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와 비종교의 스펙트럼
 

종교 정의의 문제는 “종교의 본질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의 문제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종교 개념은 정말 다양하게 정의된다. 여기에서는 내가 생각하는 종교의 본질에 대해 쓸 생각이다.

 

첫째, 초자연적 현상에 대한 믿음. 종교는 초자연적 현상 특히 신에 대한 믿음이 그 특징이다.

 

둘째, 경전과 경직성. 경전은 신의 뜻에 의해 쓰인 글이다. 따라서 완벽하다. 그러므로 수정이 필요 없다. 이것이 종교와 과학 사이의 커다란 차이다. 과학에서는 논리와 실증이 기준이기 때문에 아무리 위대한 선배 과학자의 업적이라 하더라도 수정되기도 하고 심지어 전복되기도 한다.

 

실제로 경전은 신이 썼을 리가 없고 과거에 살았던 어떤 인간이 썼기 때문에 당대의 지식을 반영할 수밖에 없다. 즉 현대 과학의 기준으로 보면 한심하기 짝이 없는 세계관과 지식을 반영한다. 그래도 종교인들은 경전이 신의 뜻에 의해 쓰인 글이라고 믿기 때문에 경직성을 보인다. 따라서 과학이 엄청나게 발전한 시대에도 바보 같은 것들을 계속 믿게 된다.

 

이런 경직성은 과학의 교권에서만 문제를 발생시키는 것이 아니다. 도덕 철학의 교권에서도 문제는 심각하다. 경전은 경전이 작성될 때의 과학 지식을 반영하기도 하지만 당대의 도덕적 상식도 반영한다. 만약 노예제를 당연시하던 시기에 경전을 썼다면 노예제가 정당하다고 써 있을 가능성이 큰 것이다. 온갖 종교의 경전에서 여성 차별을 당연시하는 것은 여성 차별을 당연시하던 수천 년 전에 쓰였기 때문이다. 이런 문서를 신이 썼다고 믿기 때문에 현대의 기준으로 볼 때 매우 부도덕한 것을 종교인들이 지지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셋째, 믿음 강요. 과학의 교권에서든 도덕 철학의 교권에서는 종교는 믿음을 강요한다. 합리적 토론이 무시되는 것이다. 이것은 신에 대한 믿음 그리고 그 신이 썼다는 경전에 대한 신봉에서 파생된다.

 

종교의 본질을 이런 식으로 규정한다면 기독교 근본주의자들과 자유주의 기독교인들 중에 누가 더 종교적인가? 종교와 비종교의 스펙트럼에서 종교의 극단에 가까운 것은 당연히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이다. 경전과 경직성이라는 측면 그리고 믿음 강요라는 측면에서 근본주의자들이 더 종교적이다. 그리고 자유주의 기독교인들이 근본주의자들에 비해 신에 대한 믿음이 강하다는 증거는 없어 보인다. 오히려 근본주의자들이 그런 믿음이 강한 것 같다.

 

사이비 종교로 분류되는 종교 집단의 경우에는 초자연적 현상에 대한 믿음의 측면에서 정통파로 분류되는 종교 집단에 비해 더 종교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자유주의 기독교인들이 근본주의자들을 보고 종교의 정신을 제대로 받들지 못한다고 비판하는 것은 웃기는 일이다. 또한 정통파 기독교인들이 기독교 사이비 종파를 보고 종교의 정신을 제대로 받들지 못한다고 비판하는 것도 웃기는 일이다.

 

종교를 위에서처럼 정의한다면 불교의 많은 측면은 비종교적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구약과 신약이라는 나름대로 일관성 있는 경전이 있는 기독교와는 달리 불교에는 상당히 이질적인 것들이 뒤섞여 있다. 한편으로는 초자연적인 현상에 대한 믿음과 맹목적인 믿음 강요의 측면이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온갖 의심을 부추기며 철학적, 논리적 성찰을 강조하는 측면도 있다. 이런 면에서 기독교는 좀 더 순수한 형태의 종교인 반면 불교는 종교와 철학의 짬뽕에 가깝다.

 

내가 전편의 “진짜 종교와 사이비 종교”에서 기독교의 성경을 언급한 이유는 기독교의 성경이 내가 정의하는 종교의 본질을 상당히 순수한 형태로 보여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보수와 진보의 스펙트럼
 

보수/진보는 상당히 일관된 패턴을 보인다. 영업의 자유의 측면에서 보수는 자유를 많이 옹호하는 반면 진보는 어느 정도 제한해야 한다고 본다. 영업을 제외한 온갖 측면에서 보수는 자유를 제한해야 한다고 보는 반면 진보는 자유를 어느 정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보수는 진보에 비해 민족우월주의적이며 인종주의적이다(전편에서는 “민족주의적”이라고 썼는데 “민족우월주의적”이라고 바꿨다). 보수는 진보에 비해 비민주적이며 권위적이다. 보수는 진보에 비해 부자들 편을 든다. 보수는 진보에 비해 성차별적이며 동성애를 죄악시한다. 보수는 진보에 비해 더 종교적이다.

 

보수/진보 개념을 위에서 제시한 패턴으로 정의한다면 파시즘과 군사독재는 자유 민주주의나 자유주의에 비해 보수-진보 스펙트럼에서 보수의 극단에 가깝다. 따라서 자유 민주주의자 또는 온건 우파가 파시스트 또는 극우파를 보고 사이비 보수라고 비판하는 것은 웃기는 일이다. 극우파는 보수의 색을 더 극단적으로 드러내는 보수다.

 

그러면 스탈린주의(구소련, 북조선 등)는 보수에 속한다고 보아야 할까? 아니면 진보에 속한다고 해야 할까? 많은 사람들이 구소련 체제 또는 구소련 공산당을 진보 또는 좌파로 분류한다. 나는 이것에 동의할 수 없다. 구소련은 영업의 자유라는 측면을 제외하면 보수의 극단 즉 파시즘이나 군사독재에 가깝다. 영업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 진보 또는 좌파로 분류할 수 있는 절대적인 기준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도 할 말이 없다. 그런 사람과 나는 진보/보수를 매우 다르게 정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영업의 자유 제한이라는 측면을 보자면 히틀러의 나치나 박정희의 군사독재도 만만치 않았다. 그 두 체제에서도 국가는 민간 산업을 엄청나게 틀어쥐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체제는 진보 또는 좌파로 분류되지 않고 극우로 분류된다. 그렇다면 왜 구소련만 진보 또는 좌파로 분류되어야 하나?

 

나는 자유 민주주의자가 국가보안법을 지지하는 한나라당이나 조중동을 사이비 자유 민주주의자라고 비판하는 것에 반대하지 않는다. 자유 민주주의 이념에서는 정치적 자유에 대한 보장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내가 문제 삼고 싶은 것은 자유 민주주의 개념을 보수 개념과 동일시하는 것이다. 내 정의에 따르면 보수에는 파시즘과 자유 민주주의가 모두 포함된다. 따라서 파시즘이나 군사독재는 보수의 극단이지 사이비 보수가 아니다.

 

 

 

 

 

왜 종교 문제와 보수 문제를 병치했나?
 

내가 종교/비종교의 스펙트럼과 보수/진보의 스펙트럼을 병치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서로 상당히 비슷하다고 보았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첫째, 종교 문제든 보수/진보 문제든 하나의 스펙트럼을 형성한다는 면에서 비슷하다.

 

둘째, 나는 이 스펙트럼에서 한쪽 극단을 지지한다. 종교 문제에서는 비종교의 극단을 지지한다. 나는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을 좋아한다. 보수/진보 문제에서는 진보의 극단에 가까운 쪽을 지지한다. 이것은 내가 공산주의자이기 때문이다.

 

셋째, 사이비라는 비판이 잘못 쓰인다는 점도 비슷하다. 사이비 종교로 분류되는 집단 또는 근본주의자들은 더 종교적임에도 불구하고 종교의 정신을 받들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마찬가지로 파시즘이나 군사독재 등에 가까운 집단은 더 보수적임에도 불구하고 사이비 보수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나는 종교나 보수를 정의할 때 경전이나 이념으로만 정의하지 않았다. 나는 그들의 이념과 실천을 모두 포괄적으로 고려하려고 했다. 종교의 극단을 잘 보여주는 경전으로는 구약 성경이 있으며 보수의 극단을 잘 보여주는 책으로는 히틀러의 『나의 투쟁』이 있다.

 

나는 이 글과 전편에 큰 논리적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가장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분은 정의일 것이다. 만약 종교나 보수를 나와는 매우 다르게 정의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는 나의 논의 전체가 별로 의미가 없을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나의 정의가 그리 유별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비종교인 또는 진보주의자가 항상 착하거나 옳다고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나는 지금까지 진화 심리학과 행동 유전학을 옹호하는 글을 써 왔는데 이것은 진화 심리학이나 행동 유전학이 사이비 과학이라고 주장하는 대다수 진보주의자들과는 정면 충돌하는 내용이다. 또한 세상 어디를 가나 싸가지 없는 인간들은 있기 마련이다.

 

내가 종교와 보수가 악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종교가 비종교와 구분되는 지점 또는 보수가 진보와 구분되는 지점에서 악을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무조건적 맹신은 악으로 연결되기 쉽다고 생각한다. 만약 몽매주의를 지지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는 과학 정신이 악일 것이다. 나는 위에서 나열한 보수의 특징들을 싫어한다. 악이라는 규정은 나의 도덕 철학적 입장일 뿐이다. 만약 왕정이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는 민주주의가 악일 것이다.

 

 

 

2009-1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