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경씨를 "마녀사냥"하는 네티즌들을 일갈하는 (노정태의 글과 같은) 글들에 대한 저의 느낌은 "너희들이 뭘 알아?"라는 것이였습니다. 즉, '너희들이 외모지상주의라는 타자의 시선을 감내해야하는 여성들을 알아?" 라고 묻는 것이죠. "너희들이 뭘 알아?"라는 문장에는 무엇인가를 "안다"라는 지식의 문제, 그 지식의 대상인 어떤 "무엇," 즉 제가 경험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 그리고 "너희들"이라는 주체의 문제들을 보여주네요. 그리하여, 그 글들은 "너희 마초로서의 남자들이 여성들이 감내해야 하는 경험을 알기는 해?"라고 우리에게 질문을 하는 것이죠. 그러나 마초들인 "너희들"은 그 경험을 알 길이 없습니다. 그들은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폭력들을 단 한 번도 경험해 본적이 없을테니까요. 그와 같이 "마초"로서 정의되어버린 남성들은 그 경험들을 알 길이 없습니다. 마초는 마초니까요.

그런데, '너희들이 뭘 알아?"라는 하나의 문장이 그 불가능한 경험들을 이야기해보려는 시도가 아니라, 하나의 질문이 아니라, "너희들은 여성이 되지 않고서는 절대 경험할 수 없을 테니, 우리, 여성들에게는 일상이된 폭력과는 비교도 안되는 언어폭력을 당했다고 호들갑 떨지좀 말아줄래?"라고 이야기를 종식시키는 발언이 되어버린다는 것이죠. "루저의 난"으로 대표되는 일련의 사태들에서, 이도경씨를 옹호했던 글들이 했던 역할이 바로 저와 같은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그리하여, 그 발언들은, 저의 눈에는, "루저의 난"으로 대표되는 일련의 사태들에서 나타났던 "루저들"의 "분노들"을 어루만져주기보다는, 그 분노들에 기름을 붙는 격이었다는 생각입니다. 지금당장은 분노를 억누를 수 있을지 모르지만, 공유될 수 없는 경험들을 둘러싼 불화는 언제든 폭발하고야 말겠죠.

그래서, "너희들이 뭘 알아?"라는 하나의 발언은 "키 180이하는 패배자"라는 지상파 방송에서 들려오는 언어 폭력에 상처입은 남성들, 사람들의 마음을, 고통을 감싸안을 수 없었던 겁니다. 그렇게 팔을 벌려 타인의 상처를 보듬을 수 없어서, 자신의 상처가 너무나 커, 타인을 보듬을 수 없어서... "타자"를 이해하지 못한 체로는, 아니 타자를 아파하지 않은 체로는, 자신의 상처를, 아픔을 표현할 길이란 없는 겁니다. 왜? 그것은 말로는 표현 될 수 없는 상처에 대한 것이고, 아픔에 대한 것이기 때문에... 드라마 대사가 생각나네요. "아프냐? 나도 아프다." 타자의 상처가 아니고서는 나의 상처를 표현 할 수 없는 그 아픔들... 타자가 아파하는 것을 보고나서야 드러낼 수 있는 나의 상처들... 혹은, 타자에게 상처를 입히고서야 드러낼 수 있는 나의 상처?

비트겐슈타인은 "고통"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타인에게는 이해될 수 없는 것으로서의 고통, 경험될 수 없는 것으로서의 고통. 치통을 생각하면 됩니다. 정말 죽겠는데, 세상 누구도 나의 아픔을 이해할 수 없을 듯한 그 고통 말이죠. 그런데, 비트겐슈타인은 틀렸던 겁니다. 고통이란 것이 대신 겪어질 수 없다는 바로 그 사실 때문에, 대신 경험될 수 없다는 바로 그 사실 때문에, 고통을 당하는 당사자보다 오히려 더 아파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죠. 자식의 고통을 끝까지 지켜봐야 하는 엄마 말이죠.

폭력이란 것에 대해서, 고통이란 것에 대해서, 상처라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지 않습니다. 혹은, 그 폭력, 고통, 상처가 나의 것이 아니라면, 나의 것이 아닌 것으로 알기에, 우리는 이내 망각하고 말죠. 그리하여, 아주 오래된 폭력, 고통, 상처이지만, 지금에서야 새롭게 아프다는 듯, 우리는 또 다시 그 상처들에 대해, 고통들에 대해 이야기해야 합니다.

그 어둠에 묻혀 있던 경험들이 이야기 된 것은 그리 오래지 않죠. 남성들은 알 수 없었던 여성들의 경험들... 그런데, 그런 경험들이 말해 질 수 있었던 것은 불과 25년전, 성폭력 특별법을 둘러싼 논의들을 통해서야 겨우 알려질 수 있었죠. 그 당시 누가 성폭력 특별법이라는 것을 알았겠습니까? 잠깐 지나가는 뉴스로나 나오는 이야기인데 말이죠. 90년대 초반에 대학생이 었던 저는 운 좋게 그 말을 학교 안에서 들을 수 있었습니다. 가정폭력, 아동폭력에 대해서 말해 질 수 있었던 것도 불과 20년 전도 안되었을 듯합니다. 그리고, 장애인"의" 이야기, 동성애자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들려질 수 있었던 것도 불과 10년 조금 더 되었을 뿐이죠. 97년 즈음 해서, 장애인들이 거리를 점거하기 시작했었죠.

아동폭력, 가정폭력을 경험했던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주 많은 아동들이 아동폭력, 가정폭력을 경험하면서 성장했지 않겠냐는 위로 아닌 위로의 말로 위로를 합니다. 그리곤 무엇인가 위대한 것을 발견하기라도 했다는 양, 부친 살해 욕망은 소설 속에 나오는 신화, 상징이 아니라, 실재한다고 말하기도 했죠. 실상 나를 키운 것은, 중학생 부터, 대학생이 될 때까지, 그리고 부친을 용서하기 까지, 나를 키운 것은 부친살해 욕망이었다는 것을 잘 알면서 그렇게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설흔을 훌쩍 넘겨서야 겨우 가정 폭력에 대해 얘기할 수 있었던 그 친구는 아직도 용서안되는 그 부친을 용서할 수 있겠죠. 상처를 이야기하는 것을 통해서 말입니다.

마지막 말을  써야겠습니다. 술 좋아 하는 사람이 "이 잔이 정말로 마지막이야" 할 때의 그 마지막과 같은 마지막 말 말입니다. 즉, 이 말이 결코 마지막이 아니라는 말이죠. 그 술 잔이 결코 마지막 술 잔일 수 없듯이 말이죠. 

당신들의 억압이 우리들의 억압과 다르지 않고, 당신들의 고통이 우리들의 고통과 다르지 않다는 것... 그리하여, 당신들의 해방이 우리들의 해방과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것...