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가 밝힌 정치개혁안인 1. 국회의원 수 감축, 2. 중앙당 폐지, 3. 정당 국가보조금 축소 가 기성 정당들, 정치 평론가들, 대부분 언론들에 의해 질타받았습니다. 비판의 요는 다음과 같다고 이해했습니다. 
1. 정치 혐오, 2. 전문가 정치, 3. 아마추어(현실을 모른다)

저는 비판에도 일리 있는 지점이 상당히 많다고는 생각합니다. 그치만 대선후보 안철수의 정치개혁에 대한 구상에 대해서 '정당정치론'의 입장에 선 비판은 기존 정당정치론과 현실정치의 '현실'의 관점에서만 일부 타당성을 가질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치에 이미 입문했을 뿐만 아니라 1년 넘게 20% 이상의 단독 지지율을 기록하는 정치인 안철수에게 정치혐오자의(마치 이건희나 이명박에게 그러는 것처럼) 낙인을 찍는 것을 보며 그런 생각을 더 하게 됩니다.

왜 이런 생각을 하느냐면, 비판자들의 비판이 안철수 구상의 주장의 본질을 때리지 않고 변죽만 울리기 때문입니다.

1. 국회의원 수 감축
국회의원수 감축에 대한 비판은 대체로 '선진국을 보면 인구대비 의원 수가 우리보다 많다'와 '국회의원 수 축소=정치영역 축소=경제(재벌)권력 증가'의 취지입니다. 

전자는 안철수의 생각을 '국회의원이 너무 많다'로만 이해한 것인지 뭔지 불분명합니다. 안철수가 국회의원을 몇십명으로 줄이자는 것도 아니고 200명을 말했습니다. 갈수록 광역화되어가는 지역 공동체와 국회의원이 입법자로서 갖추어야 할 지역대표성을 정당화 할 수준의 인구 규모를 생각하면 안철수의 주장이 부당하다고 단정지을 수 없습니다. 스웨덴 등의 사례를 들며 국회의원 수가 많기 때문에 스웨덴이 정치 선진국인 양 호도하는 주장도 접한 것 같은데, 아무 관계가 없는 걸 억지로 연결 지은 것 같고요. 

대의 민주주의 하에서는 국회의원의 직무 능력보다 민주적 정당성이 중요하므로 안철수의 주장을 효율성에 치우친 것은 아닌지 의문을 표하는 정도의 비판은 생각해볼 만 합니다. 그러나 100개의 의석을 줄이면 손해를 볼 당사자들이 '격렬'하게 비웃는 것을 보며 심정적인 거부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어느 조직이든 자기 조직의 확장을 꾀하는 걸 나쁘게만 볼 순 없고 모든 조직이 그런다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입법부 전체의 권한과 권력을 축소하는 주장과 국회의원 수를 줄이자는 주장은 서로 다른 주장입니다. 국회의원 자신의 뱃지가 떨어져 나가는 걸 입법부의 권력이 약화된다고 착각하지 않아야 하는데, 그러긴 어려운 것 같습니다.

또한, 만약 안철수의 주장이 입법부의 힘도 줄여버리자는 주장이어도 마냥 문제만 있는 주장은 아닙니다. 전 세계적으로 입법부의 힘은 꾸준하게 약화되는 추세를 보입니다. 행정의 힘이 강해지는 것과 연동하죠. 누구의 의도, 정치 혐오 때문에 입법부가 약화되는 것이 아니란 겁니다. 몽테스키외식의 기계적인 3권 분립은 이런 변화 속에서 이미 낡은 이론입니다. 의미 없는 이론이란 말이 아니라, 역사적이고 상징적인 이론일 뿐 현실에 이를 그대로 적용해서, 행정의 힘이 강해지고 입법부의 힘이 약해지는 걸 체크&발란스가 안맞으니 문제라고 비난하는 게 문제라는 겁니다.

이미 권력 분립은 기능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대세입니다. 행정부 내에 감사기능을 강화하고, 대통령 권한을 분산하고(책임총리제 논의의 이유),검찰 권력을 분산시키고(공수처, 수사권 논의), 행정의 전횡을 막기 위한 헌법재판제도를 강화하는(이건 사법부 견제까지) 등으로 권력 분립은 기능적으로 이해됩니다. 여기에는 고등검사장급 이상, 고등법원장급 이상 등 고위 법조인들을 선거로 뽑자는 것도 포함됩니다.


2. 중앙당 폐지
비례대표제 하에서 중앙당을 폐지하면 누가 비례대표를 정하느냐와 정당정치를 모른다는 비판이 비판의 요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처럼 중앙당이 사실상 없는 나라에 비례대표가 없다는 것이 아주 강한 비판 논거입니다. 후자는 별 내용 없는 비판이라고 보구요.

저는 안철수의 주장을 현재의 중앙당 시스템을 버리자는 걸로 이해합니다. 지지자 입장에서 맘대로 해석한 것일 수 있습니다. 허나 먼저 대통령제 하에서 대통령이 정당 대표를 겸하지 않는 한 정당 대표의 역할은 무엇인지 묻고 싶습니다. 한명숙과 이해찬이 뭘 하고 있나요? 황우여는요?

대통령제 하에서 차기 대권 주자, 대통령이 아닌 한 정당 대표의 역할은 제한적입니다. 중앙당 주도의 국가 의제 개발도 없고, 그런 걸 중앙당이 할 이유도 없습니다. 정치 신인 발굴 기능도 굳이 중앙당 체제 하에서 할 이유가 없습니다. 지금 중앙당이 뭘 하는지 아시는 분 있으신가요? 하지만 중앙당에 국고보조금, 당비, 후원금, 기탁금 등이 모조리 흘러가고, 각종 당직 임명 권한이 부여되어 있어요. 비례대표후보자를 결정해야 하기 때문에 중앙당이 존재해야 한다는 주장은 군색하죠. 직능 대표성과 소수자 배려 관점의 비례대표를 중앙당 체제 하에서만 결정 가능하다는 주장은 억지거든요. 

사실상 현재 안철수 캠프는 정당화과정에 있다고 합니다. 자연스럽게 안철수 중심의 '중앙당' 형태도 갖추어질 겁니다. 이 집단이 안철수가 구축하고 있는 여러 네트워크 조직(포럼, 전문가 그룹, 시민사회)과 거버넌스 모양새를 갖추는 것이 복잡화, 다원화, 광역화되는 사회에 더 어울리지 않나요? 왜 근대적 정당정치-중앙당 중심의 수직 계열화된 관료적 정당구조-의 틀에 스스로 갇히려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스스로 정치에 뛰어든 안철수에게 정당정치를 모른다고 비판하는 것만큼 쉬운 건 없습니다. 비판자들이 관성에 빠진 건 아닌지 자문할 필요가 있습니다. 노동자 집단을 겨냥한 '대중정당' 개념에 빠져서 사회 변화를 읽지 않는 태도가 정론이 아닙니다. 이론이 먼저 있고 현실이 따라오는 것이 아닙니다. 정당 혁신 요구가 분출하고 안철수 현상이 나타난 건 이론 때문이 아닙니다. 현실 변화를 정치가 주도하거나 따라잡으라는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중앙당 폐지 주장에 대한 숙고 없이 정치혐오, 아마추어라고 안철수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현실 변화에 따른 정치 혁신 요구를 제대로 들여다 볼 능력은 있는지, 현실 정치에서 정당 대표 및 중앙당과 대선후보와 대통령의 관계 속에서 전자에 속한 집단과 정치인이 뭘 하고 있는지 자문해봐야 합니다. 


3. 국고보조금 축소
이 주장에 대한 비판을 아주 당당히 하는 걸 보고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정당이 아무리 공적 성격이 강하더라도 최소한의 독자 생존 기반은 갖추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아주 떳떳하게 세금 내놓으라는 주장을 '국민을 위해'하는 걸 보니 짜증만 나더군요.

선거 공영제와 국고보조금을 전면 반대하지 않습니다. 특히 선거 공영제는 바람직하다고 생각해요. 허나 정당의 상시 운영을 위한 국고보조금은 언젠가는 없어져야 하죠. 누가 뭐래도 정당의 본질은 사적 결사입니다. 세금에 의존하지 않고선 단체 유지가 안되는 걸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 자체가 거지근성이죠. 유럽 선진국이 뭘 어떻게 하든 달라질 게 아닙니다.

국고보조금이 없으면 대기업과 부자의 돈이 몰리는 보수정당만 유리하고 다른 이념의 정당은 불리하다는 주장도 떼쓰기입니다. 뭘 어쩌자는 주장인지요? 세금을 몇백억씩 받는 대신 엄격한 감사를 정당이 받나요? 정당의 독립성을 내세워 그런 시도가 이루어지면 독재타도시위에 나설 사람들이죠. 주장의 타당성을 논하기 전에, '돈'에 대한 기본 관념 자체가 아주 거지같습니다. 남의 돈 먹는 것이 그렇게 쉬운가 봐요.

진보적인 정치 의제를 생산하는 정당이 발전해야 한다고 국민들을 설득하지 못해놓고 누구 탓을 하는지 모르겠어요. 진보정당이 약해지면 국민 손해인데 국민이 고걸 모른다는 국개론 노래 부르지 말고 기본에 충실해야 하지 않을까요. 

당장 국고보조금을 모두 없애자는 것도 아니고 지금이 독재시대라 진보정당이(민주당 포함) 일반 시민들한테 돈 받는 것을 탄압받는 세상도 아닌데 얼굴에 철판을 깔았는지 세금 내놓으라고 외치면서 부끄러운 줄 모르나봐요. 마인드가 이 모냥이니 자영업자나 살기 팍팍한 사람들이 진보정당이 하는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는 생각은 전혀 안하겠죠? 

국고보조금과 정당정치가 도대체가 무슨 논리 정합성, 학문적 관련이 있는지 합리적인 논증을 본 적이 없습니다. 단지 현실적으로 진보정당이 돈이 없는데 그 존재의 필요성은 인정되니까 국가가 도와줄 수밖에 없다는 거 말고는. 이래놓고 무슨 스웨덴 평범한 국회의원들 예를 드는 건 완전 자가당착이죠. 



안철수 쉴드 좀 쳐봤습니다. 언제부터 정당정치가 이렇게 강조되었는지 모르겠네요. 중앙당과 300명의 국회의원 수가 이렇게 중요한지도 몰랐네요. 보조금도 아예 천억 단위로 쏴주면 세상이 좋아질까요? 

국회의원 개인의 자리와 돈이 떨어져 나간다고 정치가 축소되는 것이 아닌데, 양자를 같다고 여기는 것도...애플이 약해지면 IT산업이 약화되는 건지...

안철수 비판자들이 비판의 관성에 빠져서 적실성 없는 기성의 입장만 나열하지 말았으면 해요. '기업가 출신이니까 정치 혐오 아마추어'라고 말하는 건 쉽죠. 정치 혁신의 필요성에 공감한다면서 그 어떤 대안 제시 없이 기성 정당의 입장과 현실론만을 말하는 것, 참으로 깝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