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모르는 사람들이 품는 순진하면서도 간악한 믿음이 있다. 어느 순간 힘과 지혜와 선을 가진 존재가 강림하여 고통에 찬 자신들을 해방시켜 줄 것이라는 믿음. 그 믿음은 고통에 빠진 자신들을 구원할 희망인 동시에 자신들의 삶의 해방을 끊임 없이 '그날'까지 미루는 요인이기도 하다.

아즈텍인은 케찰코아틀이 언젠가 돌아와 다시 한번 선과 자비의 힘으로 자신들을 구원해 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그들이 열열히 환영한 선과 자비의 신, 야만에서 그들을 구원한 문화영웅은 다시는 그들에게 돌아오지 않았다. 그들이 케찰코아틀의 재림으로 믿고 받아들인 '강대한 신'들은 다시 그들을 학정으로 지배하는 스페인 군대였다.

자신들의 순진하고 간악한 믿음은 이렇게 그들을 멸망으로 이끌었다.

"미국은 민주와 공화로써 정치하기 때문에 남이 가지고 있는 것을 탐내지 않는다. 그리고 나라를 세울 당시 영국의 학정으로 말미암아 발분하여 일어났기 때무에 늘 아시아에 친근하고 유럽에 소원해 왔다.(...) 그 나라의 강성함은 유럽의 여러 대국과 함께 하지만(...)늘 약소한 자를 돕고 공의를 유지하여 유럽 사람으로 하여금 그 악을 함부로 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이를 글어들여 우방으로 삼음으로써 도움을 얻을 수 있고 재앙을 풀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연(聯)미국이라고 하는 것이다."

     -  조선 책략, <개방과 예속>의 조선책략 번역문, 격월간지 아웃사이더 2003년 12월호에서 재발췌

1880년 수신사로 일본에 갔던 김홍집이 들고온 조선책략에는 위와 같은 구절이 있었다. 청나라 황준헌의 눈에는 미국이 저렇게 보였나 보다. 그래서 조선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친중국, 결일본, 연미국 해야한다고 외쳤다. 재밌는 것은 친중국, 결일본의 이유는 지리 정세적 이유였으나 연미국의 이유는 위와 같이 미국이 한없이 선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지구상에 오로지 정의를 행하면서도 힘을 가진 그런 나라가 있다고 그는 진정으로 믿었던 것일까?

위와같은 미국의 이미지는 미국의 종교인 개신교를 더욱 더 멋진 것으로 보이게 만들었을 것이다. 고통받는 그들을 구원할 새로운 힘, 그 힘에 대한 숭배는 오롯이 개신교로 쏠렸을 게다.
그들이 선망하는 미국이 일본과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맺어 일본의 침략을 묵인하고 있을 줄은 그들은 꿈도 꾸지 못했을 거다. 힘과 정의, 그 양립하기 어려운 두 반대극을 미국은 하나로 통일시킨 이상국가로 보였을테니까.

오바마가 오고, 거리에는 찬송가가 울려퍼졌다고 한다. 그들은 진정한 강대국 미국의 힘에 환호하며, 여리고 성을 함락시켜 숫컷은 강아지 한마리 남기지 않고 몰살한 야훼를 위한 찬송가를 부른다. 그들의 찬송과 환호성은 그들의 간악하고 순진한 믿음을 표징한다.

아니다. 차라리 구한말, 미국을 정의의 상징으로 받아 들인 민초들의 믿음은 간악성보다는 순진함이 컸다. 그들은 정말로 고통받고 있었고, 그들은 정말로 약자였으니까. 그러나 오바마를 위하여 흔드는 저 손들, 저 외침들이 과연 순진한 것일까? 거대한 힘의 소용돌이의 바깥쪽 축에라도 걸쳐서 타자를 유린하여 강자의 편에 서보겠다는 그 힘에 대한 숭배. 그것은 오롯이 간악하기만 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 속에 든 순진함은 간악함을 위해 복무할 뿐이니까.

친미가 나쁜 것이 아니다. 오바마가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아프간 파병 정책이 반드시 부정적인 면만 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진정으로 친미하기 위해서는 때로는 반미하여야 하며, 오바마를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오바마의 요구에 반대할 수도 있어야 하며, 아프간 파병의 정당성을 구하기 위해서는 그 부당성을 헤아릴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미국을 은총의 나라, 한미관계를 절대 복종의 관계로 보는 한 종미는 가능해도 친미는 불가능한 것이다.

우리를 구원할 힘은 오로지 우리 자신의 두 손 밖에 없다. 어느 누구도 우리의 손과 발이 되어 우리를 일으켜 세울 수 없다.

메시아는 존재한다. 오로지 우리들 내면에. 그래서 2000년 전 예수는 말했을지도 모른다. 이 세상 그 누구도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구원에 이를 수 없다고. 그러나 저들은 '나'를 버리고 미국을 택하고, 야훼를 택하여 자신을 구원해 달라고 외친다. 순진하고 간악하게. 저들이 "나"를 버렸기에 저들은 예수도 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2000년 전에 그를 못 박은 간악하고 순진한 무리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