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90년초에 공중파에서 하는 한 토론회에 참가해 본적이 있습니다. 이게 실시간이라 준비를 나름 했는데, 하고나서 많이 아쉬웠고 후회도 되었습니다. 젊은 나이에 우쭐해서 나가긴했는데 준비해간 내용을 반도 말하지 못하고 말았죠. 그렇다고 크게 깨지거나 이런 것도 아니고 토론자 모두 순한 사람들이라 상대방의 입장을 한두 번 씩 반박하는데 그쳤습니다. 논쟁에는 여러 형식이 있는데 실시간 논쟁과 일반 매체에 글로 하는 논쟁, 논문으로 하는 논쟁이 있죠, 논문으로 하는 논쟁은 심사위원들이 하는 것이고 대부분 1-2회에 승부가 나거나 무승부 선언으로 끝납니다. 이게 한 저널에서 배반되는 입장을 실어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서로 다른 학술지라는 진지에 숨어서 각각 곡사포를 쏘아대는 형식으로 진행되죠. 주로 문학론 문예 비평이나 예술비평이 이런 계열이 아닐까 합니다. 실탄이 많으면 이길 수도 있고요. 

     
 
신문이나 심사가 없는 일반 매체를 통하여 글로 하는 논쟁도 있습니다. 이건 흥행에 매우 도움이 되기 때문에 신문사에서 선호하는 형식이죠. 요즘은 주로 블로그나 인터넷 보드를 통하여 이루어진다고 봅니다. 사실 글로 하는 논쟁이 진짜죠. 차분하게 초읽기에 몰리지 않고 수를 생각하기 때문에 내용이 알차고 정교합니다. 그런데 이런 논쟁은 실시간이 아니라 흥행이 좀 안됩니다. 치고받고 하는 일은 타이밍이 늦으면 재미가 없고 승부가 지루하게 늘어집니다. 만일 두 유명한 권투선수가 한 달에 한 라운드씩, 일 년 동한 12라운드 시합을 붙는다고 생각해 보세요. 이런 시합에서 멋있는 KO가 나오겠습니까 ? 흥행이 안 되죠. 역시 논쟁의 백미는 실시간 논쟁이죠.

 

실시간 논쟁은 꼭 정치뿐만 아니라 헤어지기 직전 애인과도 하고 시부모와 며느리간, 사위와 장인, 집주인과 세입자간, 동네반장과 주민, 경찰과 운전자, 수퍼집 사장과 고객.. 아주 흔히 벌어집니다. 보통 짧게는 2-3분, 길게는 끝장토론과 같이 사회자가 있으면 2시간도 진행이 됩니다.

 

실시간 토론에서 깨지는 사람의 전형적인 특징은 이렇습니다. “이번에 만나서 내가 이 한마다만 하면 꼼짝 못하고 잘못을 빌 수밖에 없을 거야”. 주로 변심을 시작한 애인과의 일전을 앞둔 남자들의 희망사항인데, 이런 복수의 칼을 들고 나가서 이기고 오는 남자들을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이들이 주로 쓰는 용어를 정리하면  “단 한마디만 하면”, “내가 모은 증거를 들이대면..” 변의 표현대로라고 하자면 “그동안 쓰지 않은 반병신 만들기 필살기를 쓰면 ” 이런 것들이죠. 왜 이런 말을 입에 달고 다니는 사람이 이기지 못하는가 하면, 이런 말을 한다는 자체가 벌써 감정이 이성을 타고 넘어왔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기 때문에, 상대방은 벌써 이 수준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그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 나옵니다.  애인과 사랑문제로 싸울 때 말이 많아지면 실시간으로 100% 집니다. 논쟁에서 지고 사랑도 잃고, 참 거지같은 상황을 만나죠. 창춘때 하숙집 아줌마에게 돈받으러 갔다가 개망신 당하고 왔습니다. 우리는 엄청나게 우리끼리 준비를 하고, 이러저런 주장을 하면 꼼짝못할거라고 밤새 생각을 했는데, 그 바닥에서 닳고 닳은 아줌마를 철없는 촌놈 2명이서 이겨낼 수가 없더라고요.  우리가 상상조차 못한 이유를 들어서 마구 우리를 공격을 하는데,,그때 생각하면 참...

 

실시간 논쟁의 핵심은 빠른 순발력과 싸가지없이 말해서 상대방의 부아를 돋우거나 감정적으로 만들게 하는 것입니다. 이건 전여옥이나 진중권의 특기죠. 유시민은 잘 모르겠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죠. 시작발언에서 누군가가 “이런 편향적인 토론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썰을 풀면 싸가지없는 응답은 이렇습니다. “예 그러면 지금 토론장에서 미련 없이 나가시면 됩니다” 말 자르기, 극단의 예 들이대기, 이전 발언을 이용한 인신공격, 그냥 가만히 앉아서 주워 먹기만 해도 상대방을 혼란스럽게 만들 수 있습니다. 동시에 아주 관념적인 철학용어를 섞어찌개 식으로 뿌리거나, 개념정의를 다시 해주거나, 논쟁의 본질에 교묘히 물타기를 하면서 상대방을 긁으면 이런 상황에 이길 자는 적습니다.

 

실시간 논쟁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경험이죠. 같은 진영끼리 수없이 치고받아본 진중권과 안방 우파 인터넷 열사와의 싸움은 싱겁게 끝날 겁니다. 혼자 블로그에 글 올려서 자뻑하는 것과 실기간으로 야비한 말 던져가면서 싸우는 것은 천지차이죠. 흔히 말하는 불펜 선동렬 투수들이 있습니다. 롯데의 진명호, 강영식 이런 투수들은 불펜에서 연습투구할 때는 150km를 빵빵 찍으며 절묘하게 코너 워크를 하지만 막상 마운드에 올라가면 영 딴 사람이 됩니다. 그렇게 멘탈훈련을 시켜도 이런 것은 좀처름 나아지 않습니다. 지금은 은퇴한 손민한이라는 투수를 당시 관계자들이 기억하는 것은, 이 인간은 프로 첫 등판에서 올라오자 말자, 포수 싸인도 없이 1루에 천천히 견제를 했다고 합니다. 보통 신참 투수가 올라오면 정신을 못차리죠. 어떻게든 스트라이크를 던지려고 포수 싸인만 눈이 빠지게 보는데. 한참 때의 손민한이 나오면 1사 1,2루가 되어도 별 걱정이 안되었죠. 연주자도 마찬가지인데요, 연습실에서는 파가니니요, 리스트인데 무대에 올라가면 사시나무 떨듯이 떠는 연주자들이 있습니다. 악보를 까먹는 것은 물론, 합주할 때는 옆 사람 소리를 전혀 듣지를 못합니다. 실시간 토론은 순발력, 빈정거림, 코웃음, 야비한 비유, 과거 들추기 이런 것이 시청자들에게는 큰 재미를 주면서 상대방의 분노게이지를 급상승하게 만들면 이기게 됩니다. 4-5명 친구가 모이면 진짜 개그맨 이상으로 웃기는 놈둘이 더러 있습니다만, 이런 사람들을 무대에 올려서 마이크 쥐어주면 영 못웃기는 친구가 됩니다. 그 반대도 있죠. 무대에 마이크 쥐어주면 진짜 웃기는 public 개그끼가 발동하는 친구도 있습니다. 보통 친구 몇 웃긴다고 개그맨 지망했다가 대먕하는 케이스가 전자죠.  뭔가를 할 때 수많은 사람이 볼 때 하는 것과 익히 알고있는 사람들 앞에서 하는 것이랑 천지차이입니다. 그래서 글 잘쓰고 말잘한다고해서 실시간 논쟁에서도 잘할거라고 믿는 것은 그야말로 초짜 중의 상 초짜죠.
  
아마 변희재와 그의 아이들 중 나름 전문지식이 있어 진중권을 박살내겠다고 들떠있겠지만 진중권은 그런 주제에서 철학적 개념을 도출하여 독일철학의 계곡으로 깊숙이 끌어들이는 전략을 펴지 싶습니다. 팩트의 파편을 아무리 많이 모아도 그것을 관통하는 줄기는 개념적 주장이므로 이런 개념과 범주의 구덩이로 상대방이 빠져들면 진중권을 이기기 힘들 겁니다. 개념의 먹이를 덥썩 무는 순간 승패는 끝이 납니다. 독일 철학석사 엄청 공부 많이 시킵니다. 이걸 미국식 석사류(박사과정의 통과의례)로 생각하다간 큰 코 다치죠. 아마 진도 그 과정중에 교수들에게 엄청 갈굼을 당했을 겁니다. 그런 과정에서 내공이 생긴거죠.

 

실시간 논쟁의 실전연습이 가장 중요합니다. 처음 스튜디오에 앉으면 카메라 불빛도 보이지 않습죠.  카메라 중에서 화면으로 송출되는 카메라 위에 빨간 불이 들어오기 때문에 그것을 잘 관찰해서 표정이나 각도를 잡아야 합니다. 카매라를 고를 줄 아는 이쯤 되면 상당히 고수라고 할 수 있고 어떤 어려움에서도 빠져 나올 수 있습니다. 초심자들은 할 말을 엄청 많이 준비해서 그것을 쏟아내어 꼼짝 못하겠다고 생각을 하는데, 그런 생각을 상대방을 목석으로 생각하는 아주 어리석은 전략입니다. 대학생 태권도 고단자라도 동네 중학생 3학년 나이의  양아치 깡패를 이기지 못합니다. 사람을 때려본 경험이 있는 양아치와 거룩한 무술을 닦은 사람과의 필드 싸움은 그야말로 게임이 안됩니다. 2 대를 맞고 3대를 때리려고 놈을, 나는 한 대도 안맞고 상대방만 한 대를 때리고자 하는 사람이 절대 이기지 못합니다. 그래서 자해공갈이 working하는 것이죠.   다시 한번 이야기하지만 변희재의 아이들을 자처하여 이번 일에 끼어드는 사람들을 이 얼빠진 꼭두각시의 노름에서 벋어나길 바랍니다. 명성을 쌓기는 10년도 부족하지만 잃어버리는 일은 10분이라도 충분하기 때문이죠. 진리를 보여주려면 입이 아닌 손으로, 발로 좋은 책을 쓰면 됩니다. 그게 오래가고 이기는 길입니다. 트위터에 말 같잖은 소리 날리지 말고. 지 블로그에서 정신승리하는 구들목 장군 되지말고.
   
 
그리고 이전 낸시랭과 변과의 논쟁을 여러번 보니 그 역시 나름 실전경험이 없지는 않지만 순발력은 현저히 떨어져서 실시간 논쟁에는 썩 적합하지 못하다고 보입니다. 변군은 항상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이 너무 꽉 차있어 보입니다. 그러니까 남의 이야기를 잘 듣지 못하고 그 허점을 파고들지 못합니다.  준비된 시나리오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사람이정신을 못차려요. 그리고 낸시랭과의 논쟁에서 제가 빵 터진 부분은 “저는 서울대 나왔습니다” 하며 보인 변의 득의의 미소...인데요.  공중파에서 “저 서울대 나왔거든요”를 들은 것은 아마 최근 20년 동안에는 없었든 것 같습니다. 낸시랭에게 그게 그렇게 자랑스러운 모양입니다. ㅎㅎ 하여간 사망유희 기대도 됩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선수들이 잘 안모이는 듯 합니다. 나이가 많아서 빠지고, 층수가 맘에 안들어 빠지고, 진궁권과의 단식게임에는 참가하지만 단체전은 빠진다고 하고.... 이래가지고 흥행이 될까 걱정입니다.  여하간 이번 사망유희는 숨은 우파들의 무공을 확인할 좋은 기회가 되겠네요. 기대 엄청 됩니다. (+추가, 이전에 서봉수가 중일 바둑 최절정 고수 7,8명을 모조리 순서대로 물리치고 응씨배(?) 우승먹은 사건의 기억이 나네요. 이게 가장 최근에 목도한 사망유희적 사건이 아닌가 합니다. )

 

요약: 아무도 끼어들지 않는 블로그에,  글 잘쓰는 것과  실시간 논쟁은 전혀 다른 상황이다. 
        실시간 논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충분한 그리고 가혹한 연습이다.
        가장 중요한 무기는 논자가 삶에서 보여준 역사성 그 자체이다.  그것이 일관된 것이라면 더욱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