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에서 다큐멘타리 ‘두 개의 문’ 을 상영 했다. 이번 영화 상영 때문에 강 수산나 검사라는 사람을 알게되었는데 비록 그녀의 얼굴은 한 번도 보지 못했지만 이번에 여러 가지 경로를 통해서 그녀의 모습이 구성되어졌다.


그러면서 옛날 기억 한 가지가 떠올렸다. 내가 신학대학을 다녔던 70년대는 유신체제였기 때문에 학생회도 군사편제로 짜인 학도호국단으로 되어 있었다. 예를 들어 종합대학의 총학생회장은 사단장, 단과대학학생회장은 연대장이라고 호칭하고 간부들을 학교에서 임명했었다. 내가 다니고 있던 신학대학은 학생수가 200여명 밖에 안 되는 학교였기 때문에 학생회장을 중대장이라고 불렀다. 나는 학생 중에 나이 많은 죄로 호국단 간부로 임명되어 새마을연수원으로 교육을 받으러 가야 했었다.


방마다 먼저 거쳐 간 수료생들이 쓴 수료소감문이라는 것을 비치해 놓고서 나중에 오는 사람들이 읽어 보도록 해 놓았기에 한번 훑어보았다. 서울법대 학생회 간부 학생이 쓴 글이 있기에 유심히 보았다.

“이제까지 과에서 일 년에 한두 명씩 공부하다가 정신이 이상해져서 학업을 그만두는 동료가 생길 때 마다 안됐다는 생각 보다는 ‘아, 경쟁자가 하나 줄어들었구나! 하고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이곳에 와서 교육을 받는 동안 그동안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되어서 돌아간다.”

대 강 이런 내용이었다. 세상에, 후회하고 반성할 것도 수준이 있지 서울법대 학생회 간부라는 사람의 의식수준이 새마을 교육 받고 바뀔 정도였다는 것이 충격이 아닐 수가 없었다. 비록 반성을 한다고 했지만 법대 3 학년생이 될 때까지 이런 정도의 생각을 했던 사람이 반성을 하면 얼마나 했겠나 싶었다. 그 정도의 윤리적 감각을 가진 사람들이 사법고시에 패스를 해서 판, 검사가 되었을 것이 아닌가?


서울 법대 학생의 소감문과 강 검사의 보이는 행동이 아주 조화롭지 않은가? 애초에 내가 '영화 상영이후 시위가 있을 터이니 지혜롭게 잘 대처했으면 좋겠다.'고 사전 정보를 주었을 때 강 검사가 ‘고맙다’고 한 마디만 했으면 모든 것이 순조롭게 잘 돌아가고 자신에게도 상처가 전혀 없었을 터인데 “감히 검사를? “하는 알량한 자존심에서 나를 연방 경찰에 신고함으로서 온갖 욕을 다 들어먹고도 영원히 지어지지 않는 온라인 기록을 더럽히는 결과를 만들었다.


사건이 터진 후 나의 ’강 검사가 왜 저렇게 나오는 것이냐?”는 질문에 국정원 영사는 “강 검사도 용산 참사 사건 때 철거민들에게 머리채를 휘여 잡히는 둥 사건이 있어 트라우마가 있는 것 같습니다.”라고 했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내 경험으로도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일이었지만 나중에 확인해 보아야겠다는 생각에서 그냥 넘어갔다.

서울서 온 이들에게 확인한 결과는 ‘마음으로는 몇 번이라도 그러고 싶었지만 강 검사가 올 때 마다 항상 전경에 둘러싸여 있었기 때문에 전혀 그런 일이 벌어질 수가 없었다. “는 지극히 상식적인 답이었다. 이렇듯 중요한 국면에서 거짓말을 하는 것이 공안검사의 면목이다.


우리가 영사관 앞에서 시위를 하는 날 강 검사는 출근도 하지 못했다. 본인은 신변에 위협을 느꼈을지 모르나 용산 참사 유가족이나 3년을 재판과 재판 이후 자료에 매달린 영화 감독들의 입장에서는 ‘꼴도 보기 싫은’ 얼굴이었다. 세상 모르는 강 검사는 유족과 화해를 할 기회마저도 영원히 놓친 것이다. 용삼 참사 재판의 한 사람의 조연에 불과했던 강 검사가 불행히도 다른 검사들을 재치고 스스로 역사적인 재판에 악역을 맡은 주연으로 등장하는 꼴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번 강 검사 협박 사건의 또 한사람의 조연은 내가 최초로 대화를 나눈 국가정보원 파견 영사이다. 언론에 보도되자 언론들로부터 최초 대화자를 밝혀 달려고 시달림을 당해 몸살이 나고 혓바늘이 돋을 지경이었다.

언론 쪽에서야 그래야 취재가 쉬우니까 당연한 일이고 나로서도 그것을 밝히지 않고 이야기 하니까 이야기가 복잡하고 따라서 이야기의 신뢰도도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 러나 '국정원 파견 요원 ㅇㅇㅇ 영사'라고 밝혀주면 나로서는 간단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신분이 들어나서는 안 되는 직책이어서 만일에 그의 신분에 위험이 초래될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나로서는 내가 희생을 당할지언정 이 영사를 궁지에 몰리게 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가 나를 만나서 고맙지는 않더라도 피해를 보았다는 생각은 들지 않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부당한 공권력과의 싸움에 맞설 수 있는 무기는 오로지 도덕적 용기 밖에 없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