 수 없게 된다. 만약 교육자나 성직자나 경제학자나 사회학자가 자기의 특수한 분야에만 갇혀 버리기 전에 인간에 관한 일반적인 지식을 가지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똑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그 전문가가 유명하면 할수록 위험도 크다. 대발견이나 유용한 발명을 하여 크게 유명해진 과학자는 종종 어느 한 가지 대상에 관한 자기의 지식을 모든 것에 적용할 수 있다고 믿게 된다. 예를 들어 에디슨은 철학이나 종교에 관한 자기의 의견을 망설임없이 일반 사람들에게 발표했다. 그리하여 대중은 존경심을 가지고 그의 말을 경청하고 이 새로운 분야에서도 그이 말은 발명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중요한 것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이와 같이 위대한 사람이 실은 별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하여 말하면, 어느 분야에서는 그 진보에 커다란 공헌을 했지만 다른 분야에서는 그 전진을 방해하는 수가 있다. 신문들은 매일같이, 지나치게 전문 분야에 사로잡혀서 현재의 중대 문제의 깊은 내용을 파악하지 못하게 된 제조업자나 은행가, 법률가, 대학교수, 의사들의 사회, 경제, 과학에 관한 의견을 게재하고 있지만 그 효과는 매우 의심스럽다.

 

그러므로 현대문명은 절대적으로 전문가를 필요로 하고 있다. 그들 없이는 과학은 진보하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연구 결과를 인간에게 적용하기 전에, 분석에 의하여 얻은 흩어져 있는 테이터를 알기 쉽게 종합적으로 정리하는 일이 필수적이다.

 

<58~59> 인간 그미지의 존재 (노벨상 수상자 알렉시스 카렐 저 / 문학과지성사) 

 

자, 그렇다면 그런 종합하는 일을 누가 어떻게 할 수 있는지 그의 주장을 들어볼까.

 

이성을 가지고 분별할수만 있다면, 충분히 그의 주장에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유능한 '종합자'를 육성하는 것

 

인간 혁신에 필요한 기관들도  아마 같은 방법으로 발전하는 것 같다. 어느 날인가, 어느 곳의 학교나 대학에서 이 문제의 중요성을 이해할 때가 올 것이다. 작기는 하지만 올바른 방향을 향한 노력이 이미 시도되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예일 대학은~

 

~ 그러나 미국에서의 이 감정은 결코 이탈리아에서만큼 확실한 형태를 갖추어 가고 있지 못하다.

 

현재 이미 존재하고 있는 기관을 인간 혁신 사업에 어울리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큰 변혁을 거쳐야만 한다. 예를 들어 19세기의 안목 좋은 기계론적 유물사관을 배제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는 생물학에서 사용하는 개념을 분명하게 밝히고 각 부분을 전체로서 재통합할 것, 과학 연구자뿐만 아니라 진짜 학자도 형성할 것 등 절박한 중대성을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생화학에서부터 경제학에 이르기까지 각 연구 기관의 지도와 각 분야의 결과를 인간에게 적용하는 사람들에 대한 지도는 전문가에게 맡겨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전문가는 자기 전문 분야의 연구 발전에 지나치게 흥미를 가지기 때문이다.

 

전문가는 종합하는 사람에게는 단순한 도구가 되어야 한다. 큰 대학의 의학부 교수가 그의 대학 병원 연구실에서 병리학자, 세균학자, 생리학자, 화학자, 물리학자의 도움을 이용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전문가는 종합자에게 이용당하게 되리라.

 

이제까지 이들 전문 과학자들은 누구 한사람 환자의 치료에 대해 지시를 받았던 적이 없다. 경제학자나 내분비학자, 사회사업가나 정신분석학자나 생화학자나 다 같이 인간에 대해서는 무지하다. 각기 자기 분야 이외의 면에서는 신뢰할 수가 없는 것이다. (299-300p)

 

 

그러나 수억 인간의 운명과 미래가 걸려 있는 이 문제에 답을 내놓지 않으면 안 된다. 이에 대해서는 인간 과학 진흥에 진력하고 있는 연구 기관만이 답을 작성할 수 있다. (300p)

 

오늘날 이러한 연구는 아직도 한층 더 추진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인간 전체 - 단지 육체로서의 인간이 아닌 육체적.정신적 부분 모두를 포함하는 인간 전체를 말함 - 가 생물학의 연구분야에 포함되지 않으면 안된다. 각 전문가는 자유롭게 자기 분야의 탐구를 계속해야 한다. 그러나 인간의 중요 부분은 어느 것도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 (301p)

 

여러 대학들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건강과 병 연구를 하는 연구소도 생리학, 화학, 의학, 심리학 모두에 폭 넓은 지식을 가지 과학자들에 의한 지도를 받지 않으면 안 된다. 앞으로의 생물학 연구자는 자기네의 목표는 살아있는 인체이지 인공적으로 구분된 조직이나 유형이 아니라는 사실을 충분히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

또 베일리스가 생각한 것과 같은 일반 생리학은 생리학의 아주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으며 육체적 현상이나 정신적 현상도 무시할 수 없음을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의학 연구를 위해 실험실에서 하는 연구 활동은 인간의 물리적.화학적.구조적.기능적.심리적 활동에 관한 모든 문제와 이들 활동의 자연 및 인간 사회에 대한 관계까지도 포함하지 않으면 안 된다. (302p)

 

이 말없는 명상에 의해서 육체나 정신에게 위험스러운 기계 발명으로부터, 음식물의 유해 첨가물뿐 아니라 사상적 유해 첨가물로부터, 교육.영양.도덕.사회학 등 전문가들의 변덕으로부터, 대중의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발명가들의 탐욕과 환상에 의해 야기되는 진보로부터 새로운 도시인들을 방위할 것이다. (303p)

 

왜냐하면 맹목적인 물질 과학에 대해 비참한 싸움을 계속하고 있는 위대한 민족에게서, 그들이야말로 그 육체와 정신을 방위해 주는 사람들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304p) 

 

 

 

의사이자, 생리학자이자 노벨상(생리.의학 부문) 수상자인 위대한 과학자 알렉시스 카렐의 주장은 아주 간단하다.

 

인간의 건강이나 질병을 연구하거나 인간 자체를 연구하는 과학을 위해서나, 인간을 단순한 육체적인 존재로 보는 관점을 버려야만 한다고, 그러한 관점에 바탕을 둔 모든 과학은 크게 반성을 해야만 한다고 일갈한 것이다. 과학맹신주의 즉 과학교나, 물질문명의 발전에의 함몰 등을 지극히 경계해야만 한다고 외쳤던 것이다. 특히 의학에 있어서 해부학적인 인체에 대한 연구라는 지극히 근시안적인 방법을 폐기해야만 한다고 강조한 것이다.

 

살아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인간 존재 전체적인 - 육체적인 정신적인, 사회 경제적인, 등등 모든 -측면에서 '인간에 대한 과학'을 해야 한다고 역설한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의 의학이나 과학은 어떻게 나아가고 있는가?

 

내가 그동안 수없이 토론을 해오면서 주장한 바가 바로 이것이었다. 건강 혹은 질병에 대한 토론을 하면서 인간을 육체적인 존재로만 보는 방식으로는 인간의 질병을 치유할 수가 없으니, 육체적인 면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면을 - 나는 오히려 육체적인 측면보다는 정신적인 면이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고려해야만 한다고 강조를 했던 것이다. 인간의 질병을 치유하는 것이 의학의 목적이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인간에 대한 연구를 제대로 해야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그런데 이런 나의 주장은 과학맹신주의자 혹은 의학 맹신주의자들에게는 전혀 씨도 먹히지 않는 소리였다. 나는 저들의 태도를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한의학이 사이비 과학이라며 추방을 해야하고, 이 사회에서 영원히 없애한다고 주장하는 과학, 의학교도들이 있다. 나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그들과 돈키호테처럼 토론을 하여왔다. 그런데 나는 오히려 추방당하고 말았다. 일찍이 이 책을 읽었더라면 나는 그런 수고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진정성을 다하여 토론하려고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냥 이 책 한권 읽어보라고 점잖게 권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절대 안 되는 일이다. 왜나하면 저들은 더욱 영악해졌고, 더욱 악랄해졌다. 현재 한의학 추방 운동까지 벌이고 있다. 정말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동안 토론을 해보면서 느낀 것은, 과학이라는 서양 학문에 물든 전혀 과학적이지도 않은 우리 나라의 수 많은 지식인라는 인간들이 과학맹신주의에 빠져 있고, 나아가 과학교까지 창시하여 열정적으로 신도를 모으로 있으며, 간악한 문필의 힘으로 더욱 크게 진실을 왜곡하고, 대중을 호도하고 있는 위험한 짓을 벌이고 있다는 점이다. 정말 위험 천만한 일을 자행하고 있다. 과학의 회의주의라는 아름다운 말을 사용하며 사람들을 현혹하고 있다.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다. 그들의 학문적 폭력, 만행에 철퇴를 내리야만 한다. 

 

반세기하고도 사반세기도 더 전에 이 위대한 과학자가 어떻게 건강을 보았는지, 그대로 인용하면서 일차적인 리뷰를 마치고자 한다.

 

진정한 의사, 진정한 과학자, 진정한 인간이었던 알렉시스 카렐의 건강론을 들어보자.

 

 

11. 자연스러운 건강이 중요하다.

 

건강에는 자연스러운 것과 인위적인 것의 두 종류가 있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과학적인 의학은 인간에게 인공적인 건강과 거의 모든 傳染病에 대한 보호를 주고 있다. 이것은 놀라운 혜택이다. 그러나 인간은 병들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않고 특별한 식이 요법, 화학 약품, 호르몬계, 비타민제, 정기적인 건강 진단, 돈이 드는 병원과 의사와 간호사에 의한 치료 등에 의지하고 있다. 傳染病과 퇴행 변질성 병에 대한 저항력과 안정된 신경 조직에 근거한 자연스런 건강이 소망되는 것이다.

 

건강에 대해서는 생각도 않고 살아갈 수 있을 정도여야 한다. 의학은 육체와 정신이 병, 피로, 불안을 저절로 벗어나는 방법을 발견했을 때만 최고의 승리를 거둘 것이다. 현대인을 개조하는 데는 육체와 인간이 누릴 수 있도록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자연스러운 건강이라는 구상은 습관적인 생활을 뒤흔들어 놓는 것이므로 강한 반대가 예상된다. 현대 의학은 인위적 건강, 일종의 통제 생리학이라는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 현대 의학의 이상은 순수한 화학 약품을 써서 조직과 기관의 작용에 개입하고 불완전한 기능은 자극하거나 바꿔치거나 하며 세균 감염에 대한 몸의 저항력을 늘려 병의 원인에 대한 체액과 기관의 반응을 촉진하는 것 등이다.

 

우리는 아직도 인간이라는 잘못 만들어진 기계로서, 끊임없이 부품을 보강하고 수리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헨리데일(1875~1968, 현대 영국 의학자, 신경 자극의 화학적 전달을 연구했음)은 최근의 연설에서 아주 솔직하게 과거 40년 간의 화학요법의 승리를 외쳤댔다. 그것은 항독성의 혈청, 백신, 호르몬, 인슐린, 아들레날린, 티록신 등의 발견이며, 또 비소의 유기 화합물, 비타민류, 성 기능을 조정하는 물질, 또는 통증을 완화하고 쇠약해진 자연스런 활동을 자극하기 위해 실험실에서 합성한 수많은 새로운 합성물의 발명 등이다. 또한 이들 물질을 제조하는 거대한 화학 실험실의 출현에 대한 것이었다.

 

화학과 생리학에서의 이 성과는 극히 중요하며 인체의 숨은 기관에 크나큰 빛을 던져 줄 것이 확실하다. 그러나 이것을 가지고 건강을 향해 노력하고 있는 인간의 대승리라며 축하해야 하는 걸까? 전혀 그렇지 않다. 생리학은 경제학과는 비교가 안 된다. 기관과 체액과 정신 작용은 경제학적.사회학적 현상에 비해 한없이 복잡한 것이다. 통제 경제는 최종적으로 성공을 거둘지도 모른다. 그러나 통제 생리학은 실패이며 아마도 앞으로도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232~325) 

 

 

기관, 체액과 마음은 하나다 (이부분에 더욱 중요한 내용이 담겨 있음.)

 

 

 

책은 한번에 그 진리를 다 드러내주지 않는다.

읽어낼 수준이 되지 않는 사람에게는 쓰레기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어렵다고 이해하지 못한다고, 형편없는 책이라고 판단하지 말고 자신에게 아직 더 나아갈 길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 현명함이 요구된다 할 것이다.

 

rp06_1.jpg

 

 

그러므로 더 많은 책을 읽어야만 하고, 더욱 불 밝혀 공부해야만 할 일이다.

오죽하면 가장 우수한 인재들이 모인 하버드대 학생들이 고전을 제대로 읽지 못한다고 몇십년 전의 학자가 일갈하고 책 읽는 방법을 제시했겠는가.

 

우리는 가장 위대한 지성인이라고 할 수 있는 알렉시스 카렐이 쓴 이 책을 잘 읽어보아야 할 것이다. 왜 가장 뛰어난 의사이자, 학자인 그가 겸손하게 인간에 대한 가장 위대한 책을 쓰면서도 '인간, 그 미지의 존재'라고 표현했겠는가. 그는 불가지론자의 입장을 취했다. 인간에 대해서 가장 잘 알고 있으면서도 모르는 것이 있을 수 있다고 겸손하게 인간에 대한 과학의 방법을 제시한 것이다.

 

인간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위대한 존재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 무식한 지식인이 되던, 그들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든, 위대한 인간이 되든 자신의 선택에 달려 있다. 자신이 아무리 위대한 존재라고 해도 동물처럼 살 수도 있고, 짐승과 같은 존재로만 머무를 수도 있다.

 

어쨌든 인간은 위대한 존재이다. 알기만 하면, 그리고 선택하기만 하면.

 

제대로 읽기만 하면, 이 책의 모든 내용에 밑줄을 쳐야 하리라.

 

당신도 위대한 인간이 될 수 있다!

 

 

 

2012. 11. 3.

 

 

 

인간 존재에 대해 탐구하는

행복연구가

고서 김선욱

 

 

* 급하게 간단하게 리뷰를 작성했지만, 언제가 시간을 내서 아주 체계적으로 정리해 볼 계획이다!

 

 

교정: 2016. 5. 23. 16:21 ~ 16: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